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변화 (2)2021.10.06.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게 지금 무슨 말이니?”
갑작스러운 내 말에 외숙모가 그렇게 물은 것은. 하긴, 옷 한 벌 사러 가자는 것도 아니고 난데없이 집을 사러 가자고 하니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오히려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의 반응이 더 빨랐다.
“집? 지금 그렇게 말한 거 같은데?”
하지만 눈을 빛내는 모습이 영 부담스럽다. 돈이라는 게 마물인지라 있어도 없는 척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때로는 좋기만 하던 관계도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게 돈이라는 놈이니까.
“얼른 가요.”
난 더이상 말하지 않고 외숙모의 팔짱을 낀 채 차로 이끌었다.
“임 씨, 아들이랑 데이트 잘하고. 내일 봐!”
차창 밖으로 아주머니가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며 액셀을 밟았다.
*** 당연히 백화점으로 가거나 하진 않았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쓰려는 참이긴 하지만,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건 물건…… 동산이 아니니까. 살다 보니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대체 무슨 일이니?”
시내를 관통해 그동안 눈여겨보던 곳으로 가는 동안,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던 외숙모가 물어오셨다. 때마침 목적지에 이르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바라보니, 외숙모께선 당최 모르겠다는 얼굴로 날 보고 계셨다. 난 웃으며 말했다.
“내년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일이 잘 풀렸어요.”
가만히 듣고 계시던 외숙모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신다.
“잘하고 있다니 다행이긴 한데……. 갑자기 집이라니,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난 옅게 미소 지었다. 말로 설명하기보단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나을 듯해서였다. 그로부터 30여 분 뒤, 우리 가족은 부동산 중개업자가 보여주는 아파트 안에 있었다. 수연이 누나한테 미리 연락을 해서 수아를 데려오라고 한 거였다. 뭐,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에 어두울는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해도 수아 또한 가족이기에 자신이 살 집을 고르는데 쏙 빼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 물론 외삼촌은 아직 일하시는 중이라서 오실 수 없었다. 어차피 오늘 바로 구입할 것도 아니니까. 한번 사면 몇 년, 어쩌면 몇십 년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고를 수는 없잖아.
“와아! 진짜 넓다.”
수아가 감탄 어린 음성을 내뱉고 있었다. 신바람이 나서 10평 남짓한 거실을 뛰어다니는 게 무척이나 귀여웠다. 하긴, 내가 봐도 넓긴 넓네. 수도권이라곤 하지만, 오이도의 경우엔 비교적 땅값이 싸서 서울에 비해 아파트값이 절반도 안 된다. 물론 그것도 강남이냐 강북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튼, 여기서라면 지금 내가 가진 돈으로 사고도 남는다. 원래는 가족들을 서울로 데려오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외삼촌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일단은 여기서 집을 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뭐, 나중에 더 많이 벌면 그땐 또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60평대라서 좁다고 느끼진 않으실 겁니다.”
부동산 중개인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외숙모가 입술을 잘근 씹으며 내 소매를 살짝 잡고 당긴다. 불안하신 모양이다. 난 가만히 외숙모의 손에 내 손을 올렸다. 그러곤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많이 벌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괜찮다니까 그러네요.”
“에이, 같이 살 집인데요. 이 정도는 돼야 가끔 제가 왔을 때 편히 쉬고 가죠.”
논리적으론 틀린 말이 아니지만, 감정적으론 받아들이기 힘드신 듯했다. 아무래도 내가 힘들게 번 돈을 이런 식으로 써버리는 게 마뜩잖으신 거 같은데……. 나는 얼른 말을 돌렸다.
“누나! 누난 어때? 마음에 들어?”
“어? 어……. 좋긴 한데…….”
나와 외숙모를 번갈아 보며 눈치를 보는 수연이 누나를 보다가, 이번에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매물 나온 게 여기 말고 또 있다고 하셨죠?”
“예. 거기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 역에서 가깝고, 신축인 데다가 매도인이 아들 내외한테 주려고 인테리어까지 싹 다 끝내놨거든요. 그런데도 급히 내놓는 바람에 웃돈을 얹거나 하지도 않아서, 사실상 3천 정도 이득을 보시는 셈입니다.”
“그래요?”
“여기서 가까우니까, 그냥 걸어가셔도 돼요.”
“그럼 한번 보죠.”
부동산 중개인을 앞세워 얼른 단지를 빠져나갔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져 있었지만, 거리가 어둡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역세권인 데다가 신시가지라서 그런지, 거리 곳곳에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고 차도 엄청 많이 다녀서 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동네에서 살면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외삼촌 말고는 가족들이 다 여자라서 항상 불안했는데 잘됐다고 생각하며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갔다.
“남향이라서 볕도 잘 들고요, 8층인지라 외풍 같은 것도 없어요.”
설명을 듣는 사이에 단지에 도착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지금껏 살아온 아파트와 다르다. 경비실에 있던 아저씨가 고개를 살짝 숙이곤 방문 목적을 묻고 있다. 부동산 중개인이 나서서 얘기하고 나서도 바로 들어갈 순 없었다. 방문객 명단을 작성하는 등 다소 복잡한 방식이 뒤따랐지만 그 점이 더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안전하다는 얘기일 터니. 나야 어디서 살든 상관없지만, 그게 가족 얘기가 되면 달라지니까.
“좋네요.”
“아, 예. 좀 깐깐하긴 한데, 입주자분들은 그 점 때문에 여길 택하시기도 하니까요.”
이해한다는 듯 웃어 보이곤 가족들을 돌아보자, 외숙모가 아까보단 나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 계셨다. 딸을 둘이나 둔 부모다 보니 이런 쪽으론 민감하실 수밖에 없을 터였다.
“주차는 세대당 두 대고요, 시설 보수는 저쪽에 있는…….”
계속되는 설명을 들으며 203동이라고 적힌 입구 앞에 섰다. 부동산 중개인이 수첩을 뒤적여 집주인이 알려준 번호를 확인한 뒤 버튼을 누르자 유리문이 열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위쪽에 CCTV가 달려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도 CCTV가 달려 있었고.
“요즘 짓는 아파트들은 대개 이런 구조죠. 층당 두 세대씩 있고, 엘리베이터는 한 대씩 운용되고 있어요. 물론 드나들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엘리베이터에 CCTV가 있어서 기록이 남을 수밖에 없고요. 아, 출구에도 달려 있어서 계단실을 이용한다고 해도 예외는 아니죠.”
내가 안전 문제에 신경을 쓴다는 걸 눈치챘는지, 부동산 중개인은 그 부분에 대해서 나름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윽고 8층에 이르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설명을 들었던 대로 801호와 802호라고 쓰인 문이 보인다. 마주 보는 구조였는데, 문이 생각했던 것보다 컸고 입구 바로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 문이 달려 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택배가 왔을 때 집 안에 사람이 없으면 여기에 두고들 갑니다.”
간단한 설명으로 우리의 의문을 해소해준 부동산 중개인이 번호를 누르곤 현관문을 열었다.
“와! 여긴 아까 거기보다 더 넓은 거 같아!”
“멋지네.”
수아와 수연이 누나가 감탄사를 터뜨리다가 이내 주방과 거실로 갈라져 뛰어가는 게 보인다. 수아야 어리니까 그렇다 치지만, 누나가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엄마! 일로 와봐! 싱크대랑 찬장 좀 봐! 어머! 이거 발로 밟으면 물 나오는…… 그거잖아!”
수연이 누나가 외치는 소리에도 외숙모가 민망한 듯 내 눈치를 보다가 이내 주방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대리석이니?”
“아닌 거 같은데? 인조일 거야. 그래도 좋다. 요즘 진짜 잘 나오네. 아! 여긴 냉장고 놓는 곳인가 봐! 엄청 넓네! 여기로 이사 오면 우리도 한 대 사야겠다, 그치?”
“지금 쓰고 있는 거로도 충분해.”
“아이참, 엄마. 그거 10년도 넘은 거라고. 이참에 새로 한대 구입해.”
“됐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씀은 저리하시지만, 아주 마음이 없어 보이진 않으신다. 뭐, 한소리 듣기는 하겠지만 이왕지사 새집으로 이사를 오는 거, 가구랑 가전제품도 싹 다 갈아치워야겠다.
“그래서 여기가 얼마라고요?”
“4억 2천입니다만, 집주인에게 얘기해서 조금 깎을 수도 있을 겁니다. 평수가 넓어서 그런지 찾으시는 분들이 많지가 않거든요. 아, 여기서 보면 시가지 보이시죠? 밤에도 야경이 좋지만, 낮에는 햇볕이 잘 들어서 그런지 집안에 밝더라고요. 지난번에 왔을 때 보니까…….”
나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자, 묻지도 않았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신나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해준다. 그러는 사이, 수연이 누나와 외숙모의 목소리가 안방 쪽에서 들려오고 있다.
“드레스룸이랑 화장실이 붙어 있네? 이러면 엄마 아침에 출근할 때 여기서 샤워하고 바로 화장하면 되겠다.”
“언니이이! 여기 이상해!”
“응? 머가?”
“화장실이 두 개……. 어? 여기도 있네?”
“그럼, 화장실이 세 개인가? 그럼 아침마다 먼저 쓰겠다고 싸울 일은 없겠네.”
어느새 수아까지 합세해, 세 명의 여자들이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입가에 머금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좋네요.”
“그럼…… 계약하시겠습니까?”
기대 어린 눈초리로 내게 물어오는 부동산 중개인. 난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럴까 합니다만, 계약은 내일 하는 거로 하죠.”
“아! 마음에 안 드시는 거라도…….”
“와서 보실 분이 한 분 더 계셔서요.”
*** 외삼촌께서 퇴근하시면 10시가 넘기 때문에 오늘 바로 아파트를 보는 건 힘들지 싶었다. 그래서 내일 점심때 잠깐 시간을 내서 보는 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 2시간쯤 지났을 때 외삼촌이 퇴근하셨다.
“방이 우리 학교 교실만 해!”
“아우, 기집애! 허풍 떠는 거 봐. 아빠,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음…… 우리 집 거실 정도? 크기는 크더라. 그리고 주방도…….”
수연이 누나랑 수아가 즐겁게 얘기하는 걸 들으시던 외삼촌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내 쪽을 바라보신다. 그 의미를 알아채곤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외숙모가 쟁반에 과일을 받쳐 들고 거실로 나오셨다.
“진영아.”
옆자리에 외숙모가 앉는 걸 확인하곤 외삼촌이 날 부르신다. 분위기를 느꼈는지 수연이 누나와 수아도 더 떠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예, 삼촌.”
잠시 날 바라보시다가, 천천히 말문을 여신다.
“마음만 받으마. 그러니 이 일은 없던 거로 하자.”
“그래. 여기도 충분히 살 만하고……. 그 돈, 너 장가갈 때 써야지. 안 그래도 지난번에 데려왔던 아가씨 때문에 고심했는데, 잘됐지 뭐니.”
“그렇게 해. 그게 맞아.”
두 분이 간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계셨다. 난 한참 동안 외삼촌 내외와 수연이 누나 그리고 수아를 보다가 옅게 웃었다.
“그래요.”
내가 말하자, 두 분이 안도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신다.
“저 장가갈 밑천은 남겨 놓을게요.”
이내 표정이 굳으시는 두 분.
“그동안 말씀 안 드렸는데, 저 진짜 많이 벌어요. 연봉으로 따지면 어지간한 대기업 임원보다 많이 벌걸요. 그러니까 이번엔 제 말씀대로 해요. 저, 결혼 늦게 할 거거든요. 그전에 함께 살 집은 있어야 하잖아요. 수아도 이제 다 커서 자기 방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저 오고 싶어도 못 와요. 곧 있으면 한여름인데 거실에서 잘 수도 없고. 제가 가족들 불편할까 봐 자주 안 오면 좋겠어요?”
논리라곤 1도 없는 얘기였다. 그래서인지 한숨부터 쉬시는 외삼촌이셨고. 하지만, 이런 얘기는 원래부터 논리적일 수 없는 거다. 경제적인 이득부터 따지고 드는 관계라면, 애당초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빚이라고 생각진 않아요. 그래도 잊은 적은 없어요. 저…… 여기 아니었으면 갈 때도 없었거든요. 삼촌…… 그리고 외숙모.”
“…….”
“…….”
“고맙습니다.”
*** 한밤에 일어났더랬다. 방에서 나오니, 불이 꺼진 거실이 날 맞는다. 어둠 속에서 집안을 천천히 둘러본다. 오래됐을 가구들이지만, 낡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손때가 묻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좁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물론 수연이 누나도, 나도, 그리고 수아도 어느새 자라서 예전처럼 집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눈에 익어서 그런지 비좁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기서……. 중학교를 마저 졸업했고,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시간으로 따지면 3년 남짓한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 시간들은 내게 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기억들로 남았다. 그때 여기로 오지 않았더라면 과연 내가 버텨낼 수 있었을까? 스윽. 십 년도 넘은 소파의 팔걸이를 쓰다듬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림자가 진다.
“삼촌…….”
조용히 다가오는 발소리와 함께 외삼촌이 내 곁에 서셨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아까, 고맙다고 했지?”
“…….”
“그 말은 내가 해야 할 거 같구나.”
가만히 손을 들어 내 머리에 올려놓으시더니 가볍게 쓸어내리신다. 이젠 내가 삼촌보다 한 뼘은 더 큰데도, 이상하게 좋기만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