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 오디션 (1) (151/204)

#151. 오디션 (1)2021.09.17.

일산신도시 K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체육관을 중심으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서 있다.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천여 명은 훌쩍 넘는다. 누가 보면 여기서 공연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헉!”

끼익. 갑자기 도로로 뛰어든 사람들 때문에 차를 멈춰 세웠다. 다행히 서행 중이라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고등학생? 까르르거리며 뛰어가는 여학생들을 보다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이 제안을 둔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너무 어리지 않나? 아니면 오디션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삼촌 응원이라도 온 건가? 까닥 잘못했으면 사람을 칠 수도 있었던 상황으로 인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훑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당연히 시속 10km 이하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사람이 뛰어들지 몰라서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덕분에 차가 가다 서다가를 반복한 끝에 간신히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후우!”

차 문을 열고 나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도로가 좁아서 그런가?”

대로에서 체육관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1차선 도로엔 사람들이 손도 안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만 보자면 꼭 나들이라도 나온 듯 보이지만……. 고등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중년 아저씨까지 남녀노소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다양한 군상들이 모여있었다. 저 사람들이 다 오디션에 참가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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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기대감도 들면서 동시에 걱정스러워졌다. 지난 2주간 JTL이 끊임없이 광고를 내보낸 덕분이겠지만, 너무 많은 관심이 쏠린 게 아닐까 싶다. 부담스럽네. 머리를 북북 긁으며 체육관 쪽으로 걸음을 내딛는데…….

“어? 저거 갓솁 아니야?”

“맞네! 맞아!”

“까아아아아! 오빠아아아!”

“서진영이다!”

“오빠, 오빠!”

“갓솁!”

난리도 아니다. 내게로 몰려드는 이들에게 멋쩍게 웃어 보이곤 손을 흔들었다. 그로부터 20분. 주차장에서 체육관까지 100m가 될까 말까 한 거리를 10분이 걸려서야 간신히 통과해 건물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

“와아! 무슨 사람이 그렇게……!”

누가 잡아당겼는지는 몰라도 눈에 띄게 늘어진 셔츠의 목 부분을 바로잡으며 숨을 골랐다. 뭐, 그런다고 한번 늘어난 옷이 원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지만.

“응? 서 셰프님!”

얼굴을 모르는 여자가 날 향해 달려오고 있다. 흠칫해서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다가 그 여자의 가슴팍에 걸려있는 표찰을 보곤 행동을 멈췄다. 스텝인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짐작대로였다.

“안녕하세요. 김성희입니다. 이번 방송, 조감독을 맡고 있고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살갑게 날 대하는 김성희 조감독에게 옅게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녀가 내 뒤쪽으로 난 문을 힐끔 바라보곤 웃는다. 날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로 인해,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마음이 살짝 무거워진다.

“갑자기 시끄러워져서 나와 본 건데. 서 셰프님 때문이었군요. 사람들 진짜 극성이죠?”

“아뇨. 다들 저 좋다고 저러시는 건데요, 뭐.”

“하긴. 따지고 보면 저분들 다 세 셰프님 팬이나 다름없죠.”

“그 정도는 아니고요.”

“아유,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니에요? 솔직히 저희 이번 오디션, 셰프님만 믿고 밀어붙인 거지만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니까요. 와, 어떤 사람은 세 시간 전에 와서 줄을 서는데…… 진짜 무슨 콘서트 준비하는 줄 알았어요.”

“하하……. 그렇습니까?”

대화를 하는 동안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 덕분에 금방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오! 생각보다 제대로네. 어차피 1차 예선은 면접에 가깝기 때문에 그저 대기석과 오디션 보는 사람들이 드나들 방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평수로 따졌을 때, 200평도 넘을 공간은 2m가 넘는 간이 벽으로 촬영하기 좋게끔 잘 나누어져 있었고, 오디션을 보는 곳도 3명의 면접관을 마주 보는 형식으로 자리가 배치된 데다가 혹시라도 모를 주문에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아일랜드 조리대와 함께 어지간한 요리도구들이 구비된 모습이다.

“오셨어요?”

카메라 감독과 함께 촬영에 대해 얘기 중이던 신현정 피디가 날 발견하고 다가온 것도 그때였다.

“좋은데요?”

내가 말하자, 신현정 피디가 언제나 그렇듯 고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저도 좀 놀랐어요. 방송국에서 예상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줘서요.”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애초에 방송 하나에 오디션장으로 체육관이 동원되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정도면 지상파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대우가 아닐는지. 그만큼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담감도 늘었다.

“들어오면서 보니까 많이들 왔던데, 몇 명이나 온 건가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30분 전에 파악한 바로는 800명 조금 넘게 온 거 같아요. 아, 그리고 각 도시별로 집계하는 중인데 이번 오디션에 사전 신청한 사람은 여기 포함해서 2000명쯤 되고요.”

“인터넷으로만 신청할 수 있게 했다고 하셨죠?”

“우편까지 허용하면 너무 일이 많아지니까요.”

“그런 것치곤 많네요.”

“다 서 셰프님 덕분이죠.”

“에이, 그게 어떻게 저 때문이겠습니까? 굳이 말하자면 피디님께서 기획 방향을 제대로 잡은 덕분이겠죠.”

그녀는 아까 김성희 조감독이 은근슬쩍 날 띄워주며 말하던 것과는 달리 그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게 더 무섭다. 슬쩍 한 발 빼서 부담감을 낮추려고 했더니만.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벌써부터 각 도시에 나가 있는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는지, 모니터 룸에 있는 12개의 화면에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잡히고 있었다. 후우, 2,000명이라……. 많네. 서류심사와 간단한 테스트만으로 걸러내 저들 중 128명을 제외한, 무려 10분의 9에 해당하는 1,800명 이상을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다. 오디션을 보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면접을 봐야 하는 나로서도 살 떨리는 경험이 될 터였다. 젠장. 누군가의 꿈을 내가 감히 재단하고 당락을 결정해야 한다니. 과연 내게 그런 권한이 있기나 하는지 의문이 든다.

“슬슬 시작할까요?”

시간을 확인한 신현정 피디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오디션을 보기 전 가질 수밖에 없던 부담감은 놀랍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옅어져 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음, 어린이집 교사시네요? 꽤 안정적인 직업일 텐데 어째서 여길 오신 건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의 제가 불쌍해서요.”

“예?”

“셰프님은 모르실 거예요. 어린이집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요. 하루 종일 아이들 수발을 드는 건 물론이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부모님들 전화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거 같다고요. 후우, 그렇다고 월급이 센 것도 아니고…….”

사정은 이해가 간다만……. 결국, 현재 상황에 대한 도피처로 이번 오디션을 택했다는 얘기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다 저럴 리는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적어도 여기 모인 사람 중 십 분의 일이 그렇다. 물론 그 외에 다양한 이유로 오디션들을 보러 왔지만, 아쉽게도 재능이나 노력이 한참 못 미친다. 원래부터 요리사였던 이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심심파적으로 놀러 온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이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주장하곤 했다. 자신의 요리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동안 감춰뒀던 재능을 이번 기회에 활짝 꽃피울 것이라 어찌나들 확신하는지. 개중에는 자신의 예능감을 뽐내려고 노래나 춤을 선보이겠다는 이들까지 있었다. 결국, 난 그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생각으로 주방 기구를 이용하게끔 했다. 결론은? 엉망이다. 그나마 군에 있을 때 취사병으로 있었다는 남자가 괜찮아 보였을 뿐, 나머진 처참한 수준이었다. 칼질은 무뎠고, 심지어 가스레인지를 어떻게 켜는지도 모르는 사람까지 있었다. 200명 가까이 면접을 보는 동안, 난 대체 왜 긴장 같은 걸 했는지 스스로도 의아해질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나저나 이건 이것대로 큰일이긴 하다. 남은 사람이 이제 600명 남짓. 내 양쪽 옆에 앉아 함께 면접을 보고 있는 신현정 피디와 방송작가는 가끔씩 서류에 채점 비슷한 걸 하고 있다만……. 나로서는 눈이 가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으니. 흠, 내가 너무 까다로운 건가?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쓸어내리자, 신현정 피디가 물어온다.

“잠시 쉬었다가 할까요?”

“아! 예……. 그러시죠.”

조금 미안했지만, 그래도 선뜻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쳤기 때문이다. 신현정 피디로부터 지시를 받고는 밖으로 나가는 김성희 조감독을 보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여기.”

내 쪽으로 내민 아이스커피를 받아들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까닥거리자, 신현정 피디가 말없이 미소를 머금는다.

“다른 곳은 어떻대요?”

“여기랑 비슷한 거 같아요.”

“아직까진 이렇다 할 사람이 없다는 거네요.”

“예.”

조용히 대답하는 그녀를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난 내가 보고 있던 서류를 뒤적거렸다. V자로 체크된 이름들은 대부분 요리사 출신들이다. 그 외에는 한 명도 없다. 예능감이 출중한 사람들은 있었어도, 요리 실력 혹은 재능만 놓고 볼 때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 대충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아쉽기만 하다. 요리사 출신이라는 게 문제가 되는 게 아니고, 너무 한쪽으로만 편중되는 상황이 문제다. 이래서야 요리대회나 다름없으니까. 살짝 인상을 쓰고 있을 때였다.

“아직 반도 더 남았잖아요.”

신현정 피디의 얘기에 옅게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래, 600명이나 남았으니까. 후우, 근데 그 많은 사람들을 언제 다 본다냐. 그나마 5명씩 보니까 망정이지, 한 사람씩 면접을 봤다면 하루 가지곤 턱도 없을 뻔했다.

“다시 시작할까요?”

내 물음에 신현정 피디와 방송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 후 백 명 남짓한 면접자들의 오디션을 치렀지만, 그다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아까 쉬기 전 오디션을 봤던 취사병 출신 남자 말곤 나머진 요리사들밖에 없다는 건데. 곤란하다, 곤란해. 난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다섯 명이 들어와 인사를 한다. 그중에서 묘하게 귀에 꽂히는 음성에 고개를 쳐들었다. 가녀린 체구에 비해 꽤 활달한 음성이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내 쪽으로 시선을 던지는 여자……라고 말하기에도 어려 보인다. 기껏해야 고등학생? 실력이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그냥 재미 삼아 나온 거라면 무조건 떨어뜨려야 할 테지. 물론 바로 면전에서 ‘당신은 탈락입니다!’ 하지는 않는다. 오늘 오디션의 결과는 이틀 뒤 문자로 통보하기로 했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저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데, 거기라 대고 모질게 말하는 것도……. 응? 근데 어디서 본 듯한데?

“324번, 오래 기다리셨을 텐데 지루하진 않으셨어요?”

신현정 피디의 물음에 한 남자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난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뭐, 그러기 이전에 그 남자의 이력을 볼 때 별달리 주의를 끌 만한 요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난 ‘유수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 어딘가에서 봤는데……. 자꾸 보고 있으면 괜한 오해를 살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남몰래 힐끔거리다가 서류를 확인했다. 뭐야? 대학생이었어? 그것도 대학교 3학년이란다. 헐. 동안이네. 근데 요리하곤 관련 없는 학과네. 경영학과라…….

“327번, 무슨 요리를 좋아하세요?”

“먹는 건 다 좋아해요. 아, 직접 하는 것도요. 아빠랑 단둘이서만 살아서 요리는 제 담당이거든요.”

“지금 다니는 학교가 상당히 좋네요. 혹시 오디션에 참가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아, 그건…… 아빠가 권유해서 학교랑 과를 선택한 건데, 시간이 갈수록 제 길이 아닌 거 같아요. 저 진짜 요리 좋아하거든요. 힛, 하는 것보다 먹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것치곤 슬림해 보이는데, 따로 다이어트라도 하는 건가요?”

“아-뇨. 전혀요. 이상하게 살이 잘 찌질 않네요. 움, 전 살 좀 쪘으면 좋겠는데, 먹는 게 다 어디로 가는지. 예전부터 그랬어요.”

신현정 피디의 물음에 꽤 재치있게 대답하는 여자를 한차례 쳐다볼 때였다. 그녀가 갑자기 날 보곤 눈을 반짝이며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말고는 자기 볼을 쥐어 보인다. 응? 뭐지? 인터뷰 중에 갑자기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뭐냐고, 저 모습은? 아직 젖살이 안 빠진 건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을 저렇게 손가락으로 쥐니까 무슨 알…… 그러니까 계란 같이……. 어? 기억났다. 난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그런 날 보곤 여자…… 유수아가 배시시 웃어 보인다. 그 표정이 겹쳐진다. 작년에 고윤수 주방장님의 지시로 아저씨한테 칼을 받기 위해 아우라지로 가던 길. 기차 안에서 만났던 여대생들 중 한 명. 그날, 내가 장난스럽게 건넸던 삶은 달걀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도 저 야무진 입으로 달걀을 한입 베어 물곤 오물거리던 게 인상적이었는데……. 참나, 세상 진짜 좁네. 여기서 이렇게 만나나? 난 반갑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피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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