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오디션 3차 예선 (2)2021.10.20.
스튜디오 안이 분주해졌다. 여기저기서 두 사람씩 팀을 이룬 참가자들이 서로 어떤 요리를 만들지, 또 어떻게 만들지를 상의하고 있었고 개중에는 벌써 밑재료를 다듬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 모습을 카메라는 말할 것도 없고, 방청객들도 관심 있게 쳐다보고 있다.
“와아! 저건 뭔가요? 닭인가요?”
“그런 거 같네요.”
“오! 낙지도 보이네요! 뭘 만들려는 거죠? 연포탕인가요?”
“글쎄요. 해신탕 같기도 하고, 아직은 확실히 말하기 어렵겠군요.”
“여름을 대비한 보양식이라서 그런가. 닭이 많이 보이는데요. 닭고기가 우리 몸에 좋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육질도 부드러운 데다가 소화가 잘되고, 영양분의 흡수가 여타 고기에 비해 빠르기 때문에 곧잘 영양식의 재료로 쓰이는 거 같습니다.”
참가자들이 요리를 하는 동안, 한진석의 물음에 요리연구가인 심혜미가 대답하는 식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진짜 대단하네요! 참가자들이 많아서 그런가, 꼭 코스요리를 한데 모아놓은 듯한 느낌인데요!”
한진석의 얘기를 듣다가 문뜩 떠오르는 게 있어서 말했다.
“혹시 만한전석이라고 들어봤어요?”
“어? 만한전석이요?”
한진석이 고개를 내젓는다. 옆에 서 있던 류승렬도 모르겠다는 눈빛이고.
“청나라 때 연회에 쓰이던 음식 아닌가요?”
역시 요리연구가 답네. 심혜미의 대답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시대, 서양 쪽에서도 르네상스를 거치며 음식문화가 한껏 꽃을 피웠죠. 알고 계시겠지만, 그 즈음해서 포크며 나이프, 스푼 등이 일상화되기 시작했고요.”
“응? 그럼, 그전에는 포크 없이 밥을 먹었다는 겁니까?”
한진석의 물음이 난 두 손을 슬쩍 들어 올리곤 대답했다.
“그전엔 손으로 먹었죠.”
“윽! 더럽…….”
피식 웃고는 얘기를 이어갔다.
“인도 쪽이라든가, 다른 문화에선 제법 발달해 있던 지역에서도 손으로 음식을 먹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들어보셨죠? 먹는 손과 닦는 손을 구분했다는 얘기.”
내 얘기에 한진석뿐만 아니라 류승렬도 질렸다는 표정을 해 보이고 있다.
“아무튼, 17세기쯤부터 세계 곳곳에선 요리문화가 극에 달했는데요. 아마도 그건 그전에 비해 풍족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중에서도 만한전석은, 뭐랄까 중국판 코스요리의 끝판왕이랄까. 사흘에 걸친 연회 동안 100가지 이상의 요리가 나왔으니 그 화려함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죠.”
“연회라면…… 요즘 말로 파티를 말하는 거죠? 와아! 그럼 파티를 사흘에 걸쳐 했다는 거네요?”
한진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뒤, 설명을 이어갔다.
“중국에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 만주족과 한족의 요리 중에 유명한 것들을 모아 중화대연을 열게 되는데요. 진귀한 식재료로 만들어져서 황제의 부름을 받은 관리들이 지방에서 올라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뭐, 그럴 만도 하죠. 명나라와 청나라의 음식이 한데 모인, 호사와 사치가 극에 달한 파티였으니까요. 만한전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도 중국요리 역사상 이 시대의 만한전석을 최고봉으로 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음식의 종류도 종류지만, 재료부터 남달랐던 것이다. 날짐승, 해산물, 들짐승, 야채류에 따라 각각 여덟 가지 진귀한 것으로 나뉘는데, 날짐승으로서 진귀한 여덟 가지는 붉은 제비, 백조, 들꿩인 비룡, 메추라기 등이고, 해산물로서 진귀한 여덟 가지는 제비집, 상어지느러미, 검은 해삼, 물고기 부레, 전복 등이며, 들짐승으로서 진귀한 여덟 가지는 낙타 혹, 곰 발바닥, 원숭이 골, 성성이 입술, 표범의 태반, 코뿔소 꼬리, 사슴 힘줄 등이다. 또한 야채류로서 진귀한 여덟 가지에는 원숭이 머리 버섯, 흰 참나무 버섯, 죽순, 그물 주름버섯, 표고버섯 등이 있다. 모두 예나 지금이나 구하기 어려운, 진귀한 음식 재료였다. 여기에다가 보조요리 즉 디저트로 20여 가지 보태졌는데, 당시로써는 먹기 힘든 찬 음식부터 건과류, 꿀전병에 과일까지 맛볼 수 있어서 그 화려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어마어마하네요!”
“뷔페네, 뷔페!”
“지금 사 먹으려면 한 끼에 몇십만 원으로도 부족하지 싶은데?”
“음, 근데…… 못 들어본 재료들이라 그런가, 꺼림칙한 느낌이네요.”
한진석과 류승렬이 주고받는 얘기에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인들의 입맛은 우리 입맛과는 사뭇 다르니까. 그렇다곤 해도 미식가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파티였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혀로 즐기는 즐거움을 인생에서 첫손에 꼽는 건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더욱 기대가 되네요. 오늘 참가한 분들이 어떤 요리들을 만들어낼지.”
“아까 보니까 고기도 가지각색이던데, 완전 육해공이에요 육해공! 아우, 그거 다 먹으려면……. 어제저녁부터 굶었는데, 좀 더 비우고 올 걸 그랬나 봐요.”
“그러게요. 한입씩만 먹어도 장난 아니겠는데요?”
지금 한진석과 류승렬이 나누는 대화를 카메라가 담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두 사람은 연신 군침을 흘리며 요리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가운데 요리전문가라 할 수 있는 심혜미가 중간중간 양념하듯 음식 얘기를 해주니 제법 요리 프로다운 면모가 엿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그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던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버저가 울린 지도 20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슬슬 때가 됐다고 느껴져 참가자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나를 VJ의 카메라가 따라붙는다. 아까 한진석이 얘기한 삼계탕부터 해신탕에 알탕, 전복구이와 각종 찜들이 보인다. 개중에는 비프 수프나 치킨 누들 수프도 있었다. 그중 특이한 건, 벌써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토미 김의 요리였다. 닭을 포도주에 삶는 모습. 이른바 코코뱅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요리로 일테면 서양식 보양식이었다.
역시 외국에서 와서 그런가. 재미교포지만 만드는 요리는 서양식이다. 음, 저건 장어 덮밥인가? 일본에서 히쯔마부시라고 불리는 보양식이 아닐까 싶은데……. 간혹 평범하지 않은 모습으로 눈길을 끄는 요리들을 살펴보며 장내를 돌아다녔다. 신기하기도 하지. 우리나라 음식이 주가 될 거란 예상이 빗나갔다. 60% 정도는 짐작대로였지만, 나머지 40% 정도가 외국 요리다. 많기도 하지. 시작한 지 30분을 넘어가면서 요리의 윤곽이 어느 정도 보이자, 보는 것만으로도 대충 무슨 요리인지 알 수 있었다. 고기, 채소, 부케 가르니를 고아 만든 프랑스식 스튜, 포트푀. 서민 요리긴 하지만 단백질이 풍부하고 그 외에도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거로 알려진 요리였다. 그 외에도 러시아의 대표적인 보양식, 비트로 만드는 붉은 빛깔의 스프, 보르사치가 보였고 양고기와 채소를 이용해 만드는 파이, 영국의 셰퍼드 파이까지 있다. 다들 내가 옆에 왔는데도 오로지 음식을 만드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들을 인상 깊게 보면서 장내를 돌아다니다가 한청 앞에 이르렀다. 녀석은 30대로 보이는 남자와 한 팀을 이루었는데, 말린 문어를 손질해 죽을 끓이고 있었다. 음, 피문어죽이라……. 죽이라는 음식 특성상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실상 만들기엔 어려운 요리다. 하고 많은 요리 중에 어째서 저걸 택했는지 의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녀석의 어머니는 금화각의 주인. 한마디로 어릴 때부터 나름 고급 요리를 보아오며 자랐으니 오히려 저런 요리가 더 쉬울지도 모르지. 뭐, 아무튼 잘하고 있는 거 같네. 한청을 지나쳐 걸음을 옮기다가 유수아의 조리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국물이 붉은 게 매운탕 같기도 하고, 새우가 잔뜩 들어간 걸 보아선…….
“똠양꿍인가요?”
내가 묻자, 유수아가 흠칫한다. 요리하는데 정신이 팔려 내가 온 줄도 몰랐나 보다. 그녀의 파트너로 함께 요리 중인 20대 중반의 여자가 잔뜩 굳은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예? 아, 예……. 마, 맞아요. 똠얌꿍.”
내색하진 않았지만, 유수아가 하는 대답을 들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태국의 대표적인 요리인 똠얌꿍. 보양식인 것도 맞고 프랑스의 부야베스, 중국의 샥스핀 스프와 더불어 세계 3대 수프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풍미가 가득한 음식이긴 하다만, 그렇다고 그게 오디션에 적절한 선택이냐 하면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다. 태국말로 똠얌꿍의 ‘똠’은 끓인다는 뜻이고, ‘양’은 새콤, ‘꿍’은 새우를 뜻한다. 즉 새우에 향신료와 소스를 넣고 끓이는 매콤 새콤한 스프라는 거다. 일반적으로 닭고기 육수에 레몬그라스, 라임, 고수, 토마토 등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끓이기 때문에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 등 5가지 맛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어찌 보면 신기한 맛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이점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호불호가 갈린다. 특히 그놈의 신맛 때문에 맛을 보곤 진저리를 치는 사람도 적지 않은 요리가 바로 똠얌꿍이었다. 한청과는 다른 의미로 어려운 요리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었다. 나야 딱히 한국식 입맛으로만 심사를 할 게 아니니 상관없다지만, 한진석과 류승렬 그리고 심혜미가 어떻게 반응할는지 의문이다. 특히 한진석과 류승렬을 생각하면……. 쯧, 하필. 마음속으로 유수아를 응원하고 있던 차여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속내를 드러낼 순 없었다. 표정 없이 고개만 한차례 끄덕이곤 돌아서려는데, 유수아가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한다. 한숨을 삼키며 한마디 해줬다.
“맛있겠네요.”
그제야 안심했는지 눈을 빛내며 다시금 요리에 몰두하는 그녀와 그녀의 파트너였다. 그 후로도 장내를 돌아다니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는 등 시간을 보냈다.
“놀랍습니다! 보양식이 이렇게 많았나요!”
한진석의 말대로였다. 그가 치는 멘트만큼이나 스튜디오 안에서 벌어지는 요리의 향연은 다채롭기만 했다. 스튜디오 안을 한 바퀴 돌고 온 내가 그의 옆에 서자, 한진석이 감탄한 눈빛으로 멘트를 뱉어낸다. 그에 따라 카메라들이 곳곳을 돌며 음식들을 찍고 있었다.
“삼계탕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없이 많은 요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음, 저건 불도장인가요?”
그의 질문에는 나 대신 심혜미가 나서서 대답하고 있었다.
“맞네요. 불도장. 중국의 대표적인 보양식이죠.”
“호오! 한약재가 잔뜩 들어간 거 같은데, 과연 어떤 맛일지 궁금하군요. 응? 저건 뭐죠? 전골인 거 같은데…….”
“쌀국수도 보이는 걸 봐선, 베트남 음식인 거 같은데요?”
그녀도 잘 모르겠는지 대답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을 하고선 날 바라보고 있다.
“아까 물어보니, 라우제라고 하더군요. 원래 베트남 왕족이 즐겼던 고급 요리로 특히 아이를 많이 낳은 왕비를 위해 산후조리용으로 쓰이던 궁중요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베트남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수많은 음식 이름들이 흘러나왔다. 스페인의 보양식인 가스파초, 페루의 세비체, 불가리아의 타라토르, 싱가포르의 바쿠테, 독일의 알주페 등 조금은 생소한 음식들. 물론 한식도 많았지만, 특이한 요리방식만큼이나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외국 요리들이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뭐, 비주얼이 훌륭하다고 해서 무조건 맛까지 좋다는 얘기는 아니고, 단지 보기 좋다고 해서 오디션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어디까지나 맛이 좋다면 말이다.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만……. 어떻게 보십니까, 갓솁? 보양식이라는 과제를 주었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까 스튜디오 안을 한 바퀴 도셨는데요, 마음에 드시던가요?”
난 가만히 장내를 한차례 둘러보곤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적어도 한 가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몇천 명이나 되는 지원자들 중에서 뽑힌 64명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명 한 명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 느껴졌습니다. 아마 오늘 요리를 맛보고 심사해주실 분들뿐만 아니라 방송을 보는 시청자 여러분들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적어도 요리사로서 보내온 저들의 열정은 이미 일류입니다.”
말미에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한진석 역시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버저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