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 오디션 3차 예선 (3) (166/204)

#166. 오디션 3차 예선 (3)2021.10.22.

버저 소리와 함께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몇 명은 허겁지겁 마무리하느라 부산을 떨기도 했지만, 경연이 처음이 아닌지라 그조차도 금세 사라졌다.

“정말 냄새가 끝내주네요! 마음 같아서는 바로 달려들어 맛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아! 게다가 비주얼도 압도적인데요. 그냥 보기만 하는데도 침이 고일 지경이네요.”

한진석이 멘트뿐만이 아니라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장내를 둘러보더니 류승렬에게 묻는다.

“류승렬 씨, 어떻게 보셨나요?”

“장난 아닌데요?”

혀를 내두르며 녀석이 너스레를 떨었다.

“여기, 진짜 오디션장 맞아요? 전 무슨 수능시험장인 줄 알았습니다. 다들 열기가……! 솔직히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요, 깜짝 놀라서 보는 내내 손에 땀이 차더라구요. 하아! 이 정도까지 노력하시는 줄은 진짜 몰랐습니다.”

“크크큭. 엄청나다는 얘기를 지인짜! 길게 하시네요.”

“그러게요. 보고 있으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네요.”

“자, 그럼. 여기서 또 우리 미인 요리연구가분의 말씀을 안 들어볼 수가 없겠죠? 심혜미 씨?”

촬영 전부터 지니고 있던 채점표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던 심혜미가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물었다.

“류승렬 씨의 얘기에 백프로 동감합니다. 저 역시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마추어분들이겠거니 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습니다만, 막상 와서 보니 가슴이 너무 뛰어서 볼 수가 없을 정도네요. 빈말이 아니라, 채점하는 내내 고민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이분들 중 누굴 떨어뜨려야 하는지……. 절 불러 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왜 섭외에 응했을까 후회했다니까요.”

“역시!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예쁜 마음을 지니셨군요. 음, 다음으로는 서 셰프님의 말씀을 듣……고 싶지만, 그랬다간 지금 이 좋은 분위기를 싹 다 망칠 것 같으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왜요?”

류승렬의 물음에 한진석이 씨익 웃어 보였다.

“왜긴요. 잘 아시면서. 서 셰프님, 평소엔 완전 스마트하고 다정다감하신데 카메라면 돌아가면 엄청 쿨해지시잖아요? 더구나 여기 있으신 분들 절반은 떨어뜨려야 하니, 저분 성격에 또 얼마나 대차게 까시겠어요? 하아,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폭풍 오열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네요.”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참네, 어이가 없다. 꼭 나만 그러는 것처럼. 지난주와는 달리 오늘은 팀별 대항이었고, 게다가 팀별 점수가 좋다고 해도 요리 내내 보여준 태도라든가 기본기가 안 좋으면 그것 또한 점수에 영향을 미쳐 당락을 결정하게 만드는 현재, 나뿐만이 아니라 류승렬, 심혜미까지 다들 한 손에 채점표를 들고 있었다. 당연히 그것들은 장식이 아니다. 지난 한 시간 동안 스튜디오 안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닌 것도 다 이 때문. 오디션 시작 전만 해도 텅 비어 있던 칸들이 이미 펜이 그어놓은 표식으로 가득 찬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오늘도 제가 악역이군요?”

어깨를 한차례 으쓱거리며 묻자, 한진석이 익살스럽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하. 지난번 오디션 때도 잘해주셨지 않습니까? 이왕 그렇게 된 거 쭈욱 가시죠?”

류승렬이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고, 심혜미마저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는 걸 보면서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죠. 다들 기다리는 눈치니.”

“오 이런! 저희가 방송 분량 챙기는 데에만 정신이 나가선……. 죄송합니다! 버저 울리기 전까지,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열정적인 요리를 해주신 참가자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지금부터 음식을 맛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석의 말이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패널들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러곤 무리를 지어 스튜디오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오오! 여름철 보양식은 역시 삼계탕이죠!”

“음…….”

“류승렬 씨, 맛이 어떤가요?”

“와! 이거 당장 팔아도 되겠는데요? 팔기만 하면 모르긴 몰라도 대박 날 거 같아요!”

류승렬의 말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삼계탕을 그릇에 떠줄 때까지만 해도 한껏 긴장한 모습이었던 두 명의 참가자는 화색이 된 얼굴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중 한 명이 떨리는 음성으로 얘기하자, 류승렬이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요. 제가 투자할 테니까, 진짜로 가게 한번…….”

그런 녀석의 팔을 한진석이 과장되게 치며 호통쳤다.

“이 사람이! 맛 얘기를 하라니까, 사심을 품어! 안 되겠네! 진짜! 대체 맛이 어떻길래……. 응? 진짜 맛있는데?”

눈이 동그래져서 삼계탕 국물을 게걸스럽게 떠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속으로 웃음을 흘리며 나 역시 그릇을 들어 맛을 보았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이 정도라면 장사를 해도 될 정도는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류승렬이 저렇게 오버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런데도 저 녀석이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건……. 둘 중 하나. 방송을 생각해 일부러 과장되게 행동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진짜로 그렇게 느낄 정도로 미각이 형편없든가. 녀석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자면, 아마도 후자이겠지. 그럼에도 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네요.”

이렇게 말한 것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날 쳐다보는 참가자들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 남아 있는 팀만 육십이 넘는데, 벌써부터 혹평을 하면 기준이 너무 높아져 버리는 셈이다. 뭐, 평가 기준이라는 게 너무 낮아도 문제지만 너무 높이 잡아도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그랬다가 이보다 나은 실력의 팀들이 열 자릿수 미만으로 나오게 되면, 그보다 더 당혹스러운 사태도 없을 터. 그렇다고 해서 그때 되어서 이제까지 평가한 팀들이 사실은 실력이 좋았노라고 말을 바꾸는 것도 우스울 테고. 그러니 우선은 말이라도 좋게 해야 한다. 어차피 진정한 평가는 채점표에 다 적혀 있으니까. 한마디로, 맛있지만 박빙의 승부 끝에 아쉽게도 탈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자, 다음은……. 오! 이건 뭔가요? 샐러드인가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진석에 이어 류승렬과 심혜미까지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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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식. 웃고는 말했다.

“세비체네요?”

“세비…… 음, 우리나라 음식은 아닌 거죠?”

한진석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곤 간단히 설명했다.

“예. 페루 음식입니다. 라틴아메리카 버전의 회무침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보시는 것처럼 해산물을 회처럼 얇게 잘라서 레몬즙이나 라임즙에 재운 건데, 차갑게 먹으면 별미죠.”

“오오! 기대가 되는데요. 한번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식용 젓가락으로 야채와 버무려져 있는 해산물을 집어 입가로 가져가는 한진석. 그뿐만 아니라 류승렬과 심혜미 또한 맛을 보는 중이었다.

“맛있어요! 상큼하면서도 바다의 향이 물씬 풍기는 게…… 지금 제 입안에서 씹히는 건, 성게가 아닐까 싶습니다! 좋네요. 좋아!”

약간은 호들갑스러운 한진석의 평가에 이어 류승렬도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진짜 맛있네요. 근데 이거 진짜 보양식 맞나요? 자꾸 샐러드 같단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맞는 말이다. 솔직히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이나 된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 결과로 내놓은 음식이 세비체라는 건 좀 맥빠지는 일이긴 하다. 그만큼 단순해 보인다. 샐러드로 보일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다른 음식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실 푹 고거나 굽는 등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우리나라 음식이 아니면 대부분의 단품 요리들은 간단해 보이기도 한다. 물론 밑재료들을 씻고 다듬고 삶거나 굽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뭐, 결과만 놓고 보면 류승렬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겠지만.

“맛을 잘 살렸네요. 이거 한 접시면 굳이 해변가로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마 다 먹고 나면 더위가 싹 가시는 기분이 들 거 같군요.”

그래서 조금은 길게 평가했다. 덕분에 불안해하던 참가자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났고.

“정말이지, 이런 호사도 없습니다! 계속해서 참가자들이 열과 성을 다해 만들어낸 음식들을 맛보는 중인데요. 아침을 먹고 온 게 후회가 될 정도입니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류승렬 씨처럼 어제부터 굶는 건데 말입니다.”

한진석의 멘트가 시기적절하게 끼어들고, 그런 가운데 류승렬과 심혜미의 감탄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탄성이 터진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인상을 절로 찡그려질 정도로 형편없는 요리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건 너무 달아서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인 것도 있었고, 또 어떤 건 대체 밑재료를 어떤 식으로 다듬으면 이렇게 비리게 되는 걸까 궁금할 지경인 것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맛없는 요리는 극소수였다는 것이다.

“후우, 팀이 64개나 되다 보니 맛을 보는 것도 만만치 않군요.”

단상으로 돌아온 뒤, 참가자들을 마주 보고 서선 한진석이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는 제스처를 해보였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하는 눈치였지만, 그게 또 밉살스럽지는 않다. 실제로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이 먹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단시간 내에 무려 64가지 요리를 맛본다는 게 그리 쉬울 리가 없었다. 한 가지를 맛보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3분여라곤 하지만, 맛봐야만 할 요리가 워낙 많다 보니 합치면 세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린다. 나중에는 헛배가 부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입안이 다 얼얼해서 아무리 물을 들이켜도 좀처럼 입맛을 찾을 수가 없어서 잠시 쉬어야 했을 정도였다. 참가자들도 힘들긴 마찬가지. 오랜 시간 선 채로 대기해 평가를 기다려야 하는 그들로서는, 우리보다 힘들면 힘들지 쉽지는 않았을 터였다. 아무튼, 강행군이라면 강행군인 시간이 끝나고 나서 살 떨리는 시간이 다가왔다.

“후우, 이제 서 셰프님의 발표 후엔 또다시 이곳엔 희비가 엇갈리게 되겠죠. 다들 긴장되실 텐데요. 이럴 때 류승렬 씨가 노래라도 한 곡 해주시면…….”

“아, 뭡니까? 저 배우거든요?”

“왜애? 배우는 노래하면 안 되나?”

“와, 진짜! 이러려고 저 부르신 거예요? 그리고 저 음치거든요?”

딴엔 묵직하게 내려앉은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띄워보려고 하는 말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참가자들의 굳은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두 사람이 주고받는 모습이 꽤 살가워서 픽하고 웃음이 나올 정도는 되었다.

“예, 예. 저도 압니다. 손에 땀이 잘 정도로 긴장이 돼서, 저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온 거니 다들 이해해주시고요. 지금부터 합격자의 번호를 호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나는 방금 네 사람의 채점표를 합산해 도출한 합격자 명단을 하나하나 불렀다. ***

“수고하셨습니다.”

해맑게 웃는 김성희 조감독의 말에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이대로 주저앉고만 싶었다. 이런 심정은 나 혼자만은 아닌지, 한진석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심혜미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되어 기름종이인지 뭔지로 연신 얼굴을 토닥거리고 있었다. 류승렬만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박신영 작가와 낄낄거리며 농담 따먹기 중. 젊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오랜 기간 영화촬영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젠장. 한 해 한 해 가는 게 장난 아니네. 곧 서른인데 진짜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래도 운동량을 늘리든가 해야지.

“첫방이 사흘 뒤죠?”

류승렬의 음성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떨려 죽겠어요.”

박신영 작가가 앓는 소리를 내자, 류승렬이 픽하고 웃는다.

“뭘요. 어제부터 대대적으로 광고 때리더만. 그리고 일주일 전부터 1회차 방송 예고도 나오던데……. 주위에서 보니까 꽤 관심 많더라고요. 이 정도면 첫방에 시청률 좀 나오지 않겠어요?”

“후우, 몰라요. 그냥 떨리기만 해요. 케이블로 넘어와선 처음이라 그런가. 요 며칠 잠도 잘 못 잤다니까요.”

“잘될 거에요. 다른 사람도 아닌 진영이 형이랑 신 피디님이 손잡고 만든 건데요.”

“그러니까요. 저도 그것만 믿고 있을 뿐이에요.”

날 쳐다보는 두 사람의 눈빛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잘 안 되면 어쩌지? 뒤늦게 두려움이 밀려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젓곤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 신현정 피디가 스텝들과 얘기를 하다말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잡혔다. 언제나처럼 고아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베어 물고 있는 그녀. 그러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뿜어내며 그녀는 무언으로 말하고 있었다. 잘될 거니 걱정 말라고. 음, 방송이 내일이니 이미 편집은 끝날을 터. 그런데도 저런 표정이라는 건……. 그만큼 자신 있다는 얘기겠지. 마음을 다잡으며 신현정 피디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맛있는 도전>, 첫방을 하루 남겨놓고 오디션 3차 예선의 촬영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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