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8화 (8/209)

008. 쳐웃지마 니 얘기야.

“거기까지.”

보증인을 하인켈이 란델의 목에 검이 겨눠지는 것과 동시에 결투 종료를 선언했다.

“아아…! 아아아아-!”

란델의 절규를 듣자 콘웰 백작가의 치유사들이 몰려들었다.

“지혈 서둘러!”

“아악! 아아악! 이거 놔! 죽여벼릴 테다! 아아아아-!”

“팔 붙잡아! 슬립 걸어! 빨리!”

고참 치유사의 호통이 이어지자 발광하는 란델의 몸에 진정 마법이 걸렸다.

“꺼어어어….”

정신을 잃은 채 축 늘어진 란델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제야 안심한 치유사들은 곧바로 그의 손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거, 다시 붙일 수 있는 건가?”

면포에 싸여지는 란델의 손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의수를 만들어야 하니 그 본을 뜨기 위해….”

“아 뭐야, 그런 거였어?”

약간의 실망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200년이 지났는데도 접합조차 되지 않는다니.

치유사들 기술은 딱히 발전한 게 없구나.

“…잘려나간 육신을 보고도 아무 감흥이 없는 건가?”

“아.”

중얼거리는 하인켈의 그 말에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니 클라인 라인란트는 시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샌님이었지.

‘전생에 매일같이 봐온 게 시체인데, 이제 와서 무서운 척 할 수도 없고.’

그렇게 어떻게 얼버무릴까 고민하던 때였다.

“마, 말…. 말도 안 돼!”

허탈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콘웰 백작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어, 얼마나 많은 돈을 써서 고용한 기사인데…!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콘웰 백작.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닌 것 같소만.”

하인켈 공작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젓는 콘웰을 현실로 불러왔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표정을 보자, 콘웰 백작은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 듯했다.

“그, 공작 전하. 그것이…!”

“결투재판의 승자는 클라인이오. 패자는 북부의 전통에 따라, 승자의 요구를 이행하시오.”

하인켈의 말에 콘웰 백작이 이를 악물었다.

가문 최대의 유망주였던 달튼을 잃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직속 기사인 란델까지.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공작가에게 몸을 낮춰 용서를 빌어야 한다니.

꽤 굴욕적이겠지.

아마 인생 최대로.

‘근데 뭐 어쩌라고? 난 그쪽한테 죽을 뻔했는데.’

짧은 비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콘웰은 이미 결투를 받아들인 몸.

이를 거부한 것이 알려진다면, 귀족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당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알겠, 습니다….”

그렇게 말한 콘웰 백작이 애써 입을 열었다.

“조만간, 소정의 위로금과 함께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서신은 가문의 후계자인 다인 콘웰이 직접 전할 것이며….”

허, 이 새끼가 쥐새끼마냥 진짜.

이 지경이 되어서도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이거지?

“무슨 헛소리입니까?”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려는 콘웰 백작의 등에 대고 말했다.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콘웰이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폈다.

‘아까 전까지는 득의양양하더니 아주, 하….’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저 몰골을 봐라.

저딴 게 영웅의 혈통이라며 북부를 암약하고 있었다니, 진절머리가 났다.

“클라인 공자. 지금은, 그…!”

“‘패자는 승자의 요구를 무조건 이행한다.’ 결투재판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렇게 말한 난 내 발밑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자신의 죄를 외치십시오.”

“무, 뭐라…?!”

눈을 부릅뜬 콘웰 백작이 날 노려보았다.

‘와, 눈깔 좀 보게.’

당장이라도 날 죽일 듯 살기등등한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왜, 나한테 시키려던 일을 직접 하려니 어지간히도 심사가 뒤틀리나 보지?

“못 들었습니까? 다시 한 번 말해드릴까요?”

“클라인 공자. 아무리 결투재판이라 하나, 그런 불명예는…!”

옆에서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콘웰에게 붙어있던 하위 계파의 귀족.

아첨꾼에게 아첨하는 기생충이다.

“여긴 라인란트의 땅일진데, 그대는 지금 누구의 허락을 받고 내게 말하는 거지?”

“그, 그게…!”

눈을 흘기며 그렇게 말하자 흠칫한 귀족이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델칸 콘웰.”

“……!”

경어를 생략한 채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찮은 애물단지, 가문의 수치.

그렇게 생각해오던 둘째 공자에게 받는 하대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올 터였다.

‘원래 여기서 끝낼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손발을 벌벌 떠는 콘웰을 보며 난 주먹을 쥔 채 입을 열었다.

- 북부의 수호자이자 라인란트의 주인으로써, 그리고 결투의 승자로써 요구한다.

심장에서 발(發)한 마기를 목소리에 섞었다.

낮게 깔린 내 목소리가 그의 몸을 한층 더 무겁게 짓눌렀다.

- 네놈의 죄를 직접 고하고, 무릎을 꿇어 용서를 구하라.

이 목소리는 산자가 아닌 망자를 부르기 위한 음성.

그것을 들은 콘웰의 눈동자가 끊임없이 요동쳤다

“아, 아아아…!”

‘본래는 죽은 자의 영혼을 부를 때 쓰는 것이지만,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지.’

생명은 삶을 추구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법.

그런 산자의 영혼 깊숙한 곳에 각인되는 사자(死者)의 음성은 머리가 아닌 혼을 울린다.

“으, 으으으…!”

- 머리를 조아리고, 자비를 구걸하라. 네 죄의 무게를 느끼고 후회하라.

델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근거리에서 쏟아지는 마기와 명령.

다른 이들이었다면 진작에 무너지고도 남았지만, 콘웰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내 말에 저항하고 있었다.

‘권위의식도 여기까지 가면 의지력이 되는군.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답이 없다고 해야 할지.’

속으로 그렇게 한탄하는 사이, 끝끝내 완전히 무너진 콘웰이 내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분노와 권위의식으로 가득했던 그의 동공은 이제 텅 비어있었다.

마기를 사용하는 네크로맨서의 교란 술식, ‘망자의 목소리’.

충격에 못이겨 정신이 무너진 것이다.

“저, 저와 제 가문은…. 불경한 흑심을 품어 공자님을 해하려 했으며,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클레어 제 2 공후님을 모욕 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굻은 그를 내려다보며 되묻자 그는 눈물로 얼굴을 적신 채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오래 버틴다 싶더니, 좀 심각하게 무너졌네.’

망자의 목소리는 인간에게 극한의 공포심을 일으키는 술식이다.

그걸 코앞에서 읊어댔으니, 정신이 나갈 만도 하지.

‘적어도 십수 년은 계속 저러고 있을 텐데. 콘웰 가문이 고생 좀 하겠어.’

“저, 저와 본 가문의 죄, 죄를 고하오니…! 부디, 공자님의 용서를 바랍니다…!”

무릎을 꿇은 그의 모습을 확인하며 주변을 살폈다.

“내,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코, 콘웰 백작이 정말로…?”

“자백이 나온 이상, 저 가문도 끝이군.”

“허, 방계 세력의 일익이 저렇게 무너지다니?”

누군가는 탄식을, 누군가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것으로 대강 피아 식별을 마친 난 목청을 높여 그들을 향해 -외쳤다.

“이 자리에 선 자들은 똑똑히 들어라-!”

콘웰과는 달리, 마기를 섞지 않은 순수한 음성.

웅성거리던 그들의 음성이 단번에 멎고, 시선은 날 향했다.

“내 이름은 클라인 라인란트!”

땅바닥에 엎드린 콘웰과 날 번갈아 보던 귀족들이 내 이름을 머릿속에 새겼다.

“라인란트 공작가의 차남이요, 클레어 라 다일라시스 공후의 아들이다!”

이 외침은 내게 있어 출사표와 같았다.

더 이상 공작가의 그늘에 숨지 않겠다는 선언.

그리고 이 나로 인해, 라인란트 공작가는 바뀔 것이라는 다짐이었다.

***

끼이이이이-!

육중한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양옆으로 갈라졌다.

어두운 성 안에 한 줄기 햇빛이 비치고, 다시 그 햇빛을 가린 그림자가 성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쿵-! 쿵-!

육중한 거구가 내는 발소리는 마치 산을 호령 하는 웅신의 그것과도 같았다.

대리석으로 이뤄진 낡은 바닥을 짓밟으며 나아간 그는 이윽고, 목표한 곳에 이르러 몸을 숙였다.

“그래, 왔는가. 개리슨 신부.”

“머록 추기경님.”

늙은 노인의 목소리가 텅 빈 성을 울렸다.

곳곳에 늘어선 태양 십자의 문양과 성상.

그이로 어두운 공간 속 유일하게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짐작하게 했다.

“감시 대상이 습격을 당했습니다. 네크로맨서의 좀비였습니다.”

“잘 알고 있다네. 뜻을 이루기 위한 안배였으니.”

추기경의 평온한 목소리에 개리슨이 숨을 삼켰다.

“안배라 하시면?”

개리슨이 그렇게 묻자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이 그를 마주 보았다.

“북부 지방은 신성교단이 아직 뿌리내리지 않은 이단의 땅. 그곳에 은총을 내리기 위해선, 제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 가장 슬기로운 방법이었네.”

“슬기로운 방법.”

높낮이를 구분할 수 없는 낮은 목소리가 추기경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그 네크로맨서는 제국에서 심은 것입니까?”

“그렇지.”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슬기로운 방법이라 하여 허하셨군요.”

“교단을 위한 일일세. 이교도 몇 명으로 더 많은 이를 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설명에 열중하던 머록 추기경의 말이 도중에 멈췄다.

개리슨 신부의 손이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기 때문이다.

“자네, 지금 무슨! 읍…! 으으읍…!”

“교리와 성전의 수호자가 한낱 정치놀음에 미쳐 이단과 타협했구나.”

꾸득! 꾸드득!

한 손으로 추기경의 얼굴을 잡은 채 그대로 들어올렸다.

얼굴을 붙잡힌 추기경은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팔을 발로 차고, 손에 주먹질을 해댔다.

그렇지만 신전의 기둥과도 같은 그의 팔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손에 압력을 더할 뿐이었다.

“읍! 으읍! 으으으으읍-!”

점차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몸이 미친 듯 경련하며 발버둥 쳤다.

“개, 개리슨! 으으읍-!”

마치 찜통에 들어간 개구리처럼 날뛰던 것도 잠시.

퍽-!

개리슨 신부의 손이 그대로 추기경의 얼굴을 쥐어 터트렸다.

후두두둑!

머리를 잃은 몸과 터진 머리조각들이 땅에 떨어져 흩어졌다.

“크으으으….”

그렇지만 개리슨 신부는 아직도 화가 가시지 않았는지, 이를 악문 채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기분은 좀 풀렸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개리슨이 돌아보았다.

“팔리만 대주교.”

“질리지도 않나? 네크로맨서가 죽인 성직자보다 자네가 죽인 성직자가 더 많을 지경이니.”

풍선처럼 터져 널브러진 추기경의 시체를 보고도 아무 감흥이 없는 듯, 검은 머리의 젊은 남자는 웃는 낯 그대로 개리슨 신부에게 다가갔다.

“네놈이 꾸민 일인가?”

“꾸미진 않았네. 허가했을 뿐이지.”

웃는 얼굴 그대로 말하자 개리슨이 피 묻은 손을 쥔 채 그에게로 다가갔다.

“네놈은 항상 그따위지. 팔리만 엘. 직접 나설 용기조차 없어 지켜볼 뿐인 겁쟁이 대주교.”

“그러는 자네는 과거에 묶여 망령만을 쫓는 미치광이가 아닌가? 개리슨 비어크만 신부.”

콰앙-!

팔리만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얼굴 바로 옆에 주먹이 들이닥쳤다.

파공음만으로도 대리석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강권.

그렇지만 그것을 코앞에서 본 팔리만의 웃는 얼굴에는 미동도 없었다.

“용건이 뭐냐.”

“정보일세. 자네의 ‘감시대상’에 대한.”

개리슨의 질문에 그렇게 답한 팔리만은 유리로 만든 작은 십자가를 내밀었다.

“이건?”

유리로 만들어진 듯한 십자가 속에는 붉은 액체, 그리고 검은 연기가 함께 섞여 있었다.

“액토플라즘이 담긴 십자가일세. 자네가 죽인 제국의 네크로맨서가 지니고 있던 물건이지.”

“웃기는 소리. 네놈이 몰래 집어넣은 거겠지.”

그를 노려본 개리슨이 그렇게 말했지만, 팔리만은 별말 없이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붉은 것은 피. 제국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반혼술의 흔적이지. 시체를 일으키는 술식일세.”

“다른 하나는?”

“검은 것은 혼. 시체가 아닌 영혼을 다루는…. 사령술의 원형과도 같은 술식이지.”

그 말을 듣자 개리슨이 말을 멈췄다.

“하나의 십자가에 서로 다른 두 개의 흔적이 남았다. 그 말인즉….”

“현장에 있던 사령술사는 둘이었다는 얘기지.”

그렇게 말한 뒤 개리슨의 얼굴을 보자 팔리만의 눈이 초승달을 그렸다.

“라인란트 공작가의 둘째 공자, 클라인 라인란트는…. 사령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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