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22화 (22/209)

022. 낙엽(1)

찍! 찌찍!

하수구에 찾아온 커다란 불청객의 등장에 쥐들은 비상이 걸렸다.

그림자처럼 어두운 옷과 얼굴을 한 남자.

그는 자신의 가죽신을 적시는 오물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더러운 하수구를 제집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찰박! 찰박!

좁은 골목을 지나, 깊은 수로로.

그리고 한번 더 꺾어지는 정화조를 지나갔다.

쿠우우우….

그러자 어느새, 남자의 눈앞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철문이 우뚝 서 있었다.

“…….”

말없이 그것을 보던 남자는 문에 난 작은 틈새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제국 황제, 율케스 1세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

평민들은 한평생을 일해도 구경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찰칵.

철문에 난 작은 칸막이가 열리고, 그곳에서 시커먼 두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건은?”

짧은 한마디.

남자는 그것이 익숙한 듯, 칸막이에 나타난 두 눈을 향해 말했다.

“의뢰.”

“목표는?”

“폴와이번 저택의 손님.”

짧은 문답이 지나간 후.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풀리고, 육중한 철문이 천천히 남자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쿠르르르르….

그리고 그 안에서, 그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칸막이에서 나타난 두 눈의 주인.

허리가 반으로 굽어있는 곱추였다.

“3분 후에 써라.”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그를 향해 스크롤 한 장을 내밀었다.

공간이동 스크롤.

남자가 건넨 금화는 의뢰비용이 아닌, 이 스크롤을 위한 것이었다.

“…….”

다시 돌아봤을 때, 곱추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지시받은 대로 3분을 기다린 뒤 스크롤을 찢고, 눈을 감았다.

‘낙엽’의 의뢰조건은 의뢰인 또한 얼굴을 보지 않는 것.

곧이어 남자의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표는 둘. 현재 라이아 공녀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앳된 미성이었다.

어린아이의 목소리라 해서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애초에 저 목소리가 본인의 것이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기사단의 감시를 피해야 하고, 교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만큼 추가 비용이 필요합니다만.”

“좋아. 지불하지.”

남자는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자신의 앞에 떨어트렸다.

“이건…!”

“제국 황실이 아니고선 만들 수도,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지.”

투명한 병에 담긴 붉은 액체.

그것을 확인한 듯,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완료한다면 열 개를 더 주지.”

그 말에, 잠시 말이 없던 목소리

가 다시금 말했다.

“…투입 인원은 셋. 한 명은 하녀를, 다른 두 명은 본인을 사살합니다.”

그 말에 산체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낙엽이 조직원을 셋 이상 투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는 뜻.

‘이 신약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들까지…?’

자신의 주군인 헬리안을 매료시킨 제국의 영약.

불안과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지만, 그는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저 약은 헬리안의 보물이자, 또 다른 역린.

섣불리 건드려 눈 밖에 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암살이라니요?”

괴상한 표정을 한 채 그렇게 묻는 라이아에게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자기 복장을 이렇게 뒤집어놓고, 체면도 구기고, 제안도 거부했는데. 절 살려둘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게 말하자 이해가 간다는 듯 수긍하는 눈치였지만, 라이아의 의문은 다 풀리지 않은 듯했다.

“위험한 상황인 건 알겠는데,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

“나름 정보통이 있거든요.”

한껏 허세를 부리며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유령이 알려줬다고 말해봤자 미친놈 소리나 듣겠지. 믿어준다고 해도 교단으로 송환될 테고.’

아직까지도 떨어지지 않는 내 악평을 떠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누가 공자님을 노리는 겁니까?”

고든의 질문에 라이아가 맞장구쳤다.

“맞아요. 그쪽만큼 검을 다룬다면, 웬만한 조직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그렇게 묻는 그들을 보며 밴시가 알려준 정보를 말했다.

구구절절 설명해봤자 밑천만 드러날 테니, 키워드 위주로. 최대한 짧게.

“낙엽.”

“……!”

그리고 그 이름을 듣자, 고든의 눈이 커졌다.

‘어, 뭐야. 진짜 알고 있어?’

폴와이번의 기사단장이 경계할 정도면 생각보다 더 거물이란 뜻인데.

“서부를 거점으로 하는 놈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헬리안 공후께서 암암리에 지원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인 모양입니다.”

고든이 그렇게 말하자 라이아가 거칠게 혀를 찼다.

‘저쪽 입장에서도 골칫거리인 듯하니, 써먹을 수 있겠는데.’

그들의 반응을 통해 대략의 정보를 유추해낸 난 웃는 낯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그러니, 거래를 하죠.”

그렇게 말하자 거래 내용을 유추한 라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공자님의 안전은 저희 측에서 보장하죠. 대신….”

“아니, 그거 말고 다른 얘기입니다.”

라이아를 위시한 폴와이번의 보수파와 합심하여, 헬리안을 견제한다.

지금 라인란트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헬리안과 똑같은 딜레마가 나오게 돼.’

내 안전을 위해 그들이 피를 흘린다면, 향후 주도권은 내가 아닌 라이아가 쥐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겠지.

하지만 내 목적은 그 반대다.

헬리안이 라인란트의 방계를 움직이듯이.

나 또한 폴와이번의 보수파를 내 뜻대로 휘둘러야 하니까.

“당신들과 함께하는 조건으로, 폴와이번의 소유가 된 라인란트의 농지 반환을 요구합니다.”

“무, 무슨…!”

내 말에 놀란 것은 라이아가 아닌 고든이었다.

헬리안의 손에 들어간 영지 중 일부는 헬리안 개인이 아닌 폴와이번 공작가의 명의로 되어있다.

‘공작가 파벌의 일익인 라이아의 발언권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끌어올 수 있을 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표정을 굳힌 라이아가 내게 물어왔다.

“보호는 필요 없다?”

“예. 제가 죽는다면 이 거래는 없던 일이 되니, 그쪽이 손해 볼 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라이아의 한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당신이 낙엽에게서 살아남는다 쳐요.”

불신이 가득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날 향했다.

“농지를 반환하는 대가로, 당신은 뭘 내놓을 생각이죠?”

“생포한 낙엽 조직원이 내놓을 정보.”

그 말에 날 보던 라이아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생포? 낙엽을요?”

“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하자 라이아가 재차 물었다.

“낙엽이 어떤 조직인지 알긴 하고 말하는 건가요?”

“글쎄요. 용살자의 후예들이 몸을 사릴 정도라는 것 정도?”

슬쩍 웃으며 도발하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움찔했다.

“당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모한 사람이군요? 낙엽은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라요! 그들은…!”

“거기에 더해서.”

라이아의 만류를 끊고 계속해서 말했다.

동맹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 간의 상하관계.

우리 측보다 우위에 있는 상대를 동일선상까지 끌어내리기 위해선, 처음 이권을 제시하는 것을 그들이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

저들의 예상을 압도하고, 이 거래를 주도할 만한 이권을.

“제국 측 인사로 위장하여, 헥토르를 죽여드리죠.”

준비해둔 카드를 꺼내 들자, 라이아가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요?”

“헥토르를 죽여드리겠다 했습니다.”

폴와이번 공작가의 후계자를 죽이겠다.

공작가의 일원인 라이아의 면전에서.

심지어 기사인 그녀에게 그 말을 꺼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터였다.

“지금 상황에서 헬리안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힐 방법 아닙니까?”

2인자가 정상에 오르는 가장 쉬운 방법은, 1인자를 죽이는 것.

폴와이번의 후계 구도가 불안정해진다면, 헬리안이 주도하는 공후파에 혼란이 찾아올 터.

“지금처럼 승산 없는 구도를 지지부진 이어가는 것보단, 판을 흔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라이아의 옆에서 내 말을 듣던 고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인에 의한, 거기에 제국 측 인사에 의한 살인. 성공만 한다면 헬리안과 제국의 동맹에도….”

“……!”

고든의 설명에 라이아가 주먹을 쥐었다.

배다른 형제이기는 하나, 같은 가문에서 나고 자란 이.

그런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은 아직 어린 그녀에게는 큰 부담일 터였다.

“아가씨. 고통스러우시겠지만, 결단을 내리실 때입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진 소녀.

그런 라이아를 측은하게 바라보면서도, 고든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책임, 질 수 있겠어요?”

날 바라보던 라이아가 물었다.

이전에 듄켈이 내게 보여줬듯, 주먹을 쥐어 왼쪽 가슴에 갖다 대며 말했다.

“라인란트의 명예를 걸고.”

명예.

막상 입에 담기는 했지만, 그리 큰 무게감은 없었다.

애초에 난 네크로맨서지, 기사가 아니니까.

단지 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선, 이 말이 가장 잘 먹힐 것 같았기 때문에 꺼낸 말이었다.

속으로 실소를 머금은 채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먼저 정적을 깬 것은 라이아였다.

“좋아요.”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난 라이아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클라인 라인란트 공자. 거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난 웃으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라인란트의 둘째와 폴와이번의 둘째.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두 2인자는, 이렇게 처음으로 손을 맞잡았다.

***

-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군.

깊은 밤.

멀리서 보이는 폴와이번의 도시는 한밤중에도 불이 꺼질 줄 몰랐다.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는 아린을 보던 난 등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코니로 나갔다.

“나도 그래. 이 정도까지 개판일 줄은 몰랐어.”

루델의 한탄에 맞장구친 내 손에는 붉게 물든 나무조각이 들려있었다.

날 향한 암살계획을 들려준 밴시가 준 물건이었다.

“그저 권력에 미친 괴물인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타락했을 줄이야.”

손에 들린 나뭇조각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순도는 약 50%. 이 정도로 깨끗하게 정제하기 위해선, 다른 재료로는 어림도 없어.”

- 그렇다면 이건….

“살아있는 사람을 재료로 사용한 거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통의 원인은 내가 아닌, 나와 정신을 연결시킨 루델의 혼이었다.

- 잘못 키웠군…. 잘못 키웠어….

깊은 회한의 감정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추악한 괴물이 되어버린 딸이라니.

아비 된 자로서 어떤 기분일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완성품이 나오기 전에 알아낸 게 불행 중 다행이군.’

나뭇조각을 쥔 손에 힘을 주자, 검게 물든 그것이 잿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감히 내 연구를 이따위 추잡스러운 일에 사용하다니.”

그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난 별장 한 곳에 걸린 제국의 깃발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제국 황제. 곱게 죽지는 못할 줄 알아라.”

그렇게 말한 뒤, 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밴시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습격자는 여기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을 위해선 준비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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