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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꼭 그걸로 해야 합니까? (3) (136/204)

#136. 꼭 그걸로 해야 합니까? (3)2021.08.13.

누군가 갓스토랑이 왜 싫은가 하고 묻는다면, 간단히 대답해줄 수 있다. 유치하다. 그래서 창피하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는지도 모르지만, 솔직한 심정이 그렇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자꾸만 갓솁이니 뭐니 해서 요즘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힘든데, 거기다가 새로 출연하게 된 프로그램 이름이 갓스토랑? 무슨 말이 나올지 뻔하다.

“아이고, 우리 서 셰프님. 순진하시기도 하시지. 그게 다 관심입니다, 관심. 그래도 아실 건 아시지 않습니까? 왜 아이돌 애들이 하라는 노래는 안 하고 자꾸만 예능을 뛰려고 하겠습니까? 그거 다 얼굴 팔려고 그러는 거잖습니까? 그래야 이름값도 올라가고, 행사도 뛰고, 또 CF도 찍을 테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서 셰프님 요즘 핫하잖아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갓솁이라고 떠받들어주고 있으니, 이 기회에 확 당겨야죠. 예? 물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괴롭네. 결국은 내 이름 팔아서 프로그램 띄우자는 말로밖에는 안 들린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야 나쁠 것도 없지. 결과적으론 나한테도 이득이 되는 건 분명하니까. 난 잠시 생각하다가 얘기했다.

“그럼 차라리 제대로 쓰죠.”

“예?”

한참 침 튀겨가며 얘기 중이던 이종무 씨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애매하게 줄이지 말고, 제대로 넣자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갓솁. 그걸 넣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이종무 씨피. 그에게 못 박듯 확실히 얘기했다. 이래저래 얼굴 다 팔렸고 강형식 말마따나 내가 반쯤은 연예인이라고 치면, 차라리 대놓고 뻔뻔하게 나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갓솁의 레스토랑, 갓솁의 요리 대결, 갓솁…….”

되는대로 얘기하자, 잠시간 날 쳐다보던 이종무 씨피가 한차례 눈을 껌벅이다가 되묻는다.

“그래서 그중에 뭐로 하시고 싶으신 건지?”

“그거야 씨피님이랑 피디님께서 정하셔야죠. 저야 제 생각을 말씀드린 거뿐이고요.”

“아, 그렇군요. 아무튼, 그럼…… 갓솁은 들어가도 된다 이거군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름을 쓴다고 해도 갓스토랑보다야 나을 테니까.

  *** 이종무 씨피를 먼저 보내고 나서, 잠시 신현정 피디와 얘기를 나누었다.

“죄송해요. 미리 말씀드려야 했는데.”

앞뒤 다 자르고 하는 말이었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못 알아들을 나도 아닌지라, 별거 아니란 생각에 곧바로 손사래를 쳤다.

“괜찮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겠죠.”

사실 이번 기획안이 누구 머리에서 나왔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결과가 중요한 거지. 그리고 그 아이디어 자체가 나레이션으로부터 비롯된 거 아닌가. 따지고 보면 내가 원조라고 우기기도 뭣한 상황이다.

“것보다는 이종무 씨피…… 말씀인데, 괜찮은 겁니까?”

오늘 만나보고 느낀 게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에 가장 도드라지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가볍다. 씨피라는 직위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정도로. 예능국이라서 그런가? 쯧, 그렇지는 않겠지. 그냥 원래부터가 사람이 그런 걸 테다. 한데, 신현정 피디가 입가에 고아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한다.

“예전부터 저러셨어요. 워낙 수더분하달까. 털털한 면모에 그냥 앞뒤 안 재고 말씀하시는 분이죠.”

흠, 필터 없이 내뱉는 타입이라는 말인데. 하긴, 음흉한 것보다야 백번 천번 낫기는 하지.

“원래부터 잘 알고 계시던 사이인가 보네요.”

“아시잖아요. 이 바닥도 학연으로 엮여 있다는 거. 그러다 보니 한 다리만 건너면 동문 한둘쯤은 쉽게 만나게 돼요.”

선배쯤 되나 보다. 수긍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이제 바로 프로그램 편성 들어가는 건가요?”

“타이밍이 좋았다고나 할까요. 안 그래도 내년 초에 개편 있는데, 딱 맞는 시기에 들어간 셈이죠. 요즘 JTL이 뉴스 쪽이랑 드라마 쪽 신경 쓰는 바람에 예능 쪽이 약해진 것도 한몫했고요. 덕분에 이종무 씨피님이 제가 올린 기획안 보고 바로 오케이 하시면서 급하게 연락드리게 된 거예요.”

대충 알겠다. 어차피 방송국 사정이라는 게 뻔하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시청률 싸움.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광고도 없고, 광고가 없으면 돈 자체가 굴러가지 않으니 뭔가를 찍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찍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괜히 시청률 잘 뽑는 피디가 제왕처럼 군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운이 좋았네요.”

“그렇기도 하지만…….”

말끝을 흐린 신현정 피디가 날 지긋이 바라보다가 옅게 미소짓는다.

“전부 서 셰프님 덕택이죠.”

“아이고. 무슨 그런!”

난 다시 한번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날 여전히 미소로 바라보며 신현정 피디가 말했다.

“잊지 않을게요.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도. 힘들 때 도와주신 거.”

멋쩍어져서 웃어 보였다.

“오히려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잘 이끌어 주십시오. 신현정 피디님께서 오라고 하면 언제든 달려갈 테니까요.”

살짝 너스레를 떨며 반쯤은 진심을 담아 말하자, 신현정 피디가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행이다.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밝아 보여서. *** 신현정 피디와도 헤어진 뒤, 난 바로 전화부터 걸었다.

“어, 나다.”

- 뭘 맨날 ‘나’라고 그래? 핸드폰에 이름 다 뜨는구먼.

강형식이 타박을 준다. 이 자식이!

“그럼 ‘너다’ 그러냐?”

잠시 말이 없던 녀석이 헛웃음을 흘렸다.

- 와, 너 진짜. 방금 엄청 유치했던 거 알지?

“큼큼. 그냥 농담 한번 던져봤다.”

- 그러지 마라. 너 이러는 거 하연이도 아냐?

아니 여기서 왜 이하연이 나와? 난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니, 화제를 돌렸다.

“시끄럽고. 실은 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는데…….”

본격적인 얘기를 꺼내놓자, 눈치가 빠른 강형식은 곧바로 진지 모드로 들어간다.

- 무슨 일 있어?

안 그래도 강윤식을 만난 일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지, 녀석의 목소리에 살짝 날이 서 있다.

“아니. 무슨 일까지는 아니고. 명제준 시장이 좀 보자네?”

- 명제준 시장? 그 사람이 왜?

“지난번에 있었던 일 때문이겠지.”

수화기 너머가 고요해진다. 일이 대강 어떻게 흘러가는지 짐작이 되는 모양이다.

- 다 알았나 보군. 그래서? 만날 거야?

“이미 만나자고 했어.”

- 흠, 나도 갈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아직은. ……이라는 단서가 붙겠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놓진 않았다. 애당초 명제준 시장과 그의 아들 간의 사이에 끼어들었던 건 강형식을 염두에 둔 일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지금은 아니다. 예전엔 몰랐지만, 이제는 아니까. 정치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러니 내 선에서 컨트롤이 된다는 판단이 서기 전에는 절대로 강형식과 다리를 놓을 생각이 없다.

- 그럼 왜 전화한 건데?

“말은 해줘야지 싶어서. 너도 알고 있어야, 지난번처럼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거 아냐?”

-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오케이. 그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하고.

이쯤 했으면 이제 슬슬 전화를 끊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 너, 광고는 봤냐?

“광고?”

- KS 광고 말이야.

“어? 그거 벌써 나왔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내년 초에 내보내기로 하지 않았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강형식이 웃는다.

- 본격적인 광고는 아니고, 일종의 티저? 슬쩍 맛만 보여주는 거지. 내년에 이런 차가 나올 거니까. 기다렸다가 사라고.

“아, 그런 거야?”

- 그래. 그러니까, 시간 날 때 한번 봐. 깔끔하게 잘 빠졌더라. 카피를 누가 썼는지, 나쁘지 않더라고. 컨슈머들 호기심이랑 기대감을 살살 건드리는 게, 티저치곤 제법이야.

“알겠다. 한번 보지, 뭐. 또 얘기할 건 없고?”

- 됐어, 인마. 지난번은 그렇다 치고, 이번에 명제준 시장 만나는 건 원래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만. 이미 만나기로 했다니까, 뭐. 언제든 문제 생기면 전화하고. 만나고 와서 여유 있을 때 한 번쯤 얘기나 해줘.

“오케이. 그럼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녀석하곤. 되게 신경 쓰이나 보네.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한데, 지난번 일이 떠올라 그게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신기하다. 따지고 보면 녀석을 알게 된 게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은 녀석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뭐랄까. 형제 같은 느낌도 들고, 진짜 친구라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하기야 그동안은 먹고 사는 데 바빠서 친구라고 제대로 사귀어본 적이 있어야지. 그렇게 따지면, 요즘 만난 인연들이 다 그렇다. 이하연은 말할 것도 없고, 신현정 피디에 류승렬까지. 거기에 고윤수 주방장님과 김진호 셰프 그리고 사모님이랑 아저씨까지 생각하면 평생의 운을 다 써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다시 한번 강형식과의 인연이 신기하기만 하다는 생각을 하며 명제준 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상암동 거리의 한쪽 귀퉁이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검은색 중형 세단 한 대가 다가오더니 멈춰선다. 그러곤 뒷좌석의 창문이 내려간다. 틈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예상했듯이 명제준 시장이다. 그가 날 보곤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타라는 얘기. 나는 군말 없이 차 문을 열고 몸을 실었다. 그러자 누군지는 몰라도 부드럽게 차를 몰아 거리를 빠져나간다. 운전 경력이 상당한가 보네. 가고 멈춰 서길 반복하는데도 차가 전혀 흔들림이 없다. 대체 이 정도로 운전을 잘하려면 얼마나 해야 하나? 요리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엔 이처럼 크고 작은 일에 엄청난 인재들이 곳곳에 널려있는 듯하다. 이런 가운데 성공을 하자니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빡셀 수밖에. 그나저나 내 차는 어쩌나? 방송국 앞의 주차 타워에 세워놓기는 했는데, 다시 돌아올 때까지 문이 열려 있으려나 모르겠다. 시답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놀랐지요?”

“예? 아, 예……. 조금.”

“그럴 거요. 내가 원래부터도 워낙 다혈질인 데다가, 엊그제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진상을 알고 나서는 가만있을 수가 있어야지. 사실 바로 전화하려다가 하루쯤 생각을 정리하느라 오늘 전화 드린 거요.”

“아, 그렇군요.”

“생각 같아서는 어디 좋은 데 가서 밥이라도 한 끼 사드리거나 하고 싶은데, 식사 때가 한참은 지났구려. 어떻소? 나랑 술이나 한잔할 테요?”

“술이요?”

음, 명제준 시장과 술이라……. 이거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명제준 시장이 다 안다는 얼굴을 해 보인다.

“가볍게 생각하시오. 뭐 접대는 나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지난번 일도 있고 하니……. 이렇게 합시다. 내가 잘 가는 데가 한 곳 있소. 거기 가서 대포나 한잔합시다.”

그 정도라면 나쁘지 않지. 어딘지는 몰라도 이상한 곳은 아닐 거다. 내가 알고 있는 명제준 시장이라면.

“그러죠, 그럼.”

그로부터 30분쯤 지난 뒤, 차가 도착한 곳은 마포구.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후미진 골목길에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가게 하나가 장사를 하고 있었다. 곱창을 파는 곳이었는데, 테이블도 몇 개 없어서 이렇게 장사해서 월세나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아이고, 시장님 오셨어라.”

“오랜만입니다.”

“오메, 뭔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한다요. 시장님께성 언제 날 잡고 오셨어라? 오다가다 생각나면 한 번씩 들르시면 되는 것이제,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지라.”

“하하하. 그 말이 맞군.”

“우째, 드시던 거라 드려라?”

“그럽시다.”

단골인 모양이다. 한눈에도 정 많게 생긴 아줌마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쫓아 나와 앞치마에 물기 묻은 손을 닦으며 웃으면서 명제준 시장과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자주 오시는 모양입니다.”

운전기사 분은 멀지 않은 곳에서 차를 지키고 있었기에, 가게에 들어온 것은 우리 둘뿐이었다. 난 주방 쪽으로 들어가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다가 명제준 시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명제준 시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곤 가게 안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그 눈가가 아스라하다.

“한 이십 년 됐나? 저이가 시집도 가기 전이었으니, 그쯤 되었겠지. 암튼, 그때 내가 막 서울에 올라와서 뭐라도 좀 할 게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시절이 있었소. 이제 와 생각하면 혈기왕성하기만 했지,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주제에 자존심만 세던 때였지.”

명제준 시장이 옛날 일들을 떠올리는지 눈을 가늘게 한 채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날 보며 불쑥 물었다.

“말해보시오.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소?”

“예?”

너무 뜬금없는 소리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명제준 시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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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 아니오. 그것도 우리 부자를 살려준. 아니, 아들 녀석과 내가 죽으면 마누라도 성격에 혼자 살려고 하지 않을 테니, 우리 가족을 살려준 분이라 해야 하나?”

“…….”

“내가 큰 신세를 졌소. 고맙소.”

그가 그윽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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