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 거침없이 나아가라. (2) (142/204)

#142. 거침없이 나아가라. (2)2021.08.27.

패션잡지인 ‘더 센스’의 특집으로 나와의 인터뷰가 실린 것까지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사진 찍고 인터뷰까지 했는데 모를 리가 없지.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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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건 좀…….”

생각지도 못했다. 표지에 내 사진이 떡하니 들어갈 거라곤. 그것도 상체가 누드인 채로.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복근을 비롯해 근육들은 꽤 괜찮아 보인다는 것이다. 전문 보디빌더보다는 못하지만, 대신 힘을 많이 쓰는 요리사로서 그동안 키워온, 정확히는 나도 모르게 발달한 세밀한 근육들 덕분이었다. 거기다가 아우라지에서의 인연을 시작으로 대장장이인 아저씨가 하도 구박을 한 탓에 요리를 하는 데 있어서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게 된 나였기에 그간 아침마다 조깅도 열심히 해 왔으니까. 아무튼, 창피할 정도의 몸매는 아니다. 다만 쑥스럽고 민망할 뿐이지. 다들 말들이 많겠지? 안 그래도 광고 때문에 요사이 인터넷상에서는 나에 관한 얘기를 심심치 않게 보는데, 이렇게 떡하니 잡지에 내 사진까지 올라왔으니. 뻔할 뻔 자다. 그래서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인터넷을 검색했다. - 와아, 근육이 진짜! - 원래 요리사란 직업이 그런 겁니까? 겉으로 보기엔 저 정도까진 아니던데, 갓솁 몸 장난 아니네요. - 8년 차 요리사로서 대답 드립니다. 절대 아닙니다. 요리사가 다 저 정도면 차라리 보디빌더를 하지, 뭐하러 주방에서 칼을 잡겠습니까? 다들 요리사 하면 멋지다고만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주방이란 곳은 덥고 습한 데다가 바닥엔 항상 물까지 고여 있어서 발에 무좀을 달고 삽니다. 오죽하면 요리사들이 장화 신고서 일하겠습니까? - 헐, 그 정도입니까? -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제 친구도 요리사인데, 맨날 불 앞에서 일하느라 하루 종일 흘리는 땀이 1.5ℓ는 될 거라고. 게다가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밑 재료 다듬느라 물일도 많이 해서 손에 습진도……. 진짜 힘든 직업인 거 같아요. - 식재료도 장난 아니게 무겁답니다. - 컥! 요리사란 직업은 보기만 좋은 직업이었군요. - 온종일 서서 일하고 힘은 힘대로 쓰고, 요령도 있어야 하는 데다가 플레이팅 생각하면 감각도 있어야 한다는. - 요리사는 만능인가요? - 그러니, 갓솁 몸이 저렇지. - 그래도 저 정도까지 잔 근육이 발달하려면 얼마나 일을 빡쎄게 했을지 눈에 선합니다. 아, 전 이제 갓 1년 차 된 요리사 보조입니다. - 갓솁!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 아이돌 운동회에 내보내도 될 듯. - ㅋㅋ 그럼, 갓솁도 아이돌? - 유명세는 이미 아이돌을 넘어선 듯요. - 어디 아이돌한테 비합니까? 갓솁은 갓솁입니다. 광고도 그렇고 잡지까지. 갓솁이 갓솁한 거죠. 요리사들이 처한 극악한 환경에 대해 낱낱이 밝혀진 것까진 좋다.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어쩌면 주방 안의 환경이 개선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얘기의 끝에 갓솁이 갓솁한다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 대두된 것이 또 다른 문제가 됐다. 젠장! 덕분에 여기저기서 ‘갓솁하다.’란 댓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뭐만 했다 하면 그런 글들이 달리고 있었다. 지난해 연말 특집 방송 때문에 뒤로 밀렸던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명제준 세원시장 편이 방송되면서 한층 더 기승을 부렸다.

- 하하하. 혹시 보셨어요? 방송국 홈페이지에 시청자들이 몰려와서 ‘갓솁한다!’라고 써놓은 것들?

한진석이 전화해서 알려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뿐만 아니라……. 잡지사 ‘더 센스’의 남윤주 팀장도 전화해서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예? 팬레터요?”

- 셰프님 주소를 모르니, 잡지사 쪽으로 왔더라고요. 그것도 꽤 많아요. 지금까지 온 것만 해도 30통이 넘는데요.

잡지가 발매된 지 나흘. 잡지를 보고 보냈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더 오지 않는다고 말하긴 힘들 듯하다.

“하아, 언제 한번 들러야겠네요.”

- 제가 가져다드릴까요?

“아이고. 그렇게까지. 죄송스러워서 그건 좀 그렇죠.”

- 아뇨. 몇 통 안 왔을 때는 저희도 웃기만 했는데요. 열 통 넘어가면서부터는 그냥 두고 보기만 하기 뭣하더라고요. 그리고 드릴 얘기도 있고요.

“아, 그렇습니까?”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용건이 있다고 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또 인터뷰 한 번 더하자는 얘기인가? 자꾸만 얼굴 팔리는 게 쑥스럽기는 하지만, 얼마 뒤에 새로 찍게 될 방송…… <갓솁과 함께하는 맛있는 도전>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공짜로 홍보하는 셈 치면 될 테니까.

“부탁 좀 드리죠.”

- 그럼, 안 그래도 내일 외근이 있으니까, 저녁 식사 어떠세요?

“그렇게 하시죠.”

남윤주 팀장과 약속을 잡고 나서 전화를 끊은 뒤, 혀를 내둘렀다. 팬레터라……. 누군가는 겨우 30통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할는지도 모르겠지만, 난생처음 그런 걸 받아보는 나로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팬이 생겼다는 거잖아. 내가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아, 몰라.”

난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 보이곤 다시금 주방으로 들어갔다.

“얀마! 바빠 죽겠는데 뭔 통화를 그렇게 오래 해!”

“아, 미안해요. 형. 근데, 셰프님은?”

“금요일 저녁이잖냐. 회장님도 약속이 있으셔서 늦게 들어오신다고 하고. 이 집 식구들 절반 이상이 스케줄 있다고 하는데, 굳이 안 계셔도 되는 거지.”

대체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소에 비해 널널한 편이다. 전화 통화를 하느라, 아니 그놈의 팬레터 얘기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빨리 와서 잡채 볶아!”

“예. 형! 지금 가요!”

금요일이고 나발이고 간에, 저녁 식사 준비로 언제나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주방이었다. ***

“아, 많이 기다리셨어요?”

주방일이 끝나자마자 저택을 나섰음에도 약속 시각보다 늦게 도착한 내가 묻자, 남윤주 팀장은 고개를 내젓는다.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여전히 밝은 모습이었다. 사람마다 내뿜는 에너지라는 게 있는데, 남윤주 팀장은 유난히 따스한 느낌이다. 색으로 표현하자면 노란빛과 붉은빛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느낌이랄까. 내 눈에 비친 그녀는 무척이나 역동적이다.

“아직 식전이시죠?”

저녁 식사 약속을 했으니 아직 밥을 먹진 않았겠지만, 혹시나 해서 물었다.

“직접 해주시려고요?”

농담이란 걸 알면서도 쓰게 웃었다. 광고에 나왔던 대사 때문이다. 젠장, 언제까지 이럴지. 봐라. 대답도 하기 전에 남윤주 팀장이 입을 가리고 웃고 있다.

“팀장님까지 그러실 줄 몰랐네요.”

한차례 키득거린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왜요? 되게 매력적으로 나오시던데.”

“말도 마세요. 요즘 그것 때문에 민망해 죽겠습니다.”

“진짠데. 서 셰프님 같은 남친 있으면, 저 같아도 매일 요리해달라고 할 거 같아요.”

“그만하시라니까요.”

난 손을 내저으며 직원이 가져다주는 메뉴판을 받았다. 한데, 여직원은 떠나지 않은 채 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응?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머뭇거리며 묻는다.

“사, 사인해주시면 안 될까요?”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민망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몰차게 거절할 일도 아니니까. 이런 게 유명세라는 건가. 아니지. 딱히 불편하거나 곤란한 건 아니니까,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유명세라는 말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겠지. 난 멋쩍게 웃으며 여직원이 내민 종이에 사인을 해주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사진까지 찍어준 후에 다시 메뉴판을 살펴보는데, 남윤주 팀장이 해맑게 웃으며 거보란 듯이 말한다.

“봐요. 다들 좋아하잖아요. 아, 근데 불편하시면 지금이라도 자리 옮길까요?”

“아뇨. 그럴 필요까진…….”

내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사람들이 좀 알아봐 준다고 해서 나 스스로를 연예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러모로 도움도 되는 일인데, 굳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 그럴 거 같으면 애당초 이런 가게에서 약속을 잡지도 않았겠지. 연예인들이나 유명인사들만 드나든다는, 이를테면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지켜준다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갔을 터다.

“전 그냥 로제로 하죠. 팀장님은?”

“리조또 먹을래요.”

“해물?”

“예. 이거요.”

“여기요! 주문 좀 할게요.”

저만치서 내가 부르기만을 기다리던 여직원이 금세 달려와 주문을 받아간다. 그 후로 요리가 나오고, 30여 분쯤 식사를 하며 남윤주 팀장과 서로의 근황에 대해 대화를 나눈 뒤, 본격적인 얘기가 나왔다.

“우선, 이거부터 드릴게요.”

그녀가 쇼핑백을 들어 내게 내민다. 아까 들어올 때부터 보았던 거다. 뭔가 했더니만…….

“많네요?”

“오늘도 왔더라고요.”

“이거 50통도 넘는 거 같은데요?”

“73통이에요. 엽서도 있어서 그 정도인 거예요. 그리고 이건 선물들.”

또 하나 주는 쇼핑백 안에는 정성껏 포장한 선물 상자들이 몇 개 들어 있다.

“이게 다 뭡니까?”

“그야 저도 모르죠. 제 것도 아닌데 함부로 풀어볼 순 없잖아요.”

듣고 보니 딴엔 맞는 얘기라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풀어보는 것도 그래서 일단은 옆 의자에 놓아두고선, 남윤주 팀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하실 얘기라는 게?”

“아, 다른 게 아니라요.”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얘기는 정말이지 놀라웠다. *** 뉴욕. 보그사 본사 건물에서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해가 떠 있다. 그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등지고 신임 디렉터 이사벨라가 초조한 심정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 그녀의 바로 옆자리에선 갈색 톤의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 앉은 채로 묻는다.

“정말 연락이 오긴 오는 거야?”

“그렇다니까.”

초조할 때면 나오는 평소 버릇처럼 입술을 잘근거리다 대답하는 이사벨라. 그녀의 눈에 동료인 레이첼이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보인다. 한글과 영어로 표기된 잡지. 학교 다닐 땐 룸메이트였고, 그때부터 쭉 인연을 이어와 지금은 소울메이트라고 할 정도로 친한 친구인 남윤주가 발매 전 미리 보내준 한국 잡지 ‘더 센스’ 특집호였다. 커버엔 멋진 상체를 드러낸 남자가 강렬한 눈빛을 발하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그 도전적인 눈빛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레이첼이 물어온다. 벌써 세 번째 같은 질문이다.

“대체 이런 어트랙티브 가이를 어디서 찾아낸 거래?”

“말했잖아. 한국에선 제법 유명한 요리사라고.”

“와우, 다시 들어도 믿어지질 않네. 요리사가 이런 몸과 이런 눈빛이라고?”

레이첼이 입술을 핥으며 눈을 빛내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잽싸게 핸드폰을 들어 올린 이사벨라가 화면을 확인한다. 기다리던 전화다. ‘Nam’이라는 글자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사벨라는 빛과 같은 속도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두 개의 영상이 떠오른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남윤주의 모습과 함께 왼쪽 상단에 자신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이고 있다.

- 하이!

남윤주 특유의 하이톤이 들려오자, 이사벨라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하이, 윤주!”

- 많이 기다렸어?

“그걸 말이라고 해? 계속 폰만 바라보고 있었더니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

- 이사벨, 그래서 미리 말했잖아. 저녁 식사 약속이니까, 밥 다 먹고 나서야 전화하게 될 거라고.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기다리게 되는걸.”

그녀의 얘기를 들은 남윤주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후 물어온다.

- 미스터 서 바꿔줄 테니까, 직접 통화해. 대충 말해두긴 했지만, 자세한 건 네가 직접 얘기해야겠지? 준비됐어?

“오케이.”

이사벨라가 마른 침을 삼키며 자세를 바로잡기 무섭게 화면이 흔들린다 싶더니, 서진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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