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네크로맨서.
“이런 뭐야, 스켈레톤?”
“대형변경! 한곳으로 모여! 어서!”
아무 힘도 없을 줄 알았던 공자가 사령술을 쓰다니.
달튼의 용병들은 당황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갖추었다.
보호 대상인 그를 감싸는 동시에 검을 든 자가 앞으로, 쇠뇌를 든 자가 뒤로.
그러는 사이, 클라인이 불러낸 스켈레톤들은 원형으로 그들이 있는 곳을 둘러쌌다.
“원거리 무장은 없다.”
“근데 생긴 게 왜 저래? 저 시커먼 게 뼈야?”
거무튀튀한 연기에 둘러싸인 검은 해골들.
그것들을 보며 용병 중 하나가 혼잣말했다.
“스켈레톤은 시체의 뼈를 다시 일으키는 거잖아? 근데 여기엔….”
사전에 이 곳을 염탐하고, 수 일을 묵었던 곳이다.
그 동안 뼈는커녕 여우 새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스켈레톤이 만들어진 것이지?
“하! 하하! 하하하!”
용병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뒤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용주인 달튼의 목소리였다.
“스켈레톤? 무게는 있는 대로 잡아놓고 내보낸다는 게 이 따위 잡졸들이냐?”
용병 중 몇몇이 그 말에 동조했다.
네크로맨서들이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언데드, 스켈레톤.
무기를 쓸 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나 먹히는 것이지, 자신들처럼 훈련된 용병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상대였다.
“잡졸?”
그렇지만 클라인 공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달튼에게 되물었다.
“잡졸이지! 지성 없는 해골들 따위, 임무 중에 수천 번은 부셔봤으니까!”
자신만만한 달튼이 그렇게 외쳤다.
발목이 분질러진 한 명을 포함한 다른 용병들도, 잘 걸렸다는 듯 무기를 매만지고 있었다.
“젠장, 스켈레톤 따위한테 다리를 당할 줄이야…!”
“킥킥킥, 넌 나중에 제대로 골려주마.”
그러는 사이, 용병단의 지휘를 맡은 남자가 대열을 갖춘 용병들에게 말했다.
“앞을 가로막는 놈들부터 처리하고, 나머지는 길을 뚫는다. 쇠뇌 장전!”
미리 공자를 겨누던 석궁이 이젠 스켈레톤을 향했다.
“발사-!”
투투투투-!
구령과 함께 열 발의 석궁이 쏘아졌다.
그들의 석궁은 1선 부대와 같은 수준에 조준도 정확하다.
파묻혀있던 뼈로 급조해낸 스켈레톤이 저 쿼렐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을 터.
…분명 그럴 텐데.
카카캉-!
들려서는 안 될 쇳소리가 숲을 울렸다.
자신들이 쏜 석궁이 가로막히자, 용병들의 눈이 커졌다.
“자, 잠깐. 뭐야 방금?”
“방패? 아까까지는 없었잖아…!”
클라인의 앞을 가로막은 방패.
스켈레톤들이 두르고 있는 검은 연기가 뭉쳐, 그 자리에서 생성된 것들이었다.
“200년이 길긴 하군. 이 언데드를 알아보는 이들이 한 명도 없다니.”
어린 클라인 공자의 목소리가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들을 보며 웃고 있는 클라인 공자의 얼굴은 더 이상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1진, 방어대형 해제. 돌입 준비.”
촤르륵-!
클라인 공자의 명령에 연기에 둘러싸인 검은 해골들이 검을 빼들었다.
마치 훈련된 군대와 같은 통솔된 움직임.
그걸 본 용병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다른 스켈레톤이면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데.”
팔짱을 낀 채, 그들을 지켜보던 클라인 공자가 빙긋 웃으며 다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근데, 내 스켈레톤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지.”
미리 시위에 걸어놓은 쿼렐이 전부 소진된 상황.
“돌격.”
그것을 확인한 듯, 공자는 곧바로 그들을 포위한 스켈레톤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키야아아아아-!”
검은 연기에 둘러싸인 스켈레톤들이 사방에서 용병 무리들을 향해 달려갔다.
“자, 잠깐만?!”
달린다.
그 사실에 용병들의 충격은 배가 되었다.
느릿하게 걷다가 천천히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 스켈레톤.
수천 명 이상의 물량전이 아닌 이상에야, 그리 위협적인 언데드가 아니라는 것이 상식이었다.
“재장전 중지! 석궁 버려! 백병전이다!”
“미친, 스켈레톤이 왜 달려오는 거야?!”
자신들이 알고 있던 상식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상황.
석궁에 다음 쿼렐을 매기고 있던 용병들이 급하게 도끼를 뽑아들려 했다.
그렇지만 스켈레톤들은 그걸 기다리지 않은 채 곧바로 들어가 진형을 부숴버렸다.
투콰앙-!
그 뿐만이 아니었다.
휘두르는 도끼를 피하는 스켈레톤이 있는가 하면, 역으로 도끼를 빼앗아 머리에 찍어버리는 놈도 있었다.
“아악?!”
“젠장, 이건 스켈레톤이 아니야! 괴물들이다!”
“이 새끼, 내 움직임을 알고 일부러…? 크아악!
전술, 속도, 연계.
모든 방면에서 용병들을 완전히 압도한 스켈레톤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달튼이 말도 안 된다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한심한 것들, 그깟 스켈레톤도 막지 못하고 뭣들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전열에 끼어든 달튼이 스켈레톤 중 한 명에게 검을 휘둘렀다.
스걱-!
인성과는 별개로, 그 또한 경지에 다다른 기사.
올려친 검을 막아내지 못한 스켈레톤의 몸이 뭉텅이째 사라졌다.
“머리를 부숴라! 그러면 저놈들은 다신 일어나지 못…!”
거기까지 말하던 달튼이 순간,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촤악-!
방금 전까지 자신의 머리가 있던 곳으로 쇄도한 검.
방금 전 그가 상반신을 날려버린 스켈레톤이었다.
“뭣…?!”
검은 해골에 달라붙은 검은 연기가 스켈레톤의 몸을 복구시키고 있었다.
“시체로 만들어낸 것들은 어찌 대응하던 모양인데.”
그렇게 놀라는 달튼을 보며 클라인은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공교롭게도 이 놈들은 시체가 아닌 마력으로 만든 것들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스켈레톤 다섯이 달튼에게로 달려들었다.
***
“제기랄,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니! 이건…!”
이미 반수가 죽어 나자빠진 용병들과, 완전히 포위된 달튼.
그것을 보던 난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단순히 지능 없는 인형들을 다뤘다면, 대륙이 날 죽이려고 그 난리를 피지도 않았겠지.”
다시 내 앞에 나타난 병사들을 보며 내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이것이 나, 아키몬드가 대륙을 휩쓸었던 가장 큰 이유.
시간이 지나면 썩어 문드러지는 시체가 아닌, 마력으로 이루어진 영체가 수백만.
그리고 그 셀 수 없는 언데드들 전부가 지성 없는 좀비 떼가 아닌, 병진과 전술을 구사하는 진짜 군대였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
대부분의 용병이 시체로 변했을 무렵.
온 마력을 폭발시킨 달튼이 내게로 돌진해왔다.
“호오?”
“아무리 강력한 언데드를 소환한다고 해도, 시전자를 죽여 버리면 끝이지!”
곳곳에 상처가 가득한 달튼의 손에는 서슬 퍼런 검이 들려있었다.
‘하하, 이것 참.’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장면이 겹쳐보였다.
마치 그때와 같지 않은가.
내게로 달려들던 베르켈.
그리고 그 검에 심장을 꿰뚫린 나, 아키몬드.
“이 거리는 검사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달랐다.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죽었던 이전과는 달리, 이젠 보인다.
검로, 방향, 마력의 농도.
저 녀석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이.
스걱-!
검을 뽑아, 몸이 가는 대로 휘둘렀다.
내가 휘두른 검이, 달튼의 양 손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어?”
허공에 둥실 떠오른 자신의 두 손을 본 달튼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네크로맨서가, 검을…?”
위로 올려쳤으나, 내 검은 이미 검집에 들어가 있었다.
달튼의 눈으로는 확인조차 하지 못한 속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달튼의 가슴팍에, 2격을 토해냈다.
피잉-!
발도와 함께 이뤄진 라인란트의 비기, 유성검.
안에 받쳐 입은 체인메일을 종이처럼 잘라낸 검은 그대로 그의 가슴을 사선으로 길게 그었다.
털썩.
힘을 잃은 채 허물어진 달튼.
그리고 용병들의 시체를 보았다.
“술자를 죽이면 네크로맨서의 모든 창조물은 힘을 잃는다. 아키몬드는 그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했지.”
할 일을 끝마친 채 내 명령을 기다리는 언데드들을 보았다.
시체가 아닌 마력으로 만들어낸 병사들.
이것은 과거의 나, 아키몬드의 힘이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내 손에 쥔 검을 보았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그자의 기술을 완벽히 익히는 압도적인 재능.
이것은 현재의 나, 클라인 라인란트의 힘이다.
“그 약점을 극복시킨 게 하필이면 네 혈통이라니. 얄궂지 않은가, 베르켈.”
씁쓸하게 웃으며 검을 집어넣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환생과 두 번째 인생.
그저 평온하게 살고 싶었지만, 내 원수의 혈통은 결국 날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 몸으로 다시 태어난 이상, 남 일로 치부할 수도 없겠지.”
가슴팍에 새겨진 인장을 움켜쥐며 웃었다.
이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뇌하던 것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 망한 놈의 집구석, 내가 뜯어고쳐 주마!”
***
“그럼 이 이야기는 어떤가요. 아린 양? 전에 도련님이 수도원에서….”
“아하하하! 진짜 그랬어요?”
클라인의 마차 안.
멀미에서 깨어나자마자 잔뜩 흥이 오른 아린은 개리슨 신부가 하는 이야기에 푹 빠져있었다.
“듄켈 기사님도 들어보세요! 도련님이 어렸을 때 어쨌냐면요!”
“나중에 듣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클라인의 어릴 적 얘기에 열중하고 있을 때, 듄켈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왜 지금까지 안 오는 거지?”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어떡하지?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왜 이렇게 늦는 거야…!”
클라인과 달튼이 사라진 지 세 시간.
사냥을 모두 마치고 돌아온 귀족들은 불안한 듯 숲속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역시, 다른 꿍꿍이가 있었군.’
주최자인 달튼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
듄켈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말지기에게 다가가 말했다.
“달튼 님과 도련님을 찾아보겠다. 말을….”
“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듄켈 경!”
귀족 중 한 사람이 애써 그를 말리려 했지만, 그는 하인켈 휘하 붉은 수레 기사단의 단장.
“뭡니까.”
“그, 그게…. 경은 아직 내빈분들의 경호 임무가….”
지긋이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 흠칫한 귀족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다른 기사들도 복귀한 바, 이 이상의 경호는 필요 없다 판단했습니다.”
“그, 그렇지만 말일세!”
“그리고 전 클라인 공자님의 호위기사. 이 이상 도련님을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단장급 기사의 서슬 퍼런 눈초리에 다른 이들 역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말을 건네받은 듄켈은 굳은 얼굴로 클라인의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기사님 무슨 일이에요?”
마차 한구석에서 클라인이 준 쿠키를 갉아먹던 아린이 물었다.
“도련님이 예정보다 늦어지는 것 같아, 찾으러 갈 생각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신부님 아까 나가셨는데요?”
아린의 말에 멈칫한 듄켈이 마차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아니, 말도 안하시고 어디에…?”
“되게 심각한 얼굴이셨어요!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면서!”
아린의 그 말에 듄켈은 떠나기 전 클라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 인간이 굳이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를 몰라.’
“…설마, 교단에서 아직도 도련님을?!”
최악의 사태를 가정한 듄켈이 급히 몸을 돌려 말에 올라탔다.
“다녀오세요~!”
아린의 천진난만한 배웅을 뒤로 한 채, 듄켈은 말을 달렸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반으로 찢겨나간 스크롤이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