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26화 (26/209)

026. 분열의 씨앗(2)

키이이이-!

마력을 머금은 기사의 검이 빛나고, 스켈레톤의 몸이 허망하게 땅을 나뒹굴었다.

“헥토르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히, 히익…! 저기…. 저기 언데드가…!”

갑작스러운 제국 네크로맨서의 습격.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아수라장이 된 헥토르 일행이었지만, 폴와이번 기사의 위명은 허세가 아니었다.

‘스켈레톤 스무 구로 20분이라. 그래도 잘 버틴 셈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얼굴에는 제국 네크로맨서가 사용하는 가면을 쓴 채였다.

“저기, 네크로맨서다!”

“잡아라! 놈을 추궁해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아야 한다!”

동맹인 줄 알았던 이들이 갑작스레 기습을 해온 상황.

이미 두 명의 기사가 불시에 날아온 창날에 목숨을 잃었다.

‘좋아. 계획대로 되어가는군.’

날 향해 달려오는 이들을 확인한 뒤 뒤쪽으로 몸을 뺐다.

“저 개자식이…!”

“잡아라! 폴와이번을 습격한 무뢰배다!”

잔뜩 일그러진 기사들의 모습을 보니 실소가 절로 나왔다.

‘도발은 이 정도로 충분하겠어.’

어두운 숲이리는 환경과 불의의 기습.

거기에 동료의 죽음.

여기에 배신이라는 정황이 더해진다면, 기사들의 이성을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하다.

[그대들에게 새 육신을 부여하니, 가증스러운 적의 발을 잡고 늘어져라.]

미리 대기 중이던 열 구의 스켈레톤을 전진시키며 영창했다.

대상은 곳곳에 널브러진 채 비틀거리는 스켈레톤들의 잔해.

화륵-!

그들에게 마기를 보내자 희미해진 안광에 다시금 빛이 들어왔다.

크르르르르-!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스켈레톤들이 기사들을 향해 기어갔다.

“이런 미친, 다시 되살아난다고?!”

“무슨 언데드가…!”

시체를 사용해 만든 언데드는 몸을 파괴하면 무력화된다.

그렇지만 마력을 빚어내 만든 언데드는, 영혼이 지닌 마력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지.

기사의 고강한 마력을 이길 수는 없지만, 이걸로 발을 묶는 것 정도는 가능할 터.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기사들의 검에 점점 무너지는 스켈레톤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크어어어-!

멀리서 들리는 언데드의 울음소리.

그것을 들은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빙고. 때맞춰 도착했군.’

스켈레톤이 뿜어대는 연기와 숲의 어둠 때문에 기사들의 시야가 좁은 상황.

혼란을 틈타 숲속으로 몸을 숨긴 난 그대로 멀찍이 전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저기 기사들이 있다!”

“감히 기습을 하다니,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마라!”

제국의 인장이 박힌 가면을 머리에 쓴 네크로맨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크로맨서라는 것들이 도플갱어도 구분 못하다니.”

난 네크로맨서로 위장한 뒤 헥토르를.

그리고 내가 보낸 도플갱어들은 헥토르와 기사들로 위장한 뒤 네크로맨서들을 친다.

내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밥 먹듯이 쓰던 교란책.

그 낡은 수법에 완전히 속아넘어간 꼴을 보고 있자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저런 것들이 내 후배들이라니.”

페일.

그리고 저 네크로맨서들을 보며 확신했다.

지금 대륙에 남아있는 사령술은 시체를 되살리고, 강한 언데드를 만들어내는 것에만 치중되어 있다고.

‘전쟁에 쓰기 좋도록 개량된 기형적인 사령술. 배우는 속도는 빠르지만, 한계도 명확하지.’

제국의 네크로맨서들이 소환한 언데드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기사들 역시 네크로맨서들을 발견한 듯, 검을 쥔 손에 한층 더 마력을 끌어올렸다.

“기사단 전투 준비! 헥토르 공자님을 지켜라!”

“네크로맨서 부대, 전투 준비! 저 배신자들을 당장 처단하라!”

이미 양측에서 사상자가 난 이상, 돌이킬 방법은 없다.

[소환 해제.]

쓰러진 스켈레톤들의 영체를 해제한 뒤, 흔적을 없앴다.

그러는 사이, 네크로맨서들이 불러낸 백 구가 넘어가는 좀비들, 그리고 분기탱천한 기사 열 명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돌격했다.

쾅-!

키에에에에에-!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의 현장.

네크로맨서들이 소환한 좀비와 기사들이 뒤엉킨 채,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잠시 상황을 관망하기만 하면.

“헉…. 허억…!”

양쪽을 동시에 약화시킬 수 있지.

‘좋아. 공멸했군.’

열 명의 기사와 열 명의 네크로맨서의 격돌.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치열한 접전 끝에,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머쥔 것은 헥토르의 기사들이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으, 으으…!”

그렇지만 그들 역시 멀쩡하지는 못했다.

시체로 만들어내는 좀비.

그들의 썩은 손톱과 이빨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독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어서, 영지로 대피하십시오. 이곳은 위험, 크윽…!”

헥토르를 챙기는 기사들의 상처가 검게 죽어갔다.

“여, 여기서 쓰러지면 어떡해! 난 어떻게 돌아가라고…!”

이미 태양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어두운 숲속.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는 기사들을 보며 헥토르가 몸을 떨었다.

‘피를 본 적이 없으면, 아무리 기사라 한들 저 꼴이지.’

어린아이처럼 떨고 있는 헥토르를 보며 쓰게 웃었다.

지금까지 헬리안의 호위만을 해 온 그로서는 처음 겪는 참상.

공포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서 가십시오 공자님! 본가에 지원을…!”

“지원? 누가 부르게 내버려둔대?”

다급한 기사들의 목소리에 화답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네, 네놈은…!”

헬리안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제국의 네크로맨서들.

그리고 헥토르를 호위하던 기사들.

양쪽 모두 지금의 나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강력한 전력이다.

그들을 한번에 파훼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이렇게 서로 공멸하게 만들면 된다.

“네크로맨서!”

“아직 남아있었나?!”

아직 가면을 벗지 않은 날 보며 기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 기력이 남아있군.’

용살자의 후예를 칭하는 폴와이번 기사의 저력.

소소한 감탄을 담아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래. 네크로맨서지.”

그들의 말에 화답하며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미약한 달빛과 횃불의 불꽃.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두 색깔의 빛이 잠시동안 내 얼굴을 비췄다.

“너, 너는…!”

“클라인 공자…!”

날 알아본 기사들이 당황한 것도 잠시.

이 참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누구인지 알아챈 듯, 기사 중 한 명이 삿대질을 했다.

“그렇군. 이 상황은 당신이…!”

“뭐야, 그 새 알아챘어?”

일렁이는 불꽃 속에 떠오른 내 얼굴이 차가운 비웃음을 머금었다.

“도마뱀 꼬리나 자르던 놈들 치곤 머리가 좀 돌아가네?”

그렇게 말하며 기사들을 자극하자, 쓰러져있던 이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감히…. 감히 천하의 폴와이번을 가지고 놀아?!”

“폴와이번? 아니지.”

그들의 일갈을 미소로 받아넘기고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가지고 논 건 폴와이번이 아니라, 헬리안에게 붙어 빌어먹는 기생충들인데.”

기생충.

헬리안 파벌의 기사들을 그렇게 칭하자 날 보는 기사들의 눈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감히, 뚫린 입이라고…!”

이제 그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은 이전과 같은 멸시나 무시가 아니었다.

당혹, 분노, 적의.

그리고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는 공포까지.

“크아아아-!”

잠시 동안의 대치상황을 참지 못한 것인지, 기사들이 일제로 날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리 지쳤다 한들 마력 한 줌 없는 떨거지 검사!”

“이 거리에선 사령술도 사용할 수 없겠지!”

내 약점을 내뱉은 기사들의 검이 내게 짓쳐들었다.

지친 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

그들의 기술과 마력의 흐름을 눈에 담으면서도, 난 그 자리에 멈춰선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루델.”

전대 라인란트 공작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이때를 위해 준비한 비장의 한 수.

그것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수십 갈래의 검격이 일제히 어두운 숲을 휘저었다.

그들로서는 볼 수도, 그것을 감지할 수도 없었을 터.

까가가가가각-!

소름 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기사 열 명의 목이 일제히 달아났다.

눈을 감았다 뜨자, 눈앞에 나타난 것은 검은 갑옷 차림의 기사.

데스나이트, 루델 라인란트였다.

후두두둑-!

“어, 어…?”

“이게 무슨…!”

공중에 떠오른 기사들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그때까지도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눈치채지 못한 듯, 기사들이 입을 뻐끔거렸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털썩!

그들의 목과 함께 제어를 잃은 몸이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신체 스펙은 평기사들과 다를 바 없을 텐데, 괴물이 따로 없군.’

라인란트가 그에게 부여한 칭호는, ‘가장 화려한 검사.’

그의 검술을 보고 나니, 그런 칭호를 받은 이유가 짐작이 갔다.

극도로 압축시킨 검기로 그은 화려한 선.

기사 열 명을 베어냈음에도, 그의 마력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쩡했다.

“히, 히익…?!”

이제 남은 것은 헥토르 한 명뿐.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헥토르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 마! 오지…! 으악?!”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채 물러서던 헥토르는 이내 돌부리에 발이 걸려 그 자리에 쓰러졌다.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것이, 제 어미 품을 벗어나자마자 이 꼴인가.’

겨우 이따위 시정잡배가 본가의 숙적이라니.

허탈한 감정과 함께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 내가 해도 되는데 말이지.

“아니, 이건 내 몫이야.”

근처에서 들려오는 루델의 목소리에 답했다.

아무리 타락했다 한들 루델에겐 외손자.

그의 손으로 죽이게 된다면 존속살해의 업이 쌓인다.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우리가 너한테 뭘 어쨌다고?!”

울분에 가득 찬 헥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르고 보면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네.’

애처롭기까지 한 헥토르의 몰골을 보니 실소가 절로 나왔다.

“왜 그랬냐고?”

“그, 그래! 우린! 저, 적어도 난 너한테 아무것도…!”

“그럼 나도 하나 묻지.”

헥토르의 항변을 중간에 끊은 뒤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라인란트 영지민들은 너희한테 뭘 했길래, 제국의 실험체로 죽어가야 했지?”

이것이 내가 방계를 박살 내기로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제국의 네크로맨서, 페일의 동굴에 펼쳐진 인간 실험장.

그곳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을 입에 담자 헥토르의 말문이 막혔다.

“그, 그건 어머니의…!”

“북부인들의 피로 빚은 부귀영화는 그동안 잘도 받아 처먹었으면서, 이제 와서 피해자 행세를 하시겠다?”

“으…!”

더 할 말을 찾지 못하는 헥토르를 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헬리안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는데, 몰랐을 리가 없지. 안그래?”

설사 몰랐다고 해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산 채로 끌려가, 실험쥐처럼 해부된 끝에, 자신의 손으로 자기 가족을 해쳐야 했던 그들의 한.

그날, 마을에서 새겼던 약속의 룬은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죽음으로 갚을 수 있는 죄가 아니다.

눈에는 눈으로, 죄에는 죄로.

똑같은 일을 만들어, 영원히 고통받는 것이 내가 그에게 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벌이다.

그렇기에.

“죽는 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헥토르 로스 폴와이번.”

공포의 질린 그를 응시하며 마저 말했다.

“넌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아주 많거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손에 쥔 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스걱-!

허공에 떠오른 헥토르의 목이 차가운 흙바닥을 굴렀다.

공작가 후계자의 최후라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죽음.

시체로 가득한 숲을 둘러본 난 그 자리에서 수인을 맺었다.

파츳-!

내 앞에 떠오른 것은 세 개의 계약문.

루델의 혼을 데스나이트로 만들었을 때 사용했던 술식이었다.

- 뭘 할 생각이지?

“헬리안의 술수에 희생당한 목숨이 몇인데, 고작 죽는 걸로 끝낼 것 같아?.”

루델의 말에 답하며 계약문에 새로운 룬어를 추가했다.

- 허, 정말이지. 끝까지 악독하기 짝이 없구만.

계약문을 확인한 루델이 질렸다는 듯 내게 말했다.

“말했잖아.”

빙긋 웃으며 이전에 한 말을 되풀이했다.

“난 사악한 네크로맨서라니까?”

헥토르의 시체를 옭아매는 계약문을 바라보았다.

푸른 빛 위에 덧씌워지는 검은 기운과 불길한 룬.

혼의 자유의지를 없애는 복종의 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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