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27화 (27/209)

027. 이안 라인란트(1)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도련님.”

“무사하긴, 피곤해 죽을 것 같은데.”

이른 아침.

일주일 만에 돌아온 라인란트 저택.

오랜만에 보는 듄켈의 인사에 답하며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었다.

“…별장에 초대되셨는데, 야전 망토는 왜 두르고 계신 겁니까?”

“그럴 일이 있었어. 아버지는?”

“서재에 계십니다.”

듄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뒤 저택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창문 사이로 비치는 아침해.

연무장에서 울려 퍼지는 기사들의 구령 소리, 집안일을 시작한 하녀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집이 좋긴 좋네.”

나른한 아침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복도를 거닐었다.

출발하는 시간부터 내내 유지하고 있던 긴장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보고서는 마차에서 써 놨으니까 간략하게만 전달해야지. 헥토르 건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그래, 네가 하인켈 녀석이 말한 둘째로구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박한, 그렇지만 얼핏 들어보면 초연하다고도 느껴지는 음성.

“?!”

깜짝 놀라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 듣는 목소리여서?

그런 게 아니었다.

“천재니 뭐니 떠들더니, 생각보다 반응이 늦구나?”

소름이 돋았다.

하인켈의 서재로 향하는 복도는 일직선.

그렇지만 날 향한 이 목소리는 등 뒤에서 들려왔다.

말인즉, 난 복도를 걷던 중 이 목소리의 주인을 지나쳤다는 뜻.

그렇지만 난, 저 노인이 언제부터 내 등 뒤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최소 개리슨, 혹은 그 이상 가는 강자다…!’

느슨하게 풀어졌던 긴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팽팽해졌다.

백발을 위로 올려묶은 갈색 로브 차림의 노인.

초점 없이 텅 빈 눈이 날 향하고 있었다.

“하도 안 와서 다음을 기약할까 싶었는데, 마침 잘 됐어.”

날 보며 고개를 주억거린 노인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빠르게 상황 정보를 조합했다.

‘위치는 하인켈의 서재 근처. 호위나 감시가 없다는 것은 은밀한, 혹은 개인적인 용무로 찾아온 손님일 터.’

그러는 사이, 날 향해 다가온 백발의 노인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적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

따악-!

“악?!”

이마를 때리는 둔중한 느낌에 무심코 목소리가 나왔다.

눈을 뜨자 날 보며 짓궂게 웃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보는 조카한테, 손속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머릿속으로 내린 결론을 입에 담자, 날 보던 노인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사이에 내가 누군지를 짐작했군. 정치꾼 기질이 다분한 놈이야.”

그렇게 말한 노인은 만면에 띈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날 향해 말했다.

“인사부터 해라 이 버릇없는 놈아. 네 삼촌이시다.”

노인의 말에 마주 웃어 보였다.

저자의 이름은 이안 라인란트.

전대 공작, 루델 라인란트의 첫째이자 사생아.

가문의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진, 이른바 내놓은 자식이다.

***

“지루하다면서 나가실 땐 언제고, 또 돌아오셨습니까?”

떨떠름한 하인켈의 목소리와 함께 서재 책상에 홍차 세 잔이 올라왔다.

‘라인란트 공작이 손수 타주는 차라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집어 들며 새삼 황망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나간 게 아니라 하녀장한테 쫓겨났다니까?”

“저장고에 있는 술을 죄다 비웠는데, 성질낼 만도 하죠.”

“허허!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이 모양이니…!”

그렇게 말하며 뜨거운 차를 단숨에 들이켠 이안은 자리에 놓인 쿠키를 한 움큼 집어먹었다.

‘내 보고는 이미 뒷전으로 밀려났구만.’

오래된 친구처럼 내내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선은 저 괴팍한 노인에게서 떼놓지 않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은 흉흉하더니, 꼭 그렇지만도 않네.’

이안 라인란트.

귀족명부에서 지워지고,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꺼려지는 잊혀진 라인란트.

그렇기에 그에 대한 정보는 극히 단편적이다.

공자인 나조차도 듄켈을 통해서 이름만 들어봤을 정도였으니까.

그나마 알려진 것은 두 가지.

그가 한때 제국 최강의 기사단인 금빛 날개 기사단의 단장이었다는 것.

그리고 휘하의 기사들을 모두 죽이고 은둔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내내 하인켈과 티격태격하던 이안의 손가락이 날 향했다.

“이 녀석이지? 네가 말했던 게.”

이안이 물었다.

시선은 날 향했지만, 질문은 하인켈을 향한 것이었다.

“예. 형님께서 보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인켈의 말에 이안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그래. 아주 머리가 빈 놈은 아니더구나.”

‘델라인 그 녀석과는 다르게 말이지.’ 라고 덧붙이자 하인켈이 쓰게 웃었다.

나 또한 그럴지도 몰랐다.

“흠….”

이안이 몸을 낮춰 내게로 손을 뻗었다.

목, 팔, 어깨.

손으로 그것들을 잡아보는 그는 마치 뭔가를 감정하는 것 같았다.

‘무슨 도축장 돼지가 된 기분인데.’

무기질적인 그 느낌에 얼굴을 찌푸릴 무렵.

“영 아닌데?”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하지도 않은 검을 휘둘러 근육은 금방 뭉치고, 골격도 발달이 안됐어. 검사라기보단 학자, 혹은 마법사와 같은 골격이야.”

신랄한 이안의 평가에 순간 흠칫했다.

‘골격만으로 그런 정보를 알아낸단 말이야?’

맹인은 시각을 잃은 만큼,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고 한다.

감각이 예민한 것은 그 때문인가?

모를 일이었다.

“클라인은 그 몸으로 제국 근위기사를 패퇴시켰습니다.”

“근위기사? 내가 아는 놈인가?”

“란델.”

“하-!”

이전에 손목을 잘라낸 기사, 란델.

그의 이름을 말하자 기가 차다는 듯 이안이 헛웃음 소리를 냈다.

“그 양아치 새끼, 이런 샌님에게 패퇴할 정도로 전락했었나?”

“본가 기사들의 평균은 되어 보였습니다만.”

“그래~?”

그 말이 들리고 나서야 그의 목소리에 한 줄기 흥미가 담겼다.

“그럼 한 번 보자꾸나.”

내게 다가온 이안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빛을 잃은 공허한 눈동자.

맹인의 시선이 정확히 내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네놈이 원석일지, 아니면 그저 길바닥을 구르는 돌멩이일지.”

그리고 그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황급히 마기를 끌어 올렸다.

정면에는 이미 방패를 든 스켈레톤의 팔이 형성된 상태였다.

쿠콰아아앙-!

등 쪽으로 느껴지는 격통.

2층에 위치한 하인켈의 서재 벽이 부서지고, 난 그 벽을 뚫고 나와 공중에 체공해있었다.

‘낙하 충격은 못버틴다. 스켈레톤!’

곧바로 마기를 뿜어 낙하지점에 소환문을 형성했다.

키이이!

한 구의 스켈레톤이 손을 모아 발판을 만들고, 그 발판을 타고 뛰어오른 다른 한 구가 내 몸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추락.

콰직-!

날 대신해 완충재가 된 스켈레톤의 등이 산산조각 났다.

급히 마기를 끌어 올리지 않았으면 저 꼴이 된 건 나였을 것이다.

“호오? 사령술이란 게 저런 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거였나?”

벽에 난 구멍으로 고개를 내민 이안이 그렇게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제대로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사령술에 대한 정보는, 하인켈에게 전해 들은 건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 한 일이겠지.

그게 아니면, 굳이 저 노인을 본가에 부를 이유가 없으니까.

“조카 예절교육은…. 방금 전 꿀밤으로 마치신 거 아닙니까?”

입가를 비틀며 그렇게 말하자 이안의 웃음 또한 짙어졌다.

“마쳤지. 이건 교육이 아니라 확인작업이다.”

그렇게 말하며 이안은 저택 뒤쪽에 뚫린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이전에 내가 루델과 계약한 저택 뒤편의 갈대밭.

이안의 손에는 어느새 두 자루의 검이 들려있었다.

“받아라.”

하늘로 날아온 검 한 자루를 받아들었다.

연습용 블런트가 아닌 서슬 퍼런 날이 살아있는 진검.

날 보던 웃음을 그대로 간직한 이안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이곳 기사들처럼 무르게 대할 생각은 없다. 전력으로 덤벼 봐.”

확인이라.

하인켈이 저자를 저택에 부른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다짜고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짧은 불평과 함께 천천히 검을 뽑았다.

“대련 중에 죽어도 책임 안집니다. 백부님.”

물론, 상대방을 자극하기 위한 도발도 잊지 않은 채였다.

카앙-!

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이안의 검이 날아왔다

마력을 담지 않은 검격.

그조차도 그가 사용하는 것은 한 손뿐이었다.

“그 주둥이로 지껄인 만큼은 해보여야 할 거다. 버릇없는 애송아.”

서슬 퍼런 그의 웃음을 마주하며 그의 검을 쳐냈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제 2격, 제 3격이 쏟아졌다.

‘본 적 없는 검로. 측면과 정면을 동시에…!’

라인란트의 검사들은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검술.

뱀처럼 휜 찌르기를 정면으로 쳐내고, 곧바로 유성검으로 흐름을 끊어냈다.

키이이이잉-!

한 점에 집중되어 쏘아지는 검격.

고개를 옆으로 틀어 그것을 피해낸 이안이 탄성을 내질렀다.

“연속기 사이에 유성검을 섞는다라, 단장급 기사들도 해내기 힘든 걸 아무렇지도 않게…!”

경탄한 듯했지만 단지 그뿐이다.

마력을 담지 못하는 난 움직임을 재현할 뿐, 그 위력을 재현할 수는 없다.

절대로 완성될 수 없는 반쪽짜리 검사.

‘그러면 이건 어떠냐…!’

최선의 방어는 공격.

앞으로 스텝을 내질러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과 동시에, 검집에 갈무리된 검을 뽑아 횡으로 휘둘렀다.

“허허, 환영검?! 이 녀석 좀 보게?!”

카카앙-!

한 번의 검격(劍擊)이었지만, 빛나는 검명(劍明)은 두 개.

루델의 검술인 환영검을 이용해 동시에 두 검로를 제압한 것이다.

‘이것도 막아내?! 어떻게…!’

상대방의 눈을 교란하는 검술, 환영검.

그렇지만 이안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그것을 상쇄해냈다.

제 자리에서 풍차처럼 돌아 내 검을 튕겨낸 이안.

저것 역시 처음 보는 기괴한 검술이었다.

“몆십 년 만에 그 기술을 막아보는지 모르겠군!”

그렇게 말하며 그가 내게 다가오자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맹인에게 눈속임을 걸다니, 우둔하기 짝이 없구나!”

카앙-!

꾸짖음과 함께 정면으로 검을 찔러왔다.

마력을 담지 않은 일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흘리려 했던 내 자세가 흐트러졌다.

“크으?!”

마력으로 강화한 것이 아닌 순수한 육체의 강함.

‘누가 저걸 보고 맹인이라고 생각하겠냐고?!’

눈이 보이는 나보다도 더 정확한 검로를 보며 속으로 이죽거렸다.

지금의 내 검술로는 상대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 강자.

“그렇지만!”

내 무기는 검뿐만이 아니며, 내 본질은 기사가 아니다.

자세가 흐트러진 그 순간, 비어있는 검로에 소환문을 형성했다.

크아아-!

검은 갑주 차림의 기사.

이전에 제압한 헥토르의 혼으로 만들어낸 데스나이트였다.

카앙-!

나와는 달리, 마력을 담은 기사의 검이 이안의 검을 쳐냈다.

“그사이에 이런 걸 만들어낼 겨를이 있다니, 이것 참 물건이군!”

이번에는 그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그의 방어가 한순간 열렸다.

‘아마 일부러 열어준 거겠지.’

그렇지만 망설일 틈은 없었다.

유일한 가능성이 거기에 있었으니까.

‘지금 가장 유효한 검은 방금 전 그 기술. 떠올려라, 재현해라!’

빠르게 머리를 돌리며 방금 이안이 사용한 검술을 재현했다.

키리리릭?!

검을 곧추세워 그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뱀처럼 기괴하게 휜 검이 그의 방어를 파고들었다.

“이걸로…!”

그렇게 최후의 한 수를 내지르기 직전.

“좋아. 합격이다.”

흡족한 이안의 목소리와 함께, 전신을 후려치는 어마어마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크으?!”

기술과 기교로는 절대로 침범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

단전에 위치한 마력로의 출력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이안은 공격에 한창인 내 몸을 멀찍이 날려보냈다.

쿠당탕-!

멀찍이 날아간 내 몸이 갈대밭은 굴렀다.

소환해 둔 헥토르의 영체는 이미 날아간 뒤였다.

콱-!

황급히 일어나려던 내 머리 옆으로 이안이 던진 검이 꽂혔다.

조금만 옆이었다면 머리가 꿰뚫렸을 터.

내 완벽한 패배였다.

“하아…! 하아…!”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애써 일으키려는 순간.

“사영격(蛇影擊)을, 사막 전사들의 비기를 2분 만에 완전히 재현했군.”

내가 따라한 기술의 이름을 말한 이안이 그대로 내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하인켈. 이 녀석은 내가 맡는다. 문제없겠지?”

그렇게 말하자 어느새 갈대밭으로 나온 하인켈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벽 부순 거, 오늘 중으로 고쳐놓으십시오.”

“아.”

물론, 가주로서 할 일을 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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