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1. 뿌리가 같다고 한 나무는 아니다 (1) (191/204)

#191. 뿌리가 같다고 한 나무는 아니다 (1)

호텔 쪽으로 난 차창으로 삐죽 나와 있는 렌즈. 카메라를 들고 있던 박철준이 구시렁거렸다.

“아니, 그걸 왜 잃어버려선…….”

운전대를 잡고 있던 오병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시끄럽고, 사진이나 제대로 찍어.”

“아, 짜증 나니까 그러죠. 애들 장난도 아니고. 드림 엔터테인먼트? 저 새끼 소속사에서 소송한다고 협박한다면서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앞뒤 정황상 저 새끼가 숨어들어서 사진 가져간 게 분명한데. 누가 누굴 소송하겠다는 건지. 하아. 차라리 이럴 바에는 그냥 확 납치해버리죠?”

“조용하라고 했다.”

오병수는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삼한 전자에서 협력사로 한서 사운드를 초이스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다.

‘성격상 가만있을 놈이 아닌데…….’

머릿속에 강윤식을 떠올린 그는 한차례 눈살을 찌푸렸다.

재벌 출신답게 오만하며 세상 거칠 게 없다는 듯 행동하는 강윤식. 능력도 대단하지만, 때론 교묘하다고 할 정도로 약삭빠르기까지 한 남자. 목표로 삼은 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뤄내고야 마는 독심까지. 무엇보다 그에겐 대한민국 최고라는 삼한 그룹, 즉 배경이 있다.

평소 하는 행동을 보면 상대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리를 끊어내 버릴 수도 없다.

돈도 돈이지만, 어지간하면 적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그런 강윤식을 상대로 강형식과 서진영이 무슨 배짱으로 맞서는지 모르겠다만.

그야 자신이 알 바는 아니고.

‘일단 뭐라도 꼬투리 잡을 만한 거로 찍어가야겠지.’

한숨을 푹푹 내쉬던 그의 시야에 도심 밤하늘에 걸려있는 달이 들어온다.

“이런 날은 그저 포장마차에서 대포나 한잔하면 딱인데.”

***

한때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에 있던 대현 그룹. 재벌 총수의 생일잔치답게 파티는 화려했고, 그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의 면면은 더더욱 화려했다.

각 그룹의 회장, 사장, 이사들. 협력 업체에서 나온 이들까지 포함해 얼굴만 보자면 이곳이 전경련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정계 쪽에서도 많이 왔는데, TV만 틀면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정치인이 다수 보였다.

닳고 닳은 3선 국회의원부터 이제 막 국회에 입성한 초선 의원까지, 대현 그룹에 잘 보이려는 인사들이 당사자인 회장에게 몰려가 어떻게든 얼굴도장을 찍으려는 모습이란…….

뿐만 아니다.

정부 각처에 이름을 올려둔 장관, 차관에 이름만 대면 누구라도 알 연예인까지. 흔히들 상류층이라 말하는 이들이 모여 파티를 벌이는 모습은 이곳이 마치 대한민국 속의 또 다른 한국이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그런 이들 가운데서도 이하연은 유독 빛나고 있다.

저런 여자가 내 애인이라니.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니래 뭘 기렇게 쳐다보네?”

갑작스럽게 들려온 음성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자, 고윤수 주방장님이 픽하고 웃으신다.

“뭐이네? 닭이라도 훔쳐 먹은 표정은?”

“아, 아닙니다.”

이하연을 한차례 다시 보곤, 시선을 얼른 돌리며 괜히 행주를 들어 도마를 쓸어내렸다.

그런 나를 고윤수 주방장님에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홀 쪽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불쑥 얘기하셨다.

“햐아, 예쁘기도 하디.”

“…….”

“서진영이.”

“예?”

고윤수 주방장님이 뒷짐을 진 채로 내게 물으셨다.

“니래 연애하디?”

“……!”

놀라서 쳐다보는데, 고윤수 주방장님은 별말씀 없이 옅게 웃으실 뿐이다.

여전히 이하연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로.

얼마나 놀랐는지, 딸꾹질이 다 나올 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윤수 주방장님은 말씀을 이어갈 따름이다.

“기게 기렇게 놀랄 말이네? 내래 말했디? 니래 다 좋은데, 간이 너무 작다고. 쯧, 지레 겁먹디 말라우. 혹시 아네? 니래 몇 년 후에는 여기가 아니라 저기 서 있을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별일 없다는 듯 뒤돌아 걸어가시는 주방장님의 뒷모습을 나는 그저 멍하게 바라보았다.

***

저녁 9시. 파티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대현 그룹의 회장님, 그러니까 이하연의 할아버지가 워낙 고령이라 먼저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하연하고도 제대로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뭐,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이번 주말에 보기로 했으니, 며칠만 참으면 되는 일이다.

“감사했습니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여기까지 찾아와준 고윤수 주방장님, 김진호 셰프, 준석이 형 그리고 한청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후 주방 스태프로 일해준 요리사들에게까지 수고했다는 얘기를 한 후에야 호텔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달칵.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괜히 미안해서.

“그냥 퇴근하라니까. 택시 타고 가도 되는데.”

“괜찮아요. 어? 근데 일행분들은?”

“누구? 아, 그분들은 각자 자기 차 타고 갔지.”

뭐, 고윤수 주방장님은 김진호 셰프가 모는 차를 타고 돌아가긴 했지만.

“일은 잘되신 거죠?”

“뭐, 그럭저럭.”

씨익 웃어 보이는 김호준를 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톡이 와 있다.

- 집에 왔어요.

- 오늘 진짜 고생했어요.

- ㅎㅎㅎ 우리 할아버지, 완전 기분 띵호와인 거 있죠.

- 아, 아빠가 언제 한번 보재요.

- 지난번엔 바빠서 제대로 얘기를 못 해봤다고 하시면서.

- 아직 안 끝났나?

- 이따 새벽에 연락할게요.

평소와 달리 중간중간 텀을 두고 날아든 톡들. 그녀 역시 바빴으리라.

한 집안의 가장. 특히나 대현 그룹처럼 대단한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의 생신이었으니 당연한 얘기다.

머릿속으로 그 큰 눈을 깜빡거리며 웃고 있는 이하연을 떠올리며 웃었다.

“음, 한서 사운드?”

그러다가 인터넷을 켰는데, 느닷없이 나온 기사에 침음을 흘렸다.

“아, 한서 사운드요?”

앞에서 김호준이 아는 체한다.

“알아?”

“그럼요. 거기 이 바닥에선 유명해요. 음향파일 압축 기술이랑 DAP 쪽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알아주거든요. 그러다 보니 거기서 나온 장비들이 진짜 끝내주는데, 완전 프로듀서들의 워너비? 크크큭, 하여간엔 비싸긴 엄청 비싼데 그래도 그걸로 음원 뽑아내면 결과가 확실하니까요.”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요. 아, 저도 아까 심심해서 인터넷 봤는데. 삼한 전자에서 한서 사운드와 협약 맺었다고 하더라고요.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주식이라도 좀 사놓는 건데. 아무튼, 이제 삼한 전자는 또 한발 크게 앞서가겠네요. 피치사는 몰라도 LZ 전자는 확실히 재꼈다고 봐야겠죠.”

김호준의 얘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서 사운드라…….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회사 이름인데.

나중에 강형식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떠올렸다.

명함.

작년에 김진숙 회장에게 받았던 명함이 떠올라, 언제 녀석에게 말해야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처음으로 주도하게 된 파티라 그런지, 긴장이 풀리며 몸이 늘어지는가 싶더니 급격히 졸음이 몰려왔다.

결국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자, 기다렸다는 듯 의식이 멀어지며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지는 중이다.

아침엔 주방 일을, 그 후론 성원시로 출퇴근하며 백화점 모델 일을 하다 보니 며칠이 후딱 가버렸다.

벌써 목요일.

내일이면 <맛있는 도전>의 3회차 방송이 나간다.

다행이라면 사람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주 방송이 재밌던지, 인터넷이나 SNS에서 다들 기대하고 있다는 얘기뿐이다.

3차 예선에는 어떤 과제가 주어질 거라는 둥, 또 누가 떨어지고 누가 붙을 거라는 둥. 지난주 방송 끝자락 예고편에 신현정 PD가 떡밥으로 뿌린 영상을 보곤 갑론을박하는 모습들이다.

“이번 주에는 촬영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김호준이 핸들을 잡은 채로 얘기했다.

“모레부턴 코디가 출근한다고 하니까, 좀 편하실 거예요.”

“글쎄다. 솔직히 아직도 좀 의문이다. 과연 나한테 코디씩이나 필요한지.”

“에이, 그건 아니죠. 형은 다 좋은데 자각이 좀 부족하신 거 같아요. 뭐, 그게 다 겸손해서 그러신 거겠지만 그래도 할 땐 해야죠. 남들 다 아침부터 샵에 들렸다가 촬영 들어가는데 형만 맨날 방송국 신세 지는 거, 전 좀 그렇더라고요.”

“뭘 또 그렇게까지. 됐어. 지금도 충분하다 못해 넘쳐.”

“예, 예. 형님이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거겠죠.”

자식.

며칠 사이 부쩍 친해져서 이젠 농담도 곧잘 하는 김호준을 보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요즘 너무 바빠서 그런지, 강형식을 만난 지도 꽤 됐다.

음, 아닌가?

지난주에 봤던가?

아우, 모르겠다.

진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탓에, 어제 있던 일도 잘 기억이 안 나는 터라.

하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녀석도 엄청 바쁜 모양이던데.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얼굴 못 본 지 며칠밖에 안 됐는데도 몇 달은 안 만난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뭐, 바쁘면 좋은 거지.

그만큼 일이 잘되고 있다는 거 아니겠어?

그렇긴 한데, 의아하긴 하다.

신제품 출시에 앞서 요리 시연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뭔가 다른 일이라도 있는 건지.

눈을 가늘게 해 보였다가 이내 픽하고 웃어버렸다.

애도 아니고,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한서 사운드의 대표 자리에 있는 최명식은 보고받은 즉시 회사로 달려온 참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전략본부장의 대답이 이어졌다.

“워낙 은밀하게 이뤄져서 그만…….”

“그게 말이 됩니까? 주식시장이 들썩거릴 정도인데, 그걸 몰랐다고요? 하아, 눈은 폼으로 달고 있습니까? 하다못해 찌라시까지 돌고 있어요! 한데,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다고만 하면 그만인 겁니까!”

“고, 고정하시고. 일단 사태를 파악 중이니, 조금 더 기다려보시죠.”

머리가 살짝 벗겨진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전략본부장을 바라보던 최명식이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대체 누가……! 이 정도 속도면 이쪽에서 알아채는 건 당연한데, 그런데도 이렇게 빠르게 치고 들어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했다.

그의 뇌리를 스치는 불길함의 정체.

M&A.

그것도 공격적 M&A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아마도.

“후우, 인수합병이 목적인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밖에서 노크한다.

전략본부장이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주자, 최 과장이 들어왔다.

그러곤 사색이 된 얼굴로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의 얼굴을 한차례 보곤 전략본부장이 빠르게 서류를 훑었다.

“이, 이런!”

눈에 띄게 어두워진 표정이 되어 전략본부장이 황급히 최명식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주식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후우, 누굽니까?”

“그, 그게…….”

말을 채 잇지 못하는 전략본부장을 보다 최명식이 얼른 손을 뻗어 그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듯 가져갔다.

그러곤 급히 펼쳐서 읽어 내려가는데, 최명식의 얼굴이 무서운 속도로 붉어졌다.

꽝!

급기야 화를 참지 못한 최명식이 책상을 내리치곤 고함쳤다.

“어째서!”

그걸로도 모자라 이가 부러질 정도로 갈아대던 최명식이 분노 가득한 음성을 토해냈다.

“얼마나 우릴 우습게 봤으면……!”

숨겨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대놓고 엿을 먹이다니.

얼굴이 붉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최명식. 금방이라도 씹어먹을 듯한 눈빛이 되어 서류에 쓰인 회사 이름을 쳐다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던 입술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삼……한!”

자신이 가진 지분 12.7%.

그에 비해 삼한 그룹. 정확히는 강윤식이 가지고 있는, 비록 그의 이름을 내세우진 않고 차명을 동원해 지배하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지닌 주식은 거의 18%에 달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자면 회사의 대주주는 자신이지만, 실질적으로 회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강윤식이란 얘기다.

그런데도 최명식이 그동안 안심하고 있던 이유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들이 지닌 주식 39%를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과 합치면 과반수에 달하기에 강윤식이 중간에 어떤 농간을 부리더라도 경영권만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강윤식과는 한배를 타고 있다고 믿었건만,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고나 할까.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전쟁터나 다름없는 재계. 이곳에서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는 걸 잊고 있었다니.

와락 하고 표정이 무너진 최명식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최명식.”

최명식의 목소리가 서리라도 낀 듯 차갑기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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