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3화 (3/209)

003. 이 망할 놈의 집구석.

“푸하아-!”

이른 아침.

라인란트 공작가의 둘째 공자, 클라인 라인란트의 하루는 상쾌한 물고문으로 시작된다.

“진짜 이 미친 신부새끼-!”

“오오, 이제 1분 동안 잠수하실 수 있으시군요!”

“도련님 물고기 같아요~!”

은색 머리를 흠뻑 적신 성수를 털어내는 사이, 아린과 개리슨 신부가 날 보며 박수치고 있었다.

“오늘은 왜 또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난 건데?”

“하하하, 공자님 방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지 뭡니까? 그래서 과민반응을 좀 했지요.”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가만히 있는 날 조져? 이게 진짜…!”

똑똑.

그렇게 나와 개리슨 신부가 푸닥거리를 하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고 외치자, 정갈하게 차려입은 하녀가 내게 정중히 인사했다.

‘얼굴과 복식을 보니, 우리 집안사람은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하녀가 꺼낸 편지에 박힌 것은 외가 중 하나인 콘웰 백작가의 인장.

어제 델라인과 대련했던 기사, 달튼의 가문이었다.

“달튼 도련님께서 초대장을 보내셨습니다.”

“달튼이?”

“예. 연무장에서의 일을 사과하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한 하녀가 아린에게 그것을 건넸다.

이윽고 그녀가 문을 닫고 물러가자, 아린은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내게 편지를 건넸다.

“뭐라고 써있어?”

“못 읽어요!”

“글자 공부하고 있잖아.”

“재미없어요!”

“그래. 자랑이다 자랑이야.”

그러고 보니 얘 고향에서 온 편지도 내가 읽어주고 있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편지를 뜯어 내용을 읽어보았다.

“…이게 뭐야?”

그리고 그것을 다 읽었을 때, 내 표정을 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뭐라고 써있어요?”

입에 쿠키를 문 아린이 그렇게 묻자 난 그녀에게 내용을 설명해줬다.

“하냥애회?(사냥대회?)”

“어. 백작가에서 여는 건데, 나도 오라네.”

쿠키를 문 채 말하는 아린에게 대답해줬다.

그 철부지가 이제 와서 사과라니.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요?”

“그렇겠지. 딱 봐도 이건 달튼 그 새끼가 아니라 백작 선에서 보낸 편지니까.”

사냥대회에 참석하는 귀족들의 면면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듄켈이 내게 묻자 난 편지를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가면 지랄, 안가면 더 지랄일 테니, 가는 게 낫겠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난 방 한구석에 세워둔 목검을 보았다.

“믿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잠시 생각하던 듄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차를 준비하죠.”

마차라는 말이 나오자 곧바로 아린이 손을 번쩍 들었다,

“마차! 저도요! 저도 가도 돼요?”

듄켈이 난처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아린 양, 야생동물이 나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 다른 귀족분들이….”

그렇게 더 말하려던 듄켈에게 개리슨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동행하면 어떨까요?”

그 말에 듄켈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대행자이신 신부님께서 가주신다면 안심이지만…. 다른 이유가 있으십니까?”

“하하하, 말하지 않았습니까.”

듄켈의 말에 답하면서도, 신부의 시선은 듄켈이 아닌 날 향해있었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고요.”

***

다그닥- 다그닥-

나와 일행을 태운 마차가 말발굽 소리와 함께 숲속을 달렸다.

사정없이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아린은 이미 기절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니까 오지 말래도….”

아린에게 배게 하나를 더 던져준 뒤 지나가는 풍경을 보았다.

“어지간히도 많이 바뀌었네.”

한때 설원이었던 이곳은 라인란트 서부 삼림.

전쟁과 역병이 만들어낸 시체로 가득했던 빙판은 200년의 세월을 머금어 푸르른 초목으로 변해있었다.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문밖에서 들리는 듄켈의 목소리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타고 온 마차의 세 배는 되는 것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좋은 말들이군요. 제국의 군마 못지않습니다.”

“마차 좀 봐요! 동화 속 공주님들 같아!”

개리슨 신부와 아린의 감탄에 힘 빠진 소리를 냈다.

애들 파티에 이렇게까지 돈을 처바르다니.

새삼 방계가 뜯어간 공작가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 저기 왔군.”

“저 녀석인가요?”

“얼굴은 볼만하네. 다 크면 시종으로 써볼까?”

“하하하하하!”

멸시가 가득 담긴 회화를 쫓아가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달튼 콘웰.

화려한 사냥복에 흰색 말을 탄 모습이 무슨 동화 속 왕자님이었다.

하긴, 생긴 건 제법 반반하게 생겼으니까.

“어이, 클라인! 어서 이쪽으로 와! 지금 바로 나갈 생각이거든!”

저 새끼는 언제 봤다고 이름을 부르며 친한 척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달튼은 말에 박차를 가했다.

숲속을 향해 튀어나간 그를 따라, 다른 이들도 말을 몰았다.

“끝까지 따라와라 클라인!”

날 향해 그렇게 외친 달튼이 앞서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하, 이것 봐라?”

이미 다른 귀족자제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상황.

그 의도가 너무나도 뻔했다.

“듄켈 경께서는 다른 내빈들을 부탁드립니다.”

달튼이 나간 것을 확인한 다른 귀족이 듄켈에게 말했다.

내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공손한 어투였다.

“전 클라인 공자님의 호위기사입니다. 섣불리 자리를 뜰 수는….”

“괜찮아 듄켈.”

듄켈을 만류하며 그에게 뭔가를 건넸다.

신호 마법이 새겨진 스크롤이었다.

“이건 또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훔쳤지. 아버지 서재에서.”

그 말에 잠시 눈빛이 아득해진 듄켈이었지만, 난 아랑곳 않고 말했다.

“저 신부 놈이 사라졌다 싶으면 이거 찢어. 그거만 해 주면 돼.”

“개리슨 신부님을요? 갑자기 왜….”

“저 인간이 굳이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를 몰라.”

그렇게 말하는 내 눈빛을 보더니, 듄켈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도련님.”

듄켈의 대답을 들은 난 먼저 간 달튼을 따라 숲속으로 말을 몰았다.

그렇게 말을 몰아 그가 기다리는 곳에 다다랐을 때.

“허, 이것 봐라?”

날 마주 보고 선 그의 손에는, 전투용 검이 들려있었다.

“뭐 하자는 거야?”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렇게 물었다.

“예전부터 이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그래. 네놈을 죽여 버릴 날을.”

결국 선을 넘는구나.

무거운 한숨과 함께 그가 날 끌고 온 숲을 둘러보았다.

“공개된 장소에서 내가 죽으면 그만큼 빨리 알려질 텐데?”

그렇게 말하자 달튼은 기고만장한 채 주절주절 입을 열었다.

“빨리 알려질수록 좋지! 네놈은 본가에게 보내는 경고가 될 거거든!”

“경고?”

내가 되묻자, 달튼이 날 검으로 겨눴다.

“네 목을 잘라 하인켈의 눈앞에 갖다놓은 뒤 말해줄 거다.

“…….”

“공작위를 내놓지 않으면, 다음은 너희들이 될 것이라고!”

그 말을 들은 난 천천히 말에서 내려왔다.

“마지막 발악을 할 기회를 주마. 검을 뽑아라! 내 손으로 직접 죽여줄 테니!”

그렇게 말하며 달튼은 내게 검 한 자루를 던졌다.

날카롭게 선 날이 땅에 박힌 채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신부 놈이 있는 이상, 어떻게든 충돌 없이 끝내려 했더니….’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화가 난 이유는 달리 없었다.

이 망할 놈의 집구석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하찮고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이딴 걸 만들어내기 위해 날 죽였다니.

그 베르켈의 가문이, 이렇게 추잡한 시정잡배로 전락하다니.

“허, 꼴에 자존심은 있다 이건가?”

내가 검을 뽑자, 달튼이 재밌다는 듯 이죽거렸다.

“자, 마음껏 휘둘러봐라! 내 특별히 가지고 놀다 죽여주…!”

“천둥벌거숭이가, 좋게좋게 봐주니 한도 끝도 없이 기어오르는구나.”

오랜만에 원래 말투가 튀어나왔다.

애물단지 둘째 공자가 아닌, 네크로맨서 아키몬드의 음성이었다.

“뭐, 뭐야?”

낮선 음성이 들려오자 달튼 역시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 하! 뭔가 숨겨둔 게 있나 본데, 다 헛수고야!”

그렇게 말한 달튼이 손을 들자, 숲 곳곳에서 석궁을 든 용병들이 튀어나왔다.

“내가 이 용병들에게 명령만 하면…!”

“그렇다면 어디 해 보거라.”

달튼의 말을 끊으며 손을 뻗었다.

마력의 근원인 단전이 아닌,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

그것을 느끼자 내 입에 걸린 웃음이 짙어졌다.

아, 이 그리운 감각.

도대체 몇 년 만에 다루는 사령술인지.

“하! 마법이라도 쓰겠다는 거냐?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주제에…!”

“마법이 아니다.”

태연을 가장한 채 나불대는 달튼의 말을 끊었다.

신성교단에 의해 관리되어, 마력을 쓸 수 없게 된 이 몸.

그렇지만 교단은 사령술사의 근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력에 오염되지 않은 이 깨끗한 몸이야말로, 네크로맨서가 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었으니까!

우우우우우…!

스산한 음성과 함께 숲이 요동쳤다.

마력이 들끓는 소리.

이 숲에 묶여있는 영혼들이 가진 마력이었다.

“뭐, 뭐야?”

“어디서 이런 소리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 용병들이 이곳저곳을 살폈다.

“뭐, 뭐야. 이 자식, 무슨 짓을…!”

“하운팅. 이른바 원혼들의 곡소리다. 사령술의 근원인 마기(魔氣)에 반응한 거겠지.”

“사령술의…. 근원?”

내 말을 들은 달튼이 뭔가 생각하더니 아연실색하며 뒷걸음질 쳤다.

“아, 아니야! 설마!”

라인란트의 둘째 공자에 대한 소문, 그리고 사령술.

그것을 떠올린 달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아, 아키몬드…!?”

그러는 사이, 이미 내 마기는 숲 곳곳에 뿌려진 상태였다.

‘이 몸으로는 서른 명 정도가 한계로군.’

내 마기에 응답한 혼령들의 수를 세며 그렇게 생각했다.

환생한 몸으로는 처음 써보는 사령술.

이전과는 달리 혼도 정제되지 않았고, 흩뿌린 마기의 양도 모자라다.

그렇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사령술이란 마기를 통해, 계약한 영혼의 마력을 다루는 것.

영혼을 불러낸 이후라면, 그들의 몸을 형성할 마력은 저절로 생겨나기 마련이다.

영혼 서른 명 분량의 마력이라면, 저것들을 요리하기엔 부족함이 없겠지!

“재물에 고용되었다면, 재물 때문에 죽을 각오를 한 바. 날 원망하지 말거라.”

이 말은 그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가 고용한 용병 나부랭이들에게 말한 전언이었다.

[세월 속에 파묻힌 묵은 망령에게 고한다.]

흩뿌려진 마기가 내 설계에 맞춰 소환문을 형성했다.

하나, 둘. 서른 개까지 늘어난 소환문이 교교히 빛나며 내 명령을 기다렸다.

[너희를 끌어올려, 광명 속에 임하게 할지니.]

“이런 미친, 저거 진짜 사령술이잖아! 당장…!”

술자 자신에게서가 아닌, 소환문에서 뿜어지는 마력.

저것이 마법이 아닌 사령술이라는 것을 알아챈 용병이 다급히 석궁을 겨눴다.

“이미 늦었다.”

우득!

“끄으윽?!”

석궁을 쏘려던 용병들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이미 땅에서 기어올라온 해골이 그의 발목을 붙잡아 꺾어버리고 있었다.

[아키몬드가 명한다! 그 원혼이 다할 때까지, 먹고, 먹고, 또 먹어치워라!]

그 말과 함께 손에 고인 마기를 온 사방에 흩뿌렸다.

꾸득! 꾸드득!

이윽고 땅에서 솟아나는 서른 구의 검은 해골.

망령과 원혼으로 빚어낸 병사, 스켈레톤이었다.

- 끼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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