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 출시 (4) (147/204)

#147. 출시 (4)2021.09.08.

저녁 무렵 강형식과 술을 마시고 나서 헤어진 후 사흘이 지났을 때,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명제준 시장 편이 방송되었다.

“이제 곧 시작하겠네.”

뉴스가 끝난 뒤, 강형식의 오피스텔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말했다. 류승렬이었다.

“아쉽다.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박유나의 얘기에 그녀의 남편인 김주형도 고개를 끄덕인다.

“바쁘신 거 아니에요?”

내가 깎아온 사과를 사람들이 하나둘 포크로 찍어 가는 걸 보면서 묻자, 김주형이 고개를 내젓는다. 언제나 그렇듯 점잖은 남자다.

“괜찮아. 시즌도 아니고. 훈련이야 늘 하는 거니까.”

몇 차례 만나며 부쩍 친해진 터였다.

“그나저나 JTL로 옮겼다고?”

“신현정 피디님하고 얘기가 돼서요.”

“언니 요즘 엄청 바쁘던데.”

이하연의 얘기에 박유나가 맞장구친다.

“진짜 장난 아닌가 봐. 전화하다가 끊는 건 예사고,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하곤 그 후로 감감무소식. 하아, 기집애. 그러다 병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그만큼 잘돼 간다는 거 아닐까요?”

류승렬이 웃으며 말하자, 박유나가 싱긋 웃는다.

“대박 났으면 좋겠다.”

“근데, 형이 그만뒀으니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도 끝난 거 아닌가?”

“그런 건 아닐 거야. MC는 그대로 두고 패널들 보강해서 새로운 컨셉으로 찍는다나 봐.”

“참네. 누가 새로 피디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뭘 모르네. 그 방송…… 형 없으면 속 빈 강정인 거 모르나 봐?”

“그러게. 진영 씨 없이 뭘 어쩌려는 건지.”

여럿이서 한마디씩 내뱉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오늘도 형식이 형은 안 온대요?”

흠, 그러고 보니 두 사람…… 강형식과 류승렬은 서로 나이를 모르는 상황인가? 언제고 한번은 정리를 해야 될 듯싶은데.

“엊그제 가볍게 술 한잔 했는데, 브랜드 런칭 앞두고 한창 긴장하는 눈치더라.”

내가 녀석의 근황을 얘기해주자, 다들 눈을 빛내며 귀를 쫑긋한다.

“그 브랜드라는 거……. 형 이름으로 나가는 상품이죠?”

“내 이름을 건 건 아니고. 암튼 보면 알아.”

브랜드명이 ‘서 셰프의 선택’이니 딱히 내 이름을 걸었다고 하긴 어렸지. 물론 누구든 딱 보면 나인 줄 알긴 할 테지만. 그때였다.

“어! 저 광고!”

류승렬이 외치는 소리에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모두의 시선이 TV 쪽으로 돌아간다. KS 자동차의 NEW SJ7 광고인가 싶어서 눈을 돌리던 나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탁탁탁탁……! 화면 속에서 검은색 일색의 조리복을 입고서 칼질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그걸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서 셰프의 선택’ 광고였다. 엊그제 저택 안의 차고에서 강형식을 만났을 때 조만간 광고가 나갈 거라는 얘기를 듣기는 했다만, 그게 오늘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방송 전 광고라니. 당연히 우연은 아닐 테고. 노린 건가?

“오오! 포스 장난 아닌데요?”

“호호호. 진영 씨 요리하는 모습 보니까 멋지다!”

“우리 진영 씨가 쫌 그렇지.”

민망한 얘기들이 들려오는 가운데 난 광고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멋쩍고 쑥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출연하는 광고를 보는 건 나로서도 꽤 신선하니까. NEW SJ7의 광고 때도 그랬지만, 이번 광고 역시도 마찬가지. 진짜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연출이 뛰어나다. 촬영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렇게 막상 완성된 광고를 보게 되니 무언가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난달까.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아닌 거 같다.

“우와! 방금 밥 먹었는데도 보고 있으니까 군침이 도네!”

“진짜! 저거 보고 있으니 꼭 사야 할 거 같아!”

“진영 씨! 근데 저거 진짜 맛있어요?”

“글쎄요. 어울리는 요리에 쓰기만 한다면…….”

살짝 말을 늘이자 다들 날 바라본다. 씨익 웃으며 마저 말했다.

“끝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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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둘째 주 금요일 밤. 인터넷이 끓어올랐다. 이슈는 두 가지. 매주 그러했듯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는 많은 이들을 열광케 했다. 아니 감동을 자아냈다고나 할까. 아무튼,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게시판과 SNS가 들썩거렸다. - 후우, 이번 편에 또 눈물을……. - 아니, 이 양반 뭡니까? 요리사가 무슨 심리치료사야? - 그러게요. 어지간하면 안 우는데, 이상하게 이 프로만 보면 울게 되네. - 완전 착즙기네 착즙기! - ㅋㅋㅋ 착즙기. - 갓솁이 갓솁하는 거죠. - 정치적으로 나랑은 좀 안 맞아서 그동안 명제준 시장은 별로 안 좋아했는데, 오늘 방송만은 좋았어요. 어느 부모든 자식 사랑은 다 같은 건가 봅니다. - 그러니까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사람. 싸울 때 싸우더라도 혈육에 대한 정은 공감할 수밖에 없네요. - 근데 오늘 방송 막판에 예고편은 뭐죠? - 그러게요. 보니까 갓솁 안 보이던데. - 혹시 다음 편부턴 안 나오는 거 아닐까요? - 에이, 말도 안 돼. 갓솁 빠진 <네요들>은 앙꼬 없는 찐빵 아닌가요? - 앙꼬 노노 팥소 오케이? - 말꼬리 노노! 오케이? - 지금 그 문제로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더라고요. 진짜 갓솁 이제 나오지 않는 건가? - 안돼요! 매주 갓솁 보는 재미로 사는데! - 광고 봐요, 광고! 요새 많이 나오더구먼. 보아하니 다들 눈치챈 듯싶다. 다음 편부턴 내가 안 나온다는 것도. 하기야 그런 게 감춘다고 감춰질까. 게다가 이렇게 대놓고 예고편을 때려버렸으니. 물론 그게 다 담당 피디의 의도겠지만, 아무튼 이제 대한민국에서 내가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에 출연하지 않게 되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될 터다. 그나저나 심히 걱정된다. MC는 그대로인데, 패널만 세 명이다. 그중에 메인 셰프는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던 최중석이었고.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한 명은 잘 아는 여자였다. 황당하게도 헤나였다. 스피너스의 그 헤나 말이다. 원래 이 방송을 처음 시작했을 때 패널로 섭외되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시작도 하기 전에 하차하곤 SBC로 넘어가 노경환 피디가 연출하는 <혼저왕 먹읍서>에 출연 중이던 여자. 걸그룹 출신의 그녀가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에 얼굴을 내미는 모양이었다. 뭐, 상관없지. 이제 와선 그녀가 거기에 출연하든 말든 신경 쓸 일이 아니니까.

“형! 반응 좋은데요?”

류승렬이 기분 좋은 듯 웃고 있다.

“어머! 우리만 느낀 게 아닌가 봐! 다들 맛있을 거 같다고 난리야!”

“에이, 유나 누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영이 형이 광고하는 건데, 이 정도 반응은 당연한 거죠.”

“그야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이러다가 맛없다고 하는 건 아닐지…….”

“언니도 참. 무슨 걱정이야. 맛이라면…… 진영 씨가 끝내준다고 하잖아.”

“그런가?”

서로 간에 주거니 받거니 떠들어대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나 역시 옅게 미소지으며 게시판을 둘러본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 광고 죽이네. - 아우, 배고픈데 이거 보니까 더 배고파. - 난 방금 먹었는데도 입에 침이 고임. - 설정입니다, 설정. - 그런 건 난 모르겠고, 지글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입에서 침이 떨어질 판. - 파블로프의 개임? 웬 침? - 지금도 흘리고 있는 1인. - 2인. - 3인. - 병도 간지남. - 상품명 듣고 웃은 건 나 혼자인가? - 죽이네요! ‘서 셰프의 선택’ - 상표로 붙어있는 그림, 갓솁 얼굴인 듯. - 사진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그림 같은데요? - ㅋㅋㅋ 귀여워. - 인증합니다. 방금 사 온 따끈따끈한 제품임. - 오오! 언제 사 옴? 방금 나온 건데……. - 퇴근하는 남편 시켜서 마트에서 공수함. - 맞네. 갓솁 얼굴! - 와, 이건 노린 거네, 노린 거! - 맛은 어떤가요? - 그래 봐야 간장 아님? - 후우, 님들 놀라지 마셈. 방금 급히 콩나물 삶아서 간장이랑 참기름 넣고 비벼서 한 숟갈 먹었는데……. 와아! 이거 신세계네요. 대체 뭘 넣었길래 이런 향이 입안에 감도는 건지……. 이건 말도 설명이 안 됨. 직접 먹어봐야 앎. - 알바? - 아무래도 삼한 식품에서 댓글 아르바이트 쓰나 보네. - 저도 지금 먹어봄. 미친 맛입니다. 이건 꼭 사 먹어야 함! - 좀 전에 오빠 시켜서 사 왔어요! 고추장이랑 된장도 있더라고요. 이걸로 된장찌개 해 먹었는데……. 하아, 겨우 된장 하나 바꿨을 뿐인데, 우리 집 찌개가 달라졌어요! 보고 있는 내가 다 의심스러울 정도의 반응이다. 혹시 강형식이 알바라도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호평 일색이다. 하긴, 누구 레시피인데. 사모님도 아시면 좋아하시지 싶다.

“이러다 완전 대박 나는 거 아니에요?”

“대박은 모르겠고, 적어도 중박은…….”

“언니. 아까부터 자꾸만 왜 그래? 이거 우리 진영 씨가 직접 레시피 뽑은 상품이라니까. 맛있는 건 당연한 거지.”

“어우, 그랬쩌요? 이 기집애! 이젠 대놓고 팔불출이야? 나참, 남편 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배 아파서 어쩔 뻔했어?”

“헤헤. 말이 그렇다는 거징.”

이하연이 애교를 떨자, 박유나가 까르르 웃고 있다. 류승렬도 눈을 반짝이며 좋다고 웃고 있었고. 박유나의 남편인 김주형은 날 향해 엄지를……. 아우, 진짜 그러지들 좀 마요. 난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살짝 걱정하고 있었는데, ‘서 셰프의 선택’이 나름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것보다는 다들 자기 일처럼 좋아해 주는 게 더없이 기뻤던 것이다. *** 첫 출시 후 시장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무척 좋다고 말할 수 있다.

- 전국 18개 매장에서 초기 물량의 10분의 1이 팔렸다.

겨우 하루 만에 올린 성과였다. 강형식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

“흠, 대박인 건가?”

- 겨우 하루라서 좀 더 살펴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대박이라고 해야겠지.

“그렇다면 다행이고.”

- 어이, 좀 더 좋아해야 하는 거 아냐? 잊었나 본데, 상품 하나가 팔릴 때마다 총매출의 4%를 네가 가져간다고.

“아아, 알고 있어. 실감이 안 나서 그런 거지.”

- 하하하. 이러다가 너 나보다 더 부자 되겠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재벌 3세 주제에.”

- 할아버지가 부자지, 내가 부자는 아니거든. 부동산 조금 물려받은 거 외엔 주식 하나 없다고.

그렇게 얘기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녀석은 삼한 그룹의 직계혈통이다. 그 얘긴 곧 설사 강윤식과의 경쟁에서 밀려난다고 해도 상당한 재화를 상속받는다는 의미다. 그 금액이 못해도 몇백억, 아니 몇천억은 되지 않을까.

“지금이나 그렇지. 아무튼,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냐?”

- 어쩌긴. 1차 출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2차 출시를 이어가야지. 아, 그전에 CF 한 편 더 찍어야 하는 건 알지?

“그거야 뭐 계약했으니까.”

- 잠깐만……. 예! 지금 갑니다! 미안한데 상무님이 찾으시네. 이따가 다시 통화하자.

녀석과 통화를 하고 나서 난 픽하고 웃고 말았다. 근래 들어 가장 밝은 음성이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고무적이란 얘기겠지. 좋네. 간만에 녀석이 활달한 움직임을 보이는 거 같아서. 대박 난 거보다 이게 더 좋다. 뭐, 출시되고 하루 지났을 뿐이니 대박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난 한차례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오! 서 셰프!”

준석이 형이 날 발견하곤 몹시 반긴다.

“아, 형. 왜 그래요. 남사스럽게!”

“남사스럽긴. 갓솁이라는 말까지 듣는 마당에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얼굴 붉히냐?”

“에이, 그거 다 한때라고요. 알잖아요? 사람들 인심이 어떤지.”

“부글부글 끓다가도 관심 떨어지면 팍 식는 거?”

“아오. 그 표현은 좀…… 너무 노골적인데요?”

“내가 틀린 말 했냐?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괜히 구설수에라도 올랐다간 한 방에 훅간다?”

“예.”

씩 웃어 보이곤 칼부터 들었다. 아저씨가 내게 준 그 칼이다. 타다다다다다닥. 간만에 도마에 올려둔 채소를 썰며 기분 좋게 그 리듬감을 즐겼다. 그렇게 점심 식사를 준비를 끝마치고 난 뒤, 난 서둘러 주방을 빠져나왔다.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하고.”

오늘 오후부터 시작되는 C 마트 광고를 찍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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