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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손맛 (4) (130/204)

#130. 손맛 (4)2021.07.30.

언뜻 드는 생각은 있었다. 쟤가 걘가? 막내? 여자라는 말은 못 들었는데……. 하긴, 여자라고 안 될 이유도 없지 오히려 요리는 통상적으로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잘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주부들이 많으니까. 그렇긴 해도 좀 이상하긴 하다. 다른 건 둘째치고 너무 어리다.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까? 어차피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다 같은 성인인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역시 어색하다. 다른 곳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여기가 대기업 총수 일가의 저택 주방이라는 게 문제다. 한마디로 어지간한 능력이 없으면 발도 못 붙이는 곳이 바로 여기란 얘기다. 그런데도 겨우 스무 살이 넘었을까 말까 싶은 여자가 버젓이 들어와 있다는 건……. 누군가 뒷배가 있다는 말이겠지. 아니면 나처럼 주방 식구 중 한 명의 추천이 있었든가. 뭐,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긴 하지만 하필이면 막내가 여자라는 게 조금 걸리긴 한다. 원래 막내는 험한 일을 많이 하기 마련인데, 과연 저 여자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랬든 어쨌든 간에 통성명은 해야 하겠지.

“혹시, 오늘부터 일하기로 한 분입니까?”

“예.”

단답형의 대답.

“아, 그렇군요. 전 서진영…….”

“알아요. 서 셰프님.”

“……?”

“방송 봤거든요.”

말이 길어지긴 했는데, 어째 좀 말투가 거슬리네. 뭐랄까. 틱틱거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흠, 나중에 수아가 사춘기에 들어서면 저럴까나? 교복 치마를 한껏 치켜 입고, 외삼촌에게 퉁명하게 말하곤 방으로 쏙 들어가는 수아를……. 아, 상상이 안 간다.

“그래요. 좀 쑥스럽네. 그래서, 그쪽 이름은 뭔가요?”

“그쪽이 아니라, 한청이에요.”

“한청……. 이쁜 이름이네요.”

“아뇨. 성이 한이고 이름은 청. 외자예요.”

“아…….”

뭐라고 딱 집어 말하긴 어려운데, 어쩐지 상대하기가 껄끄럽다. 그런 느낌은 나만 받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주방 문이 열리고 준석이 형이 들어오다 말고 멈칫한다. 아까 내가 딱 저런 모습이었겠지. 피식하고 웃고 말았을 때였다.

“어……어……. 누구?”

보는 건 한청을 보면서, 묻기는 내게 묻고 있다. 진짜 절묘한 대처법이다. 형답기도 하고.

“한청이라고, 오늘부터 함께 일할 동료……라네요.”

맞죠? 하는 눈빛으로 한청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래요? 전 준석 오빠라고 부르면…….”

“형, 저기 잠깐만.”

난 준석이 형의 말을 자르곤 함께 밖으로 나갔다.

“왜 그래, 인마? 한창 인사 나누고 있는데.”

“아, 진짜. 형이야말로 왜 그래요? 오빠가 뭐예요, 오빠가.”

“그럼, 내가 쟤보다 열 살은 많은 거 같은데, 오빠지 친구겠냐?”

“헐. 진심은 아니죠?”

“뭐야 인마!”

“와아, 내가 형수한테 다 말한다, 진짜! 오빠래, 오빠……. 아저씨도 아니고.”

“얀마! 괜한 거로 사람 이상하게 만들고…….”

“그러지 마요. 그러다가 훅 가요. 요즘 애들 얼마나 이상한데. 형이 살갑게 굴려는 건 저도 알겠는데요, 괜스레 구설수에라도 오르면 어쩌려고 그래요?”

“음……. 그런가?”

주방에 여자가 들어오니까, 이런 문제가 생겨난다. 물론 안성댁 아주머니나 혜순이 누나도 여자지만, 아무래도 그들은 요리사가 아니라서 서로가 적정한 선을 지키고 있었다.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한청은 다르다. 여자고, 막내다. 이래저래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

“오빠, 방송에서 볼 땐 몰랐는데, 꽉 막혔네요?”

“헉!”

느닷없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스라치고 말았다. 대체 언제 온 거야? 그리고 왜 사람 말을 엿듣고 그러는 건데?

“저, 꼰대라는 말 엄청 싫어하는데, 오빠 보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말 할 것 같아. 준석 오빠라고 하셨죠? 저 말 편하게 해도 돼요? 아, 사석에서만요.”

“그래라.”

“쿨하다, 오빤.”

그렇게 얘기하면서 날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청. 그녀를 보곤 인상을 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뭐지? 이 기분은? 왠지 의문의 1패를 당한 느낌인데? 하, 그나저나 난생처음 들어본다.

“꼰대라니…….”

“아직 말한 건 아닌데?”

“야이, 이미 한 거나 마찬가지지!”

“크크큭. 한청? 너 사람 제대로 볼 줄 아는구나. 쟤가 은근 꽉 막혔거든. 너도 고생 좀 할 거다.”

와아, 억울해서 돌아버리겠네.

“왜 이래요? 저 이래 봬도 꽤 트렌디하다고요.”

“예, 예. 그러시겠죠. 청아, 들어가자. 조금 있으면 나머지 식구들도 곧 오니까, 얼른 옷 갈아입고 준비해야 해. 아, 옷은 받았니?”

“모레 정도에 나온다고 해서 집에서 입던 거 가져왔어.”

“잘했네. 들어가자. 진영인 한 대 피우고 들어올 거냐?”

“진영 오빠, 담배 피워?”

“크크큭. 아니, 내가 피우지.”

“뭐야. 담배 피우지 마요. 그거 몸에 엄청 해롭다며.”

“그러게, 끊긴 끊어야 하는데…….”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헐. 뭐지? 금세 친해져 버렸네? 대체 어느 쪽이 친화력이 좋은 건지 분간이 안 가네. 준석이 형이야 원체 사람이 좋으니 그렇다 치고. 한청도 만만치 않네. 말투가 틱틱거려서 성격이 되바라지거나 거칠 줄 알았더니 그런 거 같지도 않고. 오히려 굉장히 털털하다. 목 위까지 짧게 쳐내 머리칼 때문인지 보이시한 느낌도 강하고. 취소다. 여자라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거.

“나쁘지 않네.”

고개를 주억거리곤 주방으로 들어갔다.

  *** 출근하기 전, 핸드백을 쓰다듬고 있는 아내를 보다가 물었다.

“그렇게 좋아?”

빙긋이 웃는 아내. 그녀가 다시금 핸드백을 상자에 고이 넣고 있다.

“왜 도로 넣어? 메고 갈 거 아니었어?”

“이걸 어떻게 메요? 진영이 색시가 준 건데.”

“응? 아직 모르지, 그건. 결혼할지 안 할지는.”

“그냥 알아요. 두 사람 천생연분으로 보이니까.”

“그렇게 보이긴 한다마는,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암튼, 그거 메고 가. 잘 어울리던데.”

“안 돼요. 이건 나중에 진영이 결혼할 때 멜 거예요.”

기가 찼지만 더 뭐라고 하진 않았다. 한데, 진영이가 해준 목걸이는 또 차고 있다.

“그건? 차고 갈 건가 보네?”

“그럼요. 우리 아들이 해준 건데.”

“그래, 그래.”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의 눈이 아스라해졌다. 그날 밤, 비가 잔뜩 오던 그 밤에 장례식장 한편에서 서럽게 울던 그 아이가 어느새 커서 한 사람의 몫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그 모습을 누나랑 매형이 봤어야 하는 건데…….

“뭐야? 아직도 그러고들 있어요? 출근 안 할 거예요?”

딸내미가 들이닥치자, 부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엄마! 나, 샤프 어딨는지 못 봤어?”

“수아, 너! 내가 뭐라고 했어? 너도 이제 유치원 다니는 애가 아니니까, 네 물건은 네가 알아서 챙기라고 했어 안 했어?”

“어제 분명 잘 챙겨놨단 말이양.”

“샤프? 진영이가 사준 거 말하는 거지?”

“응. 아빠.”

“그거 소파 위에 있던데?”

“아! 여깄다!”

부산스러운 가운데, 아침 식사까지 마친 가족은 다 함께 집을 나섰다. 등교해야 하는 막내딸 수아만 빼고 나머지는 각자의 직장으로 가기 위해서. 그런 그들의 몸 어딘가에는 한두 개씩 가지고 있었다. 진영이가 해준 선물들이. 넥타이와 목걸이, 그리고 종아리까지 오는 외투까지. 아마도 그들은 직장에서 은근히 기대할 것이다. 동료들이 예쁘다고 말하면 그거 어디서 났냐고 물어오기를. 그러면 못 이긴 척 대답할 테다. 아들이 해줬다고. 남동생이 사줬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벌써부터 입이 간질간질한 그들이었다. *** 이하연은 어떻게 됐을까? 어제 잠시 나눈 톡으로는 전혀 얘기를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묻기가 껄끄러웠다. 하지만 느낌은 그랬다. 어쩐지 화제를 피하는 듯하달까. 그래서 더 불안하다.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들게끔 하는 데엔, 나름 경고 아닌 경고를 해준 나레이션도 한몫하고 있었다. 진짜 별거 아니라면 굳이 나레이션이 나섰을 리 없으니까. 무언가 문제가 있으니 얘기해준 걸 테다. 역시 그런 거겠지. 생각 끝에 살짝 입맛이 쓰다고 느껴졌을 때였다.

“조금 싱거운 거 같은데?”

김진호 셰프의 지적에 준석이 형이 마른 입술을 축이며 양념장에 얼른 고추장을 더했다.

“알아서 잘 하겠지만, 너무 태우면 안 되는 거 알고 있겠지?”

“예!”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 같은 모습이다. 그런 채로 준석이 형은 황태에 양념장을 정성껏 누벼 바른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난 달래 된장국을 끓이는 중이었다.

“아침 식사라고 해서 대충 해선 안 된다. 옛말에도 있듯이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살고, 하루의 시작을 그 밥으로 여는 것이다. 그러니까, 반찬 개수는 적어도 최대한 정성을 들여 만들어라. 그래야 소화도 잘되면서 입맛도 돋우는 음식을 내놓을 수 있다.”

진짜 제대로 하실 모양이다. 김진호 셰프의 모습이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속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된장국을 화로에서 내리려던 차였다. 갑자기 김진호 셰프가 손을 들어 보이더니, 내 행동을 제지한다. 그러곤 말했다.

“물 반 컵.”

“예!”

군말 없이 따랐다. 왜인지는 그 뒤에 들어도 늦지 않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생수 반 컵을 솥에 넣자, 김진호 셰프가 연이어 얘기했다.

“센 불로.”

대답할 틈도 없이 재빨리 화력을 높였다. 찬물이 들어가자, 국 색깔이 흐려지며 차갑게 식어가던 게 순식간에 끓어오른다. 그때, 내 귓가로 김진호 셰프의 말이 들려온다.

“맛을 자주 봐라. 계량도 정확히 하고. 절대로 눈대중으로 하려 하지 마라. 너희는 30년 손맛을 지닌 장인이 아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건 수치스러운 게 아니다. 모르는데도 아는 척하다가 형편없는 요리를 내놓는 게 진짜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손맛이 생길 때까진 끊임없이 움직여라. 쉬지 말고 손을 움직여 자르고 젓고 뜨고 맛을 봐라. 그래야 는다.”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김진호 셰프는 준석이 형에게로 다가가, 여벌로 구운 황태구이 한 점을 잘라 입안에 넣었다.

“아직도 싱거워.”

“죄, 죄송합니다.”

“아니. 네 잘못만은 아니지. 입맛이란 건 취향이니까. 아무튼, 회장님 입맛에는 조금 싱겁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다 구웠는데, 여기서 다시 양념장을 추가해?”

“…….”

“황태구이는 어때야 하지?”

“그게…… 부드럽고 촉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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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양념장을 추가해서 더 구우면, 황태가 마릅니다. 그럼 씨즐감도 나빠지고 무엇보다 입안에서 겉돌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준석이 형이 아무 말도 못 하자, 김진호 셰프가 직접 나서서 화로의 불을 껐다. 그러더니 황태 위에 양념장을 덧칠한다. 여기까진 아까 말했듯 좋지 않은 방법이다. 고추장을 구워야 하니 다시 화로에 불을 켜야 하는데, 그러면 방금 준석이 형이 말했듯 황태가 마르게 된다. 아니면 타든가.

“고추장이 배도록 잠시 기다렸다가…….”

화르르륵. 화로에 불이 붙자마자, 화력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황태에 두른 양념이 타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려는 순간, 바로 불을 꺼버렸다.

“알겠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백번 천번 듣는 말보다 한번 눈으로 보는 게 확실히 와닿는 법. 준석이 형도, 옆에서 어깨너머로 보고 있던 나도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양념을 덧칠한 후, 황태에 배기를 기다렸다가 단숨에 화로의 화력을 끌어올려 양념만 익힌 후 꺼버리는 것. 관건은 황태에 열기가 전해지지 않게 하는 데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준석이 형의 요리를 한차례 봐준 후, 김진호 셰프는 이번엔 내 쪽으로 와서 맛접시로 국간을 보았다.

“달래가 부족해. 조금 더 넣어.”

“……지금 넣어도 됩니까?”

혹시나 해서 물은 말이었다.

“괜찮아. 된장국은 원래 끓이면 끓일수록 맛이 나는 법이니까. 그리고 달래 같은 봄나물은 원래 향이 강한 편이라 나중에 넣는 게 좋지만, 하우스는 다르잖아? 그래서 겨울에 끓일 땐 조금 일찍 넣는 거고. 전혀 늦지 않아. 걱정 말고 넣어.”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얘기한 뒤, 잠시 후 또다시 맛을 본 뒤에야 김진호 셰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지시했다.

“상 차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뒤쪽에서 김진호 셰프가 나직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여기, 레시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그런데 왜 맛이 차이가 날까? 그걸 항상 고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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