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결투재판.
카앙-!
귀를 찢는 듯한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었다.
내가 재현해낸 유성검이 향한 곳은 델라인의 검.
마력을 가득 담은 그의 검신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역시 못뚫었어!”
내 검격을 막는 것과 동시에 달려드는 델라인.
곧바로 뒤로 튀어 오르며 방어자세로 전환했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검은 잡아본 적도 없는 빈약한 몸뚱이.
기사인 델라인을 힘으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막아내려고 하면 팔이 망가진다. 어떻게든 흘려야…!’
그렇게 생각하며 앞을 본 그 순간.
‘아, 씨발. 이거 안 되겠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내 검에 진짜 위협을 느낀 것인지.
델라인은 지금껏 보이던 여유로운 표정이 아닌,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로 내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쿠콰아아앙-!
검이 부딪히는 소리?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연무장에 먼지가 자욱이 일었다.
“이런…!”
“델라인 공자님! 대련이라는 걸 잊으셨습니까?!”
듄켈의 목소리에 델라인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런, 젠장!”
그제서야 자신의 검에 담긴 마력량이 눈에 들어왔는지, 급히 검을 내던진 델라인이 내게로 달려왔다.
“클라인! 괜찮아?!”
다급한 델라인의 목소리가 날 불렀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마력.
유성검을 막아낸 순간,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것이겠지.
쩌적!
파열음이 들렸다.
내 검에서 난 소리였다.
콰작!
완전히 깨져버린 검날이 날아가 땅에 박혔다.
산산조각난 내 검에 비해, 이 나간 곳 하나 없는 델라인의 검.
내 패배였다.
“아오 팔 아파. 편법으로 덤벼봤는데, 역시 아직은 무리였네.”
그렇게 말하며 멋쩍게 웃어보였지만 날 보는 델라인, 그리고 하인켈 공작의 표정은 더욱 괴상해졌다.
“클라인, 너…?”
“허……!”
아쉽긴 했지만, 진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이미 방금 전의 대련으로 난 델라인의 검로, 기술 등 수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주입한 뒤.
거기에 더불어 가주인 하인켈에게 내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도 성공했다.
남은 것은 결정을 기다리는 것뿐.
“…….”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사이, 잠시 생각에 잠긴 하인켈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치기로 저지른 일은 아니로구나. 클라인.”
그렇게 말한 하인켈은 날 향해 입을 열었다.
“좋다. 네 뜻대로 해 보거라.”
“감사합니다.”
웃는 낯으로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하인켈은 등을 돌려 저택으로 들어갔다.
“잠깐만요 아버지! 클라인은 마력이…!”
“직접 상대해 본 네가 더 잘 알 것 아니냐. 델라인.”
이의를 제기하려는 델라인의 말을 하인켈이 막았다.
“방금 그 유성검. 마력을 담아냈다면 네 검이 잘려나갔을 거다.”
“그렇지만 결국 못 뚫었어요. 역시 제가 나서는 게…!”
“형이 서 있는 위치를 생각해.”
단호한 내 한마디에 델라인의 항변이 멈췄다.
“제국은 점점 북부로 진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고, 방계는 그들에게 빌붙었지. 그들을 견제할 지방의 세력들은 제각각 따로 노느라 뭉치지도 않고.”
작금의 북부를 정확히 요약한 내 말에 델라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우리가 북부의 지배자를 자처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내 말을 받은 하인켈이 설명을 덧붙였다.
“북부 최강을 자처하는 나.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너의 존재. 그것마저 사라진다면, 라인란트의 지배력은 무너진다.”
하인켈의 부연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지금 날 구하겠다고 결투재판에 나서면 어떻게 되지?”
“그건….”
“방계가 합법적으로 라인란트의 후계자를 죽일 기회를 갖는 거야.”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한 델라인이 고개를 숙였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답답하겠지. 후계자라는 직함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꼴이니.’
말없이 주먹 쥔 델라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 목숨 하나정도면 그리 큰 손실도 아니잖아. 한번 믿고 맡겨봐.”
정치적 기반이 없는 둘째 따위,
그렇게 말한 뒤 그를 지나치려 하는 순간.
“큰 손실이 아니기는!”
이번에는 델라인의 외침이 내 발걸음을 멈췄다.
그를 등진 채 고개만 돌려 그를 보았다.
얼굴을 찌푸린 델라인이 날 향해 말했다.
“자기 목숨을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 마.”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
그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적어도 난, 널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뒤이어 그가 말한 한 마디에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베르켈 그 새끼랑 똑같네.’
한 치의 망설임도, 고민조차 없는 저 올곧은 눈빛.
나와는 다른, 진짜 영웅의 후예였다.
***
“개리슨 신부님이 요즘 통 안 오시네요~”
결투 날 정오.
난 내 방 소파에 엎드려 쿠키를 우물거리는 아린을 보며 연무장에 갈 채비를 했다.
“오히려 잘됐지. 덕분에 물고문 신세에서 해방됐는데.”
“에에~ 전 심심해요 도련님.”
“일이나 하세요. 하여튼 뺀질거리긴.”
그렇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뒤통수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제국 측 네크로맨서가 한 짓이라고 얼버무렸지만, 그리 쉽게 물러날 상대가 아니야.’
흔적을 남기지 않는 내 사령술과는 달리, 그 녀석이 사용한 반혼술은 흔적을 진하게 남긴다.
웬만해서는 그곳에서 내 흔적을 찾아내기 어렵겠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방심은 금물이었다.
‘대책을 세워야 해. 그나마 여긴 아버지가 있으니 괜찮겠다만….’
그렇게 고민하면서 문을 열자, 그곳에는 듄켈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주문하셨던 검입니다.”
“오, 그래도 시간에 맞춰서 왔나보네?”
검집에서 검을 뽑아 검신을 확인했다.
목검과 비슷할 정도로 경량화 된 물건.
공작가의 장인들의 솜씨로 만들어져 흠 잡을 곳이 없었다.
“말씀하신대로 만들었습니다만, 조심하십시오. 검끼리 부딪히는 순간 부러질 겁니다.”
듄켈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였다.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다한들, 어차피 철검.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강도는 낮아졌을 것이 분명하다.
검을 허리에 찬 뒤 연무장을 향해 걸었다.
“묵고 있는 손님들은?”
“모두 연무장에 모여 있습니다. 생전에 결투재판을 다시 볼 줄은 몰랐다면서, 들뜬 모양이었는데요.”
“그렇겠지.”
하인켈의 허락이 떨어진 뒤,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십 년 만에 이뤄지는 결투재판.
대부분의 귀족들은 둘째 공자가 미쳤다면서 고개를 내저었지만, 개중에는 이렇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포섭하실 생각입니까?”
“아직은 불가능해. 그냥 얼굴도장만 찍어두는 정도지.”
북부의 전통을 다시 보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이곳에 남은 지방의 토호들.
직계와 방계,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지금의 내게 있어선 유일한 선택지나 다름없었다.
“오 왔군?”
“정말로 혼자서 올 줄이야….”
연무장에 도착하자 날 맞이한 것은 콘웰 백작의 일파와 몇몇 토호들.
그리고 결투의 감독을 맡은 아버지, 하인켈의 모습이었다.
“크하하?! 정말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공자!”
가래가 잔뜩 낀 걸걸한 목소리.
목소리가 들린 곳을 보자 그곳에는 키가 2미터가 넘는 거한이 서 있었다.
“개리슨보다는 박력이 덜한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를 향해 걸어갔다.
한 손에는 아밍 소드, 다른 한 손에는 그물.
양손검을 주로 사용하는 북부의 기사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무장이었다.
‘처음부터 델라인이 올 줄 알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군.’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란델을 보며 쓰게 웃었다.
난 아예 안중에도 없다 이 말이지?
“클라인 공자.”
검으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란델이 말했다.
“전 원래 이런 기회를 주지 않는 성격입니다만, 오늘은 특별히 드리죠.”
그렇게 말하는 란델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지금이라도 콘웰 백작님에 대한 무례를 인정하고, 엎드려 사죄하십시오. 그러면 손속에 어느 정도 자비를….”
“자비는 지랄.”
내 입에서 거친 소리가 나오자 란델이 말을 멈췄다.
“공자, 지금 뭐라고…?”
“존칭 똑바로 붙여 새끼야. 황제는 자기 기사들한테 위아래도 안 가르치냐?”
제국을 들먹이며 신경을 긁어봤다.
곧바로 굳어지는 얼굴을 보니 효과가 썩 괜찮은 듯 하다.
“하긴, 위아래는커녕 제 집이 어딘지도 모르는 놈이니, 황제가 버릴 만도 하지.”
“풉!”
추가로 한 마디를 덧붙이자 구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방 토호들이 모인 자리.
그곳에 앉은 한 여인이 낸 웃음소리였다.
“하! 나 참 진짜….”
흔해빠진 도발이었지만, 예상 외로 반응이 격하다.
애써 웃어넘기려는 듯 헛웃음소리를 내는 란델.
그렇지만 그의 이마에 돋은 실핏줄을 보며 내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좋게좋게 가자니까 꼭 저렇게 주둥이를 놀려대지…. 제 주제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며 웃는 란델의 얼굴에는 짙은 살기가 담겨있었다.
“좋게는 개뿔.”
그의 시선을 받아내며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저런 살기 따위, 신부놈이 내뿜던 것에 비하면 쥐새끼만도 못하니까.
“처음부터 살려둘 생각 없었잖아?”
그렇게 말하며 마주 웃자, 란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용케 알아챘군 그래?”
내 코앞에 다다른 란델이 날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부웅-!
‘막아내는 순간 검이 부러질 겁니다.’
듄켈의 충고를 떠올리며 눈으로 검을 쫒았다.
그가 내게로 들이닥친 순간 내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조합한다.
검의 경로, 시선, 근육의 움직임까지 전부.
“이대로 짓이겨주마!”
쿠콰앙-!
거국 내뿜는 완력이 연무장 바닥을 한 움큼 도려냈다.
“크하하! 주둥아리만 산 놈이, 감히 나를…!”
날 잡았다고 생각한 란델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뭐, 뭐야?!”
그의 검이 내리꽂힌 자리에 내 모습은 없었다.
휘두른 시점에 이미 뒤를 잡았거든.
“바, 방금 저건?!”
“델라인 공자의 보법이오. 적어도 4년은 수련해야 하는 기술인데, 어떻게?!”
북방의 기사, 라인란트는 혹한의 설원에서 싸우는 이들.
그렇기에 그들의 검술은 마력을 쏟아 붓는 제국의 패도적인 검과는 달리, 마력의 소모를 극한으로 낮춘다.
최소한의 마력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는 극한의 가성비.
마력이 없는 내가 델라인의 검술을 구사할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게…!”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올려치는 검을 뒤로 물러가 피해냈다.
자신이 놀아났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인지, 이를 악문 란델의 눈이 날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어우, 무슨 멧돼지 새끼 보는 것 같네?”
“크아아아-!”
내 말에 분노한 란델이 날 향해 그물을 던졌다.
부채꼴로 퍼져 모든 경로를 틀어막는 무장.
잡히는 순간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 곤죽이 되도록 두드릴 생각이겠지.
촤륵-!
날 향해 펼쳐지는 그물을 피하는 대신, 그대로 돌진해 앞으로 파고들었다.
“무, 뭣?!”
그물을 피해 거리를 벌리는 대신, 오히려 안쪽으로 파고든다.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당황한 듯, 란델이 눈을 크게 떴다.
“델라인을 잡기 위해 이걸 가져온 건 좋은데, 생각이 좀 짧았네.”
넓은 거리를 견고하게 틀어막는 가죽 그물.
그 병기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대방패 저리가라 할 정도의 무거운 무게였다.
피잉-!
고속으로 올려친 내 검격에 란델이 급히 몸을 틀었다.
그렇지만 이미 넓게 펼쳐진 그물이 그의 행동을 제한하는 상황.
“자, 이제 이지선다다 란델.”
“이 새끼…!”
“그물을 버리고 기회를 얻던가, 그물을 잡은 채 뒤지던가!”
그렇게 말하며 복부, 그리고 허리를 노렸다.
손잡이는 짧지만 검날의 길이는 긴 아밍 소드.
이미 지근거리까지 파고든 이상, 그물을 놓지 않으면 막아낼 수 없는 구조였다.
“이 개 같은 자식이!”
결국 그는 왼손에 쥔 그물을 놓은 채 날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직!
곧바로 쇳소리와 함께 무른 내 검이 그대로 부러졌다.
“하! 꼴 좋구나 클라인! 이걸로 네 검은…!”
“널 족치기 딱 알맞은 형태가 됐지!”
거의 팔꿈치만한 길이로 변해버린 검신.
그렇지만 이 짧은 칼날은 오히려, 이런 지근거리 개싸움에선 더 유리한 법이다.
스걱!
날 잡기위해 뻗은 란델의 손목을 그대로 그어버렸다.
마력으로 강화한 몸이라 한들 인간의 고깃덩이.
날카롭게 벼려진 검날은 어렵지 않게 그의 살을 도려내고, 뼈를 끊었다.
“아아악?!”
허공을 한 바퀴 돌아간 란델의 왼손이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내, 내 팔! 내 팔이이이-!”
고통을 이기지 못한 란델이 그대로 땅에 널브러졌다.
잘려나간 손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라, 란델?!”
“뭐야! 어떻게 클라인 공자가 란델을…!”
“사실이었단 말이야?!”
경악으로 가득 찬 연무장에 란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방금 네가 한 말, 그대로 돌려주마.”
잠시 그 꼴을 구경하던 난 부러진 검을 들고 다가가 그에게 겨눈 뒤 말했다.
“엎드려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