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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고르디우스의 매듭 (1) (198/204)

#198. 고르디우스의 매듭 (1)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방금 보고 올리고 숨죽이고 있던 직원이 움찔거릴 정도다.

하긴, 이 정도는 약과다.

모 회사의 회장은 화가 나면 명패를 집어던지는 건 물론이고 골프채부터 찾는다는 얘기도 있으니까.

그에 비하면 지금 강윤식이 보이는 모습은 양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분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어지간해선 말을 놓지 않는 강윤식이 말을 함부로 던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은연중에 떨리고 있는 목소리만 봐도 현재 그의 심정을 충분히 알만하다.

“죄, 죄송합니다. 워낙 은밀하게 진행해온 터라 저희 측에서 발견했을 땐 이미…….”

쾅!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친 강윤식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누구처럼 뭔가를 집어던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치졸하게 사퇴를 운운하며 협박하지도 않았다.

대신 번뜩인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살기가 가득한 눈빛이 되어 노려보고 있었다.

오금이 저릴 정도의 눈빛이었다.

이를 온전히 혼자서 받아들여야 하는 직원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을 때, 강윤식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러곤 손짓한다.

나가란 얘기다.

기다렸다는 듯 방을 빠져나가는 직원. 혼자 남게 된 강윤식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자리에 앉아 말없이 눈앞에 놓인 서류만 노려볼 뿐이었다.

“끝내 기어오르겠다는 건가.”

나직하게, 그러나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를 토해낸 강윤식의 눈매가 아까보다 한결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 속내는 오히려 격해진 상태였다.

조금 전까지 강윤식의 감정이 기름을 부은 듯 치솟아 오르는 불길이었다면, 지금은 외려 차분하게 가라앉은 불길. 다만, 온도는 급격히 상승. 그것은 온도가 올라가면 갈수록 흰빛을 띠는 초고온의 불꽃을 닮아 있었다.

그런 채로 강윤식이 핸드폰을 들었다.

이미 한서 사운드를 빼앗겼다 하더라도, 마냥 맥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

“예상대로군.”

장동일 상무의 말에 강형식은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한서 사운드의 경영진을 교체하는 데 성공한 후,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한껏 높이고 실질적인 지배력을 이쪽으로 끌어오는 것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강윤식이 이대로 포기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동안 그가 들인 공이 적잖았기 때문.

당연히 모종의 수단을 이용해 역공을 가해올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조합을 움직이는 모양이다.”

전화를 끊은 뒤 장동일 상무가 한 말이다.

한데, 조합이라니?

세상에는 수많은 형태의 조합이 있고, 그 목적 또한 전부 다르다.

목적이 다르니 활동도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나 강윤식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이미 논의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렇게 나오는군요. 하지만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것만으로 상황을 뒤집기엔 부족하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우리사주라면 주도권이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오는 걸 막을 정도는 될 게다.”

우리사주조합.

정확히는 기업의 종업원들로 구성된 자사주 투자조합을 일컫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특정 기업의 종업원들이 자신이 고용되어 있는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조직한 조합을 말한다.

그리고 한서 사운드에도 우리사주조합은 있었다.

애사심과는 상관없고, 강윤식의 은밀한 지원 하에 경영권 방어를 위한 일환으로 회사 지분의 일부를 조합에 소속된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있던 것뿐이다.

물론 전체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무시할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조합에서 내놓는 목소리를 시작으로 직원들을 교묘하게 선동하면, 서서히 경영진에 대한 불신에 사로잡히게 된 직원들이 어느 순간 파업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으니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주주들까지 흔들릴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물밑에서 주식을 끌어모으고 다시금 임시총회를 열어 경영진 불신임안을 내놓는다면 상황은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요.”

“희박하긴 하지. 그래도 대비는 해야겠지. 최악의 상황은 늘 예상치 못할 때에 일어나는 법이니까.”

장동일의 얘기에 강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은 전혀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미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던 까닭이다.

또한, 임시총회가 끝나자마자 그 계획은 이미 실행 중이기도 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삼한 식품은 0.5%까지다. 그 이상은 힘들 거다.”

알고 있다는 듯 강형식이 받아넘겼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희망 투자증권을 비롯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서드항공, KTK 통신, 국민연금공단, 신한금 금융 등 이번 총회에서 강형식의 편에 서 백기사 역할을 해준 이들과 이미 딜이 오가는 중이었다.

주식 맞교환.

비율은 30 대 1.

삼한 전자의 협력사가 되며 한서 사운드의 주가가 고공행진 하고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인 삼한 식품과 비교될 리 없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서 셰프의 선택’이 시장을 휩쓸면서 삼한 식품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른 덕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책정된 주가 비율이었다.

서로 간에 이득인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총회가 열리기 전이라면 순순히 내놓을 리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경영권을 뺏어온 상황에서 백기사들이 거부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지고 있는 한서 사운드의 주식을 그냥 넘기라는 것도 아니고, 알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삼한 식품과 맞교환하는 것이니 오히려 지금쯤 환호작약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쪽의 손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를 위해 이미 삼한 식품의 주식을 충분히 확보해둔 터였기에.

사전에 모든 게 치밀하게 계획되었고, 이번 일은 그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아직 몸통조차 완전히 드러난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

한층 더 날카로워진 눈빛이 된 강형식이 나직하게 말했다.

“시선을 돌리는 데는 성공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겠네요.”

“그래야지. 이제부턴 속도전이니까.”

장동일 상무 역시 눈을 번뜩였다.

칼을 뽑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왕지사 칼집을 나온 터라면 거침이 없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저쪽에서 눈치채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게 움직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상대방이 눈치를 채든 말든 빠르게 상황을 장악하는 게 중요할 테니.

“사흘이면 충분할 거다.”

“지금쯤이면 할아버지께서도 알아채셨겠죠?”

“그렇겠지.”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떠올린 얼굴.

강철같은 의지로 일개 상회에 불과했던 회사를 세계적인 그룹으로 일궈낸 남자. 강 회장의 얼굴을 떠올린 그들의 눈빛이 방금보다 한층 더 강한 빛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

새벽 5시에 눈을 뜬 뒤,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싱숭생숭했기 때문이다.

<맛있는 도전>의 촬영은 마지막 예선까지 전부 치르고 이제는 본선만을 남겨두고 있었고, 패자부활전까지 치르고 나면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될 터다.

그리고 강형식의 일도 순순히 잘 풀려나가고 있다는 얘기를 어제 통화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나로서야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느껴진다.

한서 사운드라고 했던가?

총회를 열었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때 경영진이 바뀐 것까지도 들었다.

그래서 그게 강형식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뭐, 삼한 전자의 협력사 주식을 그렇게 끌어모았으니 녀석에게 힘이 되어주긴 할 테지.

구체적인 건 모르기도 하고, 또 알 필요도 없을 터다.

그저 잘되고 있나 보다 할 뿐.

방송도 순탄하고, 녀석의 일도 문제가 없다.

광고 촬영도 잘되고 있으며 ‘서 셰프의 선택’의 판매도 순조로운 데다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뭐 하나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좋기만 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걸까?

자다가 악몽이라도 꾼 걸까?

기억나지 않는데…….

“하아, 모르겠다.”

이유를 모르니 답답하기만 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뒤, 샤워하고 주방으로 출근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의 일이었다.

 ***

주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침잠이 없어 그런가, 가끔 있는 일이다.

한 삼십 분쯤 지나면 하나둘 출근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의 메뉴를 확인했다.

콩나물국에 조밥이라.

참네, 누가 상상이나 하겠냐고.

재벌집 아침 밥상이 이렇게나 간소하다고. 하기야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누군 김치에 물 말아먹고, 또 누군 황금에 밥 비벼 먹기라도 하겠냐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거야말로 사람들이 늘 바라는 바이기도 하니까.

피식 웃고는 콩나물을 다듬으려던 차였다.

따라라라, 라라…….

얼씨구?

이 아침에 웬 나레이션?

이제껏 한 번도 없던 일인지라 의아할 때였다.

- 누구에게나 추억은 있는 법이다.

대체 뭔 얘기를 하려고 저렇게 운을 떼는 걸까?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잔잔하게 울리는 음악과 함께 나레이션이 들렸다.

- 강 회장도 마찬가지다.

응? 갑자기 웬 회장님?

뭘까?

이제 막 해가 뜨고 있는 시점에 갑작스레 강 회장님 얘기를 꺼낸다?

이해할 순 없지만,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뭔가 또 황당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다.

 - 지금부터 20년 전,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식사를 강 회장은 잊지 못한다. 소고기 양지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미역국에 말아 먹는 밥은 그 자체로 일품이었지만, 것보다는 입이 짧은 손자들 입에 쉴 새 없이 들어가는 게 더 좋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뭐야?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라는 건가?

이렇게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나로서는 좀처럼 납득이 되질 않는다.

느닷없이 20년 전의 일을 언급하면서 메뉴를 바꾸라니.

예전에 비하면 주방에서의 발언권이 조금은 생겼다고 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난 여전히 힘이 없다.

내 밑으로 기껏해야 한청 그 아이밖에 없으니 말 다 했지.

그런 내가 뭘 할 수 있겠냐고.

흠, 그렇긴 한데…….

- 강 회장은 그때 먹었던 미역국을 잊지 못한다.

하아…….

사람 마음 약해지게.

인상을 살짝 구기고 있을 때, 나레이션이 쐐기를 박듯 들려왔다.

- 그리고 요즘, 강 회장은 부쩍 그때가 그립다. 큰아들 내외도 죽지 않고, 손자들의 웃음소리로 집안이 떠들썩했던 그 시절. 아내와 며느리들이 준비한 아침. 미역국을 함께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던 그때가 꿈에서조차 보고 싶을 정도로 그립기만 하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들려오던 BGM은 어느샌가 서서히 잦아들다가 흩어졌고.

이제 아무도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주방 안에 서서 난 가만히 생각에 잠길 뿐이다.

끓여?

말아?

아니 그 전에 주방장님께 말씀드려야 할까?

미치겠네.

한동안 이런 식으로 날 괴롭히지 않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거람.

나레이션을 원망하다가 어찌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발소리가 들려온다.

워낙 조용해서 그런지,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기만 하다.

누구지?

고윤수 주방장님일까?

아니면 김진호 셰프?

그것도 아니면 준석이 형인가?

어쩌면 한청일지도 모르지.

그도 아니라면 안성댁 아주머니나 혜순이 누나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잘됐다.

누가 됐든 얘기해 봐야겠다.

뭐, 믿을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렇게 생각하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어?

생각지도 못한 이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말문이 막혔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런 날 향해 그가 물었다.

“자네 혼잔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이 들었다.

급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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