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클라인 라인란트.
“아아, 주신 델시온이시여, 이 어린 영혼을 악의 손에서 구원하소서! 타락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빠직.
곰 척추를 통째로 접어버릴 것처럼 생겨먹은 신부가 두 손을 떨며 내게 외쳤다.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천사 모빌.
그것을 볼 때마다 내 머리도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안 씌웠어, 안 씌웠어! 아키몬드고 지랄이고 안 씌웠-!”
참다못해 폭발한 내가 온 힘을 다해 외치는 순간.
“다시 넣으세요.”
개리슨 신부의 말과 함께 난 다시 물통, 아니, 성수통에 처박혔다.
“부그르르르…!”
그렇게 10초간 성수 속에서 거품을 낸 뒤.
“푸하아! 정화, 정화됐어! 정화됐다고! 그러니까 그만 좀…!”
오늘도 이 아키몬드, 아니, 클라인 라인란트는 저 사악한 신부의 압제에 굴복하고 말았다.
“오늘은 성수가 잘 듣나 봐요. 신부님!”
“아린 양의 기도 덕분입니다. 자, 마지막으로 기도드리죠.”
“네 신부님!”
내가 물고문을 넘어선 성수 고문에 지쳐 탈진했을 때.
하녀 아린이 내 머리에 흰색 고깔을 씌운 뒤 내 앞에 꿇어앉았다.
“우리 도련님이 정의로운 영웅의 후예로서 살기를, 성자와 성령과 성스러운 교단의….”
“아오 진짜!”
머리 위에 씌여진 흰 고깔을 집어 던졌다.
“아앗, 손수 만든 모빌과 고깔이…!”
아린의 말에 뜨끔했다.
땅에 떨어진 모빌에는 천사와 토끼가 새겨져 있었는데, 한 땀 한 땀 정성껏 뜨개질 된 귀여운 모양이었다.
“아, 그, 아린. 미안….”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아린을 보니 좀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감정적이었어. 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성 들여 뜨개질 했을 텐데….’
“개리슨 신부님이 손수 만든 건데.”
아니, 방금 그 말 취소.
이걸 누가 만들었다고?
고개를 홱 돌려 개리슨 신부를 보았다.
우락부락한 근육덩이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너무하십니다. 공자님. 일주일 동안 정성껏 만든 자수인데….”
“하, 하하…!”
정성껏 뜨개질하는 키 2.5미터의 거인이라.
미치겠다.
상상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내 죄책감 돌려내 이 미친 신부 놈아-!”
“오오, 이 감정적인 반응! 역시 아키몬드의 사념이…!”
“아아아아악-!”
이젠 하루 일과나 다름없어진 개리슨 신부의 정화 의식.
웃는 낯으로 그 광경을 보던 기사, 듄켈이 개리슨 신부를 다독였다.
“벌써 12년 전 일입니다 신부님. 교단에서도 이상이 없다고….”
“하하하, 알고 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하는 것이지요.”
인자하게 웃는 개리슨 신부를 보니 열이 뻗쳤다.
만약? 그 만약을 위해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람을 물고문 해?
저 새끼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곧 수업이 있어서요.”
“오오, 그랬군요.”
듄켈이 그렇게 말하자 개리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아, 듄켈 단장님. 저번에 요청드린 자료는….”
“공작님께서 허가하셨습니다. 곧 사람이 갈 겁니다.”
그 말에 개리슨 신부는 반색을 하며 떠날 채비를 했다.
내가 말할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기사단장급이 말하면 무시하기 힘들다 이거지?
…새끼, 사회생활 잘하네.
“다음 정화의식은 금요일입니다 공자님! 아시죠! 악한 기운을 정화해야…!”
“빨리 꺼져-!”
저 망할 놈의 신부는 떠나는 와중에도 주둥아리를 멈추지 않았다.
복도에 얼굴을 내밀어 시원하게 외친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
“도련님 근데 진짜 이제 아키몬드 아니에요?”
얼굴의 반쪽만한 안경을 쓴 하녀, 아린이 내게 와서 물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원래 아니었어. 이젠 그 이름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난다.”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일부는 진심이었다.
다시 살아난 게 기뻐서 우렁차게 외쳐봤더니, 하필 거기가 베르켈의 가문일 게 뭐냐.
그 덕분에 열 살이 되는 해까지 난 수도원에 갇혀 살아야 했다.
“7년 동안 교단에 잡혀 살다가 겨우 공작가로 돌아왔나 싶더니, 이젠 저 신부 놈이….”
“저래 뵈도 성당교회의 대행자입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듄켈의 말에 지끈거리는 머리가 더 아파왔다.
다시 태어난 뒤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신성교단에게 감시당하는 꼴이었으니.
당장 마력을 회복해도 모자랄 판에, 아무 것도 못한 채 열 다섯 살 까지 꼼짝 없이 묶여있어야 했다.
“대행자가 뭐에요? 높은 사람이에요?”
아린의 질문에 듄켈이 답했다.
“교단의 최강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공작 전하가 아니면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분이세요.”
듄켈의 설명을 들으며 머리칼을 적신 성수를 수건으로 닦아냈다.
쓸데없이 때깔 좋은 은발이 찰랑거렸다.
“와아, 그럼 공작전하는 얼마나 강해요?”
“라인란트 공작 전하께서는 언제나 대륙 최강의 기사입니다.”
“그러면요! 그러면요!”
아린은 어느새 내 정체가 아닌 듄켈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그래, 내 전생이 뭐였느니 떠드는 것보단 낫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내심 안심하고 있던 그때.
“베르켈 전하랑 하인켈 전하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아린이 천진한 질문이 듄켈에게 향했다.
초대 공작, 베르켈 라인란트.
현 7대 공작, 하인켈 라인란트.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듄켈이 잠깐 멈칫했다.
“하하, 으음~ 글쎄요.”
라인란트의 기사인 듄켈에게는 꽤 난처한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생각을 마친 듯 아린을 보며 말했다.
“베르켈 전하의 업적은 눈부시지만, 지난 200년 간 라인란트의 검술도 크게 발전을 이뤘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에는 하인켈 전하께서….”
“아니.”
단호한 내 목소리가 듄켈의 설명을 도중에 끊었다.
“베르켈이 가장 강해.”
심각한 표정을 한 내가 그렇게 말하자 듄켈이 말을 멈췄다.
“도련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이십니다. 이제….”
“베르켈이, 가장, 강해.”
다시 힘주어 말하자 듄켈은 작게 한숨을 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말한 이상, 더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 것이다.
“도련님은 진짜 베르켈 전하 좋아하네요. 영웅이라서 그래요?”
아린은 그렇게 말하며 내 테이블에 놓인 쿠키를 깨작거렸다.
“응. 영웅이라서.”
그녀의 물음에 답한 내 시선은 방 한가운데에 있는 초상화를 향해있었다.
베르켈 라인란트.
나 아키몬드를 쓰러트리고, 대륙에 평화를 가져온 영웅.
그렇지만 그 가문은 이제….
똑똑.
노크소리가 날 상념에서 깨웠다.
시선을 돌리자,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집사장인 버크만이었다.
“클라인 도련님.”
그의 등장에 방금 전까지 소파에 앉아있던 아린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흠!”
그러나 한 발 늦은 것일까, 아니면 앞치마에 묻은 부스러기가 들킨 걸까.
눈을 부릅뜬 버크만이 아린을 흘겨보자, 그녀의 얼굴에 식은땀이 돋아났다.
“아린. 또 도련님을….”
“아아아, 잠깐 잠깐!”
아린에게 뭔가 잔소리하려는 버크만의 말을 도중에 가로막았다.
“오늘은 무슨 수업이야? 역사? 언어? 빨리 말해봐. 나 되게 공부하고 싶어.”
내가 그렇게 아린을 감싸자 버크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 쉬었다.
“오늘 수업은 없습니다. 대신, 검술 시연회에 참석하시라는 공작님의 명입니다.”
“시연회? 나를?”
내 되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버크만을 표정을 살폈다.
떨떠름한 그의 표정,
그것을 본 내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쳐지나갔다.
“방계 쪽에서 또 찾아온 거야?”
얼굴을 찌푸린 채 그렇게 말하자, 집사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슨 뜻인지 잘 알았다.
이 망할 놈의 집구석 같으니라고.
***
카앙-!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이 하늘을 날았다.
“유성검!? 말도 안돼!”
대련상대인 달튼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와 마력광 때문에 붙은 이름, 유성검.
하인켈 라인란트가 정립한 라인란트 검술의 비기였다.
“대련 종료!”
감독관의 목소리가 연무장을 울렸다.
달튼의 검을 쳐낸 이는 내 배다른 형, 델라인 라인란트.
라인란트 공작가문이 자랑하는 천재 유망주였다.
“훌륭하다. 델라인.”
흡족한 하인켈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시자인 하인켈조차 삼십 대 중반이 되서야 완성한 기술.
그것을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델라인이 해낸 것이다.
“저 마력량과 정밀도…. 또래의 기사들은 시도조차 못할 테지요. 압도적인 재능입니다.”
“그래. 그러네.”
연무장 밖에서 그 기술을 본 난 생각에 잠겼다.
‘두 스텝 앞으로 내밀고, 검로는 조금 더 옆으로. 그리고 마력 배열은….’
환생한 몸으로는 처음 본 기사들의 대련.
오랜만에 보는 싸움에 몰두해서인지, 머릿속에선 저들의 대련과 기술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재생? 아니, 이건 그게 아니라, 오히려….
“클라인!”
“어, 어?”
밝은 목소리가 날 상념에서 깨웠다.
대련을 마친 델라인이 내게 다가와 있었다.
연무장은 이미 하인켈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랜만에 얼굴 봐서 인사나 하려고 했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 아무것도.”
그렇게 델라인의 질문을 얼버무리는 사이, 시연회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달튼을 저렇게 요리할 정도라니, 미치겠군.”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 기술을 내보이다니….”
“공작가는 아직 건재하다는 시위겠지. 쉽지 않겠어.”
못마땅한 눈으로 델라인을 바라보는 것은 라인란트 가문의 방계들이었다.
“그래서, 저것들은 왜 온 거야?”
내 물음에 델라인이 대답했다.
“영지 서부에 있는 광산 문제야.”
“제국에 위탁하라는 거? 반 년 전에 거절했잖아?”
“제국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대 아마 이번 회의에서….”
델라인의 설명을 들으며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친척들을 보았다.
호화스러운 옷을 입은 이들 중에는 제국의 관료들 또한 섞여있었다.
‘내게 맞서 끝까지 싸우던 북부 영주들이, 이제는 제국의 개가 되었군.’
제국 관료에게 굽신대는 저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북부의 독립을 눈엣가시로 여겨오던 제국이 사사건건 간섭해오던 것이 20년 전.
저들 덕분에 라인란트 공작가는 절반이 넘는 영지를 방계에 빼앗긴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작위와 권한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초대 공작, 베르켈의 유언 때문이었다.
“델라인.”
하인켈의 목소리에 델라인이 앞으로 나왔다.
졸지에 함께 끌려나온 난 덤이었다.
“‘라인란트 공작은 언제나 제국 최고의 기사여야 한다.’ 초대 공작이신 베르켈 님의 유언이지.”
하인켈의 말에 델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계들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겠지. 공작위를 넘보려면, 델라인을 꺾어보라고.’
내 생각이 맞는지, 하인켈을 바라보던 방계 친척들이 곳곳에서 혀를 찼다.
“항상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정진하거라. 기대가 크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래. 그리고….”
델라인을 보며 그렇게 말하던 공작이 내 얼굴을 보았다.
“클라인.”
델라인을 대할 때와는 달리, 깊은 탄식이 묻어난 목소리가 날 불렀다.
‘드디어 내 차례군.’
그렇게 생각하며 하인켈 앞으로 걸어갔다.
내 존재를 이제야 알아챈 듯, 몇몇 친척들이 황급히 하던 말을 멈췄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구나.”
“죄송합니다. 아버지.”
내게 묻는 하인켈의 어투는 체념에 가까웠다.
난 세 살부터 신성교단에 맡겨져, 그곳에서 4년을 자랐다.
그 기간.
3세에서 7세까지의 기간은 검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제가 직접 시도해봤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가.”
듄켈의 보충설명에 하인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랫배에 담긴 마력을 몸 곳곳의 혈도에 주입하여 막힌 부분을 뚫어내는 과정, 사이클.
영유아 시절에 이를 완료하는 것이 기사를 키우는 전제조건이었다.
“……아니, 되었다. 검 말고도 길은 많으니까.”
마력을 쓸 수 없는 검사는 기사가 될 수 없다.
된다 해도, 첫 전투에서 몬스터의 밥이 될 뿐.
그렇기에 하인켈은 내게 그렇게 말한 것이다.
“다른 길을 찾아 정진하면 될 뿐이다. 열심히 하거라.”
“감사합니다.”
검술에 관해선 누구보다 깐깐한 하인켈이었지만, 내게는 별 말이 없었다.
화를 내고 다그치는 것도 가능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
이미 가능성이 사라진 이상, 난 아무 가치 없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하, 라인란트 공자라는 놈이 저리 한심해서야.”
공작과 후계자인 델라인이 친척들과 함께 회의장으로 향한 뒤.
뒤를 돌아보자 방금까지 델라인과 대결하던 기사, 달튼이 있었다.
“첫째한테 깨지고 둘째한테 화풀이야? 보는 내가 쪽팔리네.”
그에 질세라 쏘아붙이자, 달튼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입이 험한 건 여전하구나.”
그렇게 달튼의 얼굴에는 짙은 비웃음이 담겨있었다.
“천한 이민족 출신인 네 어미와 판박이야.”
그 말에 순간, 내 얼굴이 굳었다.
얼굴도 모르는 내 어머니 때문이 아니었다.
틀에 박힌 경멸, 선민의식, 그리고 권위의식.
날 죽인 영웅, 베르켈의 가문이 이따위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솟구쳤다.
“검술도, 마력도 없는 버러지가 공자랍시고 뻗대는 꼴이라니! 가문의 수치가…!”
“무도회 뒤에서 멋모르는 시골 영애들 후리고 다니는 건 가문의 자랑이시고?”
예고 없이 튀어나온 추문에 달튼이 흠칫했다.
“너, 그걸 어떻게…?”
“상대측에 뇌물을 먹이면 뒤에서 아무 말도 안 할 줄 알았어?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하자 단번에 달튼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 네 까짓 게 그따위 트집을 잡아봐야…!”
“트집 잡을 생각 없으니까 제발 안 들키게 좀 하지? 방계 새끼가 동네 쪽팔리게.”
여기까지 말하자 달튼의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무, 뭐라?!”
“집안 이름에 먹칠 좀 하지 말라고. 너 같은 놈이랑 같은 취급 받기 싫으니까.”
멸시에는 멸시로.
내 대응에 울그락 푸르락 하는 달튼의 얼굴을 보니 답답한 속이 좀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 개자식이!!”
그렇지만 자존심에 상처가 난 탓인지, 마력을 끌어올린 그가 목검을 쥔 채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 잘됐다. 이번 기회에 그 버르장머리를…!”
“거기까지 하시지요. 달튼 님.”
새하얀 검날이 나와 달튼 사이를 가로막았다.
내 호위기사 듄켈이었다.
“이 이상의 무례는 좌시할 수 없습니다.”
“……칫!”
달튼의 검술은 뛰어난 편이었지만 그래봤자 또래 중 중상 정도.
단장급 기사인 듄켈은커녕, 동갑내기인 델라인조차 이길 수 없다.
마주친 것만으로도 힘의 차이를 느낀 것인지, 천천히 마력을 거둔 그는 땅바닥에 목검을 내던졌다.
“호위기사 덕에 산 줄 알아라. 겁쟁이 녀석!”
거칠게 쏘아붙인 듄켈은 씩씩대면서 자리를 떴다.
“도련님. 귀담아듣지 마십시오.”
“신경 안 써. 그것보다….”
씩씩대는 달튼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렇게 말한 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별 건 아닌데.”
듄켈의 말에 그렇게 답한 난 잠시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듄켈, 혹시 검 남는 거 있어?”
***
늦은 밤.
아무도 없이 텅 빈 연무장.
어둠 속에서 몰래 그를 호위하던 듄켈은 주인의 뒤를 쫓아 이 연무장에 왔다.
“이 시간에 연무장에 나오시다니.”
듄켈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클라인은 창고 문을 열어 그곳에서 무언가를 끌고 왔다.
“읏, 차아….”
사람 키 만한 크기의 푸른, 그리고 수정처럼 투명한 돌덩이.
북부 지방에서만 나는 특산품, 청옥이었다.
수련을 시작할 때부터 서임을 받는 날까지 계속해서 내리쳐 깨는 게 라인란트 기사단의 전통.
델라인은 일곱 살에 이것을 반으로 가른 반면, 클라인의 것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했다.
“델라인이 여기서 자세를 잡고, 이렇게 휘둘렀나?”
이윽고 클라인은 청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시간이 느리게 가듯 느린 속도.
그렇지만 그 동작을 알아챈 듄켈이 얼굴을 찡그렸다.
‘유성검이로군.’
낮에 시연한 델라인의 기술.
그것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클라인의 모습에 듄켈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역시, 아직 검에 미련이 남으신 건가.’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클라인은 천천히 검로를 따라하고 있었다.
피기도 전에 져버린 재능.
오래전에 닫혀버린 가능성.
뒤늦게 검을 휘두르는 클라인의 모습에 듄켈의 마음이 울적해졌다.
‘너무 늦었다. 설사 검로를 재현한다 해도, 저 마력량으로는….’
후웅-!
그렇지만 그다음 순간, 클라인을 보던 듄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방금, 뭐였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력광은 보이지 않았지만, 방금 클라인이 검을 휘둘렀을 때.
‘안보였다고? 클라인 도련님의 검이?’
단장급 기사인 자신이 순간, 검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마력도 없이 그 속도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어. 하물며 클라인 공자님은…!’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놀란 듄켈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짧은 한마디와 함께 클라인이 든 목검이 사라졌다.
피잉-!
“…어?”
비유나 묘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잘못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클라인이 검을 휘두르는 그 짧은 순간.
듄켈은 클라인의 검을 볼 수 없었다.
카가가가각-!
검격에 맞은 청옥이 비명을 질렀다.
마치 톱으로 긁어내는 것 같은 소리.
부수는 것이 아닌, 베는 소리였다.
끼이이이…!
사선으로 베인 바위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
그 광경을 본 듄켈은 경악했다.
라인란트 공작의 비기, 유성검.
세기의 천재라고 칭송받던 델라인조차 수년이 걸려 완성한 기술.
그렇지만 클라인은.
재능이 없다고 여겨져 버림받은 공자가.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그 비기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것이다.
쿵.
떨어져 나간 청옥의 윗부분이 땅에 떨어졌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듄켈은 할 말을 잊은 채 클라인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도련…. 님?”
진검도 아닌 목검으로 라인란트 공작의 비기를 재현한 클라인.
그는 자신의 결과물을 보며 허탈하게 말했다.
“뭐야, 진짜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