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고해성사.
한 생명이 죽는 것은 종종 잠드는 것에 비유되곤 한다.
피곤에 젖은 몸이 일상의 피로에서 해방되듯, 삶에 젖은 몸이 그 업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여기는지도 몰랐다.
쿠륵! 크르륵!
그렇지만 그녀, 네크로맨서 페일에게는 그 안식이 허용되지 않았다.
안식에 다가가기 정확히 한 걸음 전에, 무엇인가가 그녀를 붙잡아 억지로 세상에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극한의 수면욕을 느끼는데에도 불구하고 잠들 수 없다는 지독한 상황.
거기에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이 그녀의 정신을 미친 듯 뒤흔들었다.
“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질렀다.
고통과 울분에 찬 비명.
그렇지만 그것을 듣고 있는 은색 머리의 소년은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빙글빙글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들어?”
천진한 미성(美聲)이 그녀를 불렀다.
망자의 혼에 닿기 위해 받아들이는 네크로맨서의 힘, 마기가 담긴 목소리였다.
“너, 너……!”
고통과 답답함. 그리고 그 이상의 공포가 페일의 정신을 옭아맸다.
그런 그녀가 클라인의 모습을 본 순간, 그녀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아! 아아아아…!
지금의 그녀는 산 자가 아닌 육신에 붙들린 원혼.
그렇기에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열다섯 살 소년의 외형이 아닌, 그 혼이 담고 있는 본질이었다.
“아키, 아키몬…!”
영혼의 눈으로 바라본 그의 본질.
열다섯 소년, 클라인 라인란트가 품고 있는 혼을 본 페일은 그의 이름을 말하려 했으나.
“쉿.”
검지손가락을 입에 건 소년의 한마디에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꺼, 꺼억…!”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입만을 뻐끔거리는 페일.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몸이 이상하리만큼 가볍다는 것을.
그리고 시야가 지나치게 낮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 으으! 으으으으!”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기괴한 통각과 단절감이 그녀가 처한 현실을 일깨워졌다.
네크로맨서 페일의 몸은 지금, 목만 덩그러니 남은 채 클라인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었다.
“정말로 목만 되살아나다니….”
구역질이 난다는 듯 고개를 치켜든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듄켈이었나, 그랬었지.
자신의 목을 날려버린 장본인.
표독스러운 눈빛이 그를 향했지만, 자신을 이 몸에 묶은 클라인은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클라인 도련님.”
“그래, 나도 알아. 슬슬 자기 상황도 깨달았을 테니, 얘기를 해 보자고.”
웃는 낯으로 그렇게 말한 클라인의 얼굴이 페일에게로 다가왔다.
클라인 라인란트. 자신이 아키몬드라고 떠들었다는 저주받은 공자.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니…?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할 새도 없이, 클라인의 질문이 그녀의 뇌를 울렸다.
- 정보가 필요해. 널 북부로 보낸 자가 누구인지. 누가, 어디에, 얼마나 보내졌는지.
“……!”
- 말하면 이대로 편히 죽게 해 주지. 거부한다면, 난 네게 영생을 줄 거야.
영생.
세상 모든 왕들이 원하던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내용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페일은 현재, 목이 잘린 채 클라인과 대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 영원히 산다는 건 설마…?”
“그 설마가 맞는 거 같은데.”
자신의 추측을 긍정하는 클라인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영원히 산다.
즉, 자신의 영혼은 영원히 이 잘려나간 목에 갇혀있어야 한다.
세월에 말라비틀어지는 감각.
벌레와 미생물들이 자신의 몸을 갉아 먹는 감각.
그리고 시시각각으로 부패하고 썩어가는 감각을 느껴가면서.
“으으! 으으으으-!”
공포와 조바심에 못 이겨 페일의 머리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젓고 싶어도 고개를 돌릴 수 없고,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다.
목이 잘린 채 살아있는 이 순간만으로도 지옥 같은 광경일진대, 이 감각을 영원히 느끼라니.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 온 지금까지의 인생과는 다르게, 지금의 그녀는 죽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할 판이었다.
“…! ……!”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이 가진 정보를 외쳤다.
“제국이 북부에 네크로맨서를 풀었고, 신성교단이 그걸 묵인했다?”
남아있는 다른 네크로맨서들의 은신처, 활동 계획 그리고 그들의 신상까지.
모든 정보를 기록한 클라인이 가장 분노한 부분은 신성교단의 개입이었다.
“신부놈이 찾아오면 할 얘깃거리가 늘었군.”
그렇게 말한 클라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읍-! 으읍-!”
혹여나 자신을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페일은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 짜냈다.
제국의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던 자신이, 이젠 필사적으로 죽음을 구걸하는 꼴이라니.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아키몬드.
수백만 구의 언데드 군단을 거느리며, 대륙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네크로맨서.
미천한 그녀에게 있어선 마치 신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래. 죽여주기로 했었지?”
소년의 웃음이 그녀를 향할 때마다 극심한 공포가 몰려왔다.
그런 그녀의 몰골을 흡족하게 바라본 클라인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수인을 맺었다.
“걱정 마 약속은 지키니까.”
그렇게 말한 클라인이 그녀의 앞에 손을 뻗자….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그녀의 머리를 향해 기어왔다.
“아, 아…?”
순간, 사고가 정지한 채 할 말을 잃은 페일의 머리를 향해, 클라인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한 일주일 정도 참아 봐. 쟤들이 죽여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클라인과 듄켈은 등을 돌렸고.
“자, 잠깐만…! 싫어, 제발…!”
뭐라고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수백 마리 바퀴벌레들은 모처럼 나타난 먹잇감을 먹어치우기 위해 페일에게 달려들었다.
***
“그게 사실이냐? 신성교단이 네크로맨서를?”
“정확한 위치는 지도에 표시한 대로입니다. 기사단 투입은 최대한 신속하게 하시는 것이….”
라인란트 공작가.
정찰 임무에서 돌아온 클라인이 가져온 정보는 공작가를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광산에 쌓여 있던 언데드는 실험체까지 합산해서 약 150구.
내가 들렀던 마을에서만 서른 명이 행방불명되었으니, 사실상 백작령에 속하는 마을 대부분이 이런 비극을 겪었다는 말이다.
‘북부에서 네크로맨서 인식이 바닥을 칠만하네.’
자기 가족을 납치하고, 좀비로 되살려 가족을 공격하게 한다.
이를 막고 영지민들을 보호해야 할 귀족가들은 계파싸움에 정신이 없는 상황.
이렇게 고통이 장기화 되는 시점에 신성교단이 인력을 파견한다면, 교단의 명성은 수직 상승하겠지.
돌아온 내게 마을 주민들이 찬사를 보냈던 것처럼.
“버크만!”
“예 전하.”
하인 중 한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 하인켈은 곧바로 내 옆에 서 있던 버크만을 불렀다.
“클라인이 지정한 위치에 기사단을 파견하게. 붉은수레는 콘웰 백작령 남부로, 검은방패는 동부로.” “장벽에도 지원을 요청할까요?”
버크만이 되묻자 잠시 생각하던 하인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신은 보내보게. 감시자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인켈의 지시에 고개를 숙인 버크만이 서둘러 집무실을 나섰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가 되었는지,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은 하인켈 공작이 나를 보았다.
“큰 일을 해냈다. 클라인.”
“얻어걸린 겁니다. 듄켈이 아니었으면 길에서 객사했을 거예요.”
자연스레 공을 듄켈에게 돌리며 하인켈의 표정을 살폈다.
사령술에 대해선 당분간은 함구하기로 했다.
교단이 북부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네크로맨서를 투입하는 초유의 사태.
여기에 내 일까지 겹친다면 오히려 혼란만을 초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몇 가지 임무를 더 부여한 뒤에 결정할 생각이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구나.”
그렇게 말한 하인켈은 책상 서랍을 열더니 무언가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북부 기사의 협동과 정신력을 상징하는 늑대가 새겨진 인장.
라인란트 기사의 증표였다.
“견습기사를 상징하는 동패다. 나름 특혜를 베푼 것이지만, 네가 해 준 일을 생각하면 모자랄지도 모르겠구나.”
“아뇨. 충분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탁자에 놓인 동패를 받아들었다.
“근무지가 정해지는 대로 사람을 보낼 테니,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채비해두거라.”
“알겠습니다.”
하인켈의 말에 짧게 답한 뒤 집무실을 나갔다.
***
“후우…….”
클라인이 집무실을 나간 후.
듄켈이 작성한 임무 보고서를 둘러보던 하인켈이 한숨을 쉬었다.
“폐쇄공간에서 마주한 것이 좀비 70구 이상, 거인형 언데드 한 구, 무장한 네크로맨서까지….”
라인란트 기사의 장으로서, 가문 기사들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다.
아무리 단장급 기사라고는 해도, 듄켈은 일대일 전투에 특화된 기사.
이런 대규모 난전에서는 빛을 발할 수 없는 이였다.
“말인즉, 듄켈이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제외한 모든 전과는 클라인이 한 일이라는 거로군.”
그렇게 결론 내린 하인켈은 보고서를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렇다면 클라인이 처리한 것이 최소한 좀비 50구 이상….”
거기까지 분석한 하인켈은 보고서를 내려놓은 뒤, 두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열 다섯에 홀로, 그것도 동굴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 소대 규모의 언데드를 상대하다니.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 전과였다.
“다른 방법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전하, 섣부른 판단은….”
“다른 방법을 썼다 해서, 그 힘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버크만의 말에 그렇게 반박한 하인켈은 잠시 동안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하인켈은 버크만을 향해 말했다.
“형님께 서신을 보내게.”
형님.
라인란트 공작가의 호적상, 하인켈 라인란트는 장자였다.
그런 그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
그 남자의 존재를 떠올린 버크만이 헛숨을 들이켰다.
“전하. 그분은….”
“알고 있네. 내가 부른다 해서 오실 분이 아니지.”
그렇게 말한 하인켈은 버크만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러니 이렇게 전하게. ‘평생을 찾아 헤매시던 천재가, 여기에 있다’ 라고.”
***
‘하하, 이걸로 일단은 안심이네.’
외부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공작가 저택에 비해, 기사들이 배치되는 근무지는 군사지역.
교단 소속인 개리슨으로서는 쉽사리 뚫고 오기 힘들 터였다.
“아! 도련님 저기 있다!”
드디어 활로가 생겼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고 있을 때, 멀리서 들려오는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아린?”
허구한 날 내 방에 틀어박혀 있던 애가, 웬일로 밖에를 다 나왔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방방 뛰던 아린은 순식간에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뭐야, 방에 쿠키 다 떨어졌어? 그럼 주방을 가야지 왜 여기로 와?”
“도련님은 제가 과자만 먹는 줄 아세요?”
“아니었어?”
“이이이이이-!”
볼을 부풀린 채 가슴을 두드리는 아린을 진정시키자 그제서야 기억났다는 듯 ‘맞다!’ 라고 외친 아린이 내게 말했다.
“지금 방에 개리슨 신부님 와 계세요!”
….
…….
………씨발, 지금 뭐라고?
순간, 내가 뭘 들은 것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멍청하게 되물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클라인 라인란트 도련님.”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타난 신성교단의 대행자.
그를 마주하는 내가 어떤 표정인지 짐작조차 되질 않았다.
“임무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짙은 미소를 띤 개리슨의 눈이 내 모습을 담았다.
반가움과 그리움이 가득 담긴 눈.
저 미치광이 신부가 살심을 품었을 때 보이는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