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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맛있는 도전 (1) (137/204)

#137. 맛있는 도전 (1)2021.08.15.

내가 딱히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자, 명제준 시장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얼마나 막막했는지. 그러다가 결국 서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세원시까지 내려간 경위. 그곳 공장에서 일하다가 극악하기 짝이 없는 노동환경에 분을 참지 못하고 결국 일어선 이야기까지.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는 걸 읽어본 적도 있었고, 저번에 방송하면서 읽은 자료들도 있어서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이렇게 본인 입으로 상세히 듣고 있으니 ‘이 사람도 참 파란만장한 삶을 헤쳐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여태껏 나만 왜? 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다. 누구처럼 금수저로 태어나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화목하고 또 조금은 풍요로운 집안에 태어났더라면…… 하는 아쉬움. 그런 게 왜 나라고 없었겠는가. 하지만 애당초 그런 건 나하고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고, 또 그런 생각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일해서 꿈을 이루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작은 가게라도 하나 차려 언젠가는 외숙모께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만 했더랬다. 그런데 명제준 시장의 얘기를 듣다 보니, 오히려 나만 왜? 라는 생각 대신 내가 왜? 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누군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하는 일마다 잘되고 주위의 도움으로 쉽고 빠르게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면…… 그게 나일 이유가 있나? 하는 그런 생각. 설사 희박한 확률로 그게 나라고 하더라도, 그건 정말이지 만에 하나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삶을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 마찬가지일 터. 다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꿈을 하나하나 이뤄나가듯 나 또한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얘기다. 거기에 허황되게 일확천금 따위를 노리는 건 진짜 머저리 같은 생각일 따름이다. 세상에 대가 없는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걸 자신이 흘리는 땀과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내는 시간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터다. 그런 내 시각에서 보자면, 현재 내 주위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강윤식 같은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모든 걸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아마 그 스스로는 그걸 모를 테지. 아니, 안다고 해도 부정할 게 뻔하다. 가족을 버리고, 지위를 탐하는 것. 인간성을 버리고, 돈을 움켜쥐는 것. 웃음을 버리고, 남을 짓밟을 수 있는 힘을 갖는 것. 그에게 절대가치란 그저 권력, 혹은 금력일 뿐. 과연 권력과 혈육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가 무얼 선택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다시 물읍시다.”

곱창을 한 점 집어먹으며 소주잔을 막 비웠을 때, 명제준 시장이 다시금 물어온다.

“진짜 나한테 원하는 게 없소?”

싱긋이 웃었다. 원하는 거 있기야 하지. 하지만, 시기상조다. 강형식도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명제준 시장도 지난번 일로 한층 입지가 좁아진 상황일 테니.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곤, 덧붙였다. 속이고 싶지 않아서.

“아직은요.”

응? 하는 눈빛으로 날 보는 명제준 시장. 그가 갑자기 껄껄 웃더니 소주잔을 입안에 탈탈 털어 넣는다. 그러곤 내게 빈 잔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들자, 술병을 기울이며 그가 말했다.

“그럽시다. 당분간은 딱 이만큼만 거리를 둡시다. 가끔 만나서 술이나 한잔하고, 잊을 만하면 전화해서 안부나 물으면서. 그러다 보면 서로 가까워지는 날도 올 테고, 그렇게 되면 진짜 필요한 게 뭔지도 알게 되겠지. 그때쯤엔…….”

“…….”

“뭔가 함께할 수 있는 일도 있을 거요. 그렇지 않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한지, 명제준 시장은 웃고 있었다. 그 후로도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괜히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실 운전기사 분이 먼저 퇴근하도록 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

“끙.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이래서 사람은 주량껏 마셔야 하는 법인데. 어제는 명제준 시장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 2시가 넘어버렸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건지 감도 오질 않는다. 아무튼, 간만에 폭주 아닌 폭주를 한 건 분명하다. 다음번에 명제준 시장을 만나면 조심해야겠다. 이러다간 몸이 못 버티지 싶다. 나이도 적지 않은 양반이 어지간히 술이 세야지.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핸드폰을 확인해보곤 풋 하고 웃고 말았다.

- 뭐해여?

- 밥은 먹고 다니는 거죠?

- 난 지금 퇴근 중.

- 근데, 왜 답톡이 없징.

- 서진영 씨?

- 서진영 군?

- 서 셰프?

- 뭐하는데, 톡도 안 보는 거양.

- 벌써 내가 싫증 난 거야?

- ……는 농담.

- 자는 건가?

- 피곤했나 보네요.

- 일어나면 연락 줘요.

몇 분마다 한 번씩 날아든 톡을 읽으며, 어젯밤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을 이하연을 상상했다. 그 커다란 눈동자를 반짝이며 계속해서 내가 답톡을 기다리는 모습이 그려져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나저나 집착 하나는 쩐다니까. 뭐, 난 좋다. 말이 집착이지, 애정표현이지 싶다. 사람이 제각각이듯, 애정표현도 제각각. 당연히 사람 관계도 다 다른 거야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건 어느 한쪽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양쪽이 모두 좋아하는 일을 함께한다는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린 잘 만난 거겠지만……. 역시 걱정이 되긴 하네. 그때…… 백화점에서 보았던 이하연의 고모라는 분이. 그리고 그 후에 이하연이 보였던 모습도. 요즘은 오히려 내 쪽에서 그때 얘기를 피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 일에 대해서 한 번쯤 진지하게 얘기를 해봐야지 싶다. 그건 그렇고. 광고가 나왔단 말이지. 난 이하연에게 간단하게 답톡을 보내놓곤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러자 포털 사이트 상단에 떡하니 떠 있는 배너가 보인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만큼 실시간으로 깔아서 광고를 때리고 있는 건지, 아무튼 쉽게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픽하고 웃으며 터치하자, 광고가 뜬다. 까만 배경에 빛줄기가 한줄기 선을 그리고 그 선이 유려하게 움직여 곡선을 빚어낸다. 그렇게 빚어진 선들이 차 모양을 그리는가 싶더니 하나의 실루엣을 이룬다. 그때, 어디선가 우웅하며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점차 커지더니 화면 속의 실루엣이 확대되며 카메라가 바퀴 부분을 비춘다. 그 순간 단순한 흑백의 실루엣에 불과했던 바퀴가 실제 타이어로 바뀌고, 동시에 바닥은 아스팔트로 변모한다. 우우우우웅! 엔진음이 힘차게 들리는 가운데, 차가 질주한다. 물론 차의 외양이라든가 달리는 모습을 비추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노면을 미끄러지는 타이어만 비추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다. 신차의 디자인이 꽤 날렵하게 빠져 있다는 것을. 우우우우우우웅! 그렇게 트랙인지, 아니면 일반 도로인지 모를 노면을 힘차게 굴러 달려가던 타이어가 급브레이크를 걸며 멈춰선다. 그리고 다음 화면. 석양을 등진 차는 실제 차의 모습이긴 하지만, 햇빛 때문에 실루엣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림 괜찮네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차 문을 열고 내리는 그림자. 얼굴도 몸도 온통 검어서 그저 남자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때, 카피가 떠오른다. 진짜 남자들이 타는 차가 온다. 흠, 이거 괜찮은 건가? 살짝 걱정이 된다. 요즘 같은 때에 카피가 ‘남자가 타는 차’라……. 어떻게 봐도 성차별이지 싶은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티저 광고라지만, 왜 이렇게 만들었지? ……하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응?”

광고가 끝나고 나자, 다시 배너로 돌아가는데…….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 아까 보았던 거랑 다른 건가 싶어서 터치해보곤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좀 전에 본 광고랑 다른 점은 남자 대신 여자로 보이는 그림자가 내린다는 것. 그리고……. 카피. 진정한 여자들을 위한 차가 온다. 좀 놀랬다. 겨우 티저 광고에 불과한데, 이렇게 두 번에 걸쳐서 배너를 띄운다고? 어떻게 보면 돈 지랄인데……. 적어도 아까 내가 걱정했던 기우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것만은 분명하다. 권태홍 감독이 확실히 감각이 있다. 영상도 괜찮고, 카피도 단순하지만 끌린다. 별거 아닌 단어들의 조합인데도 어째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든달까. 그만큼 영상과 잘 결합해서 연출한 덕분이겠지.

“본편이 궁금해지긴 하네.”

난 픽하고 웃고는 핸드폰을 껐다. 아니 그러려던 찰나였다. 까톡! 이하연으로부터 톡이 날아오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랬겠지.

- 지금 뭐 해요?

- 일어났어요?

- 혹시 일하는 중?

- 나중에 연락할까요?

연달아 울리는 알림 소리를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 오늘은 오후만 근무해요.

톡을 보내자마자, 곧바로 걸려오는 전화.

“아, 여보세요?”

-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그래도 되죠?

되고말고. 그때부터 한참이나 그녀와 난 전화를 붙들고 통화를 이어나갔다. *** 12월 31일. 새해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정신없이 바쁘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주방에는 간만에 고윤수 주방장님까지 와 계셨지만, 평소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준석이 형이 메인 요리를 맡았고, 그 옆에서 내가 돕고 있다. 거의 5분에 한 번씩 김진호 셰프의 지적을 받아가면서. 그래도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신현정 피디와 방송을 하기로 약조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김진호 셰프가 더욱더 적극적으로 신경 써주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튼, 고단한 하루였다. 참나, 구정을 샌다고 하더니만, 내일은 왜들 모이는 거람. 하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탑이라고 일컫는 그룹의 총수다 보니, 강 회장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냐고. 거기까진 이해하는데, 덕분에 우린 떡국을 비롯해 내일 아침에 사람들에게 내놓을 음식을 만드느라 피똥을 싸야 했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보내고 나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에 퍼져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명제준 세원 시장 편이 방영되어야 했겠지만, 특집 프로그램들에 밀려서 다음 주로 연기된 탓에 핸드폰만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만 돌리고 있는 참이다.

“예, 삼촌. 내일은 아무래도 못갈 거 같아요.”

- 어쩔 수 없지. 일이 먼저니 어쩌겠냐.

“그래도 좀 아쉽네요. 간만에 모여서 같이 밥이라도 먹고 싶었는데.”

- 괜찮아. 매년 오는 새해인데 뭘 그렇게 아쉬워하니. 것보다는 몸 안 상하게 조심하고, 너무 무리하지 마라.

“그럴게요.”

외삼촌과 통화하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수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 오빠아아아! 잉, 보고 싶은뎅! 늦게라도 오면 안 돼?

- 얘가! 너 내가 뭐라 그랬어? 자꾸 그렇게 진영이한테 부담 주면 안 된다고 했지?

수연이 누나의 목소리에 웃음이 난다. 언제 들어도 활달한 두 사람. 거기에 외숙모까지 끼어들었다.

- 밥은요? 먹었대요?

- 자, 당신이 직접 물어봐.

-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지?

“그럼요. 걱정 마세요. 그래도 명색이 요리사인데, 설마 굶고 다니겠어요?”

- 그래. 요즘 부쩍 추워졌는데, 옷 따뜻하게 입고. 혹시라도 아프면 꼭 병원 가고. 알았지?

코끝이 시큰해진다. 당신은 몸살이 나도 약만 먹고 견디시면서 늘 자식들에겐 병원부터 가란다. 밥도 그렇다. 집에서야 가족들 식사 챙겨주느라 밥이나마 한술 뜨시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밖에선 김밥 한 줄 정도로 끼니를 때우실 게 뻔하다. 그런데도 내게는 꼭 밥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신다. 갑자기 목이 메는 걸 티 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내일은 못 가도 모레는 꼭 갈게요.”

-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 오빵! 일찍 와야 해!

- 진짜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진영아. 신경 쓰지 말고. 할 거 다 하고 와. 올 때 차 조심하고.

수연이 누나의 당부를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전화를 끊고 나서였다. 부르르르. 핸드폰이 울린다. 어? 오랜만이네. 새해 인사라도 하려고 전화했나? 근데 좀 이상하네. 그럴 거면 내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어, 승렬아. 잘 지냈어?”

- 에이, 형 왜 그래요? 겨우 2주 정도 못 봤을 뿐인데, 내외하는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생각해보니, 지난번에도 보긴 봤구나. 요즘 하도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다 보니 잠시 착각했나 보다.

“새해 인사하려고 전화한 거냐?”

- 뭐, 겸사겸사요. 궁금한 것도 있고요.

“궁금해? 뭐가?”

- 형, 방송 그만뒀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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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뭐지? 신현정 피디를 제외하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이하연이랑 강형식밖에 없는데. 아, 그러고 보니 MC인 한진석이랑 스태프들이 알고 있겠구나. 한진석이 다소 쾌활한 성격이긴 해도 함부로 떠들고 다닐 사람은 아닌데. 그럼 스태프 중 하나인가? 후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새로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프로를 맡은 피디에게 그만둔다고 한 게 얼마나 됐다고 벌써?

“어떻게 알았어?”

- 어떻게 알긴요. 방송국에 파다해요. 형이랑 신현정 피디랑 같이 그만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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