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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오디션 (2) (152/204)

#152. 오디션 (2)2021.09.19.

당연한 말이지만, 인연이 있다고 해서 그게 오디션에 붙어도 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난 유수아에 대한 심사를 더욱 엄격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겨우 한번, 그것도 우연히 기차에서 만났던 사람을 인연에 기대어 덜컥 합격시킬 정도로 난 무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 주문을 해본다. 다다다다다닷. 칼질은 저만하면 됐고. 웍을 다루는 솜씨도 나쁘지 않다. 물론 프로라고 하기엔 거칠지만. 그래도 보통은 넘는다. 혹시 여기 쓰인 ‘영양사’ 자격 취득과 관련이 있는 건가?

“요리를 많이 해본 모양이네요.”

내가 묻자, 유수아가 싱긋 웃더니 조곤조곤 얘기한다. 그 모습이 꼭 강아지 같다.

“작년부터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어요. 학동 사거리에 있는 한식집인데요, 거기 주인아저씨가 직접 요리를 하셔서…….”

“그래요? 그럼 할 줄 아는 요리 중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뭔가요?”

“음, 된장국이요.”

픽하고 웃고 말았다. 웃겨서? 아니다. 분명 유수아는 말했다. 된장찌개가 아니라 된장국이라고. 과연 얼마나 잘하기에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 흔히들 된장국은 개나 소나 끓일 수 있다는 식으로 말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맛과 향이 강한 찌개류는 어지간하면 사람들의 입맛을 배신하는 일이 없지만, 국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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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지 국이란 놈은 딱 정성을 들인 만큼 맛을 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군대에서 대충 끓여서 내놓은 된장국을 똥국이라고 부르겠는가. 그런데도 유수아는 지금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요리를 된장국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칼질은 어디서 배웠어요?”

“아, 그거요.”

유수아가 배시시 웃더니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한식 조리사 준비하다 보니, 절로 늘더라고요.”

  *** 오디션은 저녁 무렵까지 이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늘 K 체육관을 찾은 이들만 해도 무려 800명이 넘었다. 사실 이정도 인원이면 며칠에 걸쳐서 해야겠지만, 어중이떠중이도 있을 거라는…… 아니, 반수 이상이 그럴 거라는 예상으로 강행한 결과였다. 방송국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기대주에 불과할 뿐 이렇다 할 결과를 보여준 게 아니었기에 지원되는 자금의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너무 자주 빠져서 주방 식구들 눈치 보느라 곤란하기만 나로서도 이편이 좋았기에 반대하진 않았다. 덕분에 오디션을 마친 지금, 온몸이 안 쑤신 데가 없고 입안 바싹 마르다 못해 군내 비슷한 냄새까지 나긴 하지만.

“수고하셨습니다.”

“피디님이랑 작가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신현정 피디를 비롯해 스텝들과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오늘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학생들도 많았고, 나름 잘나가는 이들도 많았더랬다. 심지어는 변호사 출신도 있었으니 말 다 했지. 안타깝게도 실력이 변변치 않아서 잠정적으로 탈락이라고 분류되긴 했지만, 신기하단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대충 추린 인원은 백여 명. 서울 지역 예선에서만 그렇다는 거다. 나머진 수도권과 지방의 각 도시별 오디션에서 추려졌다. 아무튼, 오늘 면접을 본 이들 중 가장 인상 깊은 건……. 52세의 아주머니 한 분. 대학교 앞에서 식당을 하며 자식 셋을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켰다는 분이셨다. 칼질이나 조리도구를 다루는 솜씨는 조금 아쉬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솔직히 나는 그 아주머니, 이경진이라는 이름을 지닌 여사분을 마주한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과연 내가 저분의 실력을 판단할 깜냥이 되는 걸까. 상황이 상황이니 내가 면접관으로 앉아 있는 거지, 경력으로 보나 손맛으로 보나 나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피곤하긴 진짜 피곤하네.”

차에 오르면서 어깨를 한차례 주물렀다. 그러다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오디션에서 추려진 100여 명의 후보들. 저들 중에는 외국에서 왔다는 재외교포도 있었고, 백수 출신도 있었으며 의대를 그만두고 요리를 배우고 있다는 남자도 있었다. 취사병 출신의 남자와 방금 떠올렸던 아주머니, 그리고 유수아도 있었고. 여기에 나머지…… 지방 도시에서 추려진 이들까지 합친 후, 도합 128명의 1차 예선 통과자들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걸 위한 회의는 내일. 그러고 나면 모레 정식으로 통보되며, 일주일 뒤부터 경합이 시작된다. 까똑. 차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이하연으로부터 톡이 날아들었다.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톡을 확인했다. 그녀가 보내온 톡을 보는 내 표정은 한층 더 밝아졌다. *** 아침은 다시금 찾아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준비했고, 분주한 시간이 지나가자 주방 식구들도 함께 모여 밥을 먹었다.

“오늘도냐?”

추궁하는 목소리는 아니다. 그저 궁금하다는 눈빛이다. 난 준석이 형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었으니까.

“오늘 회의 끝나면 확정이에요.”

“오! 그럼 바로 2차 예선?”

“예. 바로 들어갈 거예요. 잔뜩 광고를 해놨는데, 정작 촬영분은 얼마 없으니까요.”

“완전 바쁘겠네. 이러다가 주방에 오지도 못하는 거 아냐?”

“에이, 그래도 여긴 와야죠. 다른 곳도 아니고.”

“흐흐. 그렇지?”

날 보며 흐뭇하게 웃던 준석이 형이 느닷없이 한청에게 묻는다.

“갔던 일은 잘 됐어?”

일? 무슨 일? 내가 모르는 일을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듣고 있자니, 어째 소외감이 느껴지네. 음, 눈치를 보니까 다들 아는 듯하다. 안성댁 아주머니도 그렇고, 혜순이 누나도, 김진호 셰프님도 알고 있는 눈치고.

“잘됐어요.”

한청이 뭔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하고 있었다.

“뭔데? 집안일?”

“프라이버시예요.”

“아, 뭐래.”

짜증 난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다는 게 기분 나쁘다. 아무리 나랑 친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대놓고 티를 낼 수도 없어서 모르는 척 해버렸다.

“바로 가려고?”

“옷만 갈아입고 출발하려고요.”

어제와 비슷한 대화를 끝으로 주방을 빠져나왔다. *** 회의는 방송국이 있는 상암동에서 열렸다. 참석자는 나와 신현정 PD, 방송작가인 박신영 작가 그리고 이종무 CP였다.

“후보는 이게 다인가?”

이종무 CP가 명단을 확인하며 묻자, 박신영 작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첨부 자료를 건네준다.

“어제 서울 지역을 비롯해 각지에서 추려낸 인원, 254명이에요.”

“여기서 반은 쳐내야 한다는 거군.”

신현정 PD가 부산 쪽 명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서울에서 60명, 부산에서 20명. 나머지에서 40명쯤 추리면 될 거에요.”

“좋아. 얼른 해치우고 저녁 먹으러 가지. 요 앞에 추어탕 집 생겼는데, 맛있다고 하더라고.”

“어우, 전 추어탕 싫어요.”

박신영 작가가 질겁을 하며 도리질을 하자, 이종무 CP가 껄껄 웃는다. 그러곤 곧바로 집중. 그때부터 서류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2차 예선 후보를 선별하기 시작했다. 그러길 얼마간이었다.

“……!”

난 황당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익숙한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는 서류가 내 손에 쥐어졌기 때문이다. 아니, 얘가 왜? 서류 왼쪽 상단에 떡하니 붙어있는 사진을 보노라니, 오늘 아침에 있었던 대화들이 뇌리를 스쳐 간다. 어제 볼일이 있었다고 하더니, 이게 그거였나? 한숨을 푹 내쉬며 서류에 붙어있는 한청의 사진을 노려보았다. 나참, 어이가 없네. 감히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말 한마디 안 했단 말이지? 그것도 서울 지역이 아닌 인천 쪽으로 가서 오디션에 참가해? 기가 막혔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내가 면접관으로 있는 서울 지역에 참가했다면, 공정한 심사를 받기 어려웠을 테니까. 아무리 나라도 같은 식구라 할 수 있는 한청에게 매몰차게 굴 수 없었을 거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깐깐하게 대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다.

“참네, 말도 없이!”

살짝 괘씸하긴 했지만, 이쯤 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도움은 일절 받지 않고, 1차 예선의 통과 직전까지 와 있었으니까.

“한청? 아는 사람이에요?”

박신영 작가가 묻길래 고개를 쳐들다가 흠칫하고 말았다. 신현정 PD는 말할 것도 없고, 이종무 CP까지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어찌할까 하다가 털어놓았다. 숨긴다고 해서 숨겨질 일도 아니었고, 어차피 밝혀질 거라면 이참에 확실하게 말하는 게 나을 테니까.

“같이 일해요. 막내죠.”

“어머! 그럼 붙여야겠네.”

“아뇨. 그렇게 할 필요는…….”

고개를 내젓는데, 박신영 작가가 내 손에서 서류를 쏙 뽑아간다. 그러곤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읽는다.

“한식에 중식, 일식, 프랑스, 이탈리아……. 자격증도 자격증이지만, 못하는 요리가 없네! 어머나, 얘 어머님이 금화각 운영자인가 보네요! 완전 금수저네, 금수저!”

흠, 나도 오늘 처음 알았다. 금화각.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급 식당이다. 해방 직후 종로에 세워진 이래로 정·재계 인사 중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았던 명소다. 그런 만큼 요리계에서 나름 입김이 센 편이었는데, 한청이 거기 주인집 딸내미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얘는 그런 중요한 얘기는 하질 않고서 갑자기 오디션에 참가해선 날 당혹스럽게 만드는 거냐고.

“좋군.”

이종무 CP가 내뱉은 한마디가 날 일깨운다. 어라? 이러다가 바로 통과되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타이밍에 반대하는 것도 좀 우습고, 반대할 이유도 없다.

“한청이라고 했나? 이 친구랑 딱 반대되는 사람을 내세우면 그림 좀 나오겠는데? 어때, 신 피디?”

“괜찮을 거 같아요.”

……라고 말하는 두 사람을 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내가 봐도 그러니까. 요리가 주가 되는 방송이니 당연히 요리 실력이 우선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능이 아닌 건 아니다. 당연히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상황을 연출해야 하는데, 이종무 CP의 말처럼 한청 같은 엘리트…… 이른바 요리계의 금수저를 한쪽에 세우고, 다른 편에 그와는 상반되는 인물을 앞세우면 꽤 괜찮은 구도가 될 테니.

“누가 좋을까?”

이종무 CP는 무슨 퀴즈라도 내는 듯 묻고는 흥미로운 눈초리로 날 바라본다. 마지못해서 대답했다.

“여기…… 유수아라고 U 대학교 다니다 휴학한 친구가 있는데요.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건 아니지만, 기본은 돼 있더라고요.”

“오, 그래요? 성격은 어떤데요?”

“싹싹한 편…….”

“아니, 아니. 한청? 그 친구 말이에요.”

사람 헷갈리게 유수아 얘기하다 말고 한청 얘기를 한담.

“좀 딱딱하달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까칠하다고 느껴지질 겁니다.”

“유수아라는 친구는 발랄한 성격이고 말이죠?”

고개를 끄덕이자, 이종무 CP가 손뼉을 친다. 그러곤 신현정 PD와 박신영 작가를 바라보자 다들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한 명은 결정됐고. 나머진 어떻게 한다? 아, 서 셰프! 어제 추린 인원 중에 재미 교포가 한 명 있다고 했죠?”

“예. 토미 김이라고.”

“어감 좋네. 토미. 그래요. 그 청년이랑 취사병 출신을 붙이면 되겠어.”

점점 명확한 선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난 난감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하아, 어째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한차례 고개를 내젓고는 이따가 돌아가면서 한청에게 전화를……. 아, 나 아직 녀석의 번호도 모르는구나. 왠지 입맛이 써서 마른 침을 넘기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 핸드폰이 진동한다. 눈치를 보면서 얼른 꺼내 확인해보곤 갸웃했다. 이 사람이 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회의실을 빠져나오며 물었다. 핸드폰에다가 대고.

“한진석 씨? 어쩐 일세요?”

뒤통수에서 신현정 PD의 눈길이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했다.

- 저기, 괜찮으시면 잠시 뵐 수 있을까요?

뭐지? 난 의아해져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거야 괜찮지만, 무슨 일인데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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