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광산의 네크로맨서(4)
화륵!
듄켈이 밝힌 횃불이 어두운 광산 동굴을 밝혔다.
곳곳에 튓 피와 손톱자국.
주변 마을의 자금줄이 되어주던 광산은 이제 던전과 진배없는 모습이 되어있었다.
“시체 냄새가 나는군요.”
“그렇지. 그것도 살아 움직이는 시체.”
그렇게 말하는 사이 듄켈이 앞장섰다.
촌장에게 건네받은 광산의 구조도에 의하면, 입구에서 이어지는 길은 외길.
이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공동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 모양새였다.
“키이이이…!”
그러는 사이, 동굴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한둘이 아니군.”
그렇게 말하며 손에 마기를 끌어모았다.
광산에 퍼져있는 혼들은 대부분 좀비에 갇혀있는 상황.
그렇지만 곳곳에서 하운팅을 들은 난 망설임 없이 소환문을 열었다.
[부르노니, 답하라. 너희의 적을 부술 육신을 주노라.]
짧은 주문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세 개의 소환문에서 스켈레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 분노한 모습.
이 광산에서 희생된 영혼들이었다.
“언데드를 언데드로 막는다니….”
“가장 효율적이지. 쓰러트린 만큼 아군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듄켈의 떨떠름한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믿어본다며. 그럼 끝까지 믿어 봐.”
듄켈을 향해 그렇게 답하며 스켈레톤 세 구를 앞장세웠다.
철컥! 철컥!
상반신을 가리는 워 실드를 생성한 스켈레톤들.
뒤이어 그들의 발소리를 들은 것인지, 좀비의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갔다.
“키이이이….”
“크어어어…!”
수는 다섯.
느릿느릿 걸어오는 좀비를 확인한 난 스켈레톤들에게 명령했다.
“돌격.”
그 말과 함께 방패를 앞세운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달려나갔다.
“스, 스켈레톤이 달려…?”
“달튼네 용병들도 그 소리 하더라. 저게 그렇게 신기한가?”
눈을 크게 뜬 듄켈에게 대답하는 사이, 돌진해나간 스켈레톤들은 좀비의 몸을 사정없이 방패로 후려쳤다.
콰직!
“키에에엑-!”
“크아아아-!”
좀비의 괴성과 스켈레톤의 괴성.
두 언데드가 격돌하며 내는 소리에 깊은 곳에서 다른 좀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리는 걸로 봐서는 약 40개체. 수적으로 불리합니다.”
“지금 박살 낸 애들까지 합해서 45대 5인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인 난 다리를 잃은 채 비척거리는 좀비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파츳-!
손에서 뻗어 나온 검은 마기가 좀비의 몸에 스며들고, 이전에 그랬든 푸른 불꽃이 좀비를 휘감았다.
“원래 같았으면 그냥 성불시켜주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네.”
좀비의 육신에서 일어난 푸른 혼들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들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잡혀 온 이들을 구하는 일이야. 미안하지만 협조해 줘야겠어.”
그렇게 말한 뒤 수인을 맺어 다섯 개의 소환문을 추가로 형성했다.
“도련님. 설마…?”
“제압한 언데드를 전환시켜 아군으로 만든다. 네크로맨서끼리 싸울 땐 기본 전술이야.”
듄켈의 탄성에 답하면서도 내 손은 수인과 룬어를 그리고 있었다.
쿠르르르…!
앞장선 세 구의 스켈레톤에 더불어, 다섯 구의 스켈레톤이 추가로 일어나 그들의 진형을 보조했다.
“이걸로 40대 10. 4배 정도 전력차면 얼추 해 볼 만 하겠네.”
그렇게 말한 뒤 난 그들에게 중앙 공동으로 향하라고 명령했다.
“듄켈, 뛴다!”
“예!”
앞을 가로막는 좀비를 쳐부수는 여덟 구의 스켈레톤.
그들을 앞장세워 깊은 곳으로 내려가자, 시야 끝에 작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횃불입니다.”
“언데드만 있는 게 아니란 뜻이지.”
그렇게 말하는 사이, 입구에서 버티고 있던 네 구의 좀비를 날려버린 스켈레톤이 그대로 공동으로 짓쳐들었다.
쿠콰앙-!
“스켈레톤 같은 하급 언데드가 이 정도라니…!”
그들의 모습을 본 듄켈이 벙찐 듯 말을 흐렸다.
마치 한 개체인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시시각각으로 진형을 바꾸는 스켈레톤.
방금 전 좀비를 상대하던 마을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동작들이었다.
촤르륵-!
여덟 개의 방패가 얽혀 반구형의 방벽이 만들어졌다.
스켈레톤들이 만든 안전지대를 통해 공동으로 들어가자, 광산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이, 이건…!”
“상상 이상인데. 그 네크로맨서 새끼.”
톱과 망치, 등 수많은 공구와 수술도구.
두 달 동안 만들어진 네크로맨서의 공방 양옆 벽에는 수많은 실험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아…. 아아아…!”
“죽여, 죽여줘…!”
좀비의 괴성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던 비명 소리가 이제야 들려왔다.
벽에 걸려있는 네크로맨서의 ‘실험체’들이 내는 목소리.
배가 열린 채 숨이 붙어있는 끔찍한 몰골이었다.
“도련님. 이게 대체…!”
“반혼술을 통해 강력한 권속을 만들어내려면 질 좋은 육체가 필요하지.”
사방에 걸린 실험체들의 몰골을 둘러보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누군가는 팔이.
누군가는 다리가.
누군가는 심장, 누군가는 내장.
벽에 매달린 실험체들은 하나같이, 특정 장기가 적출된 채 살아있었다.
“어머? 이렇게 빨리 찾아오실 줄은 몰랐네요~?”
뱀이 기어가는 듯한 교성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자, 갱도 중 한 곳에서 붉은 머리를 한 여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하물며 같은 사령술을 사용하는 동지라니, 정말 반가워요.”
“동지?”
“어머 실례, 라인란트 공자님께는 기분이 좀 나빴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날 향해 웃은 붉은 머리의 여자는 마치 드레스를 잡듯 로브자락을 들어 올려 예를 표했다.
이곳에 제 발로 들어온 날 비웃듯, 연극처럼 과장된 몸짓이었다.
“네크로맨서, 페일이라고 합니다.”
제국식 인사법에 제국군 인장. 그리고 그녀가 두른 로브.
내부에 마력을 품고 있는 로브를 보며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로브에 마법을 부여했군. 제국 근위사단에게만 허용되는 물건인데 말이야.”
갑옷이 아닌 연질 소재에 마력을 담는 것은 제국만의 전매특허.
이걸로 확실해졌다.
저 네크로맨서, 페일은 제국 소속이었다.
“어머,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내 말을 들은 페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렴풋이 보이는 눈동자에 불길한 빛이 맴돌았다.
살심이 동한 것이다.
“눈깔 보게. 좀 민감한 정보였나봐?”
“민감하죠. 제가 제국 출신이라는 건 아~무도 몰라야 하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페일에게 듄켈이 일갈했다.
“도대체 제국이 왜 이런 짓을 한거지?!”
“이런 짓이라니요?”
능청스럽게 되묻는 페일의 말에 듄켈의 표정이 더 험악해졌다.
“북부인들을 붙잡아 언데드로 만든 것도 모자라, 저런 극악무도한 짓을 하다니!”
그렇게 외치며 듄켈은 그녀가 만든 실험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대체 제국이 왜 북부를…!”
“아아,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렇지만 그런 듄켈에게 돌아온 것은 나른한 비웃음이었다.
“약하니까 가지고 노는거지, 뭐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마치 오늘 날씨를 말하는 것 같은 평이한 목소리.
“뭐, 라고…?”
할 말을 잃은 듄켈을 비웃으며, 페일이 손을 들어올렸다.
쿵-!
발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동굴에서 들려오던 좀비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였다.
“이 소리는….”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와 실험체들을 떠올린 내게 페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지 알겠나요? 클라인 공자님.”
역시, 좀비를 통해 보고있었군.
자신의 새 작품을 만끽하는 듯, 황홀한 표정을 지은 페일이 내게 말했다.
“제 인생 최대의 역작이 나오고 있어요~!”
초저 없는 페일의 말과 함께, 괴성이 온 동굴을 뒤흔들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
수십 구의 언데드들과 함께, 괴물이 튀어나왔다.
“제가 제국 출신이라는 걸 안 이상 살려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승리감에 도취된 페일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크기가 5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몸집.
광차 선로를 통째로 뜯어 둔기 대신 들고 있는 어마어마한 완력.
그리고 얼굴에 박힌 수십 개의 눈까지.
“이런, 미친…!”
눈을 부릅뜬 듄켈의 외침과 함께 그것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 사이클롭스! 전부 짓이겨버리세요!”
그 말과 함께 5미터의 거인과 언데드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걸로 라인란트의 핏줄을 실험체로…!”
“순순히 쓰게 놔 둘 것 같아?”
본심을 내보인 페일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기대감에 가득 찬 그녀의 말을 끊으며 외쳤다.
“듄켈!”
“예!”
그렇지만 날 호위하는 듄켈 역시 단장급 기사.
곧바로 앞으로 나선 듄켈이 검에 마력을 담아 사이클롭스를 올려쳤다.
투콰앙-!
폭음과 함께 뒤로 몇 걸음 물러난 사이클롭스.
“어머?”
응축한 마력을 일점폭발시켜 충격파를 일으키는 폭검.
듄켈의 전매특허가 펼쳐지자 페일 또한 의외라는 듯 눈을 찌푸렸다.
“보기엔 샌님 같아 보여도, 얘 붉은수레 기사단 단장이거든.”
“붉은수레? 설마, 더글러스 공작의…!”
페일의 얼굴에 돋아난 한 줄기 불안.
그것을 감지하는 것과 동시에 난 그녀를 향해 이죽거렸다.
“너 같은 삼류 네크로맨서는 눈 감고도 죽여버릴 수 있다고!”
으득-!
페일이 두르고 있던 얄팍한 여유가 내 한마디에 부서졌다.
단장급 기사.
그것이 갖는 위명을 떠올린 페일이 이를 갈아붙이며 다른 언데드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전부 돌격해! 숫자로 밀어붙여서 팔다리를 전부 뽑아버려!”
페일의 명령을 들은 언데드들이 속도를 냈다.
쾅-! 투쾅-!
충격파로 사정없이 사이클롭스를 몰아붙히는 듄켈.
그에게 달려드는 언데드를 확인한 뒤, 마을에서 만들어둔 말뚝을 손에 쥐어 들어 올렸다.
“교단의 태양 십자? 저게 무슨….”
검게 물든 작은 말뚝.
그것을 본 페일이 얼굴을 찌푸렸다.
“‘검은 말뚝’을 모르다니, 넌 사령술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콱!
짧은 비웃음과 함께 바닥에 검은 말뚝을 박아넣었다.
교단에서 일컫는 성체, 성상, 성수의 원형.
육체, 형태, 혼을 상징하는 세 가지의 재료를 혼합해 만든 물건.
검은 말뚝에 마기를 가득 들이부으며 페일을 향해 웃었다.
“너 좆된 거야, 쓰레기 새끼야.”
그 말과 함께 땅에 박힌 말뚝이 순식간에 튀어 올라, 그대로 폭발했다.
투우웅-!
검은 말뚝이 재가 되어 사라지며 엄청난 풍압이 광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쿠우우우우-!
콰르르르-!
진동을 견디지 못한 채 무너지는 구역이 있을 정도로 커다란 소리.
“쿨럭! 뭔가 했더니, 그냥 충격파잖아. 이런 걸로 내 언데드들이…!”
애써 정신을 차린 페일이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어?”
그녀가 불렀던 수십 구의 언데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쿵-!
수백 명의 좀비뿐만이 아니었다.
좀비 사이에 껴 있던 내가 부른 스켈레톤들.
그리고 페일의 명령에 따르던 사이클롭스 까지도.
모든 언데드의 몸에선 혼이 빠져나가, 남은 육신이 하얗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어떻게…?”
“그걸 궁금해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완전히 넋을 잃은 페일이 중얼거리는 것을 중간에 가로챘다.
망연한 표정으로 날 보는 페일의 목에 듄켈의 칼날이 겨눠졌다.
“이 시간부로 네 신변은 라인란트가 구속한다. 저항할 경우….”
“심문? 순순히 당해줄 것 같아?”
듄켈의 말을 끊은 페일이 곧바로 입 안에 든 무언가를 깨물었다.
까득!
“이런, 입 안에 독단을…!”
서둘러 그녀의 입을 부여잡은 듄켈이었지만, 이미 검은 피를 토하는 페일은 나와 듄켈을 비웃고 있었다.
“실컷 파헤쳐 보시지. 너흰,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
거기까지 말한 뒤, 페일의 숨은 끊어졌다.
“제길-!”
쾅-!
축 늘어진 그녀의 시체를 보며 울분에 찬 듄켈이 바닥을 때렸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완벽한 살인멸구.
제국에서 단단히 훈련을 시킨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원점입니다. 의상과 인장 같은 걸 들고 간다 해도…!”
“노획당했다, 도둑맞았다, 위조다. 핑계는 얼마든지 댈 수 있겠지.”
듄켈의 말을 받으며 난 축 늘어진 페일의 시체를 보았다.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나 봐. 사령술을 써도 지성 없는 좀비가 될 테니 괜찮을 거라고.”
고저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내 얼굴을 싱그러운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한 거야. 너 사령술 다시 배워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며 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다.
검은 마기에 섞여 들어가는 피가 귀환문과 구속문을 그리며 붉게 빛나고 있었다.
“반혼술(返魂術)이란 게, 좀비만 만들어내는 사령술이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