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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뿌리가 같다고 한 나무는 아니다 (2) (192/204)

#192. 뿌리가 같다고 한 나무는 아니다 (2)

전화가 걸려올 때부터 강윤식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막 보고받고 있던 차였다.

자신에게 서류를 내밀곤 안절부절못하던 부하직원에게 그가 손을 내저었다.

나가란 얘기다.

금방이라도 고함을 칠 것 같던 이가 말없이 손만 내저으니, 부하직원은 얼씨구나 좋다는 표정으로 물러났다.

비로소 방 안에 혼자 있게 되자, 그제야 강윤식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상대로 최명식의 음성에선 꾹꾹 눌러 놓은,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분노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최명식은 시종일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다.

오 분 남짓.

어떠한 대꾸도 없이 묵묵히 최명식의 얘기를 듣고 있던 강윤식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쪽은 아니야.”

같은 고등학교 1년 후배인지라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쉽게 말을 높여줄 그가 아니지만.

“이해를 못 하나 본데. 다시 말하지. 내가 아니라고 했다.”

-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울컥하는지, 급기야 수화기 너머의 음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 벌써 소문이 파다합니다! 현재 삼한에서 지분 공시를 앞두고 있다고요! 그런데도 아니라고 하실 참입니까!

평소 같으면 무시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쓴소리부터 나갔을 텐데, 강윤식이 용케 참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 때문에 당황한 탓도 있고, 한편으로는 이러나저러나 최명식과는 한배를 탄 사이였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움직이기 좋은 말. 앞으로 한서 사운드를 제 입맛에 맞게끔 움직이려면 최명식을 어르고 달래줄 필요가 있던 것이다.

“좀 더 알아보고 연락하도록 하지. 그러니 혹여라도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기다리도록.”

- 하아, 알겠습니다.

여전히 의심하는 음성이지만, 그래도 막무가내는 아니다.

아직까진 자신의 말을 따르고 있는 최명식. 그와 전화를 끊은 뒤, 강윤식이 눈을 가늘게 해 보였다.

그러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네가 정녕 미쳤구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얼굴에 조소가 떠올랐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번 사태의 중심에 뜻밖의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서 사운드의 주식을 끌어모으고 있는 건 삼한 식품이었다.

같은 계열사지만, 자신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기도 한 곳. 그에 비해 강형식이 유일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어찌 됐든, 한 뿌리에서 난 가지임은 분명하기에 최명식에게는 딱히 이렇다 할 변명을 하지 않았다.

집안싸움은 아무리 치열해도 담장을 넘기지 말아야 하는 법. 그랬다간 근간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고작 5%로 뭘 하겠다고.”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이번에 삼한 전자에서 한서 사운드를 협력사로 공표하며 주식이 대폭 오른 상황.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는 마당에 주식을 매입하기 쉽지 않을 터다. 설사 시장에 풀린 게 남아있다 치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자신이 아는 한 삼한 식품의 자금력으론 5%를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점이었다.

기껏해야 6%. 그것도 삼한 식품의 보유 자금을 탈탈 털어 넣고 비자금까지 몽땅 쏟아부어도 그 이상은 힘들 터였다.

어느새 싸늘한 표정이 된 강윤식이 비릿한 음성을 토해냈다.

“그렇다고 이쪽에서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끝내 씩 하고 웃는 그의 얼굴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장동일 상무를 앞에 두고 삼한 식품의 사장인 임진우는 뿔테 안경을 추어올렸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어떻게 걱정을 안 합니까? 설사 말씀하신 대로라고 해도, 겨우 7%입니다. 그것도 목표치가 그렇다는 거고. 현재 5%를 넘지 못합니다. 후, 공표야 오늘내일한다고 치더라도 결국엔 강윤식한테 밀릴 겁니다.”

“허허, 사람하곤. 그리 간이 작아서야 무슨 큰일을 하겠다고.”

“그렇게 간이 작아서, 여태 이 목을 보전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회장님께서 아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도 겁이 납니다.”

“말했지 않았는가? 회사에 누를 끼치는 일만 아니라면, 그게 설혹 피를 흘리는 일이 될지라도 상관치 않으실 거라고. 더욱이 이번 일로 한서 사운드에 대한 지배력이 공고해지면 공고해졌지, 회사에 손해날 일은 없어. 그러니 회장님께서 그저 지켜만 보실 거네.”

말을 하면서도 장동일 상무는 떠올렸다.

강 회장의 강렬한 눈동자를.

오래전 회사에 입사해 처음 뵀을 때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아니 더욱 강렬해진 존재감. 예전의 강 회장이 이무기였다면, 지금은 용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 강 회장이라면 어쩌면 지금 일어나는 사태를 단지 주시하고만 있는 게 아니라, 한편으로는 즐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뿌리를 둔 후계자라도 이왕이면 강할수록 좋은 법.

서로 물고 뜯더라도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난 새끼야말로 제왕의 품격을 획득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번 싸움은 오히려 강 회장에게 있어서 좋은 일인지 모른다.

“회사 자금은 일절 손도 대지 않았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그야……. 쯧, 그건 다행입니다만.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하고 지게 되면, 그땐 어쩌려고 그런답니까?”

“안 져. 아니 질 수가 없는 싸움이네.”

여전히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임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장동일 상무를 믿는다는 의미였다.

더불어 대삼한 그룹의 적통. 강형식의 저력 정확히는 규모를 알 수 없는 자금에 대한 은근한 믿음이 한몫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그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의는 빌려주고 있지만…….

‘대체 자금이 얼마나 많기에……?’

아주 오래전, 강형식이 죽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었는지도.’

지금까지 매수해 보유하게 된 주식의 양만으로도 단지 소문이 아니라는 증거인지 모른다.

임진우의 눈빛이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어쩌면 이 싸움……. 해볼 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

재계가 들썩거렸다.

삼한 전자에서 한서 사운드를 협력사로 지정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인데, 여기에 더해 삼한 그룹의 계열사인 삼한 식품에서 한서 사운드의 주식을 5%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으니 주식시장은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안 그래도 상한가를 치고 있던 주가인데, 삼한 식품에서 벌써 한서 사운드의 주식을 7%까지 끌어모았다는 소문이 파다한 것이다.

항간에는 한서 사운드의 신화라고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거품이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삼한 식품 측에서 한서 사운드 쪽에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멍청한 놈.”

강윤식은 기사를 읽고 난 뒤, 혀를 끌끌 차며 자신의 사촌을 비웃었다.

그러더니 중얼거렸다.

“그래도 제법이긴 하다만.”

기껏해야 5%나 될까 싶더니, 어느새 7%를 넘겼다는 보고를 받았다.

강형식만 아니라면 잘했다고 칭찬해줄 만도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아마도 놈은 자신처럼 한서 사운드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해 삼한 전자에서의 입지를 높이려던 거 같은데.

문제는 그 상대가 단지 드러난 면, 즉 한서 사운드의 대주주가 최명식이란 것만 보고 덤벼들었다는 데 있다.

그러니 웃을 수밖에.

그 뒤에 무려 18%나 가진 자신이 있다는 걸 모르고 말이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다.

최명식이 보유한 주식 12.7%.

자신이 가진 주식 18%.

여기에 백기사를 비롯해 우호지분까지 포함하면 39%가 넘는다.

이걸 다 더하면 거의 70%에 육박한다.

이 정도면 할아버지가 와도 뒤집지 못한다.

그런데 무슨.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속할 필요는 있을 터였다.

강윤식은 전화를 들어 올렸다.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자 저쪽에서 먼저 눈치채곤 빠르게 말해왔다.

- 아이고, 안 그래도 연락을 드려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던 참입니다.

희망 투자증권사의 대표이사 박권순.

한서 사운드 주식 3% 보유.

현재 최명식과 자신에게 우호적인 곳으로 일테면 백기사다.

더구나 이번 일을 통해 꽤 짭짭할 수익을 올렸을 터이니 이처럼 반갑게 전화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들었습니다. 다음 주에 한서 사운드에서 임시총회를 소집한다고.”

- 예. 그 문제 때문에 머리가 아프네요.

“머리 아플 게 뭐가 있습니까? 소신대로 하시면 될 일이지요.”

- 아, 그렇습니까? 전 또……. 그게 그렇지 않습니까? 임시총회를 소집한 쪽이 삼한 계열이다 보니…….

“걱정 마시고, 하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잘 좀 부탁합니다.”

- 아이고! 저희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강윤식의 입꼬리가 다시 한번 치솟았다.

그렇게 비릿한 표정이 된 그가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예상대로 방송은 대박이었다.

요즘 워낙 바쁜 탓에 드림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내준 차 안에서 핸드폰으로 시청해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아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 와아! 무슨 음식들이!

- 보양식이 저렇게 많았나?

- 그나저나 이번엔 누가 떨어지려나?

- 근데, 예고편 보니까…… 한청 떨어지나요?

- 제발, 우리 청이는 떨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 우리 수아도.

- 토미 오빠 홧팅요!

- 지금 그래 봐야 소용없음. 이거 생방 아니거든요.

- 몰라 몰라. 갈수록 꿀잼.

- 팝콘은 아니지만, 피자 시켜놓고 봤음.

- 난 보다가 못 참고 삼계탕 먹으러 뛰쳐나감.

- 여름이 힘든 건 다 마찬가진가 보네요. 인종, 언어가 달라도 먹고 힘내서 열심히 사는 건 똑같네요.

- 갓솁도 한결같음요.

- ㅋㅋㅋ 갈수록 카리스마 뿜뿜.

- 류승렬 귀여움.

- 헐, 마초과인데?

- 센 척하면서 음식만 보면 강아지처럼 눈 반짝이는 거…… 반전 매력.

여전히 방송 말미에 뜬 예고편은 기가 막힌 편집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었다.

하여간 신현정 PD의 편집 실력은 진짜.

아니, 감각인가?

아무튼 예고편만 보자면 한청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또 먹혀서 시청자 게시판이 와글와글.

어찌 됐든 갈수록 흥미롭다는 평가가 대부분. 시청률도 잘 나올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조심해서 들어가.”

“예, 형. 쉬세요.”

저택 앞에 날 떨구곤 차를 몰아 사라지는 김호준을 보다가 이내 돌아섰다.

“서진영입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린다.

그리고 잠시 후, 난 간만에 수납고에 와있다.

녀석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딸깍……. 푸쉬익.

맥주캔을 따자마자 거품이 올라와 잽싸게 입을 가져가는데, 강형식이 물어왔다.

“촬영은 다음 주?”

“응. 수요일에 하자네.”

“그래? 그럼, 이번이 패자부활전인가?”

“아니. 예선 한 번 더 치른 후에.”

“아, 지금 32명 남았던가?”

그렇지……하며 맥주를 쭈욱 들이켜곤 이번엔 내가 물었다.

“다음 주지?”

“기사 봤구나?”

“안 봐도 알 정도더구만. 하도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서.”

피식하더니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한쪽에 세워둔 차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날 부른다.

돌아보지 않은 채로.

“진영아.”

“……?”

“너, 감나무를 어떻게 접붙이는지 아냐?”

“글쎄, 그냥 잘라서 붙이면 되는 거 아냐? 음, 근데 어떤 나무에 붙이는 거더라?”

“고욤나무.”

아, 맞다.

같은 감나무과지만, 고욤나무에 열리는 열매는 과일로는 못 먹는다. 약재로 쓰면 몰라도.

대신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붙이면 주먹만 한 감이 주렁주렁 열리게 된다.

“근데, 그게 뭐?”

내가 되묻자, 녀석이 날 돌아본다.

그러곤 다시 물어왔다.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붙이면, 그건 고욤나무일까? 아니면 감나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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