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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꼭 그걸로 해야 합니까? (2) (135/204)

#135. 꼭 그걸로 해야 합니까? (2)2021.08.11.

멍하다. 명제준 시장이 왜 연락을 한 거지? 아니 아니, 그전에……. 어째서 나한테 전화를 안 하고……. 아, 그렇구나. 전화번호를 모르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어 보일 때, 조강훈 FD가 덧붙였다.

“실은 서 셰프님께 연락할 방도를 찾으시길래, 지금 함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진다. 무슨 까닭으로 나랑 통화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조강훈 FD의 핸드폰으로 명제준 시장과 통화하게 된 경위는 이제 알겠다.

“안녕하세요, 시장님, 서진영입니다.”

- 아, 반갑습니다. 그간 별고 없으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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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고라……. 많아도 너무 많아서 탈이었지. 그렇긴 해도, 얼굴 한 번 본 게 다인 사람한테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럼요.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후우, 진짜 마음이 무겁다. 명제준 시장은 아는지 모르겠다만, 그날 밤…… 정말이지 까딱 잘못했으면 그나 나나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었다. 더불어 강형식도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을 거고. 아마도 강윤식은 이참에 녀석이 가진 걸 전부 빼앗고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만들어 내쫓았을 테지. 그렇게 됐다면, 강형식은 자칫 잘못했으면 한국에서 새해를 나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해서 한숨을 쉬려다가 지금 통화 중이란 걸 깨닫곤 애써 참았다.

- 다름이 아니라…….

오로지 직진이라고 하더니만, 소문이랑 별다를 게 없다. 지난번에 술에 잔뜩 취한 걸 집에 데려다줬는데, 그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이 바로 용건부터 꺼내고 있었다.

- 한번 봤으면 해서 전화했소.

아니 왜? 솔직한 심정은 그렇다. 죽을 때까지 만나고 싶지 않다. 아니 명제준 시장만이 아니다. 다시는 정치인과 얽히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오는 대로 지껄일 수만은 없는 노릇. 난 되도록 부드럽게 되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흐른다. 물론 전화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지금 옆에선 한진석이 스태프 중 한 명을 희생양으로 삼아 뭔지 모를 얘기를 한참 동안 떠드는 중이었고, 다른 이들도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에 집중하긴 어렵다고 판단한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때쯤, 수화기 너머에서 명제준 시장이 물어왔다. 꽤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 우리, 한 번쯤은 만나야 하지 않을까 싶소만.

이것 참. 대놓고 말하진 않고 있었지만, 뉘앙스만으로도 느낌이 온다. 알고 있군. 그날…… 무슨 일이 있었고,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참이었는지. 그리고 그걸 막은 게 누군지도 아는 듯하다. 하기야 겨우 10만이 조금 넘는 시민이라지만, 그래도 지방자치단체장인데 그 정도 눈치도 없겠는가. 아니, 눈치야 없을 수도 있지만, 그만한 정보통조차 없었으면 애당초 그 자리까지 올라가지도 못했을 테지. 잠시 고심한 뒤에 말했다.

“연말·연초엔 너무 바빠서 도저히 힘들 거 같은데, 어쩌죠?”

묻는 말투였지만, 실상은 거절이다. 그걸 알 텐데도 명제준 시장은 물러난 기미가 없었다.

- 그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요. 이러면 어떻소? 오늘 밤에 봅시다. 새벽에라도 좋으니, 원하는 시간만 얘기하면 차를 보내리다.

와, 진짜. 이 양반 성격 장난 아니네. 여기서도 안 된다고 하면, 지금 바로 찾아올 거 같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얘기했다.

“죄송한데, 오늘 저녁에 선약이 있습니다.”

- 그래도 집에는 들어갈 거 아니오? 아, 혹시…….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데이트 어쩌고 하는 얘기가 나올까 싶어서 얼른 대꾸하자, 명제준 시장이 잘됐다는 듯 묻는다.

- 기다리고 있을 테니, 끝나면 전화 주시오. 그럼 내 나가리다. 그럼 되지 않겠소?

화끈하게 정리해주시는 우리 시장님.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알겠습니다. 끝나면 연락드리죠. 아, 한데 어디로 전화를 드려야 할까요?”

- 혹시 받아적을 수 있소?

“예. 불러주십시오.”

사람들을 피해서 가게 문 앞까지 나온 상황이라 종이나 펜 같은 게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받아적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왜? 지금 받는 핸드폰은 내 것이 아니니까. 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명제준 시장이 불러주는 전화번호를 바로 입력했다. 010으로 시작하는 거로 봐선 개인 번호인데…….

- 이거 내 번호니까, 바로 전화하면 받을 거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늦어도 상관없으니 꼭 연락 주시오. 그래도 은인이라면 은인인데, 고집을 부려서 난처하게 한 게 아닌가 싶소. 미안하오.

정말이지, 할 말 없게 만드네. 이렇게 나오면 오히려 이쪽이 미안해지잖아.

“괜찮습니다. 언제고 한번 다시 뵙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저야 영광이죠.”

빈말 한번 던져주고.

“죄송한데, 지금 사람들하고 회식 중에 나온 터라…….”

- 아, 미안하오. 자세한 얘기는 이따 밤에 하기로 하고, 이만 끊읍시다. 그럼.

끊긴 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나 혼자 만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아니, 만나는 건 혼자 한다 치더라도 강형식에게 얘기는 해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바쁜 놈 붙잡고 하소연하듯 말하긴 싫고. 굳이 전화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결국, 난 녀석에게 문자 한 통을 보낸 뒤에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한진석과 스태프들을 뒤로 한 채 JTL 방송국이 있는 상암동으로 차를 몰았다. 술을 마시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서진영입니다.”

방송국 앞의 카페에 들어서자, 날 반기는 신현정 피디. 그리고 그 옆자리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 있다.

“반가워요. 이종무요.”

JTL 예능국 CP는 예상했던 대로 쉰 살가량 되는 남자였다. 탈모가 진행되는 중인지, 이마가 살짝 벗어져 있었지만 대신 중후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말투 역시 꽤 정중한 편이었고.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이번에 우리 방송국에서 개편을 앞두고 새로운 예능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기획안 자체가 내 머릿속…… 정확히는 나레이션에서 비롯됐으니 나로서는 모르려야 모를 리 없지만, 이종무 씨피가 모르는 거로 봐서는 신현정 피디가 얘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아는 그녀라면 이유 없이 그랬을 리가 없다. 모든 공을 자기 혼자 독차지하는 유형이 아니니까. 한데도 그렇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 그런데도 괜스레 아는 척했다간 오히려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신현정 피디의 입장이 곤란해지거나. 어느 쪽이든 지금은 그냥 가만있는 편이 좋을 터였다.

“프로그램은…….”

덕분에 한참 동안 설명을 들어야 했다. 그런 날 보는 신현정 피디의 눈빛에 안타까움이 어렸지만, 그녀라고 해서 별수 있겠는가. 이제 와서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엔 30분도 넘는 시간 동안 이종무 씨피의 얘기를 들었다.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말을 워낙 잘해서 말이지. 다만, 내용은……. 내가 알고 있는 것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원 플러스 원. 할인 행사 같은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는 말이다. 과정은 단순하다. 첫 번째 단계는 오디션.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 서류심사와 간단한 예선을 거쳐 백이십팔 명을 뽑는다. 그러고 나선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매주 과제를 내고 그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절반씩 탈락시킨다. 그렇게 매주 반으로 줄어들다가 마지막엔 열여섯 명만이 남게 된다. 그럼 그게 끝이냐? 그럴 리가. 오히려 그때부터가 진짜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그 열여섯 명을 데리고서 가게를 오픈할 예정이니까. 이를 위해서 오디션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만 한다. 나중에 오디션에 합격한 이들과 함께 부동산도 알아보고, 중고 기자재를 찾으러 다녀야 하며, 인테리어까지 진행할 테지만 그전에 어느 정도는 윤곽을 잡아놔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헤매는 수가 있으니까. 게다가 오픈할 가게는 하나가 아니다. 여덟 명씩 팀을 나누고, 각 팀마다 하나의 가게를 맡아 오픈시키게 되는데 당연히 둘 모두 내 지휘를 받게 된다. 여기서부터가 두 번째 단계인 셈. 두 달간 오픈을 준비하며 요리를 익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메인 셰프가 정해질 것이며, 그 외에도 각자에게 알맞은 포지션이 주어질 것이다. 당연히 홀서빙은 따로 구한다. 알바를 쓸 예정인데, 면접 역시 그들에게 맡겨둘 생각이다. 가게 이름 또한 그들에게 맡기자는 게 원래 내 의견이었지만, 신현정 피디는 그것만은 양보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가게를 연 후, 또다시 한 달. 매출과 손님들의 반응. 그리고 TV를 본 시청자들의 반응 등을 토대로 점수가 매겨진다. 그런 식으로 석 달 동안 총 여섯 번의 투표와 심사가 있고, 그 결과 우승팀이 가려진다. 이건 좀 예상 못 했는데, 상금이 내가 제시한 금액보다 훨씬 크다. 2억 원. 팀에게 주어지는 금액이긴 하지만, 팀원들 간에도 등수를 매겨서 나눠 갖는 상금에 차등을 두기로 했다. 좀 야박하단 생각도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무임승차하려는 이들도 나올 거란 판단에서였다. 그 후로 그 가게가 그대로 유지가 될지 어떨지는 아직 결정 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문 닫는 일은 없지 않을까? 방송 자체가 망한다면 또 모를까. 이 모든 과정이 아홉 달에 걸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일 년치 방송 분량을 얻는 거나 다름없다. 만일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린다면, 방송은 방송대로 대박이 나고 재능있는 요리사들에겐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욕심을 좀 더 내보자면, 이 프로그램 자체가 하나의 프랜차이즈처럼 되어서 색다른 컨셉의 요리문화로 정착되었으면 한다는 건데……. 역시 어렵겠지. 아, 그리고 이건 아직 방송국에 제안할 단계가 아니긴 한데. 강형식과 얘기한 바로는 삼한 그룹에서 전격적으로 서포트할 계획도 마련되어 있었다.

“좋네요.”

자화자찬할 것도 아닌지라,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얘기했다.

“그렇죠? 이거 분명 대박 날 겁니다. 특히 갓솁이 주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꽤 이슈가 되겠죠. 어떻습니까? 한번 같이 해보죠?”

“……예. 그러시죠.”

“하하하! 신 피디 얘기대로 화통하시군요. 좋습니다. 그럼 저희랑 계약부터 하시죠.”

드디어 돈 얘기다. 나로서는 매우 중요한 일인데도 이상하게 긴장이 안 된다. 요즘 무감해졌나 싶을 정도다. 그래도 일단 계약서부터 확인해봐야겠지. 이종무 씨피의 눈짓을 받고는 신현정 피디가 계약서를 건네준다. 그걸 받아 찬찬히 읽어나갔다. 이런 류의 계약을 몇 번 해봐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조목조목 따져가며 보게 된다. 혹여라도 독소조항이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건 꽤 지루하고 까다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해야만 한다는 걸 몇 번의 계약을 통해 알게 된 터였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눈을 깜박거렸다. 지금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뭘 잘못 본 거겠지……하는 마음으로 몇 번이나 확인한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

말문이 턱 막힌다. 장난도 아니고……. 가제도 아니고 확정이란다. 프로그램명이. 난 기가 찬다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쳐들었다.

“프로그램명 말씀인데요.”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짐작했는지, 신현정 피디가 슬그머니 시선을 딴 데로 돌리고 있다. 그에 비해 이종무 씨피는 뭐가 문제냐는 표정이다. 한숨이 나오려는 걸 도로 삼키며 물었다.

“정말 이대로 가실 겁니까?”

“왜요?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마음에 들고 안 들고 간에…… 이건 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이종무 씨피가 감탄사를 토해낸다.

“캬하! 제가 짓기는 했습니다만, 정말 좋지 않습니까? 갓스토랑 128! 이 얼마나 직관적이면서도 센스가 넘치냐고! 안 그래요, 신 피디?”

미친다, 진짜. 프로그램 이름이 갓스토랑이란다, 갓스토랑. ……아무래 이거, 갓솁에서 따온 거 같은데. 난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저기요.”

‘응?’ 하는 얼굴로 날 바라보는 이종무 씨피에게 재차 물었다.

“꼭 그걸로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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