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도약 (2)2021.11.10.
“아, 예……. 안녕하세요.”
“아이고! 반갑습니다! 이거 일진이 좋으려나 보네요. 하하하, 방송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뭐라 할 말이 없어, 나는 좌석에 몸을 묻고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한마디로 말 시키지 말아 달라는 일종의 시위였다. 하지만 기사 아저씨는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반가워서 그러는 건지 끊임없이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이놈아, 요리사는 아무나 되는 건 줄 아냐? 너처럼 놀기 좋아하는 놈은 죽었다 깨도 못 한다! 하아, 그러니까 아들놈이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서 셰프님도 고등학교까지밖에 안 나왔다고…….”
후우, 미친다. 별걸 다 알고 계시네. 기사 아저씨 아들도 인터넷에서 본 거겠지? 진짜 문제다, 문제.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클릭 한 번이면 1초도 안 돼서 개인정보를 볼 수 있다는 건. 아니, 보호는 안 되는 건가? 쯧, 그래. 다 좋다 이거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건……. 제발 가족과 지인들에게 피해만 가지 않으면 좋겠다. 유명해지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차가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안까지 들어갈까요?”
“아뇨.”
“왜요? 집도 어마하게 큰데, 설마 걸어가시려고요?”
고개를 숙이고 창유리를 통해 저택을 바라보던 아저씨가 혀 차는 소리를 낸다.
“그러지 마시고 들어가시죠. 돈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미터기 끌 테니까.”
친절하게 말씀하는 아저씨라서, 화를 낼 수도 없다. 호의로 그러는 건데 무작정 거절하기도 그렇고. 결국 사정을 얘기했다. 후우,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여기, 삼한 그룹 회장님댁이에요.”
“어! 진짜요? 아, 여기가 삼한 그룹 회장님댁이구나. 진짜 장난 아니네요. 어라? 서 셰프님도 여기 사시는 겁니까? 와아! 역시 대단하시네요.”
“……여기 근무하니까요.”
“아하! 그러셨구나. 알겠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안까지 차가 들어가진 못하나 보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기사 아저씨께 돈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씨익 웃더니 말한다.
“돈은 됐수다.”
“예?”
“대신, 아들내미한테 사인이나 한 장 해주십시오. 왜 있잖수? 공부 열심히 하면 성공할 거다! 라는 식으로 몇 마디 적어주시면 좋고요. 이왕이면 사진도 한 장 찍어주시고. 쯧, 자식이 뭔지…….”
난 가만히 아저씨를 보다가 다시금 돈을 내밀었다. 응? 하는 눈빛으로 날 보시는 아저씨.
“받으세요. 사인은 해드릴 테니.”
“허! 이러면 안 되는데…….”
멋쩍게 웃으시는 아저씨의 손에 돈을 쥐여 드렸다. 그러자 마지못해 받으신다.
“주세요.”
“예……. 여기.”
종이와 펜을 건네는 아저씨. 그의 손에서 종이를 건네받았을 때, 아저씨가 말했다.
“오성훈. 아들 이름입니다.”
슥슥……. 사인펜이 종이 위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조용한 가운데 들려온다.
“여깄습니다. 아, 사진 찍어야죠.”
찰칵.
“됐나요?”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쇼.”
“예. 아저씨도 운전 조심하세요.”
차 문을 열고 내렸는데도, 아저씨가 창문을 내리곤 꾸벅 인사를 해온다. 옅게 미소를 머금고서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부우웅……. 멀어지는 택시의 후미등을 보다가 한숨을 얕게 흘렸다.
*** <대한민국은 지금 요리 열풍?> <한국 최고의 요리연구가 백두진……. 갓솁 신드롬은 이미 예견되었던 일.> <청소년들 희망직업 1위부터 5위까지.> <맛있는 도전 오디션 참가자들의 이모저모.> <한진석, 신현정 피디 사단?>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에서 맛있는 도전으로 이어지는 갓솁의 활약.> <서진영 셰프. 방송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다.> <지난 한 해 갓솁이 찍은 CF는?> <갓솁이 광고에 출연한 상품들, 매출 일제히 수직상승.> < KS 자동차 영업본부장이 밝히는 서진영과 NEW SJ7의 궁합. > <일찌감치 광고로 갓솁 품은 회사들의 주가 상승은 우연인가?> <방송가와 광고판, 갓솁을 잡아라.> <맛있는 도전, 첫 방송 시청률 28%.> <충무로의 투자가들 갓솁에 대한 관심 증대?> 후우, 난리도 아니다. 첫 방송이 나간 지 사흘이 지났음에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내 이름이 들어간, 혹은 나와 관련된 기사들이 쉴 새 없이 뜨고 있다. 진짜 뭐냐고. 딱히 그럴 만한 일을 한 거 같지도 않은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뭐, 그래. 우연이든 뭐든, 그렇다 치자. 문제는 이제 어떻게 하느냐다. 저택 안에 있을 때야 상관없지만, 밖으로 나갔을 때가 큰일이다. 이래서야 뭔 일인들 제대로 하겠냐고. 고민하다가 녀석에게 털어놓았더니, 웃고 자빠졌다.
“웃기냐? 웃겨?”
맥주캔을 집어 던질까 말까 고심하고 있을 때, 강형식이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여전히 끅끅거리며 웃음기가 남아있는 목소리였다.
“뭘 또 그렇게 심각해져서 그래? 못 들어봤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
“장난 아니거든? 진짜 심각하다고.”
“풉. 야 너……. 안 어울리니까, 제발 그렇게 무게 잡지 좀 마라. 솔직히 그날 방송 보고 나 밥 먹다가 뿜을 뻔했다니까. 카리스마? 크크큭. 대한민국에서 섬세한 거로 치면 상위 1%에 들어갈 녀석한테……. 크큭.”
상위 1%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계속 놀릴 거면…… 난 간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녀석이 서둘러 내 팔을 잡아챈다. 그러곤 차고 한쪽으로 날 끌어당기더니 딴소리를 해댄다.
“차는 잘 타고 다니냐?”
“뜬금없긴. 야,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 차 도로 가져가라.”
“응? 왜?”
“왜긴. 너무 화려해. 게다가 어지간히 비싼 차라야지. 주차 한번 할 때마다 손이 벌벌 떨린다. 누가 긁기라도 할까 봐.”
“주차장에 넣으면 되잖아. 요즘 주차장들 관리 잘할 텐데?”
“그런 곳은 요금도 만만치 않으니 문제지.”
“나참. 벌 만큼 버는 녀석이 우는 소리는. 그냥 타 인마. 그래 봐야, 차야. 그리고 그 차 내가 산 것도 아니라서 크게 애정도 없어.”
“그럼, 그 차……. 설마, 회장님이?”
다시금 씩 하고 웃어 보이는 강형식. 기가 막혀서 소리쳤다.
“미, 미친놈! 그런 걸 주면 어떡해!”
“괜찮아. 할아버지, 나이 드셔서 그런가 몇 해 전부턴 아예 여기 오시지도 않는데 뭘. 그리고 요즘엔 요트 쪽에 더 관심이 많으신 것도 같고. 아, 내가 말했던가? 우리 회사에서 어쩌면 크루즈 사업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것도 할아버지의 바뀐 취미랑 아주 관련 없는 것도 아닐걸?”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녀석을 보다가 끙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런 나를 피식거리며 보던 강형식이 맥주캔을 입에 대고 털더니 빈 깡통을 한쪽 구석에 있는 휴지통에 집어 던진다.
“차 타고 다니는데 뭔 걱정이야? 어차피 걸어 다닐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사람들 얼굴 안 보고도 돌아다닐 수 있잖아? 방송국? 영화관? 백화점? 요즘 때가 어느 땐데. 막 몰려들어서 덤벼들겠냐? 막말로 무시해도 되고 그게 싫으면 사인이랑 사진 몇 장 찍어주면 되는 거잖아? 아니면 선글라스랑 모자 쓰고 다니든가. 뭐가 문젠데?”
……참 쉽게도 얘기한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되니까 그러지.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또 또, 그 소리.”
“그래.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인정한다. 공인? 거기까진 모르겠고, 방송인이라는 자각 정도는 한다고. 그렇긴 한데, 이래도 되나 싶을 때가 있다니까? 뭐랄까, 붕 뜬 느낌? 하아, 진짜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자고 나니까 스타라는…… 아, 내가 스타라는 건 아닌데, 아무튼 그 말이 막 실감 나면서…….”
“무서워?”
“……그렇게까진 아닌데, 비슷해.”
잠시간 녀석과 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날 빤히 쳐다보던 강형식이 천천히 일어나더니 냉장고로 가서 맥주를 두 캔을 꺼내온다. 그러곤 내게 하나를 내밀곤, 자신의 것을 거침없이 땄다. 거품이 튀는 맥주를 입가로 가져가며 녀석이 중얼거렸다.
“엄청 바쁜데, 고민 있다고 해서 만났더니만……. 맥빠지네. 너무 당연한 걸 얘기하니까.”
“…….”
“크으. 역시 여름에는 맥주가 최고지.”
“아직 여름 아니거든.”
“야, 서진영.”
“.....?”
“왜 사람들이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는 줄 아냐?”
“……성공하려고?”
“그건 결과론이고.”
“그럼?”
“남들보다 더 멀리 보고, 또 인생을 최적의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생각해보라고. 그럼 좋은 대학만 가면 끝인가? 아니잖아? 거기서도 경쟁에 경쟁을 반복해야 하지? 왜 그럴까? 적당히 학점 받고 어떻게든 졸업장만 따면 목구멍에 풀칠하고 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그런데도 왜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혹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까? 돈 때문에? 크큭……. 요건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요즘은 결혼도 스펙이 좋아야 할 수 있다니까.”
“요점이 뭔데?”
자꾸만 말을 빙빙 돌리는 거 같길래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더니, 강형식이 맥주캔을 탁하고 내려놓았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거지.”
“……!”
“네 능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든, 운이 좋아서 그랬든 간에…… 남들은 꿈에서조차 바라는 일이야. 나? 뭐, 돈 많은 집안에 태어난 덕분에 좀 쉽긴 한데, 그렇다고 그게 만능은 아니거든? 솔직히 지금의 너라면 뭘 하든 실패할 확률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을걸? 당장 다 때려치우고 나가서 붕어빵 장사를 해도 성공할 거다. 그에 비해서 나는? 알잖아? 아직도 빌빌거리는 거. 강윤식 눈치도 봐야 하고, 한술 더 떠서 작은아버지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끙끙거려야 하고, 할아버지가 회사 일에서 손 떼라고 할까 봐 가끔은 잠도 설치거든? 너 이런 기분 아냐? 근데, 이게 나만의 문제인가? 아니. 다들 그러고 살아. 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듯이. 알겠냐고?”
할 말이 없었다. 뭘 얘기하려고 하는지도 알겠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녀석이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 보였다.
“너 이제 일반인 아니다. 셀럽? 아무튼, 유명인사라고. 그러니까, 거기에 맞게 행동해. 아니, 생각부터 바꿔라. 위치가 달라졌는데, 아직까지 정신머리가 밑바닥을 기고 있으면 어쩌냐고. 몸이 뛰면 정신도 도약해야지 않겠어?”
도약이라……. 후우, 솔직히 아직도 실감은 안 된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고 있을 때였다.
“너로서는 너무 갑작스러워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작년부터 네가 차근차근 쌓아온 인지도가 지금에 와서 폭발한 거라고. 하아, 이렇게 말한들 귀에 들어올까 모르겠다만. 어쨌든, 사람들이 아는 척하는 게 귀찮으면 헬스클럽이라든지 너 다니는 곳들 싹 다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바꾸든지 하고, 그게 싫으면 그냥…….”
“…….”
“즐겨.”
아무 말 못 하는 내게, 녀석이 한마디 덧붙였다.
“넌 그럴 자격 충분해.”
*** 강형식과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당연히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하다. 뭐랄까. 무슨 소리 하는지도 알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뭔가 싶었다. 내가 원한 건 유명해지는 게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꿈은 실력 있는 요리사가 되어 나만의 가게를 여는 것이었고, 근래 들어선 강형식을 도와 녀석을 번듯한 사업가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 정도가 내가 지닌 꿈이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이렇게 돼버렸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물론 당장에는 좋은 거다. 그러나 과연 나중에도 그럴까? 인생은 길다. 그 길고 긴 마라톤 중간에 달콤한 물을 마시는 게 좋기만 한 일일까? 뭐,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소됐다는 측면에선 더없이 좋은 일이다만. 그 외에는 사실 판단이 안 된다. 이러다가 지금의 상황에 길들여져 버리면, 그동안 내가 상상해왔던 꿈을 저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숙소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중형차 한 대가 내 곁을 지나간다. 그러다 저만치 가서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낯익은 사람이 내리고 있었다.
“서진영이. 뭐이네? 어깨는 축 늘어져 가디고. 니래 에미나이한테 차이기라도 한 거이가?”
고윤수 주방장님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