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광산의 네크로맨서(3)
“그 쪽으로 둘 갔습니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퍼석!
수박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좀비의 몸이 허물어졌다.
“아오, 숨차!”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였지만, 사실 대부분의 일은 듄켈이 다했다.
마을로 흘러들어온 좀비는 스물.
앞으로 나선 듄켈이 열 다섯을 처리하고, 난 듄켈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다섯을 처리했다.
“다섯 밖에 처리 못하다니, 역시 실전은 다르네.”
보는 눈이 있으니 사령술은 사용할 수 없다.
검 만을 사용한 첫 전투.
상처는 없었지만, 등골이 서늘한 광경은 한두 번 있었다.
횃불에만 의지하는 시야,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 그리고 뼈를 끊어내는데 드는 체력소모까지.
‘내가 만들어서 보낼 때는 몰랐는데, 베르켈이랑 그 떨거지들이 괜히 영웅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어.’
언데드를 보내던 쪽에서 언데드를 막아내는 쪽으로.
기묘한 상황 변화에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는 사이, 확인사살을 마친 듄켈이 내게로 다가왔다.
“다섯씩이나 처리하신 거죠. 언데드를 처음 겪는 병사들은 한 구도 겨우 처리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듄켈은 지친 기색은커녕 몸풀이도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할 일을 하고 있지. 저기 봐.”
마을에 들이닥친 이들을 정리하는 사이, 대여섯 명씩 짝을 이룬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은 좀비들을 수색하고 있었다.
“데이브 집에는 없다!”
“옆집에 하나!”
“밖으로 끌어내! 천천히!”
“키에에에에-!”
집안에 들어있는 좀비를 밖으로 유인하는 것과 동시에, 기다란 꼬챙이가 좀비의 발을 묶었다.
“흐아압-!”
퍼석-!
좀비의 습격을 알린 청년이 휘두른 도끼에 좀비의 머리가 터졌다.
“익숙해 보이는군요. 장벽의 병사들이 쓰던 집단전술을….”
“이런 습격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단 말이지.”
저렇게 적응할 때까지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게 덧붙이며 난 마을 사람들에게로 걸어갔다.
“마을은 다 정리한 건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로 다가왔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평소의 세 배는 되는 양이어서, 공자님과 기사님이 아니었으면….”
“인사는 쟤한테 해. 난 한 거 없어.”
등 뒤에 따라오고 있는 듄켈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한 뒤, 널브러진 좀비의 시신을 보았다.
“역시, 단….”
“이번에도 또…!”
좀비의 얼굴을 본 마을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린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는 얼굴인가?”
그렇게 묻자 청년은 이를 악문 채 말했다.
“저희 형입니다. 한 달 전에 도시로 나가겠다고 한….”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는 자르지 말걸.
그렇게 생각하며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다른 시신들은?”
촌장은 내 말에 다른 좀비들을 확인한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이 친구는 옆 마을 촌장네 딸입니다. 그리고 여긴….”
사냥에 나선 촌장의 딸.
어느 날 사라진 농부의 아들.
약초를 캐러 산으로 간 노파.
마을을 습격한 스물한 구의 좀비들 중, 그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이 행방불명되고, 그 행방불명된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듄켈이 이를 악물었다.
“우리가…. 뭐 잘못한 게 있습니까?”
말없이 마을 한편에 쌓인 시체들을 보고 있던 때, 한 청년이 내게 말했다.
“두 달 동안, 저희 마을에서만 서른 명이 사라졌습니다. 서른 명이! 도와달라 아무리 청을 해도 들은 체도 안 하다가 이제서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이 이 고통을 감내하다가, 드디어 귀족이란 작자가 나타났으니.
증오의 화살이 내게 향하는 걸 탓할 수는 없었다.
“댄, 그만하거라!”
“공자님 앞에서 무슨 말이야!?”
“이거 놔-!”
둑으로 막아놓은 감정이 폭발하듯,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친 청년이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기다려! 도련님께 함부로…!”
“그대로 둬.”
내 앞을 막아선 듄켈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도련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명령이야 오게 둬.”
착 가라앉은 내 목소리에 듄켈이 길을 비켰다.
그러는 사이, 댄이라고 불린 청년은 내 코앞에 다가와 얼굴을 맞댔다.
형제의 피.
그리고 눈물로 점쳐진 얼굴이 날 보고 있었다.
“입이 있다면 뭐라고 말을 해 보십시오!”
“…….”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이러고 살아야 하는 겁니까!”
말없이 그의 절규를 받아냈다.
본가와 방계의 주도권 다툼.
그 같잖은 정치놀음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이런 사람들이었겠지.
그렇기에, 라인란트의 이름을 진 난 그들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을 한가운데에 널브러진 북부인들의 시체.
전생의 기억 속에 각인된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역병으로 죽어간 2천만 북부인.
그리고 그 참상을 외면한 다른 인간들.
아무것도 못 한 채 그들을 보고만 있는 나까지도.
“그때와 판박이로군.”
“예?”
듄켈의 되물음에 답할 새도 없이 죽은 이들의 시체에 다가갔다.
“그륵…!”
“키이이이이…!”
역시, 활동이 불가능할 뿐이지,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
좀비란 사자의 혼을 생전의 육체에 묶어 조종하는 반혼술의 산물.
술식이 해제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혼은 좀비의 몸에 묶여 계속해서 고통받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있는 이상, 그런 건 용납 못 해.’
생각을 마친 난 몸 안에 정제해 둔 마기를 뿜어냈다.
파츳-!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원을 그리고, 기하학적인 술식과 룬어가 그곳을 채워나갔다.
“뭐, 뭐야!”
“이게 그, 그건가? 마법진?”
깜짝 놀란 마을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마치 먹으로 물들이듯 형태를 갖춘 술식이 푸르게 빛났다.
- 비탄 속에 죽어간 무고한 령들에게 청한다.
한데 모인 시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읊조렸다.
마기를 담은 ‘망자의 목소리’.
내 말에 맞춰 빛을 더해가는 마법진을 보자 듄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련, 님…?”
제령도구를 준비하며 말한 되지도 않는 핑계.
좀비의 침공을 미리 알아챈 것.
이쯤 되면 듄켈도 알아차릴 터였다.
‘언젠가는 알아야 하니까.’
놀란 표정을 한 그를 향해 웃어준 뒤 계속해서 주문을 읊었다.
- 길잡이의 등불을 밝혀, 그대들의 앞길을 비추니.
사자(死者)의 혼(魂)과 시신을 다루는 것이 네크로맨서.
그 본래의 역할은 죽은 이의 영혼을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는 안내자였다.
- 마음에 진 한과 슬픔을 내려놓고 올라가라.
화륵-!
꿈틀거리는 좀비의 몸이 가라앉고, 움직임을 멈춘 몸에 푸른 불꽃이 붙었다.
이윽고 푸른 불꽃은 점점 사람의 형상을 갖추더니, 날 바라보듯 고개를 돌렸다.
오오오오-!
환호하듯, 절규하듯 울리는 하운팅.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난 허공에 손가락을 그어 룬어를 만들어냈다.
허공에 쓰여지는 푸른 빛.
그것이 뜻하는 것은 각인의 룬이었다.
- 나 클라인 라인란트가 이어받았으니, 그대들은 모두 내려놓고 평안하라.
그들의 복수를 약속하는 각인.
허공에 씌인 룬어가 내 손목에 감기자, 사람의 형상을 한 불꽃들이 일제히 날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디….]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에 뒤덮인 괴성이 아닌, 이성을 되찾은 혼의 울림.
[그곳에 갇힌 다른 이들도….]
그것을 들은 난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걱정 마라.”
그리고 그다음 순간, 모든 불꽃과 마기가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해진 마을.
그들의 혼을 담고 있던 좀비의 시체는 새하얗게 변해 바람에 흩날린 채였다.
“저, 저게 대체…!”
눈앞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입을 벌린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혼울림, 혼울림이다!”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마을의 최연장자인 촌장이었다.
“200년 전, 역병이 온 북부를 뒤덮었을 때 했던 제령 의식이야! 옛 신관들이 하던…!”
눈썹을 파르르 떨며 외치는 그를 뒤로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자와 약속을 한 이상,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
저벅- 저벅-
처음 했던 문답 이후, 광산으로 향하는 오솔길이 나오는 때까지.
나와 듄켈은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은 채 길을 재촉했다.
“안 물어보네?”
언제까지고 입 다물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먼저 그렇게 운을 떼자, 한참 뒤에 듄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어본다면, 대답하시겠습니까?”
“해야지. 아니면 네 손에 죽을 수도 있는데.”
그 말에 내 뒤를 따라오던 듄켈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듄켈이 무거운 얼굴로 검을 빼 들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날 향해 겨눠진 듄켈의 칼끝.
딱딱하게 굳어있는 얼굴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에는 미미한 떨림이 있었다.
‘바로 달려들 줄 알았는데.’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클라인 라인란트.
자신을 아키몬드의 환생이라 칭했던 저주받은 공자.
그런 내가 정말로 사령술을 쓰고 앉았으니,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겠지.
“베르켈 라인란트의 격언. 알고 있지?”
그의 얼굴을 마주한 채 그렇게 말하자, 듄켈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존재를 정의하는 것은 그근본이 아닌, 행동이다’.”
그의 입에서 베르켈 라인란트가 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명예와 긍지를 지킨다면, 아무리 천한 자라도 공작이 될 수 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자라면, 아무리 고귀한 혈통이라 해도 공작이 될 수 없다.
천민의 자식이었던 듄켈이 기사단장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그리고 동시에, 이민족 출생의 저주받은 공자인 내가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명분이었다.
“네가 날 호위한 지가 벌써 8년이지.”
그렇게 운을 떼자 날 겨눈 듄켈의 칼끝이 움찔했다.
“신성교단에게서 벗어난 이후, 나와 가장 오래 알고 지낸 건 듄켈, 너란 뜻이야.”
그렇게 말하자 굳어있던 듄켈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내가 말한 대로, 듄켈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날 보필해 온 기사.
그를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난 그 누구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결정해.”
그러니 필연적으로, 이것은 일종의 시험이었다.
내가 생각한 라인란트의 개혁.
그것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가름하는 시험.
“네가 그동안 봐 왔던 내가 클라인 라인란트인지, 아니면 아키몬드인지.”
내 물음에 듄켈의 일그러진 얼굴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졌다.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날 겨눈 칼에 다가가 그곳에 내 목을 댔다.
목 끝이 날카로운 검날에 베여 핏방울을 만들어냈다.
“날 아키몬드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도 돼.”
“……!”
“시간 없어. 이러는 사이에도 광산에선 언데드가 뿜어져 나올 테니까.”
듄켈의 검날을 타고 흐른 내 피가 그의 장갑에 닿았을 때.
날 겨누고 있던 듄켈의 검이, 천천히 땅으로 내려갔다.
“듄켈.”
그의 이름을 부르자,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납득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땅으로 내린 검을 검집에 넣으며 듄켈이 말했다.
“제가 모셔온 분은 라인란트의 제 2 공자. 극악무도한 대륙의 공적 따위가 아닙니다.”
“…그래. 고마워.”
나를 향한 악담을 흘려넘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더 지체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말하는 내 눈앞엔, 이미 네크로맨서의 공방이 되어버린 광산 입구가 입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