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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맛있는 도전 (3) (139/204)

#139. 맛있는 도전 (3)2021.08.20.

우우우웅! 도로를 울리는 배기음에 본능적으로 심장이 두근거린다. 근데 이게 예전만큼 즐겁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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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 수밖에. 세상에 6대밖에 없다는 희소성은 둘째치고, 천문학적인 가격이 문제다.

“얼마라고?”

“뭘 자꾸 묻고 그래?”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다시 물으니, 녀석이 별스럽지 않다는 듯 얘기한다.

“3백만?”

“좀 세지?”

지랄. 이게 ‘좀 세지?’로 끝날 액수냐? 무려 3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따지면, 37억 원이 넘는다. 그걸 선물로 준단다. 새해 첫날부터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아니지. 온종일 내가 해준 음식을 먹은 셈인데, 뭘 잘못 먹었을 리는 없고.

“후, 그래. 네 마음은 알겠다. 딱 그 마음만 받으마. 그러니까…….”

“기억나냐?”

“……뭘?”

운전대를 잡은 채로 날 바라보는 녀석을 나 역시 마주 쳐다보았다. 이 정도로 사고를 낼 놈이 아니란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우리 이 차 타고 드라이브 갔던 거.”

“시험 운전이라고 해야지.”

“그거나 이거나. 암튼, 그때 너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지. 근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

“어떻게 알았냐?”

“뭐가?”

찔리는 게 있어서 시선을 슬쩍 피하며 되물었다. 역시나였다. 예상대로 녀석은 물어오고 있었다.

“오일 호스 터진 거, 어떻게 알았냐고.”

“뭘 어떻게 알아? 그때 내가 차가 좀 밀리는 거 같았다고 얘기하니까, 네가 엔진룸 살피다가 오일 호스 터진 거 발견했던 거 아냐.”

“그랬지. 나도 기억해.”

“근데 뭐가 문제야?”

“그러게 뭐가 문젤까?”

녀석은 묘한 어조로 되물으며 날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소리까지 내며 웃으며 전방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냥 신기해서 그래.”

“.....”

“콕 집어서 얘기하긴 어려운데, 가끔 널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니까. 얜 뭐든 아는구나. 내가 생각지도 못한 걸 떠올리기도 하고, 때론 누구도 보지 못하는 본질을 들여다본달까. 아무튼, 희한해. 아, 욕하는 거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누, 누가 뭐래.”

“아, 좋다! 집에 있을 땐 엄청 답답했는데, 너랑 이렇게 나오니까 속이 다 뻥 뚫리는 거 같다!”

“얀마! 해, 핸들! 핸들 잡아야지!”

운전대에서 양손을 놓은 채로 두 팔을 하늘로 뻗는 녀석 때문에 기겁해서 외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된다. 말이 가족이지, 전부 경쟁자고 언젠가는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하는 적들뿐. 형제는커녕 부모도 없는 녀석의 심정이 오죽할까. 그나마 할아버지인 강 회장이 있지만, 어쩐 일인지 그저 지켜만 볼 뿐 딱히 녀석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근래 들어 강윤식이 모질게 녀석을 몰아치고 있으니……. 나 같으면 보기도 싫었을 그 얼굴을 웃으면서 봐야 하는 강형식이 안쓰럽기만 하다. 솔직히 그 자식이랑 한 밥상에서 떠먹은 떡국이 제대로 넘어가기나 했을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혀를 차는 동안에도, 강형식은 그저 좋다며 웃으면서 차를 몰고 있을 따름이었다. ***

“자, 키.”

아파트 주차장에 페라리 피닌파리나 세르지오를 세워놓곤 차 키를 내미는 녀석을 난 빤히 쳐다보았다.

“이거 오픈카거든?”

“어쩌라고.”

“하아……!”

미치겠다, 진짜. 한숨밖에 안 나와서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이제 네 차니까 네가 알아서 해야지.”

빙글빙글 웃으면서 말하는 녀석이 얄밉기만 하다.

“그냥 가져가라. 제발.”

“자식이. 누군 갖고 싶어서 난리인데…….”

“난 아니거든. 솔직히 너무 부담된다고. 아무리 너랑 나랑 친구 사이라도 이건 아니잖냐? 그리고 이 차, 엄밀히 말하면 네가 산 것도 아니잖아?”

“내가 받아서 관리하고 몰고 다녔는데, 그럼 누구 차겠냐?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몇십억? 서진영이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돼? 아니. 이참에 확실히 말해두는데, 넌 돈 몇 푼에 비하면 엄청난 가치를 가진 놈이야. 3백만 달러? 하! 3천만 달러를 가져와도 너랑은 안 돼. 적어도 내게는 그래.”

“…….”

뭐라고 해야 할지. 진짜 난감하다. 문제는 이 자식의 표정으로 보건대 진심이라는 거다. 손발이 살짝 오그라드는 느낌이긴 하다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아니라고 말하면 녀석을 무시하는 게 되니 딱히 부정도 못 하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내가 3백만 불의 사나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고.

“그리고…….”

아, 끝난 거 아니었냐? 그렇게 남의 얼굴에 금칠을 해놓고, 또 할 말이 남았단 말이지? 다시금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싶어서.

“이 차……. 우리가 처음으로 친구가 되고 나서 함께 했던 추억이 담겨 있잖아.”

“……!”

갑작스러운 일격에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이 계속 얘기한다.

“크큭. 어쩌면 이걸 타고 나란히 저승으로 갈 뻔하긴 했지만. 아무튼 말이야, 꼭 차를 준다면 이차로 하고 싶었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난 멍하니 녀석을 보다가 툭 하고 내뱉었다.

“알긴 개뿔! 빨리 가져가, 이 자식아!”

  *** 결국 차는 근처의 유료 주차장에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 아직 8시도 안 됐는데, 녀석을 이대로 보내기도 뭐했기 때문이다.

“아, 그냥 간다니까 그러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간다는 게 말이 돼? 잔말 말고 따라와.”

“가족들한테 연락도 안 하고 온 거잖아. 괜히 내가 끼어서 분위기 망치는 거…….”

“그럴 일 없어.”

하아……. 진짜 사람 곤란하게 왜 이러냐?

“뭐하면 쇼핑백이라도 들든가.”

난 들고 있던 쇼핑백을 녀석에게 던져주듯 건네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집 앞. 초인종을 누르자, 안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세……. 엉? 오빠닷!”

인터폰으로 내 얼굴을 확인한 수아가 후다닥 현관문을 열어준다. 그러곤 반가운 얼굴로 내 쪽으로 달려와 폭 안겨들었다.

“히히힛! 오빠 냄새!”

“응? 냄새나? 씻고 왔는데? 킁킁.”

“너도 참……. 개냐? 그런다고 냄새를 맡게?”

수연이 누나 역시 반가운 얼굴로 다가오며 날 타박하다가 멈칫했다. 뒤늦게 강형식을 발견한 것이다. 녀석 역시 누나를 보곤 멋쩍어하며 얼굴을 붉혔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진영이 친구, 강형식이라고 합니다!”

“어? 오빠 친구예요?”

수아가 내 품에서 고개만 빠끔히 내밀고 신기하다는 듯 묻자, 강형식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응.”

“와아! 엄마! 아빠! 오빠 친구가 왔어!”

참네, 이게 그렇게 동네방네 떠들어댈 만큼 대단한 일이냐? 괜스레 쑥스러워져서 강형식을 집 안으로 잡아끌었다. 그러곤 얼른 현관문부터 닫았다. 혹여라도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무서워서. *** 사람 하나 더해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집안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뭐랄까. 시끌벅적한 것도 있지만, 것보다는 뭔가 가족들만 있을 때와는 다른 화기애애함이랄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달랐다.

“우리 진영이한테 이렇게 훌륭한 친구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맨날 도움 받고 있는걸요.”

“어머, 그래요?”

“그럼요. 아시잖습니까? 갓솁. 녀석 덕분에 암초에 부딪혔던 사업도 제 길을 찾고 순항 중이라니까요.”

“아, 사업하신다고 했죠.”

외삼촌은 내외하는지 아무 말씀도 없으셨고, 대신 외숙모가 이것저것 물어보며 연신 미소를 지으신다. 이하연이 왔을 때도 그러더니, 그렇게 좋으신가? 게다가 누나는 또 왜 저런대? 평소와는 다르게 사뭇 조신하게 행동하고 있다.

“오빠, 나 이거 매줘. 어떻게 매는지 모르겠어.”

“여기 끈부터 줄여야지.”

“이리 줘봐. 언니가 해줄게.”

내가 선물로 사 온 가방을 요리조리 만져보다가 결국 내게 매달리는 수아에게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고.

“과일이랑 차도 드셔가면서 얘기하세요.”

쟁반에 받쳐온 찻잔을 내려놓으며 과도로 배랑 사과를 깎는 모습이 어떻게 봐도 현모양처다. 와씨, 완전 배반감 느끼는데? 아무리 내가 처음으로 친구를 데려왔다곤 하지만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누나를 바라보자, 때마침 나랑 눈이 마주친 수연이 누나가 입 모양으로만 ‘뭐? 왜?’ 이러고 앉았다.

“이것도 좀 드셔보세요. 보기엔 볼품이 없어도 직접 빚은 거라 먹기 괜찮으실 거예요.”

외숙모가 내미는 송편을 강형식이 하나 집어서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다가 눈을 치뜬다.

“어? 맛있는데요?”

“호호호. 말도 예쁘게 하지.”

“아닙니다. 진짜 맛있어요. 마음 같아선 갈 때 싸 가지고 가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어머. 그럴래요?”

“아, 아뇨. 그런 뜻으로…….”

“엄마, 제가 챙겨놓을게요.”

“그래라. 넉넉히 싸놔. 알았지?”

“예. 걱정 마세요.”

모녀가 오늘따라 희한한 어투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그런 대화 말이다. 아, 진짜. 강형식 저 자식은 우리 집 식구들이 평소에도 저러는 줄 알겠지? 이거 사기 아닌가? 뭐, 상관없겠지. 자주 볼 사이도 아닌데. 어쩌면 오늘을 끝으로 더 이상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고. 그때, 배 한 쪽을 베어 물곤 우물거리시던 외삼촌이 강형식에게 불쑥 물으셨다.

“자네……. 아, 말 놔도 되지?”

“그럼요.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시던 외삼촌이 은근한 어조로 다시 물으신다.

“자네 술 좀 하나?”

“남들만큼은 마십니다.”

웃기고 있네. 약하다곤 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곤 해도 절대로 술이 세다곤 말하기 어려운 게 강형식의 주량이었다. 소주 한 병? 딱 그 정도가 녀석의 한계였다. 그런데 무슨…….

“그렇지. 모름지기 사회생활을 하려면 술은 할 줄 알아야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일어나신 외삼촌이 방으로 들어가셨다가 나오는데, 두 손에 커다란 술병을 받쳐 들고 계셨다. 인삼주다. 평소엔 아까워서 따지도 않던 걸 웬일로 꺼내신 거람.

“자자, 다들 한 잔씩 하자구.”

“삼촌. 그거 누나 시집갈 때 딴다고……. 윽! 왜?”

수연이 누나가 내 허벅지를 꼬집길래 쳐다보자, 새초롬한 눈으로 흘겨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외삼촌은 신경도 안 쓰시는 눈치고.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 안 따면 언제 따겠냐. 잔말 말고 너도 한잔 받아라. 요새 많이 힘들지?”

“뭘요. 맨날 하던 일인데요.”

“요리 말고도 이것저것 신경 쓰는 거 많잖니.”

“그야…… 그렇죠.”

“자네도 한잔 받고. 아, 수연이도 한잔할래?”

“한잔만이라면…….”

헐. 말술이 웬일이래? 어이없어서 누나를 바라보는데, 수아가 우릴 보며 킥킥거리고 있었다. *** 안 그래도 좋은 분위기에 술이 몇 잔 돌자,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못해서 뜨거워졌다. 그새 다들 편해졌는지 강형식에게 말을 놓고 있었고, 녀석도 기꺼운 표정으로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수연이 누나가 쉴 새 없이 날라다 준 음식을 안주 삼아 술잔을 부딪치고 있다. 물론 인삼주는 애저녁에 동이 났고, 그 뒤로 맥주랑 소주가 상위로 올라왔다. 아니 저 많은 술을 대체 어디에 숨겨 놨던 건지. 혀를 내두르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강형식이 취할까 봐 조심스럽게 페이스를 조절하느라 애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갈 때쯤 자리를 파했는데…….

“불편하지 않냐?”

수아의 방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드러누운 채 묻자, 강형식이 웃는다.

“좋기만 하구만 뭘.”

“좋기도 하겠다. 요 몇 달 침대에서만 자서 그런가, 난 등이 배겨서 미치겠는데.”

“이불만 깔려있으면 되는 거지. 문제는 어디 깔았냐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

뭔가 현묘한 얘기긴 하다만.

“많이 마시더라니…….”

술에 취한 놈이 뭘 알겠냐? 허리를 접어놔도 아픈 줄 모르고 실실거릴 듯 보인다.

“이만 자라.”

어쩌다가 녀석이 이 집에서 자고 가게 됐을까 생각하다가, 그조차도 귀찮아져서 눈을 감았다. 다행히 아까 이하연에게는 미리 톡을 보내놔서, 핸드폰은 평소와 달리 조용하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 눈을 감고 있을 때였다.

“진영아.”

혀가 살짝 말린 목소리로 강형식이 날 부른다.

“왜?”

“고맙다.”

뭐래.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뭐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새 잠이 들었는지, 강형식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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