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인퀴지터.
“크어어어….”
한데 모인 스켈레톤들이 내게로 걸어왔다.
마치 기도하는 듯한 모양새.
그 모습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청에 따라 주었으니, 나도 그 보답을 해야지.”
그렇게 말한 난 마력으로 구성한 그들의 육체를 해제했다.
“날 도운 대가로, 너희를 묶은 저주를 풀었다. 이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된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스켈레톤들이 하나, 둘 무릎을 꿇은 채 사라져갔다.
“…본래 네크로맨서라는 게 이런 일인데 말이지.”
작은 한탄과 함께 돌아갈 채비를 했다.
‘듄켈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미 말을 몰고 이쪽으로 오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체들을 돌아본 그 순간.
“응?”
얼굴을 찡그린 채 숲 한 구석을 바라보았다.
“저건 또 뭐야?”
어두운 그림자 속,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클라인 공자. 사령술을 다루다니, 의외로군.”
검은 로브. 그리고 가면.
말없이 날 바라보는 괴한이 내게 말을 걸었다.
“넌 누구지? 전부 지켜봤나?”
“알 필요 없다. 알 수도 없을 테고.”
그렇게 말한 괴한은 시체들을 보며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꾸득. 꾸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죽은 용병과 달튼의 시체가 들썩였다.
수명이 다한 육체에 억지로 혼을 가두는 술식.
“반혼술, 너도 네크로맨서인가?”
투화악-!
한 곳에 모여 죽어있던 시체들이 순식간에 다시 일어났다.
손에 들고 있는 도끼와 석궁.
그리고 하얗게 변질된 텅 빈 눈알.
좀비였다.
“캬아아아아아악-!”
몸 곳곳에서 죽은피를 흘리며 내게로 다가오는 좀비들.
내가 불러낸 스켈레톤과는 달리, 시체에 혼을 쑤셔 박아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달튼이 실패했으니, 그 시체라도 활용해야겠지.”
몸에 정제해 둔 마기를 전부 사용한 상황.
그걸 알아챈 괴한이 날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달튼이 죽을 줄은 몰랐지만, 날 죽일 수 있으니 되었다…. 뭐 그런 생각인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난 내 손등을 보았다.
듄켈에게 건넸던 스크롤에 연동시킨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개리슨 신부가 사라졌다. 그 말인 즉….
“너 좆됐어 이 새끼야.”
그리고 그다음 순간.
쿠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
가면 쓴 괴한이 놀란 듯 뒷걸음쳤다.
그럴 만도 했다.
날 향해 다가오던 좀비 열 명이 착지한 풍압만으로 갈가리 찢겨나갔으니까.
쿠구구구구…!
검은 신부복 차림.
신장 2.5미터의 거한.
한손에는 성서를, 다른 한 손에는 거대한 망치를 든 자.
“대, 행자…!”
짐승과도 같은 얼굴을 한 채 웃고 있는 자는 신성교단의 대행자.
개리슨 비어크만이었다.
“죄인에게 고하니, 구하고 빌어라. 그렇다면 내 너에게 불의 세례를 내려 죄를 씻어주겠노라, 죄악으로 가득 찬 가죽을 벗겨 하늘에 휘날리겠노라.”
신성교단의 기도문이 온 숲을 낮게 울렸다.
이미 산산조각 난 좀비의 흔적들을 보며, 가면 쓴 괴한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기랄, 얘기가 다르잖아! 후퇴를…!”
그런 그가 등을 돌려 도망치려는 순간.
“어디로 갈 생각이냐.”
개리슨 신부는 이미 그의 머리를 손에 쥔 상태였다.
퍼퍼퍼퍽-!
단지 돌진했을 뿐이었다.
단지 발을 딛었을 뿐이었다.
단지 그 간단한 행동만으로, 달튼과 용병 스무 명의 육체가 사라졌다.
달려 나가는 풍압만으로 스물한 구의 좀비가 그대로 갈려나가 지천에 흩뿌려졌다.
대항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폭력.
저게 신성교단의 대행자다.
퍽-!
풍선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면을 쓴 네크로맨서는 한 마디 항변도 하지 못한 채 죽어버린 것이다.
저벅- 저벅-
무거운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개리슨의 왼손에는 피로 흥건하게 젖어있는 성서가 들려있었다.
‘무식한 새끼, 저 책으로 머리를 쥐어 터트린 거야?’
참 기상천외한 방법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게 다가온 개리슨 신부를 보았다.
“도련님.”
날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똑같은 밝은 목소리였다.
“……덕분에 살았어.”
“사령술의 기운이 느껴져서 말이지요. 단번에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개리슨 신부가 내 어깨를 툭툭 털었다.
“헌데, 참 신기한 일이지요.”
“…뭐가?”
내가 되묻자 개리슨은 웃는 얼굴 그대로 날 향해 말했다.
“제가 느낀 기운과, 지금 단죄한 자의 기운이 살짝…. 다른 느낌이어서 말입니다.”
그 말을 듣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것.
끝을 모르는 분노.
그리고 근원을 모를 광기.
‘한 마디라도 삐끗하는 순간, 이 녀석은 곧바로 날 죽일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마른침을 삼킨 그 순간.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투레질 소리와 함께 다급한 듄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과 동시에 두 다리로 선 몸이 허물어졌다.
이 몸으로는 처음 겪은 실전에 대행자의 심문.
이만큼 버틴 것도 대단한 거다.
“도련님…!”
“소리 안쳐도 다 들리니까 나 좀 태워줘. 다리에 힘 풀렸다.”
손을 휘저으며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안도한 듯, 듄켈이 말에서 내려 날 부축했다.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달튼 님은 어디에…!”
“아, 달튼?”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듄켈을 보며 난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죽였어. 그 새끼가 날 죽이려고 하길래.”
***
“암살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콰앙-!
클라인의 진술로 인해 열린 가문 회의.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죽은 달튼의 아버지, 콘웰 백작이었다.
“달튼은 기사단의 일원으로, 명예와 신의를 아는 자입니다! 헌데 암살이라니요?!”
콘웰의 외침은 피를 토하는 듯했다.
자신의 아들이 죽은 것도 모자라, 좀비가 되고, 시체는 수습할 수도 없이 잘게 짓이겨진 상황.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분노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다른 귀족들이 술렁였다.
“그렇지만, 클라인은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소. 그리고 또 한 가지.”
차분한 표정으로 설명하는 하인켈의 손에서 서류가 나왔다.
“두 사람이 사라진 시간, 자네의 영지에서 용병 20명을 파견했다는 기록이 있소. 클라인이 진술한 대로 말이야.”
“그, 그건…!”
주변의 다른 귀족들이 혀를 찼다.
그 와중에 저런 서류를 처분하지 않았다니.
“하지만,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에 질세라, 콘웰 백작이 힘껏 소리쳤다.
“달튼은 기사단에 정식으로 입단할 정도의 실력자인 반면, 클라인 공자께서는 검을 잡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 말에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인은 검에 대해선 문외한이지.”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공작의 긍정에 확신을 얻은 듯, 콘웰 백작의 목소리가 커졌다.
“만에 하나 정말로 달튼이 클라인 공자를 해하려 했다면, 공자께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심지어 용병의 지원도 있었다면, 더욱 힘들지요.”
다른 귀족들이 콘웰의 주장을 거들었다.
논점을 흐리기 위한 궤변.
그렇지만 하인켈 또한 달리 부정할 방법이 없었다.
정규 기사 한 명과 석궁으로 무장한 병사 스무 명.
듄켈 같은 단장급 기사조차도 부상을 각오해야 할 포위망에서 클라인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할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클라인 공자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인켈이 물러서는 것을 보자 차갑게 웃은 콘웰이 입을 열었다.
“사령술에 심취한 클레어 공후 밑에서 태어나, 세 살 때에는 자신이 아키몬드라고 떠들었던 분이십니다!”
“콘웰! 말을 삼가시오!”
“아뇨! 못합니다!”
가주인 하인켈의 경고가 이어졌지만, 콘웰은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악마에 씌인 무능한 공자와, 어엿한 기사이자 귀족원의 일원인 제 아들! 누구를 의심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까!”
이것은 공작을 향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설득해야 하는 것은 공작인 하인켈이 아닌, 이곳에 참석한 다른 영주들.
그리고 자신의 편에 선 다른 방계들이었다.
“화, 확실히….”
“클라인 공자님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왜, 클레어 공후님도 망상 증세가 있지 않으셨나. 그 연장이라고 하면….”
같은 가문이라는 것들이, 한데 모여 본가의 공자를 비방하는 상황.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하인켈의 표정 또한 그리 편치 않았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어쩌면 공자님이, 제 아들을…!”
“듣자듣자 하니, 못 하는 소리가 없으시군요. 콘웰 백작.”
더 이상 개소리가 나오기 전에, 콘웰 백작의 말을 끊었다.
몸을 추스르고 있어야 할 내가 회의장에 나타나자 몇몇 귀족들이 놀란 듯 헛숨을 삼켰다.
“클라인 공자….”
“분명 그가 말했습니다. 내 목을 공작가에 던져 경고할 것이라고. 그리고 누가 북부의 주인인지 알게 하겠다고.”
달튼이 내게 한 말에 살을 붙혀서 내뱉었다.
방계가 본가에게 도전하는 불경한 언사.
지방 영주들과 하인켈 공작이 불편한 듯 헛기침 소리를 냈다.
“그, 근거 없는 진술입니다. 공자님.”
“제가 착란을 일으켰다는 말보다는 낫겠지요.”
방계의 실세 중 하나인 콘웰 백작에게 지지 않으며 맞섰다.
방계를 제외한 다른 영주들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로군.’
난 한 번도 전면에 나선 적이 없는 둘째 공자.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내 평가, 그리고 공작가의 평가가 뒤바뀔 테니까.
‘그래, 뜯어고쳐주마. 이 망할 놈의 집구석.’
달튼을 죽이며 새겼던 다짐.
그것을 떠올린 난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달튼은 용병을 동원해 절 죽이려 했고, 전 자기방어를 위해 그들을 사살했습니다. 그 후 정체 모를 괴한이 그들을 언데드로 만들었지만, 개리슨 신부께서 도움을 주셨죠.”
한번 더 요약했지만, 방계 측 인사들은 쉽사리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공자께서 달튼을 죽이셨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왜 말이 안 되는 거죠?”
내가 되묻자 콘웰 백작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났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공자께서는 정식 기사인 달튼을 이길 수 없어요!”
백작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좌중을 둘러보았다.
콘웰 백작의 의견에 동조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다들 내가 달튼을 이겼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처음 전면에 나서는 거니, 최대한 이목을 끌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 웃는 낯으로 콘웰 백작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증명해 보이죠.”
그 말과 동시에 난 검을 뽑았다.
“클라인 공자! 지금 뭘…!”
“델칸 콘웰-!”
콘웰 백작가의 가주.
그의 본명을 외치는 것과 동시에, 난 회의장 정 중앙에 검을 박아넣었다.
카앙-!
하인켈 공작을 포함한 모두가 그 행위에 눈을 치켜떴다.
본명을 외치는 것과 동시에 검을 꽂는 행위.
북부의 귀족들에게 있어, 그 행위가 뜻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대는 억측과 거짓 진술로 사건의 본질을 흐린 것도 모자라, 공후인 내 어머니와 공자인 나를 모욕했다!”
그 말에 콘웰 백작의 표정이 더 괴상해졌다.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난 웃음 띤 얼굴로 그를 향해 말했다.
“이에 북부 기사의 전통에 따라, 그대와 그대의 가문에 결투재판을 신청하는 바이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내 한마디.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할 말을 잃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