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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본선 진출? (1) (194/204)

#194. 본선 진출? (1)

헤나는 서진영을 보는 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설움이 폭발하는 듯했다.

7년간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솔로 앨범을 내며 본격적인 연기돌로 전향한 그녀는 겨우 일 년 만에 제법 연기를 할 줄 안다는 인식을 대중들의 뇌리에 심어놓으며 탄탄대로를 걷는 중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벽에 부딪힌 것은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를 대신해 노경환 PD의 <혼저왕 먹읍서>에 출연을 결정하면서부터였다.

시작은 <혼저왕 먹읍서>가 우세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눈과 마음을 빼앗은 것은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였다.

신현정 PD의 기막힌 연출이 한몫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가 뭐래도 시청률에 지대한 공을 한 것이 서진영이라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터다.

반면 <혼저왕 먹읍서>는 쇠락을 거듭해 시청률이 바닥을 치기 일보 직전까지 떨어졌다.

지금이야 폐지를 운운하며 난항을 겪고 있는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2기 덕분에 조금이나마 예전의 성세를 되찾는 듯 보이지만, 그것도 머지않았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왜?

현재 대한민국 예능의 금요일 저녁은 서진영 천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맛있는 도전>을 시작한 이상, 다른 방송들은 말 그대로 손가락만 빨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고 해서 헤나가 그저 시청률에 목을 매 여기 출연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뭐랄까.

말하자면, 한풀이다.

그동안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기획사가 정해주는 대로 움직였다가, 출연하는 방송마다 쫄딱 망하고 그 탓에 노이로제까지 걸려 멘탈이 두부처럼 변해버린 그녀는 자신을 보듬어 안아줄 사람은 서진영밖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요는 모든 일의 시작. 서진영으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거다.

“진짜 진짜 너무 뵙고 싶었어요!”

그녀의 외침에 서진영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지만, 헤나는 그의 손을 놓아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눈까지 글썽거린다.

마치 그 자체만으로도 그간의 마음고생이 싹 가신다는 듯이.

그런 그녀에게 서진영이 얘기했다.

“그, 그래요. 반갑네요. 그동안 TV로만 보다가 이렇게 뵈니까……. 음, 감개무량? 사실은 제가 걸그룹은 잘 모르지만…….”

눈을 반짝이며 그의 말을 듣던 헤나가 시무룩해지고 있을 때, 서진영의 입에서 눈이 번쩍 뜨일만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헤나 씨는 잘 알고 있습니다.”

멍하니 그를 보던 헤나.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저, 정말요?”

서진영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흡사 강아지의 그것을 닮았다.

***

부담스럽지 않다는 거짓말일 거다.

아까부터 계속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그녀. 헤나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곤 있는데…….

하아, 설마 날 좋아……하는 건 아닌 거 같은 게, 이하연의 눈빛과는 사뭇 다르다. 김서연과도 다르고 말이다. 어쨌든 계속해서 저렇게 날 보고 있으니 나 역시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적잖이 신경 쓰느라 솔직히 좀 피곤하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오늘로써 본선 진출자가 확정되는 이때, 정작 신경 쓸 곳은 따로 있으니까.

“오천만 국민 여러분!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그 특유의 넉살로 멘트를 시작한 한진석은 아주 대놓고 시청자들을 오천만 명으로 뻥튀기해버렸다.

“대국민 오디션! 누구라도 마음먹으면 셰프가 될 수 있다! 서 셰프와 함께하는 위대한 도전! 맛있는 도전이 마침내 마지막 관문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에 진출하는 이는 누가 될 것인지!”

두구두구두구.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들려오고…….

“……는 이따가 보시면 알 테고요.”

맥빠진 듯 음악이 흩어지고, 한진석이 능청스럽게 멘트를 이어간다.

“일단은 채널 고정! 지금부터 서 셰프님을 도와 방송에 맛난 조미료를 팍팍 뿌려줄 게스트분들을 모십니다!”

와아아아아아!

방청객들이 박수와 함께 환호한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한진석이 이내 헤벌쭉 웃더니 인중을 늘어뜨렸다.

“십 대들의 워너비! 이십 대들의 첫사랑! 삼십 대 삼촌들의 귀요미! 모십니다! 국민 아이돌! 스피너스!”

한층 더 커지는 환호와 함께 음악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스튜디오 안에 화려한 조명이 쏘아진다.

그 한 가운데로 샤랄라한 복장을 한 7명의 소녀들이 대거 쏟아졌다.

- 오빤 아무것도 몰라. 진짜 아무것도 몰라.

한때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메가 히트했던 곡. 스피너스를 얘기할 때면 절대 빠지지 않는 대표곡, ‘오빠 마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중독성 강한 훅으로 시작하는 만큼, 듣는 내내 어깨가 들썩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노래였다.

그 때문인지, 스피너스가 스튜디오를 쓸어버릴 듯 휩쓸며 군무를 추는 동안 한진석은 말할 것도 없고 방청객들마저 노래를 따라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참네, 잘도 부르네.

가사가 아무리 쉽다곤 하지만, 저걸 다 어떻게 외운 거람.

늘 바쁘게 살아왔던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곤 하지만, 흥겹긴 하네.

그녀들의 노래는 물론이고 음악에 대해선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나조차도 어깨가 들썩일 정도니까.

“오! 너희 진짜 장난 아냐!”

노래가 끝나고 스튜디오 중앙으로 모여든 걸그룹을 보며 한진석이 대뜸 반말을 날린다.

“오빠! 그거 칭찬이죠?”

“그럼, 그럼! 당근이지!”

“와! 아재 말투!”

“흐흐흐, 이왕이면 삼촌이라고 해주면 안 되겠니? 그나저나, 아니 어떻게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여전……하십니까?”

“엥? 지금 그 말……. 우리 늙었다? 그런 말?”

“우우! MC는 물러가라!”

“우리도 이왕이면 젊은 사람이 좋다!”

“저흰 서 셰프님만 있으면 돼요!”

“팬이에요!”

느닷없는 고백에 어이가 없어졌지만, 한진석을 경계로 그녀들과 반대편에 서 있던 나는 표정 없이 담담하게 팔짱만 끼고 있었다.

그런 내게 갑자기 돌직구다.

“저기요. 사실 우리끼리 오면서 내기했거든요. 우리 중에 이상형이 있다? 없다? 뭐 이런 거.”

얼씨구?

뭐냐? 저 요상한 발언은?

“크크큭. 그거 재밌네요. 아주 발칙하긴 한데, 아주 흥미롭군요. 그래서, 서 셰프님? 있습니까? 여기 일곱 명 중에?”

이 사람이! 불이 났으면 끌 생각부터 해야지. 왜 거기에 부채질을 하는 건데?

한진석을 살짝 노려보았지만, 소용없다.

그는 신이 난 건지 웃음을 숨기지도 않은 채 한술 더 떴다.

“꼭 여기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평소 서 셰프님을 좋아해 주는 여성분들이 많은 거로 아는데요. 오늘 아주 끝장을 봅시다! 서진영 셰프에게 묻습니다! 이상형은?”

빠밤.

절씨구?

음향효과까지 주며 가세하는 스텝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스튜디오 밖에서 신현정 PD가 팔짱을 낀 채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것이다.

와아, 진짜 배신감.

이하연이랑 사귀고 있는 거 알면서.

끙, 어쩐다?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되도록 가볍지 않도록, 진실하게 들릴만한 말투로.

“음, 제 이상형이라…….”

초롱초롱하게 날 바라보는 일곱 소녀. 그중에서도 특히 헤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계속해서 얘기했다.

“얼굴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요,”

이하연의 얼굴이면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거든.

“꼭 착할 필요도 없죠.”

응응, 이하연은 성격도 좋거든.

“집안일? 가정부인가요? 그거 제가 해도 됩니다.”

피식.

이하연은 손에 물 한번 묻혀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런 건 어쨌건 상관없지만.

“제가 만든 요리를 잘 먹어주는 여자?”

이하연은 뭐든 잘 먹는다.

특히 내가 만든 된장찌개를.

“그것도 웃으면서 먹…….”

“아씨! 그래서 누군데!”

듣다 못한 한진석이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치자, 방청석이 웃음으로 들썩인다.

스피너스도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웃고 있고.

픽하고 웃고는 말했다.

머리에 손을 올려 하트를 만들면서.

“제 이상형은 여러분입니다.”

어우 야, 내 손 어떡할 거냐고.

오글거려 안으로 굽다 못해, 앞으로 가위바위보 하면 주먹만 내게 생겼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이런 식으로라도 지뢰를 피해 가는 수밖에.

“와, 진짜!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한진석이 투덜거렸지만, 나도 이젠 제법 방송밥을 먹었거든?

“그럼 한진석 씨는 시청자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응? 그, 그건…….”

그가 동공 대지진을 일으킨다 싶더니, 이내 능청스럽게 받아넘겼다.

“예에∼ 아주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하하하, 제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거야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을 거 같고요. 다음으로,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오디션만을 기다리고 있는 참가자들을 모셔보겠습니다!”

눈짓을 해보지만 꼼짝하지도 않는 카메라. 결국 손발을 동원하고 나서 간신히 카메라를 돌릴 수 있던 한진석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치고 있을 때, 카메라가 참가자들을 비췄다.

***

룰은 간단하다.

5차 예선이랄까, 본선을 앞둔 이번 경연에서 서른두 명의 참가자는 여덟 명씩 팀을 짜게 된다.

누군가는 왜 또 팀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야 당연한 일이다.

애당초 이번 오디션의 목표가 팀별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데 있으니까.

당연히 팀워크가 우선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런고로 이번 주 역시 여덟 명으로 이뤄진 팀끼리 경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요리가 끝나고 나면, 자리를 바꿔 시식할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곤 똬악!”

한진석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소리쳤다.

“각자 점수를 매기는 거죠! 으흐흐흐, 당연히 저희는? 예에, 예. 이번에는 채점하지 않습니다. 응? 그럼 왜 서 셰프님이 여기 계시냐고요? 그야, 찬스 카드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찬스 카드.

간단히 말해서 네 개로 나누어진 팀은 세 개의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중 한 개의 요리를 만들 때 찬스 카드 즉 날 이용할 권한이 주어진다.

시간은 십 분.

그 이상은 돕지 못한다.

솔직히 말해서 엄청 부담스럽다.

젠장! 무슨 음식을 만들 줄 알고.

흔한 요리라면 문제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믿는 건 나레이션뿐인데.

만약 도와주지 않으면 어쩌지?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있을 때, 한진석이 아주 그냥 신바람이 나서 떠들고 있다.

“말씀드렸다시피, 서 셰프님이 뒤에서 대기하고 계시니 마음 편히 경쟁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저를 비롯해 스피너스 멤버 여러분까지. 각 팀마다 2명씩 참가해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팀원 선출은 금세 이뤄졌다.

그동안 치열한 경쟁을 해오며, 한편으로는 제법 친해진 참가자들은 미리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빠르게 팀을 꾸렸다.

그러곤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간단히 시합을 했는데, 사과 껍질 길게 깎기라든가 달걀 빨리 깨기 같은 시합을 통해 이긴 팀부터 우선적으로 스피너스 멤버들을 뽑아 데리고 갔다.

물론 한진석은 꼴등팀으로 갔다.

“아, 진짜! 가문의 수치라고!”

투덜거리며 자신에게 배정된 팀으로 간 한진석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웃음을 흘리며 진행을 이어가고 있다.

“자! 그럼 서 셰프와 함께 하는 <맛있는 도전>! 4라운드, 5차 예선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그가 외치는 소리를 신호 삼아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스튜디오 안. 네 개로 나누어진 부스에서 열 명에 이르는 인원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각자 어떤 요리를 할지 토의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들 중에 반은 오늘 떨어지겠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다.

다음 경연은 본선이 아닌 패자부활전.

다시 한번 주어진 기회를 통해 그동안 떨어졌던 이들이 대거 참여해 싸우게 될 테니까.

그렇게 해서 모인 이들이 본선을 치르게 될 것이다.

실제로 레스토랑을 열고 그곳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요리를 대접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오디션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살짝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심적 중압감이 대단했을 텐데, 여전히 활달하게 조리기구를 휘두르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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