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본선 진출? (3)
어쩌면 누군가는 타르타르를 만든다면서 왜 랍스타를 반으로 가르고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혹은 소스의 한 부분을 담당할 마요네즈는 어디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여기 있는 이들 중 그런 의문을 가진 이는 없다.
토미 김이 말한 것은 타르타르 소스, 즉 갖은 채소와 허브에 마요네즈와 머스터드를 섞어 만든 것과는 하등 상관없기 때문이다.
날고기를 다져서 만든 스테이크의 총칭.
이것이 바로 타르타르다.
한마디로 서양식 회다.
다만 그 재료가 소고기라면 비프 타르타르가 되는 거고, 지금처럼 랍스타를 다진 거라면 바닷가재 타르타르가 되는 것일 뿐.
아무튼, 난 빠르고 정확한 칼질로 랍스타를 반으로 쪼갠 뒤, 안쪽에 있는 살점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괜한 욕심을 부려서 껍데기가 섞이지 않게 하는 거다.
익혀서 먹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생살이나 다름없는 타르타르를 먹다가 단단하고 딱딱한 갑각류의 껍데기가 씹히기라도 하면 그 순간 입맛이 뚝 떨어지는 참사가 일어날 테니.
그렇게 잠시간의 손동작만으로 바닷가재의 살점을 깔끔하게 발라낸 나는 이내 그것을 다지며 물었다.
“비스큐 무슬린?”
내가 물었을 때, 토미 김은 이미 식재료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양파, 당근, 샐러리 등 채소를 정육면체 모양으로 썰어둔 미르푸아, 거기에 고기와 채소를 푹 고아낸 진한 육수 즉 콩소메를 작은 그릇에 담아두고 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바닷가재 일부를 뚝 떼어 건네주자 토미 김은 얼른 받아들여 익숙한 솜씨로 물이 끓고 있는 냄비에 투하한다. 그러곤 쉬지 않고 바닷가재 껍데기를 깨끗이 씻어 절구에 넣고 빻는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바닷가재를 세심하게 다졌다.
뭐, 대충 다져도 맛 자체는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식감만큼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르타르가 날고기를 다진 음식이라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곤죽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부드럽게 씹히면서도 입안에서 겉돌지 않도록 적당히 다져진 상태가 최상이다.
짧은 시간 동안 바닷가재를 모두 다진 나는 칼을 닦아내며 토미 김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의도를 눈치챈 그가 내 쪽으로 소스 재료들을 밀어준다.
편하네.
내가 보기엔 이미 그는 어지간한 호텔의 주방을 통으로 맡아도 문제없을 정도로 뛰어난 요리사다.
그런 그가 옆에서 보조해주니, 마치 손이 두 개 더 생긴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그런가. 속도는 두 배 이상 빨라지고, 요리 자체가 한층 더 즐겁게 느껴졌다.
콧노래라도 나올 듯한 기분으로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닷가재의 껍데기와 살을 익힌 국물을 아주 고운 체에 꾹꾹 눌러가며 걸러내 걸쭉한 즙을 받아낸 뒤, 소스 팬으로 옮겨 콩소메를 넣은 후 약 5분간 끓였다.
그동안 VJ 한 명이 카메라가 들고 다가와 요리 과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오옷!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서 손이 다 안 보일 지경입니다! 근데, 저게 뭘까요? 바닷가재는 무조건 삶아 먹거나 쪄먹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구워 먹는 게 전부인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요리입니다!”
한진석이 그다운 멘트로 잔망 떨고 있을 때, 이미 내 손은 코냑 3스푼을 작은 국자에 넣어 뜨겁게 데우고 있었다.
“뭐, 뭡니까! 뭔가 엄청난 걸 보여줄 것만 같은 이 기대감!”
잔망잔망.
다소 호들갑스러운 한진석의 촐랑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쉬지 않는다.
화르륵!
냄비에 부은 코냑에 불을 붙이자,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가 사그라든다.
잡냄새를 없애거나 특수한 향 따위를 지우고 대신 불맛을 더하기 위한 기술. 고기, 생선, 과자 등에 코냑이나 브랜디 그것도 아니라면 알코올 등을 붓고 활활 타는 불에 태우거나 그을리는 방식으로 간단하지만, 요리에 한층 더 풍미를 더 해주는 플랑베다.
때에 따라선 토치를 이용해 식재료에 대고 직접 그을리기도 하는데, 지금은 소스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코냑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한 것이다.
“와아!”
탄성을 내지른 건 한진석만이 아니다.
방청객들도 눈을 빛내며 입을 벌리고 있고, 심지어 참가자들도 하던 걸 멈추고 이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다.
나참, 이게 뭐라고.
하긴 플랑베가 언뜻 봐선 화려하긴 하지.
뭐, 그걸 노린 건 아니지만.
아무튼 이제 거의 막바지다.
알코올과 함께 잡냄새를 한꺼번에 날려버린 코냑에 드라이 화이트 와인 100ml를 넣고 졸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소스는 어떻게? 되게 갈 겁니까?”
“되게?”
당황했는지 토미 김이 되물어 온다.
피식.
또다시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표정이라곤 없이 묵묵하게 자기 일만 하기에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더니만, 저런 모습을 보니 인간미가 느껴진달까.
“진하게 갈 건지 물었습니다.”
“아!”
그제야 비로소 말뜻을 알아들은 토미 김이 얼른 대답한다.
“1/3로 졸이면 될 거 같습니다.”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고 얼마나 지났을까.
토미 김의 말처럼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줄어든 냄비 안. 거기에 아까 만들어둔 진한 즙, 즉 콩소메를 넣고는 10분간 약한 불로 끓였다.
그러는 동안 토미 김이 얼른 접시를 가져온다.
역시 눈치가 빠르다.
뭐, 저 정도쯤 되면 그렇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실례겠지만.
마치 내 몸처럼 보조해준다는 얘기는, 그가 이미 요리 과정을 모조리 숙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손에 익히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그에게 옅은 미소를 보내며 다져둔 바닷가재 살을 내밀었다.
플레이팅은 직접 하라는 의미다.
당연히 끝까지 내가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토미 김의 눈동자에 의아한 빛이 떠오른다.
그때, 삐익! 하며 버저가 울렸다.
찬스 타임이 지난 것이다.
그제야 그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채곤 이내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러곤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서 냄비를 받아든다.
곧이어 접시에 바닷가재 살이 담기고, 한쪽 윗면을 덮으며 흘러내리듯 비스큐 무슬린 소스가 뿌려진다.
요리만큼이나 솜씨가 좋은지, 무슨 미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입으로 먹기 전에 눈으로 즐긴다는 말이 확 와닿는 모습이다.
카메라 역시 접시에 바짝 다가와 찍는 걸 보면 다들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행주로 손을 닦고 있을 때였다.
삐-익!
“어우! 깜짝이야!”
토미 김에게 집중하고 있던 한진석이 호들갑 떨며 소리쳤다.
“아, 어딘가요? 또 어디서 갓솁 찬스를? 오늘 우리 셰프님, 바쁩니다! 솔직히 이제껏 이 방송 하면서 서진영 셰프가 하는 거 없이 완전 날로 먹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만, 오늘로써 제 마음에 더 이상의 논란은 없겠습니다!”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2조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만치에서 도마 앞에 선 채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유수아가 보였다.
***
장내가 소란스러워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임시총회를 소집한 이가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임시총회를 소집한 사람이 강형식, 즉 삼한 식품의 실세이며 삼한 그룹 회장의 혈육이기 때문이었다.
“오셨습니까?”
장동일 상무를 반갑게 맞은 이들이 잠시 인사를 나누며 근황을 묻는 사이, 최명식이 측근들을 이끌고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대표이사를 맡은 최명식입니다.”
“아, 반가워요.”
직책상으론 실장에 불과하기 때문에 강형식이 뒤로 물러나 있는 가운데, 장동일이 일행을 대표해 악수를 청해오자 최명식은 그걸 받아들이면서도 눈만은 강형식에게서 떼어내지 않고 있었다.
‘곧 본부장의 자리로 올라간다고 하던데.’
들리는 소문이 그렇다.
뭐,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겠지만 사실 강형식쯤 되면 직책이 뭐든 무슨 상관이겠나.
드라마에서 보면, 재벌가의 자제가 계열사 중 한 곳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가는 등 꽤 인간적인 성장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드라마일 뿐이다.
다른 이도 아닌 그룹 총수의 친혈육이 가진 힘은 적어도 그룹 안에서만은 막강하다.
설사 그가 대리는커녕 주임, 아니 일반사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저야말로.”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고, 다들 자리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컨퍼런스 룸 안이 또다시 술렁거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던 최명식은, 장동일 상무의 입가에 스친 미소 한줄기를 발견하곤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지?’
서로의 입장 상 대립각을 세워도 충분할 상황이 조금 전이였다.
그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 웃으며 속내를 감출 수 있던 건, 그만큼 오늘 임시총회에서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
한데…….
불길함을 애써 누르며 시선을 돌린 최명식이 눈을 가늘게 해 보였다.
그러곤 침음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장내로 들어선 건 희망 투자증권사 대표이사 박권순.
투실투실한 몸매에 어딘지 모르게 가벼워 보이는 웃음을 흘리며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이내 장동일 상무를 발견하곤 쪼르르 달려가고 있던 것이다.
“아유,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죄송합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바쁘신 거 다 아는데 말이오.”
“그건 아니지요. 아무리 바쁘다 한들 상무님 뵐 시간까지 없겠습니까? 어? 이분이……?”
“처음 뵙겠습니다. 강형식입니다.”
“아! 바, 박권순입니다!”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하는 박권순. 그 모습이 최명식의 눈에 가시처럼 박히고 있을 때, 또다시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며, 나타난 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최수철 이사장.
그제야 최명식의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저쪽에선 달랑 한 명이 왔지만, 이쪽은 이제부터다.
그렇게 생각한 그가 최수철 이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물며 최명식이 일어섰을 때였다.
성큼 걸음을 옮겨 이쪽으로 오던 최수철 이사장이 중도에 방향을 꺾더니 장동일 상무 쪽으로 이동하는 게 아닌가.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최명식이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최수철 이사장은 장동일 상무와 뜨거운 눈빛을 교환하며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최명식은 속에서 불이 치솟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입술은 금방이라도 욕설을 토해낼 듯 벙긋거렸고, 두 눈에선 금방이라도 칼날을 쏟아내기라도 할 듯 날카롭게 번들거렸다.
설마하니 막판에 이르러 배신을 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그였다.
“사, 사장님. 고정하십시오.”
누군가 옆에서 말려준 덕분일까.
여전히 꽉 움켜쥔 주먹은 덜덜 떨리고 있지만, 최명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만은 자제할 수 있었다.
만일 그랬다간 총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수습 불가능한 추태부터 부리게 됐을 터다.
그랬다면, 내일 아침…… 아니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이성을 잃은 한서 사운드 사장.’이라는 제목을 달고 기사가 뿌려졌을 테고.
두 눈을 꼭 감은 최명식이 숨을 천천히 고르며 한껏 달아오른 열기를 애써 식히고 있는 동안, 또다시 문이 열렸다.
그때부터였다.
한서 사운드의 백기사로서 요즘 들어 곧잘 회의석상에 이 이름이 거론되곤 하던 서드 항공의 임원 한 명이 직원을 이끌고 들어오며 시작된 행렬. 서드 항공을 필두로 KTK 통신, 국민연금공단, 신한국 금융 등 많은 이들이 장내로 들어왔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향한 곳은 최명식의 예상과는 달랐다.
당연히 자신에게 올 줄 알았던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은 한차례 최명식과 눈을 맞춘 뒤 주저 없이 장동일 상무 쪽으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크흑!”
입매가 비틀어지며 최명식이 배신감에 몸부림쳤지만, 누구 하나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여긴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얽히고설켜 칼날을 휘두르는 곳.
안건이 상정되고 각자의 이권에 따라 살벌하기 그지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그 결과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승자는…….
시간이 다 되고, 올 만한 사람들이 다 왔다는 판단하에 개회.
소개와 함께 단상에 오른 강형식이 어떻게 보면 담담한,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서늘하다 못해 섬뜩한 눈빛을 뒤로 감춘 채 말문을 열었다.
“……이런 이유로, 현 한서 사운드 측 경영진 사임을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