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4. 사슬을 끊고 (최종화) (204/204)

#204. 사슬을 끊고 (최종화)

도로를 벗어난 경찰차들의 사이렌 소리가 일대를 울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조이듯 포위망을 구축한 채 몰려들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면 벗어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한 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투다다다다다다.

밤하늘을 수놓으며 내려오고 있는 불빛들.

두 대의 헬리콥터.

그중 한 대는 무장까지 갖췄다.

뿐만 아니었다.

부우우우웅, 끼익! 끼익! 끼익!

장갑차량까지 동원되어 창고 앞뒤의 퇴로를 완벽히 차단했다.

다다다다다닷.

그리고 각종 차량에서 쏟아져나온 병력이 완전 무장한 채로 총구를 들이대는 상황.

시쳇말로, 날개가 있어도 빠져나가지 못할 지경이다.

결국 이명준을 필두로 한 일당은 체포되었다.

웃긴 건, 그 와중에 보인 이명준의 표정이었다.

자포자기한 건지 검거 과정에서 반항 한 번 하지 않은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피해자인 서진영을 지나칠 때 보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보인 것이다.

더구나 입가에는 묘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서진영으로선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이었지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서진영은 이명준이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차에 태워지기까지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와앙!”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와 서진영의 품에 안겨든 이하연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으응……. 흑! 흑……. 으아아아앙.”

고개를 내젓다가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는가 싶더니 또다시 오열하는 이하연을, 서진영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발소리가 들렸다.

강형식이 보인다.

그 뒤로 장동일 상무와 몇몇 얼굴이 보였지만, 서진영은 강형식만을 바라보며 물을 따름이었다.

“……왔냐?”

마르고 갈라진 음성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강형식은 서진영의 바로 앞까지 다다라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밤이라지만, 여름이 코앞인지라 덥지는 않을 텐데도…….

겨우 하룻밤 사이에 초췌하다 못해 볼이 움푹 패버린 서진영은 모포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걸 보며 선뜻 말문을 열지 못하던 강형식이 겨우 꺼내든 말이었다.

“고생했다.”

그럼에도 서진영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곤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일 따름이었다.

***

생일이 며칠 남지 않은 날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더 지나면…….

내가 삼한 그룹 총수의 집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날이었고.

시간 참 빨리 가는구나 싶다.

그때까지의 내 인생처럼, 구질구질한 노량진 지하 셋방을 빠져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다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일 년은 단순히 ‘일 년’이었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뭐해?”

문이 열리며 준석이 형이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묻고 있다.

“아뇨. 그냥.”

“또 뉴스 봐?”

벌써 며칠째이던가.

내가 납치됐다가 구조되었다는 뉴스가 대한민국을 흔든 지도 열흘.

그런데도 잠잠해질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연일 검색어 1위를 독차지하고 있었고, 기자들이 대서특필이라며 기사를 올리고, 한편으로는 말 같지도 않은 소설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내가 모 재벌의 스폰을 받는 중이고, 그런 가운데 범죄에 연루되어 납치까지 당했다나 뭐래나.

웃기지도 않지만, 그냥 무시 중이다.

그 탓에 SNS를 중심으로 각종 루머가 판치고 있지만, 그게 뭐 어때서?

마음껏 떠들어 대라지.

“재밌잖아요.”

씩 웃으며 대답하자, 준석이 형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

“……?”

“자식, 묘하게 여유 있어졌단 말이야.”

눈까지 좁히며 날 보던 형이 문뜩 떠올랐다는 듯 물어왔다.

“아! 그렇지! 수아?”

“예?”

“유수아 말이야, 유수아! 걔 어떻게 됐냐? 본선 진출했어?”

“방송으로 봐요.”

“아 진짜! 이럴 거야! 하아, 청이한테 물어봐도 모른다고만 하고……. 말해봐. 올라갔지? 그치?”

난 미소가 흘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히 한청도 모를 테지.

패자부활전은 극비리에 치러졌고, 그런 만큼 촬영 전에 출연진들, 그러니까 패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오디션 참가자들에게까지 비밀엄수 서약까지 받았으니까.

“그러지 말고…….”

그때, 주방 문이 열렸다.

한청인가?

……싶어서 바라보는데.

“간나새끼들! 여기가 물레방아네? 다 큰 사내놈들이 뒷구녕에 숨어서 뭣들 하네?”

고윤수 주방장님께서 호통을 치고 계시는데, 눈가에는 웃음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등 뒤로 보이는 김진호 셰프 또한 물끄러미 우릴 보고 있는데,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입가에 맴돈다.

웃긴 건, 문틈으로 보이는 안성댁 아주머니와 혜순이 누나 역시 우릴 보면서 키득거리고 있다는 거였다.

“오늘 저녁에 회식한다 하디 않았네? 날래날래 들어오라!”

“예!”

“예!”

목청껏 외치곤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한청이 슬그머니 다가와 묻는다.

“근데, 오빠. 수아 언니, 본선 진출한 거 맞죠?”

씨익.

웃고는 말했다.

“글쎄다. 얘기해 줄 수는 있는데, 그럼 나 잘리는데 괜찮아?”

눈이 한껏 커진 한청이 귀엽게 도리질한다.

***

두 남자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사실, 그들을 단순히 남자라고 부르기엔 조금 무리가 따르리라.

노인이다.

그것도 언제 어떻게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럼에도 대한민국 땅 안에서 누구 하나 그들을 우습게 볼 사람은 없다.

당연한 일이다.

한 명은 한국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재벌 총수고, 또 한 명은 요리계의 신화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사람이니까.

“예쁘게 봐주시는 거야 알디만서도, 이 늙은이래 마음이 편티 않습네다.”

회식을 끝내고 들린 길이었다.

정확히는 강 회장의 호출이 있었다.

그래서 급히 와보니, 뜻밖의 제안을 하는 게 아닌가.

“서진영이, 아딕 멀었습네다. 그러니 그 말씀…… 거두어 주시라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윤수 주방장의 청이다.

강 회장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까닭이 없다.

더구나 서진영의 일이 아닌가.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고윤수 주방장이 제자 대하듯 하고 있는.

“그러지.”

고개를 끄덕이는 강 회장. 그의 얼굴을 한차례 본 뒤 고윤수 주방장이 회장실을 떠났다.

그 후, 강 회장은 잠시 생각에 빠지는가 싶더니 중얼거렸다.

“이제 집안 정리만 하면 되는 건가?”

이대로 놔두면 필시 탈이 날 것이다.

그렇다고 싸움을 말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선은 긋고 싶었다.

그걸로 둘 모두를 링 위에 올릴 생각이다.

생각 끝에 강 회장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쳐 간다.

못내 기꺼웠기 때문이다.

크게 도와준 것도 없는데, 스스로 일구고 기어올라 끝내 같은 선상에 섰다.

아직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안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딪히게 되겠지.

그럼 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릴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제대로 판을 깔아주는 게 나을 터.

어찌 되었든, 두 녀석 모두 핏줄이니까.

강 회장은 전화를 들었다.

그러곤 지시했다.

“이사회 소집하게.”

***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많은 일이 있었고, 그런 만큼 시간도 빨리 지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납치를 당할 때 느껴야 했던 그 생소한 감정들은 금세 잊혔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더 이상 나레이션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건 좀 아쉽다.

아, 아깝다는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아쉽다는 말이다.

그동안 정이라도 든 걸까?

피식.

웃고는 넥타이를 매고 있을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수연이 누나가 들이닥쳤다.

그보다 먼저 잔소리가 날아들었고.

“어머! 너 뭐 하니? 지금 그걸 넥타이라고 매는 거야!”

얼른 달려들어 넥타이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다.

그러길 잠시.

내가 물었다.

“맬 줄 모르지?”

“…….”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수연이 누나를 보며 뭐라고 놀려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언니, 제가 할게요.”

언제 왔는지 이하연이 넥타이로 손을 뻗고 있었다.

“가끔 아빠 거 매봐서 대충 알아요.”

“그, 그럴래?”

이하연의 미소에 덩달아 웃어 보이며 수연이 누나가 물러나고 있을 때, 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수아가 키득거렸다.

내다보이는 거실 쪽에서는 외삼촌과 외숙모가 말쑥한 차림으로 우릴 기다리며 웃고 계셨고.

“늦겠다! 그럼 얼른 하고 나와!”

부끄러웠던 걸까.

수연이 누나가 크게 소리치며 수아의 목덜미를 끌고 방을 빠져나가려는 찰나였다.

핸드폰이 울린다.

확인해 보니 사모님이다.

번호가 집 전화인 걸 보니, 아우라지에서 거신 모양이다.

“예.”

- 우리 지금 출발하려는데 늦은 거 아니지? 그이가 여간 멋을 부려야 말이지.

- 어허! 여편네가 못 하는 말이 없어! 안 그래도 정신없을 텐데, 애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저씨의 음성도 들려온다.

속으로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천천히 오셔도 돼요. 아직 두 시간도 더 있어야 하니까.”

-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운전하신대요?”

- 말도 마! 이제 괜찮아졌다고 자기 한다잖니.

“진짜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 그리 걱정하지 말렴. 많이 좋아졌다고 병원에서도 그러고.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너무 집에만 있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요. 조심해서 오시고요. 이따가 뵐게요.”

전화를 끊자, 이하연이 물어온다.

“스승님이세요?”

어느 쪽을 묻는 건지 모르겠다.

기범이 아저씨도, 사모님도 스승님이라도 말하곤 하는 그녀였으니까.

“사모님.”

“출발하신대요?”

얼마 전 뵙고 나선, 말만 나와도 좋아하라 하는 두 사람이다.

전생에 모녀였나 싶을 정도.

그래서인지 사모님은 딸이 한 명 생겼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하긴, 아저씨도 은근히 이하연을 챙겨주는 게 속으론 여간 좋으신 모양이지만.

“어머! 시간 벌써! 이러다 진짜 늦겠어요!”

이하연이 서두르며 날 끌고 방을 나섰다.

***

한 차로 가기엔 무리라 결국 두 대에 나눠타고 가는 중이다.

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고, 내가 모는 차에는 이하연만 타고 있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이하연의 물음에 픽하고 웃었다.

“그냥요, 이것저것.”

이것저것…….

얼마 전 <맛있는 도전>은 성황리에 예선편이 모두 방영되었다.

최종 시청률은 역대급. 당연한 일이지만, 신현정 피디는 방송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더 좋은 일은 내년에 KBC의 고민준 본부장과 화촉을 밝히기로 한 것이다.

뭐, 오늘부턴 또다시 촬영으로 인한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질 텐데, 과연 결혼 준비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재밌는 건 패널 구성인데, MC인 한진석은 그대로 남았고 새로 출연진이 확정됐다.

류승렬과 헤나.

두 사람은 전생에 부부이기라도 했던 건지, 보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러면서 시간만 나면 나한테 연락해서 귀찮게 하는 중이다.

그리고 주형이 형…… 저번에 집들이 때 의기투합한 이후로는 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무튼, 박유나…… 이젠 형수님이라고 불러야 할 아내에게 완전 꽉 잡혀서, 쉬는 날이면 그 좋아하는 술도 마시지 못하고 집콕 중이라나.

그래도 아기가 너무 예뻐서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하는 걸 보면 행복해 보여 다행이다.

“형식이 오빠 생각요?”

“뭐, 그런 것도 있고.”

강형식.

녀석은 현재 강윤식과의 싸움을 멈추고 삼한 식품을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 모습이 꼭 본격적인 싸움을 대비해 숨 고르기를 하는 듯하달까.

아직까진 위태위태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녀석이 끊어낸 것만은 분명하다.

자신의 발을 얽매고 있던 과거.

혹은 혈연으로 이어졌으나, 사실상 악연이라고 해도 무방할 강윤식의 관계.

어느 쪽이 되었든, 강형식이 나아가지 못하게 묶어두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는데…….

사슬이라고나 할까.

동아줄만 해도 버거운데, 단단한 쇳덩이로 된 사슬은 그간 녀석을 칭칭 얽어매곤 좀처럼 놓아주지 않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 일을 계기로 녀석은 마침내 그 사슬을 끊어낸 듯 보인다.

“요즘 많이 바쁘죠?”

“바쁘지.”

고개를 끄덕이며 떠올렸다.

얼마 전 출시한 ‘서 셰프의 선택’ 신제품들.

결과는 대박이었다.

오죽하면 ‘어머니들의 필수품’이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동남아와 중국 쪽으로 판로를 확대하면서 요즘 강형식은 눈코 뜰 새 없는 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 역시 마찬가지.

장희경 관장님이 백화점을 오픈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불려가 팔자에도 없는 모델 일에 매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진숙 회장이 아주 발 벗고 나서서 날 부려먹는 중이다.

덕분에 광고면 광고, 방송이면 방송. 하루를 몇 등분 해도 모자랄 지경.

이런 상황에서 과연 레스토랑을 오픈해도 될는지.

그나마 다행인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틈만 나면 대시 아닌 대시를 하던 김서연이 요즘 들어 뜸해진 것이랄까.

그녀 때문에 가끔 이하연이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날 보곤 해서 얼마나 난감하던지.

“하아, 막 떨리는 거 있죠.”

나참.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현 그룹, 그중에서도 주력 사업체 중 하나인 대현 어페럴의 기획이사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람.

그에 비하면 구멍가게나 다름없는데.

그래도 고맙기만 하다.

내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해준다는 증거 아니겠냐고.

“이제 곧이네요.”

저 앞에 있는 사거리를 지나 좌회전을 하면…….

<맛있는 도전>을 통해 본선에 진출한 참가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다.

‘갓셰프와 함께하는 맛있는 가게’란 간판을 건 레스토랑과 함께.

그것도 두 개의 매장 중 첫 번째 매장.

떨리는 심정으로 핸들을 잡았을 때였다.

“어!”

따라라라, 라라…….

익숙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어 그토록 듣고 싶었던 음성도.

<갓 셰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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