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분열의 씨앗(1)
쨍그랑-!
“꺄악?!”
“고, 공후 마마, 고정하세요…!”
이른 아침.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폴와이번 공작가에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거 놔-! 감히 내 기사를 죽이고, 당당히 영지에서 살아돌아갈 줄 알고?!”
“마, 마마! 제발…!”
이 광경을 본 이라면.
그리고 헬리안 공후를 알고 있는 이라면, 아무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공후 마마를 막아라! 어서!”
“이거 놔-! 전부 죽여버릴 테다! 아아악-!”
머리는 완전히 산발한 채, 한 손에 세검을 든 헬리안.
그녀는 바로 앞에 원수가 있기라도 한 듯 미친 듯이 그것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악?!”
“마, 마리!”
“하녀가 칼에 맞았다! 여기, 아무나…!”
“시끄러워-!”
화려한 실크와 비단으로 장식된 중앙계단에 피가 튀었다.
“클라인…! 클라인 네 놈이…!”
“절 찾으셨습니까?”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붉게 달아오른 헬리안의 얼굴이, 이번에는 파랗게 물들었다.
“크, 클라인 공자님…!”
“부디 물러가 주십시오. 공후 마마께서는 지금…!”
잔뜩 겁에 질린 하인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해는 충분히 갔다.
지금 당장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논란의 장본인이 저택에 찾아온 상황이니까.
“너…!”
예상한 대로, 화를 주체하지 못한 헬리안이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네가, 네가 감히 내 기사를…!”
“고모님의 기사?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뭐가 어째?!”
그렇게 말한 헬리안이 날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내 오늘 이 자리에서 너를-!”
단순하다 못해 미련한 검로.
예측을 할 필요조차 없다.
내려쳐지는 헬리안의 검을 곧바로 튕겨냈다.
카앙-!
“아악?!”
내 검격에 헬리안의 몸이 균형을 잃고 그 자리에 무너졌다.
“지금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저택에 있는 모든 이들이 듣도록, 큰 소리로.
“한때 라인란트의 일원이었던 자라면, 그에 걸맞은 체통을 지키세요! 헬리안 공후!”
별 볼일 없는 본가의 둘째 공자가, 방계의 일인자를 쓰러트리고, 호통친다.
마마라는 극존칭을 생략한 채로.
“저, 저……!”
“클라인 공자가, 공후님께…?”
곳곳에서 동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인, 집사, 우체부.
누구든 좋았다.
영지 내에 소문이 퍼지고, 가십거리가 되어 귀족들 사이에 퍼질 수만 있다면.
‘귀족을 잡는 데에는 귀족의 방법이 제격이지.’
사람들을 둘러본 내가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아, 아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깨달은 듯, 헬리안이 날 보며 뭔가 말하려 했다.
“네가…. 네가 감히…!”
“고모님.”
그녀가 뭐라고 말하기 직전, 그녀의 어깨를 잡아채 끌어당겼다.
“제국을 뒷배로 두고 있는 라인란트가, 정말로 고모님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녀의 말을 끊고 그렇게 속삭이자, 헬리안의 눈이 커졌다.
“뭐, 라고…?”
내 목소리에 헬리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조금만 생각해도 유추할 수 있는 뻔하디 뻔한 술수였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자신의 기사를 잃은 이 시점이라면, 이 허세만으로도 충분하다.
“고모님이 하신 달콤한 제안을, 제가 왜 거절했을까요?”
“……!”
비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헬리안을 다시 흔들었다.
상실감과 불신을 비집고 들어오는 이간질.
거기에 혼을 울리는 망자의 목소리가 섞인다면, 그것은 마치 진실인 양 들리게 된다.
“교단이 산체스가 사라진 현장을 격리했습니다. 사령술의 흔적이 짙다면서요.”
내가 보낸 밴시는 이미 하루 종일 헬리안의 거처를 감청했다.
내가 말하는 내용은 그녀 또한 새벽에 보고받았던 내용.
거짓을 꾸미기 위해 진실을 섞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륙에서 가장 사령술을 깊이 연구한 집단이 어디였죠?”
“……!”
물론, 헬리안이 내 말을 믿을 리 없다.
적. 그것도 본가 출신의 인물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니까.
‘그러니 아주 자그마한 균열. 아주 조금의 의심이면 된다.’
산체스의 죽음이라는 자극이 그 미세한 틈을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건드릴수록, 그녀의 의심은 점점 더 커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심에 쐐기를 박기 위해선….
“크, 클라인 라인란트-!”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내 상념을 깨웠다.
‘때마침 기어나왔군.’
다급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녀석을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헥토르 로스 폴와이번.
현재 헬리안을 심적으로 지탱하는 마지막 기둥.
그리고 내 계획을 위한 마지막 장기말이었다.
“본가로 돌아가기 전에 충고 하나 해드리죠. 헬리안 고모님.”
헥토르가 내게 다가오기 직전.
불란으로 가득한 그녀의 눈을 본 난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헥토르. 잘 간수하시는게 좋을 겁니다.”
“……!”
그렇게 한 마디를 덧붙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자, 뒤늦게 도착한 헥토르가 내게 삿대질했다.
“너, 너! 여긴 뭐하러 찾아온 거야?!”
내가 목에 칼을 들이댈 때의 감각이 남아있는 것인지, 녀석은 내게 소리치면서도 움츠러들어있었다.
“그래, 때마침 잘 되었네.”
그를 보며 그렇게 말한 난 그에게 말했다.
“초대받은 행사를 전부 마쳤으니, 난 본가로 돌아간다.”
“도, 돌아…. 간다고?”
“그래. 고모님 잘 보살펴드리고.”
웃는 낯으로 그렇게 말한 난 그대로 등을 돌려 저택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미리 대기시켜놓은 라이아의 마차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허세로 헬리안이 정말 우리 뜻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해요?”
“생각 안합니다.”
마차에 오르자 들려오는 뾰루퉁한 목소리에 답했다.
라이아 렌 폴와이번.
신뢰한다는 의미인지 들켰으니 배째라는 건지, 아가씨 연기는 그만둔 채였다.
“그럼 왜 굳이….”
“불안요소가 많으면 많을수록 실수할 확률도 늘어나니까요. 그리고….”
아린이 미리 준비해 준 배낭을 확인하며 마저 말했다.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던 간에, 헥토르는 죽습니다.”
내 그 한마디에 라이아의 표정이 더 딱딱해졌다.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던 라이아는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람을 죽이겠다는 말을 너무 태연하게 하는군요.”
“…사람이라.”
심각한 표정을 한 라이아의 말에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뭐가 웃겨요?”
“저것들을 사람으로 취급해야 하는걸까요?”
멀어져가는 헬리안의 별장을 보며 그렇게 말하자, 라이아가 내게 말했다.
“후계를 두고 싸우고 있지만, 그럼에도 기사된 자로써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습니다.”
“기사로서.”
듄켈도, 베르켈도, 눈앞에 있는 라이아도.
모두가 입에 담는 그 ‘기사’라는 칭호와, 그 무게.
살아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설명이 좀 필요하려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내가 몸담은 곳이 기사가문.
같은 기사를 납득시키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정당성은 확보해야 할 터.
“기사단 임무 나갈 때, 몬스터를 죽이겠다는 말은 쉽게 하죠?”
“예?”
뜬금없는 내 질문에 의문을 표한 라이아였지만, 얼마 안 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몬스터가,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한 선한 몬스터라면요?”
그렇게 말하자 라이아의 표정이 더 이상해졌다.
“그런 몬스터가 있어요?”
“대충 있다 치고요. 그럼 죽일 건가요?”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던 라이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못 죽일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수십 명을 죽인 인간은 어떻게 할 거죠?”
수십 명을 죽인 살인자.
그렇게 예시를 들자, 이번엔 대답이 좀 더 빨리 나왔다.
“죽여야죠.”
단호한 대답.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난 계속 말했다.
“그럼 그쪽은 방금, 인간인지 아닌지에 따라서 죽일지 말지를 정했습니까?”
“…아니요.”
이렇게 문답이 이어지자, 라이아 역시 내가 하고자 한 말을 이해한 듯했다.
“한 존재의 가치 기준은 종족이나 출생이 아닌,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이해가 빠르군요.”
그렇게 말하자 라이아가 그대로 얼굴을 찡그렸다.
“말인즉, 당신에게 있어 헬리안 파벌의 귀족들과 몬스터는….”
“똑같은 해충입니다.”
그렇게 말한 뒤 난 라이아를 보며 웃어 보였다.
“모기 수천 마리를 태운다고 해서, 거기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잖아요. 안그래요?”
“……!”
그 말을 들은 라이아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나와 라이아의 문답이 끝났을 때쯤.
날 싣고 간 마차는 목표지점에 도착한 뒤, 문을 열었다.
“늦어도 사흘 뒤엔 소식이 갈 겁니다. 그럼….”
“알아요. 약속은 지킵니다.”
라이아의 확답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서 내렸다.
나무가 울창한 숲길.
몸을 숨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자 그럼 이제, 일을 해볼까.”
그렇게 말한 난 등짐을 풀어 로브를 두르고, 가면을 썼다.
[안내자 클라인이 떠도는 혼을 부르니, 답하라.]
손을 뻗어 주문을 영창하자, 숲속을 떠도는 혼 중 하나가 내 부름에 답했다.
스르르르…!
새하얀 액체와도 같은 형상.
그러나 이윽고 그것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인간의 형상으로 변한 뒤, 날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한쪽은 네크로맨서 페일, 한쪽은 헥토르.
대상의 형태를 모방하여 교란하는 유령, 도플갱어였다.
“좋아, 이걸로 준비는 대충 끝났고.”
새로 만들어낸 작품의 모습을 보는 사이, 숲속에서 밴시가 내게 다가와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그래, 일이 생각보다 더 쉬워지겠어.”
입에 걸린 웃음이 더 짙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먹이가 미끼를 물길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
“젠장, 엄마는 왜 날 이런 곳으로….”
클라인이 영지를 떠난 이후.
헬리안은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한동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겨우 평화가 찾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헬리안은 헥토르를 불러 그에게 서남부에 있는 요새도시, 갈론드의 수비대장직을 맡겼다.
“오히려 기회입니다 공자님. 갈론드의 수비대장이면, 기사단장에 버금가는 지위니까요!”
“그, 그런가?”
갈론드로 향하는 길.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에 혼란스러워하는 헥토르였지만, 같이 동행하는 부관의 말에 한껏 기분이 나아진 듯 보였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갈론드에서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해내는 거야.’
떨거지나 다름없던 공자에게 패배하고, 산체스는 행방불명에,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닌 상황.
그렇지만 헥토르는 애써 마음을 다잡은 채, 갈론드로 향하는 길을 재촉했다.
“자, 잠깐 정지!”
그렇게 어두운 숲길을 지나던 도중.
선두에 선 기사 두 명이 뭔가를 발견한 듯, 행렬을 멈춰 세웠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 공자님. 저길 보십시오.”
헥토르를 호위하는 기사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며 숲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게…. 뭐야?”
검은 로브와 가면을 쓴 기괴한 차림의 인영.
그것을 본 헥토르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제국의 네크로맨서입니다.”
“네크로맨서? 제국에서 육성한다는 그…?”
“맞습니다. 보아하니 길을 잃은 듯합니다만….”
그렇게 말한 기사가 손을 흔들었다.
제국 소속이라면 헬리안 파벌과는 아군인 바.
이런 숲속에서 고립되었다면 돕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야, 야…. 그냥 가자. 찝찝하단 말이야.”
“공자님….”
시체를 일으켜 싸우는 자들.
헥토르와 같은 귀족들이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헥토르의 반응에 기사들이 쓴웃음을 짓는 사이.
잠시 헥토르 일행을 응시하던 네크로맨서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것 보십시오. 저쪽에서도 화답하지 않습…!”
헥토르를 달래던 기사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푸욱-!
살을 찢는 소름 돋는 소리.
그와 함께, 기사의 눈이 크게 띄었다.
“왜…. 왜…?”
그의 가슴팍을 뚫고 나온 것은 거대한 창날.
오래전에 버려진 듯, 잔뜩 녹이 슬어있었다.
“어, 어…?”
상황파악을 다 끝내지 못한 헥토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그때.
“크어어어어…!”
“키이이이…!”
“크르르르르르…!”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서슬퍼런 안광이 하나둘 늘어났다.
검은 연기에 둘러싸인 해골병사.
네크로맨서들이 사용하는 언데드, 스켈레톤이었다.
“자, 잠깐만!”
“이게 무슨 짓인가! 이보게! 우린…!”
다른 기사들이 황급히 뭐라 말하려던 사이.
후두두둑-!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세례에 기사들이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런 제길?! 이게 무슨!”
“제국의 네크로맨서가 우릴 공격하고 있다! 전원 전투준비!”
피아식별은커녕,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어두운 숲속.
보이지 않는 네크로맨서들과 기사들이 전투를 시작할 무렵.
숲의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헬리안의 기사들이 배반했다! 전원, 언데드를 소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