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아버지의 이름으로. (2)2021.06.11.
열 살이나 됐을까? 그맘때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얼굴이며 팔다리에 검댕이 묻어 있는 소년은 사실 올해로 만 8살. 즉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겉보기에 그보다 한 살 정도 더 많아 보이는 것은, 다른 아이들보다 한 뼘 정도 크기 때문일 터다. 대신 살짝 마른 느낌도 있었다. 한창 크는 때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건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살림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년은 씩씩하기만 하다. 책가방을 등에 메고 실내화 주머니를 휙휙 돌리며 발장난을 치고 있는 소년. 그러면서도 눈만은 한쪽에서 절대 떼지 않고 있다. 공장 정문. 해가 질 무렵이라서 서서히 땅거미가 지고 있는 시간이라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음에도 소년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눈을 빛내며 조금씩이나마 공장 쪽으로 가까이 가고 있다. 그러다 소년의 눈에 반가운 빛이 감돈다. 공장 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소년이 까치발을 들고 공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살피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더니 우다다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남자 앞에 이르러 폴짝 뛰어들었다. 느닷없이 달려든 소년이었지만, 남자는 피하지 않는다.
“어이쿠! 요 녀석!”
“아빠!”
“하하하. 추운데 뭐하러 왔어?”
“헤헤, 아빠 보고 싶어서 왔지!”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안겨 있는 아들내미를 명제준은 더없이 기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 명제준에게 동료들이 한마디씩 한다.
“아이고, 추운데 여태 기다린 겨?”
“이야, 좋겠수다, 형님은.”
“그러게. 고 녀석, 효자네 효자!”
“쟤가 갸여?”
“석호야, 너 지난번에도 일등 했다며?”
“공부도 잘하네? 흐흐, 형님 오늘 월급도 받았는데 아들내미 뭐라도 좀 사주쇼.”
괜한 오지랖일 수도 있겠지만, 명제준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한솥밥을 먹은 지도 몇 년. 다들 가족 같은 사이다. 특히나 나이가 그들보다 많았던 명제준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형처럼, 오빠처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석호는 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물론 명제준 역시 자신의 아들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남들처럼 학원 한번 보내주지 못했음에도 늘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그림대회나 노래대회에선 꼭 상을 타가지고 오는 아이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을 꼭 빼닮아서,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절대 참지 않는 게 너무나 기특하기만 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석호는 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학급회장을 맡았다. 제 어미는 없는 살림에 큰일이라며 우는소리를 했지만, 명제준은 그것마저도 그저 기꺼울 따름이었다.
“읏차!”
석호를 덥석 안아 들어 목말을 태우곤, 명제준이 물었다.
“뭐 먹을까? 오늘은 아빠가 아들 먹고 싶다는 거 다 사줄게!”
“짜장며여여연!”
“그래. 짜장면. 먹자, 먹어.”
잠시 후, 부자는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어느 중화요릿집에 앉아 있었다. 한데, 테이블 위에 놓인 짜장면은 한 그릇뿐이다.
“아빤 안 먹어?”
“응? 아빤 이미 많이 먹었지. 허우, 배가 너무 불러서 이따가 엄마랑 밥 먹을 거야.”
“그럼 나만 먹어?”
“그래. 아빤 신경 쓰지 말고 어여 먹어. 뿔는다.”
슥슥 비벼서 소스와 면을 버무린 뒤, 짜장면 그릇을 아들 쪽으로 밀어주는 명제준의 얼굴은 더없이 환하기만 하다. 그런 아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석호는 그 작은 손으로 나무젓가락을 들어 짜장면을 집어 올린다. 그러더니 아빠를 향해 쑥 내민다.
“응? 아빠 먹으라고?”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석호. 명제준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오른다.
“왕!”
아들이 내민 짜장면을 우악스럽게 덥석 문 명제준의 입가에 춘장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대신 짜장면 그릇을 살짝 밀어 아들의 앞으로 당겨주었다.
“아들이 주는 거라 그런가, 엄청 맛있네. 안 되겠다. 아빠가 다 뺏어 먹어야겠다!”
“아, 안 돼애!”
울상이 된 석호가 얼른 젓가락을 들어 짜장면을 먹기 시작하자, 그제야 명제준은 상체를 뒤로하고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말. 다 지어낸 거짓부렁이라고 생각하던 명제준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루하루 크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면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이 녀석이 웃는 걸 보기만 해도 힘이 나고, 맛있는 거 하나라도 사주기 위해 등골이 휘도록 일해도 힘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일 터다. 공장 측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서 동료들을 앞에 선 것도. 또한, 그런 그를 따라 함께 일어난 이들 역시 다들 아버지이고 어머니, 혹은 누나이기 때문이겠지.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짜장면이겠지만 그들에겐 아들딸과 어린 동생이 웃게 만들 별미였고, 그렇기에 그 행복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격렬히 싸우는 것이다.
“아빠, 나 배가 너무 불러서 못 먹겠어!”
한참 상념에 빠져있던 명제준이 뒤늦게 아이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곤 내려다보니 짜장면이 반이나 남아 있다. 픽하고 웃고 말았다. 요 녀석이 어디서 잔머리를. 그럼에도 명제준은 흐뭇하다. 왜 먹다 말고 배가 부르네 마네 하겠는가. 한창 클 때인데, 이까짓 짜장면 한 그릇을 정말 다 못 먹어서? 그럴 리가 없다. 아빠가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명제준은 젓가락을 들었다.
“그럼 아빠가 도와줄까?”
“응!”
“자, 아빠 한입, 아들 한입……. 아빠 한입, 아들 한입…….”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건 한 젓가락이나 될까. 대신 아들에게 주는 건 그보다 몇 배는 많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석호는 그저 웃으며 받아먹고 있다. 마치 새끼 새처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면서 짜장면을 잘도 받아먹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저 한 가지 생각만 들 뿐이다. 이 녀석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냐는. *** 스튜디오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아들의 모습은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아주 오래전 그날, 그때가 떠올랐다. 동시에 지금처럼 촉촉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울먹이던 아들의 눈이 기억났다. 전국 노동자 궐기 대회가 있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은 유난히 시위가 거셌고, 그에 따라 투입된 정경들의 대응도 만만치 않게 거칠었다. 사방에서 화염병이 날았고, 물대포가 쏘아졌다. 불길이 치솟고, 몽둥이가 오갔다. 방패에 막혀 고꾸라지면, 여지없이 진압봉이 온몸을 두들겼다. 그나마 덩치가 좋은 편인 자신은 좀처럼 쓰러지지 않고 시위현장을 뛰어다니며 동료들을 도왔지만, 결국엔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곤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더랬다. 눈을 떴을 땐 이미 병원이었다. 끌려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겠지만, 다섯 시간 만에 의식을 차린 그의 머리는 크게 찢어져 있었고, 덕분에 열세 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뜬 그의 앞에는 집사람의 품에 안겨 훌쩍이고 있는 아들이 있었다. 자신의 손을 꼭 쥔 고사리같이 작은 손이 그의 감각을 일깨웠다. 그때 들었던 아들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평생 잊지 못한다.
“아빠아아아! 석호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더 잘할 테니까, 죽지 마요, 아아아앙, 죽지 마, 아빠!”
그 작은 손으로 어찌나 꽉 쥐는지, 가슴이 꽉 죄어오며 목구멍이 콱 막히고 말았더랬다. 지금 말했다간 자신도 함께 울 것만 같아서, 하는 수 없이 손만 뻗어 석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그때의 눈빛이다. 지금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아들의 눈빛은.
“석호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명제준 시장의 눈가가 서서히 붉어지고 있었다. 이미 그들 부자를 바라보는 스튜디오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고,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
명제준 시장 앞에 이른 명석호는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부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화들짝 놀란 명제준 시장이 얼른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명석호가 이를 악물었다가 토하듯 내뱉는다.
“……죄송해요. 제가 철없이 굴어서……. 너무 못나서……. 흑…….”
덥석. 더 이상은 듣지 못하고 명제준 시장이 그대로 아들을 얼싸안았다. 무릎이 바닥을 쓸고 있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아비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등을 토닥이고 있을 뿐이었다.
“됐어. 됐으니까, 이제 진정해.”
“그치만…… 제가…… 제가…… 흑. 아버지…….”
아마도 머릿속에선 무수히 많은 말들이 떠오르고 있을 테지만, 정상적으로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마음만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서로의 온기는 이미 맞닿아 있었고, 그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터인데. 한참을 흐느끼던 명석호가 서서히 눈물을 그쳐갈 즈음, 명제준 시장은 손을 뻗어 아들의 눈 밑을 닦아주었다. 그러곤 물었다.
“왜 이렇게 말랐냐? 잘생긴 얼굴이 반쪽이 됐네.”
“…….”
“밥은 제때 먹고 다니는 거야?”
눈시울이 붉어지다 못해 시뻘게진 명제준 시장은 어떻게든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애잔하기만 해서 스튜디오 안에 일던 이들은 하나둘씩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명제준 시장은 아들의 어깨를 감싸고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깨어질까 부서질까, 조심스럽게 아들을 이끌어 식탁 앞에 앉혔다. 스윽. 바로 앞으로 끌고 온 의자에 자신도 앉은 뒤, 명제준 시장은 짜장면 그릇을 아들 앞으로 당겨왔다. 이어 나무젓가락을 들어 내밀며 말했다.
“불었겠다. 얼른 먹어.”
하지만 명석호는 차마 그 젓가락을 받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명제준 시장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빤 이미 많이 먹었어. 너무 많이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러서……. 이따가 엄마랑 밥 먹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어여 먹어.”
거짓말. 아직도 자신을 애들 취급하는 아버지였지만, 그게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가슴이 아프다. 이미 어머니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빤히 알고 있는데……. 입술을 잘끈 씹고 말았다. 그런 채로 명석호는 손을 뻗었다. 떨리는 그 손에 젓가락이 쥐어지고, 우악스러울 정도로 짜장면을 집어 들어 입에 쑤셔 넣는다.
“천천히 먹어야지. 체하면 어쩌려고.”
등을 쓸어주며 물그릇을 내미는 아버지의 손. 그 손등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못 느꼈는데 어깨도 좁아지신 거 같고, 흰머리도 늘어난 것만 같다. 울컥하며 가슴이 미어졌다. 동시에 눈물이 솟구쳤다.
“욱……우욱……!”
오열이 터지고 말았다. 이제는 진짜 모르겠다. 아버지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자신은 아버지에게 뭘 바라고 있던 걸까? 그저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인데…….
“죄……송해요……. 아버지!”
*** 촬영 내내 명제준 시장은 정치적인 소신이나 신념 같은 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스튜디오 안에서의 그는 자식을 두고 있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처럼 흔하디흔한 팔불출일 뿐이었다. 한 시간도 넘게 아들 자랑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한진석이 그때그때 맞장구를 쳐줘서 그런지 아들 얘기로 밤을 새우라고 해도 그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면서도 말하는 동안 바로 옆자리에 앉혀둔 아들의 손을 매만지고 등을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딱 한 번 촬영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동안 많은 제의가 있었지요. 누군 당 간부를 시켜주겠다고 했고, 또 누군 내가 평생 모아온 재산보다 더 많은 돈을 주겠다며 유혹하더이다. 그래도 다 거절했습니다. 자식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고 싶어서 그랬소. 한데 말이오, 나도 사람이더란 말이오. 시간이 흐르고, 점차 누릴 것이 많아지니 간사한 마음이 들더이다. 여기저기서 날 원한다고 하니, 사특한 욕심이 조금 조금씩 머리를 쳐들더군. 하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건 이 녀석이 집을 뛰쳐나간 뒤였소.”
한참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그는 다시 말했다.
“이젠 바로 잡아야지.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어디 내 힘이겠소? 다 나를 믿어준 동료들의 힘이고, 또 지지해준 시민들의 힘인데. 그리고…… 아들 덕분이지.”
다시 한번 명석호의 손을 꼭 잡는 거로 그날의 촬영이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명제준 세원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