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23화 (23/209)

023. 낙엽(2)

“목표 확인.”

“좋아. 추적한다.”

깊은 밤.

구름이 달을 삼키는 것과 동시에 숨어있던 낙엽들이 몸을 일으켰다.

검은 후드 차림의 암살자.

한 명은 별실에 있는 하녀를 죽이기 위해 대기, 나머지는 밤거리를 걷는 클라인을 보고 있었다.

“목표 정보 확인한다.”

“목표는 클라인 공자. 검술 자체는 단장급 기사에 맞먹지만, 마력이 없어.”

“장거리에서 말려 죽이는 게 편하겠군. 다른 한쪽은?”

“별거 없어. 평범한 하녀야. 단지….”

추격조에게서 도망치던 클라인을 따라가는 동시에 브리핑을 계속하던 낙엽이 말을 흐렸다.

“단지, 뭔데?”

“그게….”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낙엽이 미심쩍다는 듯 입을 열었다.

“신원정보가 없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동료의 되물음에 그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말했다.

“말 그대로야. 조직의 정보망을 전부 뒤져 봤지만, 일치하는 신원정보가 없어.”

출생지가 어디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그 모든 정보가 없다.

그 말에 후드를 덮어쓴 낙엽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대륙 전체를 활동 범위로 하는 지하조직, 낙엽.

그들이 구축한 정보망은 거의 모든 대륙인들의 신상정보를 낱낱이 파악한 상태였다.

이름 없는 사생아를 바다 한가운데에 버린다 해도, 그 어미와 아비를 찾아 죽일 수 있는 것이 낙엽의 정보망.

라인란트 영지처럼 잘 알려진 도시라면, 쥐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뒀을 것이다.

그런데, 없다니?

“클라인 공자가 일곱 살 때 교화소에서 데려온 하녀. 그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어.”

“그럼….”

“그래.”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낙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하녀는 말 그대로, 허공에서 솟아난 인간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이, 길모퉁이를 돌아간 클라인을 보며 두 사람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한번 더 알아볼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불확정 요소가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계약을 마친 상황.

이런 사소한 요소 때문에 계획을 미룬다면, 본부에 있는 동료들을 볼 낯이 없다.

게다가 계약금으로 받을 ‘그 물건’을 생각하면….

“정보가 없다 한들 마력 따위는 조금도 없는 평범한 하녀야.”

“그럼….”

“죽여버리면 돼. 델핀 정도면 믿을 수 있어.”

자신들 중 최고의 실력을 가진 자.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목표를 처리하고, 돌발상황에 대비한 예비대가 될 예정이었다.

“목표가 정지했어!”

그러는 사이, 인적없는 공터에 다다른 클라인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암살을 위한 최적의 장소.

그렇지만 낙엽들은 오히려 미심쩍다는 듯 주변을 살폈다.

“뭐지? 어째서 이런 곳에서….”

두 낙엽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한 순간.

“수십 명은 몰려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머릿수가 좀 적네?”

클라인은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한 손에는 이미 장검이 들려있었다.

“들켰다고?!”

“어느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듯, 두 명의 낙엽이 동시에 암기를 던졌다.

카앙-!

그렇지만 클라인의 검에 가로막힌 암기들은 그의 몸에 닿지 못한 채 쇳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인사가 좀 요란한데.”

땅에 박힌 암기들을 보며 클라인이 그렇게 말했다.

‘위치가 들킨 이상 이 이상의 매복은 의미가 없어!’

‘내가 주의를 끌게. 넌 뒤를 노려.’

수신호를 통해 말을 마친 낙엽이 클라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함정도, 매복도 없다. 정말로 혼자서 우리 둘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내심 부아가 치밀었다.

이미 두 손에는 맹독을 가득 머금은 각종 기물과 암기가 즐비한 상태.

마음만 먹는다면, 한순간에 숨통을 끊을 수 있다.

“보아하니, 누가 사주했는지는 안 봐도 뻔하고.”

검을 뽑은 클라인은 귀찮다는 듯 빈정거리며 그들을 향해 말했다.

“피차 할 말도 없는 것 같은데, 빨리 끝내지?”

선전포고와 같은 한 마디.

그 말을 듣자 낙엽의 입에 짙은 비웃음이 걸렸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채 죽는게…!”

“훨씬 편했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신형이 사라졌다.

“오, 암살자도 요즘은 보법을 쓰네?”

어디서 어떤 공격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

그렇지만 클라인 공자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흥미로운 눈으로 두 사람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정보가 허언은 아니로군. 내 경로를 읽고 있어.’

마력, 기척, 살기.

검사나 마법사와 같은 이들조차 한번에 감지할 수 없는 것이 낙엽의 암살자들이다.

그렇지만 클라인 라인란트.

그의 눈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두 사람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키이이이이-!

그다음 순간, 사라졌던 낙엽이 달려들어 단검을 찔러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 명은 뒤를 잡은 채 암기를 던졌다.

앞과 뒤를 동시에 공략하는 구도.

‘어느 쪽을 방어하든!’

‘네 놈은 끝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단검을 든 낙엽은 자신을 향해 짓쳐드는 클라인의 검을 보았다.

‘좋아, 이쪽에 정신이 팔렸어!’

정면을 향한 클라인의 검격.

그것을 본 낙엽이 몸을 틀어 검을 피한 직후였다.

카캉-!

쇳소리와 함께 암기가 튕겨 나가 위로 솟구쳤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으니, 등 뒤는 완전히 무방비일 터.

그렇지만 다시 확인한 클라인의 모습은, 자신을 등진 채 암기를 위로 올려친 자세였다.

“환영검, 생각보다 쓸 만한데?”

웃는 낯으로 그렇게 말한 클라인이 곧바로 단검을 든 이에게로 짓쳐들어갔다.

“크윽?!”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델라인의 보법이 펼쳐졌다.

경로는 찌르기.

“이까짓 걸로!”

들어오는 검을 옆으로 후려치려던 낙엽의 뇌리에 방금전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정면인 줄 알았더니 등 뒤를 쳐냈다.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한 낙엽은 곧바로 몸을 옆으로 틀어 단검을 집어던졌다.

카앙-!

역시.

찌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음 순간 그의 검로는 측면을 향했다.

“같잖은 속임수를 쓰는군!”

이를 갈아붙인 낙엽이 그렇게 말했지만, 클라인은 되려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지금 암살자가 검사한테 속임수 운운하는 건가?”

그렇지만 그 말을 듣는 사이, 단검을 던진 낙엽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진짜 속임수는 이런 걸 말하는 거지.”

그 말과 함께, 낙엽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걸로!”

그가 눈앞에서 사라진 그 순간, 준비를 마친 다른 한 명이 와이어를 당겼다.

푸슈슈슈슉-!

한 명이 클라인을 상대하는 사이, 다른 한 명은 곳곳에 고정 석궁을 설치했다.

여덟 방향으로 설치된 석궁이 일제히 클라인을 향해 쿼렐을 토해냈다.

상대는 방금 전의 일격으로 시선을 빼앗긴 상태.

아무리 고강한 검사라 한들, 원거리에서 파상공세를 이어가면 방법이 없을 터!

쿠콰콰콰쾅-!

장력이 강한 석궁은 단순히 꽂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타일 째 들어냈다.

폭음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피어오른 자욱한 연기.

그것을 확인한 두 낙엽이 푸우, 한숨을 내쉬었다.

“제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이건 못 막아내지.”

워 실드를 통째로 꿰뚫는 석궁이 여덟 발.

아무리 고강한 검사라 해도 살아남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생각보다 더 성가신 녀석이었어.”

“그러게.”

일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석궁을 설치하던 낙엽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걸로, 낙엽 중 누구도 얻지 못했던 ‘성혈’이 손에 들어온다.”

성혈.

그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인 낙엽이 후드를 걷어 자신의 팔을 확인했다.

문신처럼 새겨진 통신 마법.

하녀를 죽이기로 한 동료와 연결된 각인이었다.

“좋아.”

새로운 글귀가 나타난 것을 확인한 낙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도 다 끝났군. 합류 지점은….”

그러나 거기까지 말하던 낙엽이, 돌연 말을 멈춘 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뭐야, 무슨 일이지?”

“…신호가 아니야. 전언이 왔어.”

“전언?”

그 말에 단검을 든 낙엽의 목소리가 더 이상해졌다.

낙엽의 임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보안.

반드시 필요한 내용 외에는 결코 사용하지 말아야 할 터인데….

“뭐라고 왔는데?”

“그, 그게….”

그렇게 낙엽 중 한 명이 말을 흐리던 순간이었다.

“왜, 뭐가 잘 안됐나 보지?”

쿼렐 세례에 쑥대밭이 된 공터 한가운데에서, 들려서는 안 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한 벌밖에 없는 옷인데. 다 버렸네.”

마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은 수십 번을 찢어버리고도 남았을 강력한 공격.

그렇지만 클라인 공자는 아무 상처 없이 먼지 쌓인 옷을 툭툭 털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크, 클라인 공자?!”

“어떻게…!”

“멀쩡하냐고?”

그들이 해야 할 질문을 가로챈 클라인 공자가 활짝 웃어 보였다.

그에게로 날아온 여덟 발의 쿼렐.

위협적인 장치와 계획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이런 공격을 이전에 막아본 적이 있었다.

“슬슬 석궁 막는 데에는 도가 터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 무엇인가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 저건…?”

검은 몸체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스켈레톤.

몸으로 쿼렐을 막아낸 듯, 이곳저곳이 깨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스켈레톤?!”

“사령술이라니, 말도 안돼…!”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낙엽들이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스스스스…!

그러는 사이, 곳곳이 부서져 있던 스켈레톤은 천천히 자신들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런, 제길…!”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던 낙엽의 목소리에 절망이 깃들었다.

그들이 사전에 탐색해놓은 퇴로, 샛길, 지붕 위.

그 모든 경로에 스켈레톤이 나타나, 그들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암살자를 상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개활지에서 포위하는 거지.”

모처럼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클라인이 흡족한 듯 미소지었다.

자기 자신을 미끼로 내걸어 가진 패를 모두 쓰게 한 뒤, 머릿수로 찍어누르는 전술.

그가 가지고 있는 검술과 사령술을 결합한, 새로운 전투 방식이었다.

“제길, 이렇게 되면…!”

이를 악문 낙엽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순간.

핑-!

지붕 위에서 날아온 화살이 순식간에 그의 손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맥을 피해 정확히 옆을 조준한 솜씨.

정규군 특등사수에 버금가는 정확도였다.

“아악?!”

격통에 못이겨 손에 든 것을 떨어트린 낙엽이 비명을 질렀다.

자살용 폭탄이 땅에 떨어진 채 구르고 있었다.

“네크로맨서 앞에서 자살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촤르르륵-!

열 구의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검을, 나머지는 그들을 둘러싼 채 활을 겨눴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거든.”

그들을 향해 경고하는 클라인의 웃음이 달빛을 받아 한층 더 소름 돋게 느껴졌다.

“젠장, 델핀에게 연락해! 위에서 보고 있을 것 아냐!”

사면초가나 다름없는 상황.

다급한 표정의 낙엽이 그렇게 말했지만, 팔을 걷어붙인 그의 동료는 그 자리에 멈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기랄!”

틀렸다.

도대체 뭘 본 것인지 반응이 없다.

파트너가 말을 듣지 않자 짜증이 난 낙엽은 곧바로 자신의 팔을 걷어 전언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또한 파트너와 같이, 그 자리에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그들의 팔에는 단 한 마디가 적혀있을 뿐이었다.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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