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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반격 (2) (115/204)

#115. 반격 (2)2021.06.25.

녀석은 말 그대로 생각이 깊어진 눈빛이었다. 그렇겠지. 묘한 조합이니까. SBC 국장, 동선일보 부사장, HJ 엔터테인먼트 사장. 이들 세 명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여기까지만 얘기해선 흩어진 모래알처럼 제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겠지만, 여기에 한 가지만 추가하면 그림은 선명해진다.

“그들이 모인 곳이 어디였을 거 같냐?”

“……어딘데?”

“엘라드 컨츄리 클럽.”

“……!”

봐라. 단번에 알아듣는 거. 왜냐고? 엘라드 컨츄리 클럽은 그냥 그런 골프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한 그룹 휘하의 계열사 중 엘라드 관광이 보유한 골프장 중 프리미엄급 클럽. 돈만 있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시설은 최상이었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골프를 비롯해 모든 걸 한 건물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 그중에 하나, 강남의 룸살롱보다 고급이면서 은밀하기까지 한 룸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걸 강형식이 모를 리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게 실질적으로 누구 소유인지도. 엘라드 관광의 대주주는 삼한 전자였고, 그 전자의 주식을 회장님 다음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강구철 사장. 즉, 강윤식의 아버지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모든 설계의 배후에 강윤식이 있다는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말 믿을 수 있는 거냐?”

“음, 증거를 내놓으라면…….”

말을 잇지 않은 채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대신 내 목을 내놓을…….”

“지랄! 겨우 그딴 거에 왜 네 목을 걸어!”

새끼가.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난리야.

“믿어. 믿는다고. 그러니까 이상한 소리 말고, 대책이나 내놔봐.”

헐. 얘기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네.

“형식아. 잊고 있는 거 같은데, 난 고졸이고 넌 미국까지 가서 석사를 딴 놈이야. 그 대책이라는 거 누가 짜내야겠냐?”

“끙.”

뭐 마려운 개도 아니고, 끙끙대는 녀석을 보다가 툭 하고 내뱉었다.

“계획은 나보다 네가 더 잘 짤 테고. 나는 어제 들었던 얘기나 더 해볼게.”

그렇게 운을 떼곤, 나레이션이 알려준 정보에 내 추측까지 더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술자리에는 여자애들도 부른 모양인데, 걔들 아무래도 아가씨들이 아닌 거 같아.”

“아니면?”

“HJ 사장 김호준. 뭐 짚이는 거 없어?”

“하! 미친!”

“그치? 명제준 세원시장이 취중에 그러더라고. 옆에 진주라는 애가 앉았는데, 자긴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고. 근데 말이야. 진주라는 예명 어디서 들어본 거 같지 않냐?”

“음, 기억나네. 옛날에 애들 모임에 갔을 때,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콧소리 내던 거. 꼴 보기 싫어서 난 바로 나왔다만……. 걔가 거기 있었단 말이지?”

“그런 거 같아.”

“나머지도 뻔하군. 미친 새끼! 연예인을 키우는 게 아니라 창녀를 키우는 건가?”

고개를 내젓더니, 내게 묻는다.

“사진 찍었겠지?”

“나라면 그랬을 거다. 그것도 여자애 얼굴 나온 거 한 장, 교묘하게 비껴서 얼굴 안 나오게 한 장. 그리고 봐가며 뿌리겠지. 아, 그리고…….”

“그리고?”

“아무래도 주차장에서 명제준 시장 부축하고 차로 갈 때 한 장 찍힌 거 같다.”

“……!”

“그때 뭔가 찰칵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거든. 당시엔 그냥 나뭇가지를 밟았나 하고 별스럽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젠장! 아주 작정을 했구만.”

“대충 여기까지야. 내가 알고 있는 건.”

“지저분한 새끼! 딱 지 같은 짓거리를 하네.”

누구에 대한 분노인지는 물을 필요도 없을 터다. 강윤식. 얼마나 화가 났는지, 이젠 욕부터 하고 있는 강형식이었다.

“안 되겠다.”

“그럼 어쩌려고?”

“어쩌긴. 이거 우리가 감당할 일이 아냐.”

“……?”

“아무래도 장동일 상무님과 상의해야 할 거 같아.”

“그럴 시간이 있을까?”

“없어도 해야지. 내가 보기엔 오늘 밤 안에 막지 못하면 일단 너부터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러고 나면 나라고 무사하겠냐? 솔직히 이젠 이게 끝이 아닐 거란……. 음.”

“왜 그래? 또 뭐가 있어?”

신음을 흘리면서 내가 물어도 대답이 없던 강형식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욕설을 내뱉었다. 심상치 않은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가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어제 G 백화점에 갔거든.”

“근데?”

“거기 식품관에서 런칭 행사를 열 계획이라서. 행사 관련해서 둘러보고 돌아 나오다가 한 여자랑 부딪혔는데…….”

대충 감이 온다.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짐작은 맞아떨어졌다.

“헤나더라고.”

헤나. 스피너스의 전 멤버. 한때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하던 걸그룹 출신. 지금은 솔로 데뷔와 동시에 연기자까지 병행해 나름 인기몰이 중인 연예인이다. 한때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에 고정 패널로 출연할 예정이었다가, 그쪽 소속사에서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노경환 피디의 ‘혼저왕 먹읍서’에 출연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소속사는 바로 HJ 엔터테인먼트였다.

“하핫. 이거 참……. 더럽게 물렸네.”

“왜? 걔가 뭘 어쨌는데?”

“세탁비 운운하길래 그냥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라고 했더니, 덥석 알겠다고 하더라고. 솔직히 그녀가 민망할까 봐서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표정으로 봐선 그것만은 아니었던 거 같지만 일단 넘어갔다. 뭐, 녀석도 남자니까.

“그랬는데?”

“그랬더니, 아예 날까지 잡더니 내 번호까지 따가더라. 난 그게 우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후우, 그게 아니었군.”

“징하네.”

“그러게.”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심각한 표정이 되어 한숨을 쉬고 말았다.

  *** 어디 있었는지는 몰라도 연락을 받고 한 시간 만에 달려온 장동일 상무는, 강형식의 말이 끝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저희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그제야 장동일 상무는 강형식과 날 번갈아 쳐다보곤 얘기했다.

“둘 다 마음고생 좀 했겠네.”

언젠가부터 강형식에게 하듯이 나 또한 편하게 대하고 있는 그였다. 그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여기서부턴 내가 알아서 하마.”

“어? 상무님.”

“……?”

“증거가 하나도 없는데 괜찮은 겁니까?”

“증거?”

장동일 상무가 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뭐랄까. 웃고 있는데, 보고 있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랄까. 어쩐지 살기가 느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런 건 불륜 캘 때나 필요한 거고.”

“…….”

“우리 같은 사람들한텐 심증이면 충분하지. 어, 나다.”

어느새 전화를 걸었는지, 통화를 시작하는 그였다. 한데, 통화내용을 감출 생각이 없는지 그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민당 대표랑 원내대표한테 연락하고, 권 회장한테도 전화해봐. 내가 좀 보잔다고. 지금 볼 거야. 그래. 거기서 보면 되겠네. 응? 그럴 일이 있어. 그리고 동선일보에 김원오에게 연락해서 내일 아침자 신문 확인 좀 해봐.”

누구와 통화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화를 끊은 뒤, 장동일 상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역시 그저 말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길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장동일 상무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내내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통화 내내 응응, 그래? 따위를 연발하던 그가 마침내 전화를 끊고 나서 우릴 차례로 바라본다. 그러곤,

“니들 말대로군.”

하아, 미친다. 그냥 나 혼자 써재끼는 소설이길 바랐는데…….

“지금이라도 내리라고 하면 안 됩니까?”

내가 묻자, 강형식이 고개를 내젓는다. 그에 비해 장동일 상무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는 나를 달래듯 말한다.

“삼한이란 이름으로 말하면 가능하겠지. 한데, 문제는 이게 삼한 그룹 차원에서 나설 일이 아니란 거지. 형식이 앞에서 할 말인가 싶다만, 대외적으론 윤식이야말로 적장자처럼 보이지 않겠냐?”

한마디로 세가 밀린다는 말이 아닌가.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언론사에 대고 기사를 내려라 말아라 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월권이고 언론 탄압이다. 물론 그게 애당초 기득권층의 야합으로 시작된 일이라고 하더라도, 외부인사가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하물며 힘도 없는 강형식 입장에선 시도조차 못 할 테다. 장동일 상무는 그걸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어떡하긴. 이럴 때를 위해서 그동안 열심히 사과 상자를 나른 거 아니겠냐?”

여기까지 얘기한 장동일 상무는 신신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솔직히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지 나도 장담 못 하겠다만. 두 사람 다 외부에서 오는 연락에는 응하지 말……. 아니, 아예 받지 마라. 특히 형식이는 그 헤난지 뭔지 하는 여자애 조심하고. 그럼 다녀오마. 세 시간쯤 걸릴 테니까, 피곤하면 어디 가서 사우나라도 하든가.”

그렇게 말하곤 자리를 뜨는 그였다. 그 후, 우린 잠시 멍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솔직히 뭘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강형식도 그렇겠지만, 나야 말 그대로 평범한 서민이니 어쩔 방도가 있나.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가족들 외엔 주방 식구들이랑……. 어? 한 명, 아니 두 명이나 있네? 난 잠시 눈을 감고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하연에게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발 벗고 나서겠지. 그게 좋은 일일까? 아닐 거다. 그녀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언제고 이번 일이 그녀와 나, 두 사람의 발목을 잡게 될 거다. 그러니 그녀에게 연락하는 건 기각. 그럼 나머지 한 사람. 머릿속으로 한 명의 얼굴을 떠올린 나는 한참 뒤에 계산을 마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나갔다 올게.”

“어딜 가려고?”

“잠깐이면 돼.”

“……하지 마.”

“뭐가?”

“뭔지는 몰라도 하지 마!”

“왜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야?”

“나 때문에…….”

“……?”

“나 때문에 네가 다치는 거…… 보기 싫으니까!”

하아! 난 고개를 쳐들고 천장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마음 같아선 한 대 치고 싶네.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힌 뒤 말했다.

“강형식.”

“…….”

“착각하지 마.”

입술을 꽉 깨무는 녀석을 보면서 되도록 짧게 얘기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었으므로.

“이건 너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나만의 일도 아냐. 이건! 우리 일이라고! 우리 일!”

난 등을 돌리고 밖으로 나가며 덧붙였다.

“넌 어떤지 몰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거야.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너무 분해서 잠도 못 잘 거 같으니까!”

  *** 녀석이나 달래려고 던진 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분했다. 너무 분해서 이빨이 다 닳아 없어질 판이다. 하도 이를 갈아대서. 만일 장동일 상무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니들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라!’라고 했으면 이렇게까진 안 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말했다. 장담할 수 없다고. 하긴, 이게 장담할 만한 일은 아니잖아? 그냥저냥 그렇고 그런 인터넷 언론사가 아니라, 무려 국내 1, 2위를 다투는 언론사…… 동선일보의 내일 아침자 신문에서 기사를 내리는 일이다. 그게 어지간한 힘 가지고 되겠냐고. 까놓고 얘기해서 대통령이라도 쉬운 일은 아닐 거다. 그걸 하겠다고 장동일 상무가 나선 거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판이다. 그런데 난 그동안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니. 난 그렇게 못한다. 핸드폰은 꺼내든 뒤, 한참을 노려보았다. 연락처에 떠올라 있는 이름을. 후웁! 숨을 들이켰다.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는다면, 분명 도와줄 거다. 그 대가로 뭘 요구할지는 모르겠다만. 손가락이 통화 버튼을 스치고, 이내 신호음이 가기 시작한다.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늦었다면 늦은 시간. 솔직히 받을지 어떨지도 모르겠다. 달칵. 다행히 신호음이 그치며 저쪽에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여유롭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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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이게 누구야? 서 셰프 아냐? 이 야심한 밤에 어쩐 일이에요?

슬쩍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예. 회장님. 어려운 부탁 좀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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