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광산의 네크로맨서(1)
카앙-!
오랜만에 햇볕을 쬐는 날.
연무장에서는 나와 델라인의 검이 신명나게 부딪히고 있었다.
“와아, 또 날아가네.”
하늘 위로 날아오른 내 연습용 검을 보며 망연하게 중얼댔다.
“솔직히 말해. 마력 썼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델라인에게 말하자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사이, 내 코앞까지 다가온 델라인이 내 양 어깨를 잡았다.
뒤늦게 떨어진 내 연습용 검이 땅에 부딪혀 땡그랑! 소리를 냈다.
“동생아.”
“닭살 돋는 호칭 그만하시고, 뭐가 문제인데?”
결투재판이 끝나고부터 일주일.
이왕 아버지에게 검술도 인정을 받았겠다, 신명나게 델라인을 붙잡고 대련을 해댔다.
그렇지만 결과는 전패.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델라인이 내뿜어대는 저 괴물 같은 힘과 체력이었다.
아니, 기술은 이제 내가 더 잘 쓴다니까?
보여줘? 내 5연속 유성검?
“클라인. 너 어제 내가 알려준 대로 운동했어?”
“어…. 어?”
정곡을 찌르는 그의 한 마디에 내 목소리가 이상해졌다.
“안했네. 맞지?”
“어, 으, 그게….”
대답이 느려질수록 델라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저 체력과 운동에 미친 근육괴물 같으니라고.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말해. 듣고 있어.”
애써 델라인을 멈춰 세운 뒤 필사적으로 그에게 항변했다.
설명할 논리는 충분했다.
아니 솔직히, 네크로맨서한테 체력이 무슨 필요야?
운동할 시간에 해부도 하나라도 더 보고, 마력회로 이론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인데.
일부러 근육을 찢어서 몸을 키우라고? 하루에 서너 시간을 소비하면서?
비효율적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운동이란 건 정말이지 우둔하기 짝이 없는….”
그렇게 내가 운동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실패했다.
“그건 그냥 도련님이 게으른 거잖아요.”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오니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설명을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날 끌고 간 델라인에게 조련당하기를 세 시간.
녹초가 된 채 침대에 퍼진 날 보며 아린이 한마디 거들었다.
“게으르다니, 나 지금도 책 보고 있는 거 안보여?”
“어차피 기사소설이라면서요. 그럼 노는 거지 뭐.”
“윽….”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난, 말없이 고개를 돌려 책을 펼쳐보았다.
‘저 녀석이 글을 모른다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표지는 서재에 있는 기사소설이었지만,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은 사실 책이 아니다.
백지상태의 빈 책.
그곳에는 내가 매일 밤마다 적어놓은 해부학, 마력회로, 그리고 술식 배치도 일람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아 근데, 요즘 좀 이상한 거 아세요?”
“이상하다니 뭐가?”
언제나 그렇듯 쿠키를 물고 있는 땡보 하녀가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청소할 때 있잖아요?”
“어어.”
“저기 창문에 손자국이 엄청 찍힌대요.”
풉-!
그 말에 하필이면 들고 있던 홍차를 뿜을 뻔했다.
“도련님 괜찮아요?”
“켁, 쿨럭! 어어…. 괜찮아. 그, 그래서?”
사레가 들려 기침하는 날 보며 어깨를 으쓱한 아린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네. 옆방에서 지내는 메어리가 ‘이 손자국, 안에서 찍힌 거야-!’ 라고 해서….”
식은땀이 절로 나왔다.
아린이 자러 간 새벽 시간대는 내가 기록한 술식을 시연하는 연구시간.
실제 영혼이나 내가 구성한 영체들이 방안 곳곳을 누비니, 그런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가 않지.
“언젠가 알려주기는 해야 할 텐데 말이지….”
솔직히, 이런 식으로 남몰래 연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이미 날 의심하는 개리슨 신부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
무슨 수를 써서든 그 신부에게서 안전과 연구 환경을 확보해야 한다.
똑똑.
그렇게 고민이 깊어가는 도중, 방 너머에서 들려온 노크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노크? 이 시간대에?”
내 방에 주로 들어오는 듄켈, 신부놈, 그리고 아린은 노크를 하지 않는다.
처음 이 저택에 올 때부터 마음대로 들어오라 했고, 이젠 오지 말라고 해도 그냥 벌컥벌컥 들어올 테니.
그렇다면 이 시간에 저렇게 노크를 할 사람은….
“클라인 도련님. 버크만입니다.”
예상대로, 하인켈의 집사인 버크만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문을 열고 그렇게 말하자 내게 깊이 고개를 숙인 버크만이 입을 열었다.
‘결투재판 때 집안 체면을 챙겨준 건 맞는데, 대접이 좀 과하지 않나?’
요즘 들어 부쩍 공손해진 그의 태도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버크만은 나오라는 듯 손짓하며 내게 말하고 있었다.
“공작 전하께서 부르십니다.”
***
“전하. 공자님 두 분 오셨습니다.”
“들이게.”
하인켈 공작의 허가가 떨어지자 집사가 문을 열어 우릴 안으로 들였다.
“늦은 시간에 미안했네. 버크만.”
“아닙니다. 이야기가 끝나는 대로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버크만은 방을 나갔다.
남은 것은 나란히 선 나와 델라인.
그리고 말없이 서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하인켈이었다.
‘뭐야, 뭐 잘못한 거 있어?’
‘아니, 없는데? 너 운동 안 하는 거 때문 아니야?’
‘아버지가 형도 아니고, 운동 안 했다고 이 시간에 부르겠어?’
‘넌 안 그랬어? 난 불렀는데?’
“서신이 왔다. 콘웰 백작이 일신상의 이유로, 모든 일에서 물러났다고.”
서로 입모양으로 말하던 우리들에게 하인켈이 말했다.
“덕분에 그가 관리하던 동부 광산 경비에 공백이 생긴 모양이더구나.”
그 말을 들으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착란 상태가 십수 년은 족히 유지될 테고, 깨어난다고 해도 평생 후유증에 시달릴 테니.’
폐인이 된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난 어깨를 으쓱였다.
인과응보지 뭐. 난 덕분에 죽을 뻔했는데.
“그리고 그 광산에서…. 이걸 봤다는 목격담이 들어왔다.”
그렇게 말한 하인켈은 책상 위에 놓인 그림을 가리켰다.
이리저리 뒤틀린 골격과 구멍 난 몸.
그것을 본 델라인의 눈이 커졌다.
“광산 안에서, 좀비가 나왔다고요?”
그 말에 하인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열 명 이상의 목격자가 나왔고, 사망자 보고도 있다 들었다. 하여….”
“제가 가겠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난 곧바로 선수를 쳤다.
언데드, 광산 그리고 우릴 호출한 이유.
이후 이어질 말은 뻔했으니까.
“클라인. 괜찮겠느냐?”
“예.”
새삼 감개무량한 기분이었다.
결투재판 이전까지는 이런 일이 있다 해도, 그와 델라인이 처리할 뿐, 내게 선택권이 주어지지는 않았으니까.
일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서 내 가치가 인정받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적어도 일 인분은 한다고 여겨진가도 봐야겠지? 아니면 이걸 일종의 시험으로 봐야 하나?’
하인켈이 건넨 임무 개요를 읽으면서도 내 고민은 깊어져갔다.
위태위태한 이 집구석을 고치기 위해선 하인켈 공작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없는 일도 찾아서 해야 할 판에 이런 일이 굴러들어왔으니, 오히려 잘된 격이지.
‘언데드에 관련된 일이라면, 전에 만난 그 녀석들을 캐볼 수도 있을 테고.’
그렇게 내심 계산을 마친 내게 하인켈의 명령이 내려왔다.
“그럼 내일 채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하거라. 듄켈이 붙어있을 테니,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으마.”
“알겠습니다.”
“음. 그리고 델라인.”
“어, 예?”
그렇게 할 일이 정해지자, 가만히 서 있던 델라인에게 하인켈이 뭔가를 던졌다.
“설마 아무 일 없이 둘 모두를 불렀겠느냐?”
“아…….”
안 했네, 안 했어. 진짜 일 없는 줄 알았나 봐.
탄식인지 탄성인지 알 듯 말 듯 미묘한 목소리를 들으며 빙글빙글 웃어댔다.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그 말에 델라인의 표정은 더욱 떨떠름해졌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두껍기 짝이 없는 털가죽 망토였다.
“북부 대장벽에서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확인하고 오거라.”
그 말과 델라인의 표정을 보고 직감했다.
역시 꿀 빠는 놈은 눈치 빠른 놈이라는 걸.
***
타닥-! 타닥-!
일정한 간격으로 타오르는 불씨를 보고 있으니, 잡생각이 모두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다 됐어.”
“아, 예.”
내 말을 들은 듄켈이 모닥불에 구워지고 있던 사슴고기 한 덩이를 잡아 뜯었다.
“냄새 많이 나나?”
“전 견딜만합니다. 근데 도련님은….”
“나도 그런 거 안 따져.”
뜯어낸 사슴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환생 이후 처음 떠나보는 장거리 여행.
15년 동안 쳐박혀 있던 교회나 저택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여러 풍경들을 볼 때면, 새삼 200년 전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 중에 알아낸 의외의 사실이 있었는데.
“역시, 저도 뭔가 일을….”
“저 숮덩이 안보여?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거야.”
명색이 단장급 기사라는 듄켈이, 요리나 사냥 같은 생존기술에는 하등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도련님.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말하지 말고 먹기나 해. 더 구울 테니까.”
부욱-! 부욱-!
가죽과 고기 사이에 주먹을 집어넣어 사냥한 사슴의 고기를 드러냈다.
이후 지방을 조금 걷어내고, 살코기를 도려내면 끝.
‘연합군 합동 기사단에게서 도망 다닌 게 십수 년인데, 그 짬이 어디 가는 게 아니지.’
깔끔하게 발골 된 사슴고기를 보며 내심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그…. 교회에서 공자님께 이런 것도 가르쳤습니까?”
“어깨너머로 배웠어.”
듄켈이 내 솜씨를 보더니 믿기지 않는다며 한 소리였다.
밖에 처음 나와 보는 열다섯 살 소년이 이러고 있으니, 신기하긴 하겠지.
“가끔 도련님을 보면, 또래의 귀족 자제분들과는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밤하늘을 이불 삼아 누우면, 이야기꽃 또한 피는 법.
모닥불을 뒤적이던 듄켈이 그렇게 말을 꺼내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 말을 받았다.
“또래 애들에 비해선 입이 좀 더럽지?”
“뭐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입 험한 걸로는 저희 기사들도 못 따라갈 겁니다.’ 라고 덧붙일 때는 솔직히 좀 웃었다.
“검의 재능을 숨기신 것도 그렇고, 저번 결투재판도 그렇고. 제가 도련님 나이였을 땐 상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아아….”
“그러다 보니 가끔, 정말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합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듄켈이 날 보며 멋쩍게 웃었다.
“설마 진짜로 아키몬드가 환생한 거 아닐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요.”
“…….”
잠시 말없이 불을 바라보던 난 이내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진짜 내가 아키몬드 환생이었다면, 여기를 가만히 뒀겠어?”
그렇게 말하자 듄켈 또한 웃으며 내 말을 받았다.
“그렇죠. 기록에 따르면 수백만 언데드 대군을 부렸다 하는데, 지금의 북부는 그냥 밀어버릴 수 있겠죠.”
지금의 북부.
그렇게 말한 듄켈의 얼굴은 조금 흐려 보였다.
“그렇지.”
짧은 긍정과 함께 천천히 자리에 누웠다.
갈 길이 아직 멀었으니, 날이 밝는 대로 떠나야 했다.
***
“저기가 그 광산이라 이거지?”
“예. 저쪽이 입구입니다.”
평야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산.
멀찍이서 그것을 확인한 나는 산의 입구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할까요? 날이 저물기 전에 빨리 들어가는 게….”
“아니.”
언데드가 창궐한 곳은 그에 걸맞은 표식이 생긴다.
일반적인 검사나 마법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기로 이루어진 표식.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
“예?”
듄켈의 되물음에 손을 내저은 난 지도를 펼쳐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우선 이 마을로 가자. 준비할 게 있어.”
그렇게 말한 뒤, 난 다시 한번 멀리 있는 광산의 입구를 보았다.
입구에 형성된 마기의 농도는 군락 급.
저 광산은 네크로맨서의 공방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