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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사슬 (3) (203/204)

#203. 사슬 (3)

새벽 1시.

이하연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설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평소 혼잣말을 하는 습관은 없었지만, 불안함이 극에 달해서인지 저절로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서진영에게 보낸 여러 개의 톡을 확인해봐도 여전히 1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전화도 벌써 4시간째 연결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게 한 시간이 되고, 두 시간이 될 무렵 그녀는 불현듯 불길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로 거의 십 분에 한 통씩 무려 삼십 통도 넘게 걸어봤지만, 서진영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혹시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망설이던 이하연은 결국 강형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신호가 가다가 통화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오빠, 나 하연이.”

- 어? 그, 그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그로부터 오 분 남짓.

통화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이하연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져버렸다.

“지금 갈게!”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머니가 안방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지만, 이하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그녀가 신고 나간 것은 각기 다른 신발들이었다.

***

허름한 창고임에도 갑갑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일반 건물로 치면 3층 높이 정도 되는 공간임에도 환기가 잘되지 않아 퀴퀴하면서도 비릿한 냄새가 나고 있을 뿐.

물류창고 같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놈들이 눈을 가리거나 하진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손발을 묶어 두어 아까부터 손목이 시큰거리는 것만 빼면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물론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불안감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도사린 채 날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청도로 보내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웃긴 건 놈들 역시 전혀 긴장한 모습이 아니라는 거다.

그나마 오병수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지만, 박철준이 무슨 얘기를 하든 뭐라 하지 않는다.

덕분에 대화를 엿듣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뭐, 엿듣는다고 하기엔 코앞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치 가까운 거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지만.

그만큼 날 무시한다는 거겠지.

“그곳에서 마중 나오는 놈들은 삼합회 쪽인가? 아니면 청방?”

혼잣말로 중얼거린 박철준이 비릿한 조소를 띠며 날 쳐다본 것도 그때였다.

순간 등줄기에 찌릿한 감각이 흐른다.

이명준이 날 쓰러뜨릴 때 전기충격기를 썼기 때문이 아니다.

방금 놈들이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청도?

우리나라 도시처럼 말해서 몰랐는데, 삼합회라는 말을 듣고 보니 번뜩 떠오른다.

칭다오를 말하는 건가?

그럼 중국?

입술을 씹고는 물었다.

“날 어디로 보내려는 거죠?”

목소리가 잠겨서 그런지 잔뜩 갈라져 있었다.

그 탓에 소리가 작게 울려서 놈들이 이쪽을 쳐다보긴 했지만, 잘 알아듣지 못한 눈치다.

마른기침을 한 후 다시 물었다.

“여긴 어디죠?”

내 질문에 오병수가 대답 대신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박철준이 이내 킥킥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바닥에 고인 물을 찰박거리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이봐, 요리사 양반.”

“……?”

“당신 이제 좆된 거야.”

말없이 놈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박철준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오히려 머금고 있던 조소가 한층 더 짙어졌을 뿐이다.

“갓셰프라고 부른다며?”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오는 날 선 음성.

“날 어쩌려는 거지?”

“오오! 무서워라.”

내가 노려보는 동안에도 놈은 장난치듯 몸을 바들거리며 비아냥거렸다.

“크크큭. 갓이라며? 갓이면 신이잖아? 그럼, 그 잘난 재주로 여길 벗어나 보든가?”

툭툭.

내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밀듯이 건드리며 놈이 이죽거렸다.

“고함을 지르든, 뭐든 해봐. 혹시 알아? 누군가 듣고 신고라도 해줄지?”

또다시 웃음.

그러더니 놈이 한쪽 입술을 한껏 끌어올린 채로 말했다.

손가락으로 내 심장 어림을 쑤시면서.

“심장은 2억, 간은 1억 5천, 콩팥은…….”

장기 밀매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에 소스라쳤다.

그런 날 쳐다보는 박철준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을 때였다.

찰박찰박.

발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이명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철준도 이번만은 긴장했는지, 얼른 뒤로 물러나 내게서 떨어진다.

그 사이, 부지런히 내게로 다가온 이명준이 날 힐끔 쳐다보다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으로 가져가다가 묻는다.

“피나?”

반응하지 않고 쳐다보자,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곤 불을 붙이는 이명준. 그가 담배 한 모금을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연기를 내뿜으며 날 빤히 내려다본다.

“그런 눈으로 쳐다볼 것 없어.”

“…….”

“댁이나 나나 높으신 양반들 뒤 닦아주는 따까리인 거 마찬가지 아냐? 그럼 그 끝에 뭐가 기다리는지 정도는 각오하고 있을 거 아니냐고?”

대체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높으신 양반들이라는 게 강윤식과 강형식을 말하는 거라는 건 알겠는데…….

뭔 뒤를 봐준다는 건가?

설마 날 제 놈과 같은 하수인이나 해결사쯤으로 여기는…….

“원래는 산에 묻어버리고 했는데.”

흠칫.

“놀랐나? 뭘 또 그런 반응을……. 당연한 거 아냐? 계산 밖이지만, 하필 그 현장에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는데 어쩌겠어? 데리고 와야지. 후우…….”

다시금 담배 한 모금을 빨아 내뱉고는 이명준은 속을 알 수 없는 어투로 얘기하고 있었다.

“지금 당신 하나 찾겠다고 난리도 아니더만.”

피식하고 웃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수 있나? 지워야지.”

최종 선고처럼 그 말이 뇌리에 박히며, 온몸이 덜덜 떨려온다.

죽음.

더 이상 뒤는 없다.

그걸 끝인 거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탓인지,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돌아가신 두 분, 부모님이었다.

그다음으론, 외삼촌, 외숙모, 수연이 누나, 수아……. 강형식, 신현정 피디, 고윤수 주방장님, 김진호 셰프, 준석이 형, 한청. 그리고 이하연.

눈을 감았다.

그러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살려달라고 빌 것 같아서.

아니, 마음 같아선 그렇게 해서라도 살고 싶었지만, 방금 날 쳐다본 이명준의 눈빛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놈은 날 살려둘 생각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방도가 없을까?

그, 그래!

나레이션이라면!

결국 또 나레이션을 찾게 된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막막한 심정에 이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귓가를 후비듯 들려오는 이명준의 목소리.

“대체 무슨 방도로 알아낸 걸까? 오일호스를 자른 것도 그렇고…….”

눈을 뜨진 않았지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대충 감이 잡혔다.

그러니까 뭐야?

여기 날 가둬두고 있는 건 단지 죽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고문이라도 할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래서 될 일이 아니더라고. 댁이 묻는 대로 순순히 말해줄 거 같지도 않고. 그걸 또 믿을 나도 아니거든. 더구나 뒤에 누가 더 있을 줄 알고?”

천천히 눈을 뜨는 순간, 놈과 눈이 마주쳤다.

담배를 입에서 떼어낸 뒤 바닥에 버렸다.

그러곤 발로 비벼끄며 나직한 음성을 토해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딱 보면 알거든. 견적이 나오는 거지. 아, 이놈은 바로 멱을 따도 되겠구나. 이놈은 좀 더 뒤를 캐봐야겠는데? 근데 댁은…….”

온몸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마치 혀로 핥는 듯한 그 눈짓에 온몸의 털이 바짝 일어선다.

“잘 모르겠더라고. 내가 이 바닥에선 이십 년인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서 말이지. 그러니 어쩌겠어? 궁금해서라도 그냥 편히 보내줄 순 없지. 아무튼, 그래. 조금 있으면 출발할 테니까, 너무 떨지 말고.”

***

단순히 피곤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지쳐있다.

몸이 무거울 뿐만 아니라 마음도.

하지만 생각하는 걸 멈추진 않았다.

이명준은 분명히 말했다.

편히 보내줄 순 없다고.

행간을 읽어보자면, 바로 죽이진 않는다는 의미일 터.

그럼 어떻게 한다는 거지?

아까 박철준이 한 말에 단서가 있다.

청도.

그리고 삼합회인지 어딘지 모를 중국범죄조직.

그걸 하나로 이으면…….

여긴 아마도 항구나 근방 어딘가에 있는 창고일 것이다.

이명준의 말에 따르면, 강형식이 날 찾기 위해 움직인 것만은 틀림없다.

일본에서 돌아온 건지 어떤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놈들의 행적을 뒤쫓고 있을 터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조금 있으면 출발한다고 했지?

그 조금이 대체 얼만큼이지?

고개를 숙인 채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지만, 답이 나오질 않는다.

박철준이라는 놈. 꽤 입이 가볍던데, 한번 구워삶아 볼까?

아니면 그냥 대놓고 물어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따라라라라, 라라…….

익숙한 멜로디.

그리고 익숙한 음성.

머리를 울리는 나레이션이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 서진영.

“……?”

뭐지?

평소와 다르다.

나긋나긋한 아나운서 톤의 말투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렇게 대놓고 날 부른 적이 있던가?

있던 것도 같고…….

아 모르겠다.

- 정신 차려!

나레이션의 호통이 폐부를 찌르듯 날 일깨운다.

그러더니 예의 그 부드럽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 어떻게 해서라도 구해줄 테니까, 믿고 기다려라. 혹여 이상한 마음을 먹는다거나 하지 말고.

그러더니 끊겼다.

평소처럼 BGM과 함께 줄어들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끊겨버렸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속으로 나레이션을 찾아보지만, 응답은 없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했지만, 나레이션이 마지막에 남겨놓고 간 말을 떠올렸다.

믿고 기다려라.

그래.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니까.

방금까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다 못해 온몸을 잠식해나가던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움직인 인력만 얼마인지 모른다.

게다가 이쪽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C 마트의 김진숙 회장도 많은 이들을 투입해 서진영을 찾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동일 상무가 손을 쓴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개중에는 서진영과 제법 친분이 두터운 명제준 시장까지 있다.

그러다 보니 보안직원들뿐만 아니라 경찰과 군 병력까지 서울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진영 씨, 잘못된 거 아니겠지?”

상황을 통제할 임시 지휘본부로 활용 중인 회사의 사무실 안에서 이하연이 파리한 안색으로 물어오고 있었다.

“괜찮을 거다. ……죽일 거면 힘들게 데려가지도 않았을 테지.”

“흑!”

강형식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대답했지만, 한편으로는 직감했다.

시간이 얼마 없다.

납치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지만, 놈들은 원하는 걸 얻는 즉시…….

마른 침을 삼키곤 강형식이 눈을 감았다.

‘대체 어떤 놈들이지?’

사실 이 부분은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직접 움직인 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뒤에 누가 있는지는 알고 있으니까.

왜냐면 놈들이 가져간 건 임원들 명단.

그렇다는 건…….

‘강윤식!’

한순간 콧잔등을 일그러뜨린 뒤, 강형식이 눈을 떴다.

그러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이하연이 그런 상태에서도 반응하듯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어딜 가냐는 듯 눈으로 물어왔지만, 강형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갈 곳은 사실 가지 말아야 할 곳이기도 하니까.

만일 서진영의 목숨이 걸린 상황만 아니었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는 지금, 강윤식을 직접 만나 거래를 할 참이었다.

저쪽에서 무얼 원하든 다 내줄 생각. 서진영만 살릴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그렇게 결심을 굳힌 강형식이 막 사무실을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부르르르.

핸드폰이 진동했다.

혹시 찾았나?

마음이 급해진 강형식이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한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음악 소리였다.

따라라라, 라라…….

언젠가 들어본 듯한 BGM에 눈을 가늘게 만들었을 때, 나긋나긋한 여자의 목소리가 강형식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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