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2차 예선 (1)2021.09.24.
방송국까지 차를 몰고 가는 길. 옆자리에 앉아 있는 한청이 갑자기 물어온다.
“이 차 얼마나 해요?”
“응? 차?”
“이거 비싸죠?”
“그럴걸?”
아마도 그렇겠지. 직접 돈 주고 산 차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알아보니 미화로 340만 달러가 넘는다고 하던데. 우리 돈으로 36억 원. 중고라면 중고라서 진짜 그 정도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강형식이 선물해준 차라는 것만으로도 절대 싼 가격은 아닐 거라 생각된다. 쯧, 다시 생각해도 부담스럽네. 아무리 재벌 3세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비싼 차를 선뜻 줘버리는 배포란. 난 고개를 흔들며 되물었다.
“왜? 좋아 보여?”
장난이라면 장난인데, 당연히 평소처럼 삐딱하게 대꾸할 줄 알았던 한청이 웬일로 고분고분 대답한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 중에도 비싼 차 몰고 오는 사람들 있었거든요. 근데 이 차는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 같아요.”
그럴 수밖에.
“한정 생산된 차라고 하더라. 근데, 차에 관심이 많나 봐?”
“그건 아니고요. 신기해서.”
“뭐가?”
“그냥요. 오빤 좀 수더분하게 느껴졌거든요. 뭐랄까…… 연예인이라면 연예인인데, 옷도 막 입고 다니고 사람들 의식도 안 하는 눈치고. 그렇다고 남들 다하는 SNS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근데, 차는 이런 걸 몰고 다니니까요. 아, 인터넷에서 봤는데, 오빠 카레이서라면서요?”
헐. 소문이 또 그렇게 났나? 속으로 혀를 차면서 대답했다.
“그런 거 아냐. 참네, 소문이 나도……. 그냥 저번 광고 촬영 때 트랙 몇 바퀴 돈 게 다일 뿐이야.”
“그래도 광고에선 직접 몬 거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어째 날 보는 눈빛이 달라진 것도 같고. 아니,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갑자기 막 내가 존경스럽고 그런가?
“너 혹시 막 열 나고 그러냐? 아니면 속이 메슥메슥하거나……. 윽! 얀마! 운전하는 사람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아우, 아파라.”
한청이 조막만 한 손을 말아쥐고 내 팔뚝을 힘차게 때렸다. 나는 맞은 곳을 문지르며 우는소리를 하면서도, 속으론 웃었다. 날 흘겨보는 녀석이 어째 귀엽게만 보여서. 주방에서 일하던 때보단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역시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 봐야 없던 정도 생기는 모양이다.
“너, 근데 괜찮겠냐?”
“뭐가요?”
“뭐긴, 이번 촬영 말하는 거지.”
“괜찮아요. 저 은근 무대 체질이라서, 카메라 돈다고 막 떨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음, 얘가 TV에 얼굴 내밀게 됐다고 벌써부터 연예인 병이라도 걸린 건가. 내가 말한 건 오디션을 말하는 건데, 헛다리를 짚고 있네. 그래도 뭐, 대놓고 면박을 줄 수는 없으니.
“그래, 잘해라. 이왕이면, 끝까지 떨어지지 말고.”
“에이, 떨어지면 또 어때요. 저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다 경험인데요, 뭘.”
헐. 대범한 건지, 승부욕이 없는 건지. 말하는 거 보니까, 중간에 떨어졌다고 우는 일은 없겠네. 조금은 대견해져서 녀석을 한차례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청이 왜 그렇게 봄?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헛기침을 하며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데, 어느새 저만치에 상암경기장이 보이고 있었다.
***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오니, 스튜디오에 사람이 넘쳐나는 듯하다. 하긴, 한 공간에 무려 128명이나 들어서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있다가 보자.”
한청에게 손을 흔들며 돌아서려는데, 어째 녀석이 긴장한 눈치다. 참네, 아깐 그렇게 대범한 척하더니만. 난 속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녀석에게 한 걸음 다가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놀라서 날 바라보는 녀석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 장담하는데, 여기서 너보다 나은 사람 한 명도 없어. 네가 최고야. 그러니까, 기죽지 마.”
“응.”
응? 예도 아니고 응이라고?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자, 녀석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곤 킥하고 웃는다. 됐네. 저 정도면 긴장 풀렸겠다. 주변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묘한 눈빛으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녀석이 아까보다 편안해진 표정을 짓고 있는 걸 확인하곤 그대로 돌아섰을 뿐이다. 그러곤 촬영진이 모여있을 모니터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번 카메라 확인해보고. 아, 저기 7번 카메라 왼쪽으로 틀어봐!”
카메라 감독이 손짓으로 지시하는 걸 스텝들이 지체없이 따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 오셨어요?”
가장 먼저 날 발견한 건 김성희 조감독이었다. 싹싹한 성격만큼이나 활달한 모습이다.
“빨리 온다고 왔는데, 차가 좀 막혔네요.”
“뭘요. 촬영하려면 아직 30분도 넘게 남았는데요. 뭐, 한 시간 전부터 온 분도 계시긴 하지만.”
……하고 그녀가 시선을 돌리는 곳으로 눈길을 쫓으니, 그곳에 한진석이 서 있다. 신현정 피디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계속해서 웃고 있던 그가 날 발견하곤 쪼르르 달려온다.
“왔어요?”
“방금 도착했어요.”
“하하. 여기 분위기 참 좋은 거 있죠. 아, 진짜 가슴이 다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방송이 이래야지. 내가 진짜…….”
말을 하다말고 흐리고 있었지만, 대충 알 만하다. 뒷말은. 저쪽 방송국…… 그러니까, KBC 쪽 얘기를 하는 거겠지. 대체 얼마나 쌓였으면 저러는 걸까. 아무래도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다행이네요. 마음에 드신다니.”
“크크큭. 회사에서 그러더라고요. 서 셰프님한테 딱 붙어서 떨어지지 말라고.”
“……에이, 설마요.”
“어? 진짜라니까요. 대표님이랑 통화 연결해줘요?”
“알겠어요. 그렇다 치죠.”
“와! 사람 진짜! 왜 날 믿어?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요 입으로 절대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 한진석이란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지. 별것도 아닌 거로 주변 사람들이 웃음 짓게 만드는.
“컨디션은 어때요?”
언제 왔는지, 신현정 PD가 고혹적인 미소와 함께 묻고 있었다.
“좋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대본 좀 확인해봐야겠는데요?”
“그래요? 조금 이따가 봐요.”
김성희 조감독이 부르자, 서둘러 자리를 뜨는 한진석. 그의 뒷모습을 보며 신현정 PD가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어쩌다 보니 MC를 투입하긴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녀가 한 질문의 요지가 무언지는 알고 있다. 애당초 이 프로는 날 중심으로 기획됐음이다. 당연히 MC가 불필요하단 얘기. 그럼에도 내 요청에 따라 방송국 측에선 검토를 했고, 그 결과 한진석이 본격적으로 투입되었다. 다시 말해, 나 혼자만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내가 스스로 나서서 걷어찬 셈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설사 나 말고도 메인 요리사가 또 한 명 투입된다고 해도 상관치 않는다. 그걸로 방송이 좀 더 다채로워지고,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면. 또한, 그 과정에서 내가 하나라도 더 요리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테고 말이다.
“시너지라는 게 있잖아요.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지진 않을 거 같은데요?”
내가 되묻자, 신현정 PD는 대답 대신 옅은 미소만 지어 보일 따름이었다. 그때, 입구 쪽에서 이종무 CP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어, 다들 모였구먼. 신 피디, 어떻게 준비는 끝났나? 어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서 셰프님! 오늘 잘 좀 부탁합니다!”
만면에 웃음을 띠며 호쾌하게 말하는 그를 보고 있으니, 보는 내가 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저야 정승처럼 서서 무게만 잡고 있으면 되는데, 피디님이랑 스텝들은 땀 뻘뻘 흘리면서 고생하실 거잖습니까?”
“히야, 이렇게 흐뭇하다니까. 역시 우리 서 셰프님, 실력만큼이나 인성이 이겁니다!”
엄지를 치켜 보이는 이종무 CP를 보다가 픽하고 웃고 말았다. 사람을 띄워주는 건 좋은데, 계속 듣고 있으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더 견디지 못하고 신현정 PD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돌아섰다. 그런 내게 박신영 작가가 다가와 대본을 들려준다.
“현장 와서 사람들 보니까 막 영감이 떠오르는 거 있죠. 그래서 좀 바꿔봤어요.”
아닌 게 아니라 한진석 역시도 바뀐 대본을 들고 있었다. 아까 김성희 조감독이 그를 부른 것도 그 때문인 모양이다.
“컨셉은 그대로 가고요. 초반부 멘트랑…….”
대본을 펼쳐 일일이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해주는 박신영 작가. 머리가 내 가슴팍에 올까 말까 한 키지만, 지니고 있는 에너지는 가히 빅뱅급이다. 게다가 초롱초롱하다 못해서 초신성처럼 빛나는 눈동자와 야무진 말투는 그녀가 작다고 허투루 대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오늘은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는 날이라 그런지 그녀의 카리스마 또한 폭발적으로 발산되는 중이다. 하긴, 왜 안 그럴까. 불과 일주일 전 무려 2,000명이 넘는 지원자들을 전국 각지에 모아놓고서 1차 예선이란 명목으로 촬영을 진행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맛보기에 불과했으니까. 그 증거로 그때 촬영했던 건 실제 방송에선 기껏해야 인트로에나 쓰일 터였다. 그에 반해 오늘부터 촬영하게 되는 분량은 하루 혹은 이틀에 걸쳐 촬영되어 2주나 3주에 걸쳐 방영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그러니 누군들 긴장하지 않을까. 아니, 흥분인가. 어느 쪽이 되었든 다들 들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뭐, 나로서는 이 분위기가 나쁘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바뀐 쪽이 더 좋은데요?”
영혼 없이 하는 대꾸가 아니란 걸 느꼈는지, 박신영 작가가 배시시 웃는다. 꼬리라도 있으면 쉴 새 없이 흔들었을 거 같은 느낌이다.
“서 셰프님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없던 의욕도 맘 샘솟을 거 같아요!”
이미 의욕 만땅 아니었던가? 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작가님만 믿겠습니다!”
“헤헤헤.”
*** 큐사인이 들어오자, 어둠에 휩싸인 공간을 흔들며 웅장한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빠암……빰……빠밤……. 트롬본 소리와 함께 피아노 건반을 뒤쫓아 첼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어둠을 걷어내며 스튜디오 안이 점차 밝아진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러선 더 밝아지지 않고. 저벅저벅. 누군가의 발소리가 울리고, 그 발소리를 쫓아 조명 빛이 떨어진다. 한진석이었다. 그가 단정하지만, 깔끔하면서 심플한 스타일의 정장 차림으로 걸어들어와 스튜디오를 등진 채 정면의 카메라를 바라본다. 큐 카드를 읽은 한진석이 자연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음식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의 존재 또한 발견하게 될 터입니다. 이는 사람이라면 단 한 명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동등한 기회와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돈이 많은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먹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답지 않게 잔뜩 무게를 잡고선 스튜디오 안쪽 단상의 중앙까지 이동한 한진석은 여전히 스튜디오를 울리고 있는 웅장한 음악 속에서 계속해서 멘트를 이어갔다.
“인류는 여러 분야에서 계속해서 도전해왔습니다. 신학과 예술, 철학과 과학, 의학과 건축. 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실패를 주춧돌 삼아 끝없이 도전한 결과 우리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시대를 열어젖히고, 이제껏 없었던 찬란한 문명을 이루어냈습니다. 그 이면에는 우리 인류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준 도전이 있습니다.”
한진석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채 선언했다.
“오늘부터 우리는 다시 한번 도전하려 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위대한 도전. 서 셰프와 함께 하는 ‘맛있는 도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장내에 박수 소리가 가득 차고. 한층 더 커진 음악 소리가 장중하게 울리는 가운데, 한진석이 한쪽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조명 빛이 그에게서 떨어져나와 단상 너머 드리워진 커튼을 비춘다. 빰 빠바 빰빠……. 더없이 웅장한 음악과 함께 한진석의 목소리가 희뿌연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소개합니다. 여러 도전자들과 함께 앞으로 위대한 도전을 해나갈 요리사. 서진영 셰프를 모십니다.”
그의 선언과 함께 커튼이 열렸다. 그곳에는 서진영이 서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버린, 검은색 일색의 조리복을 입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