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광산의 네크로맨서(2)
“저, 그러니까, 이분이….”
“라인란트 공작가의 제 2공자님이시다.”
듄켈의 설명에 촌장의 두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오등작 중 네 번째밖에 안 되는 자작이라 하더라도 저들에게는 하늘과 같은 지위.
그런 와중에 공작가의 일원이 마을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선 공포나 다름없으니까.
“귀, 귀하신 분들께서 저희 마을엔 어쩐 일로….”
“광산에서 언데드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여 조사를 온 것인데….”
그렇게 듄켈이 촌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사이, 난 마을의 전경을 돌아보았다.
“최근에 습격이 있었군.”
부서진 담장과 군데군데 비어있는 집.
채 치우지 못한 핏자국들이 이곳저곳에 묻어있었다.
중간중간 나와 듄켈을 구경하러 온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너무 야위었군.’
일이 없다면 마을의 곳간도 점점 비어가기 마련이다.
광산이 폐쇄된 지 두 달.
광부들의 월급으로 유지하다시피 하는 마을에서 두 달 동안 공백이 생겼으니, 굶주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게 정말인가? 백작가에서?”
그러는 사이, 듄켈이 촌장에게 되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 두어 달 전부터 아무 말 없이 광산을 폐쇄한다고 하더니, 지난주에는 그곳에서….”
“언데드가 튀어나왔다는 말이군.”
촌장과 듄켈의 대화에 끼어들은 뒤 촌장을 향해 물었다.
“그 두 달 동안 이상한 소식은 없었나?”
“소, 소식이라 하시면….”
“사람이 사라진다던가, 장례를 치러야 할 시체를 가져간다든가.”
그렇게 말하자 촌장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백작가에서 사람이 오더니 마을에서 사망자가 나오거든, 곧바로 시신을 가지고 오라고….”
촌장의 그 말을 듣자 듄켈의 눈이 커졌다.
“도련님. 그렇다면 지금 광산에서 나오는 언데드들이…!”
“인위적으로, 그것도 백작가에서 조직적으로 만들어 온 것들이라는 거지.”
그렇게 말하자 듄켈이 이를 악물었다.
“백작이라는 자가, 어떻게 영지민들을 가지고…!”
“콘웰 백작 한 사람만 한 일이 아니야.”
듄켈의 말을 받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콘웰 백작가는 대대로 기사 가문이었어. 사령술을 연구할 능력도, 그럴 이유도 없지.”
“그럼 콘웰 백작은 영지민과 장소만을 제공했다는 겁니까? 누가 그런…!”
“현재 대륙에서, 우리에게 이런 수작질을 할 만한 게 누구일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듄켈이 이를 악물었다.
“제국…!”
“슬슬 아귀가 들어맞는군.”
본보기를 위해 날 죽이려 했던 달튼.
그리고 그가 실패하자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 제국의 네크로맨서까지.
“기사단에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선 공작가로 돌아가시죠.”
“아니.”
듄켈의 제안을 마다한 난 그에게 말했다.
“시간이 모자라. 본가가 움직이면 저쪽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그렇게 말한 난 계속해서 말했다.
“현장을 직접 잡아야 해. 내일 곧바로 진입한다.”
그걸 듣자 듄켈이 헛숨을 들이켰다.
“무모합니다! 광산 같은 폐쇄된 공간에, 언데드가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제국이 북부에 개입한 증거를 잡을 기회야. 놓칠 수 없지.”
정론을 꺼내들어 잠시 말문이 막힌 듄켈이었지만, 그 역시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렇다고 해서, 도련님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공작 전하께서는…!”
“비교적 안전한 일을 하며 경험을 쌓으라는 의미였겠지.”
하인켈이 날 이곳으로 보낸 이유를 말하자 듄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말이야, 듄켈.”
그의 얼굴을 보며 운을 뗀 난 입만을 움직여 웃는 얼굴을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 집안이, 내 성장을 기다릴 만큼 여유로운 상태인가?”
“……!”
어젯밤.
모닥불 사이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린 듄켈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의 북부는 그냥 밀어버릴 수 있겠죠.’
한때, 아키몬드의 군세를 정면으로 받아내며 대륙을 지킨 라인란트 공작가.
그때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약해진 지금의 북부를 가리킨 자신의 말을 떠올린 탓이었다.
“콘웰이 몰락했다고 해서, 제국의 감시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기사단이 움직이는 순간, 광산에 숨어있는 저 녀석은 흔적을 지울 거다.”
“도련님….”
“좀 믿어 봐. 생각 없이 하는 일 아니니까.”
그렇게 듄켈을 안심시키고 촌장을 보며 말했다.
“필요한 게 좀 있는데, 혹시 가져다줄 수 있겠어?”
***
마을에 도착한 시점에 이미 정오를 넘어간 상황.
내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한 나와 듄켈은 빈집 중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공자님. 이게 다 뭡니까…?”
“준비물이지. 촌장이 이것저것 챙겨주더라고.”
집 한가운데에 늘어놓은 각종 잡동사니들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소의 다리뼈, 나무를 깎아 만든 태양 십자가.
그리고 제사용으로 빚은 약간의 술까지.
“이것들이 준비물이란 말입니까? 이건 그냥….”
“성체, 성상, 성수. 각각의 상징물들을 만들기 위한 재료야.”
그렇게 말하며 단검을 꺼내 뼈를 깎아냈다.
내 팔꿈치만한 길이의 뼈를 깎아 말뚝을 만들고, 그 손잡이 끝에 나무로 된 십자가를 달았다.
“그리고 여기에 성수를 뿌려 주면….”
그렇게 말하며 뼈로 만든 말뚝에 술을 붓자 반응이 나타났다.
“이게, 무슨…?”
흰색을 띠고 있던 뼈로 만든 말뚝이, 순식간에 검게 물든 것이다.
“도련님, 이런 것도 할 수 있었습니까?”
“교회에서 알려준 거야.”
그렇게 말하자 듄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신성교단이라고는 안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잘 속아 넘겼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만든 제령 도구를 보았다.
‘내가 정제한 마기도 잘 머금었고. 이 정도면 되겠지.’
신성교단의 상징을 새겨 위장했지만, 이 물건은 신성력을 사용하는 교단의 사제들로서는 이해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네크로맨서(Necromancer).
시체(Nekrόs)와 점술(Manteia)을 다루는 이들로서, 유일신교인 신성교단이 자리 잡기 전부터 존재하던 수많은 사제들을 일컫는 말.
그렇지만 신성교단이 대륙 전체에 퍼진 지금에 와서는, 단지 시체를 일으켜 권속으로 삼아 싸우는 마법사의 아류를 부르는 말이 되어버렸다.
‘사령술이 이렇게 변질된 가장 큰 이유는 나 때문이겠지.’
수백만 언데드가 대륙을 침공한 대재앙, 아키몬드 사변.
기존의 보급과 전술 교리를 깡그리 무시하며 들이닥치는 언데드의 군세가 온 대륙을 뒤흔들었다.
북부의 대영웅, 베르켈 라인란트가 술자인 아키몬드를 죽이지 않았다면,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멸망했을 것이라 회고할 정도로.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대륙의 국가들은 사령술이 지닌 잠재력을 경계하면서도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다쳐도 상관없고, 죽지 않으며, 지치지 않는 병사를 다루는 이들.
그렇기에 네크로맨서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공포와는 별개로, 신성교단의 총본산인 교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네크로맨서의 활동을 제재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아키몬드의 저주받은 지식이라며 괄시하지만, 뒤에서는 군사적으로 이용할 궁리를 하고 있는 거지.’
제국의 인장이 박힌 가면.
날 습격한 네크로맨서가 쓰던 그것을 떠올리니 참 아이러니한 기분이었다.
부스럭!
“음?”
건물 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문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웬 소리가….”
“소리요?”
듄켈의 물음에 답하며 주변을 살피던 와중에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힉!”
“들켰다! 어쩌지?”
“수, 숨어 빨리…!”
소리의 원인은 벽 뒤에 숨어서 날 지켜보던 아이들이었다.
집 옆에 매어놓은 말들에 흥미가 돋은 듯했다.
까딱까딱.
자리에 쪼그려 앉으며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내 몸짓을 알아챈 듯, 쭈뼛거리면서 다가온 아이 둘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 그게….”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말을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라….”
아이들의 변명을 들으면서 아이들 중 한 명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 저기….”
“안다.”
내 손을 피하려던 아이가 그 말을 듣자 어깨를 늘어트리더니, 손가락을 들어 한구석을 가리켰다.
“저기서 오는구나. 고맙다.”
내 대답에 활짝 웃는 아이를 본 뒤, 집 안을 향해 말했다.
“듄켈!”
“예, 도련님.”
부름을 받은 듄켈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제 잡아놨던 사슴고기 좀 있지? 건량도 넉넉하게 들고 왔고.”
“아, 예. 육포와 건량은, 만일을 대비해서 보름 치 정도 가져왔습니다.”
공작가 저택에서 이곳까지 걸리는 거리가 이틀인데, 저걸 바리바리 싸 들고 가라니.
하인켈 공작이 날 얼마나 과보호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하긴, 호위로 단장급 기사를 붙일 정도니.’
그렇게 생각하며 난 듄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촌장한테 말해서 냄비 큰 걸로 하나 빌려오고, 마을 사람들 데려오라고 해줘. 좀 먹이자.”
“에, 예?”
“명령이야. 빨리.”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잠시 생각하던 듄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 근데 도련님.”
“어?”
집 밖을 나서던 듄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아까부터 허공에다 대고 뭐라 말씀하셨던 겁니까? 인기척은 없었습니다만….”
그 말을 들은 난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혼잣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다시 돌아봤을 때, 아이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
“정말이지,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해가 저물어간 저녁.
커다란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스프를 보며 촌장이 군침을 삼켰다.
말린 밀빵을 부순 뒤 육포와 사슴고기,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가져온 야채로 끓인 것.
고기를 먹는 것이 어지간히도 오랜만인 듯,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져 있었다.
“공자님. 그래도 만약이 있는데, 공자님 식량까지….”
“괜찮아. 하루 얹혀사는데 방값 정도는 내야지.”
촌장의 감사와 듄켈의 우려에 동시에 답하며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불 피운 회관에 모여앉은 사람들.
김 나는 스프를 들고 둘러앉아, 세상 돌아가는 얘기, 시시콜콜한 잡담. 그리고 중간중간 섞이는 웃음소리까지.
멀찍이서 그걸 보니 답답한 기분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 사람 냄새도 좀 그리웠고.”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려 광산이 있는 곳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이곳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크, 큰일이야! 광산에서, 광산에서 언데드가…!”
외곽에 살고 있던 주민이 그렇게 말하며 달려오던 와중, 식사가 한창인 장면을 보며 얼빠진 소리를 냈다.
“뭐, 뭐야. 이미 다 모여있네?”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은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회관.
텅 빈 마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난 내려가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몸 좀 녹이고,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 알았지?”
내가 두른 옷과 검을 본 청년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회관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을 회관에 모으자마자 일어난 언데드의 습격.
이상하리만치 잘 맞아떨어지는 상황에 듄켈이 눈을 크게 떴다.
“도련님. 설마 처음부터 이걸 예상하고…?”
“굶주림을 해결할 거면 이런 미봉책이 아니라 백작령에 가서 지방관을 조져야지.”
마을을 향해 걸어오는 좀비들을 보며 중얼거리는 듄켈에게 말하자 그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언데드의 습격을 예상하다니요? 전 아무 조짐도….”
“나도 처음에는 당연히 몰랐어. 근데….”
그렇게 말하며 난 내가 지내던 집을 바라보았다.
“여기 애들이 알려주더라고. 무서운 게 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