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 아버지의 이름으로. (1) (108/204)

#108. 아버지의 이름으로. (1)2021.06.09.

  신현정 PD는 역시 영민하다. 따로 정한 것도 없는데 내가 손짓 한 번 하는 것만으로도 대번에 알아듣는 눈치다. 스튜디오 한쪽, 명제준 시장의 시야에선 비껴나 있는 곳이 어수선해지는가 싶더니, 그와는 상관없다는 듯 카메라 한 대가 날 향해 돌아서고 있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얘기겠지. 난 내 할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진석이 또다시 오두방정을 떨어댄다.

“어? 서 셰프님? 거긴 또 언제? 와, 홍길동이네 홍길동!”

그의 말에 방청객들의 시선도 일제히 내게로 와 꽂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묵묵히 식재료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응? 뭐죠? 대체 뭘 만들려고 밀가루를? 설마, 또 면입니까? 아, 진짜! 제가 촬영 전에 부탁드렸잖습니까? 오늘은 제발 스테이크 좀 썰어보자고!”

한진석의 말은 사실이다. 그는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이왕 하는 먹방인데, 고기로 하죠?’라는 말을 하기는 했다. 고기. 좋지. 난 숙성고를 열며 한진석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해사해진다. 참네. 고작 이 정도로 그렇게 해맑게 웃다니. 하지만 난 그걸 그냥 봐줄 의향이 없다. 칸칸이 들어차 있는 고기들을 손으로 짚어가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뒤 문을 그냥 닫았다. 왜냐하면……. 예전의 맛을 고스란히 재현하려면 이런 생고기를 써선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향한 곳은 냉동고였다. 그걸 본 한진석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고. 뭐, 그거까지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었지만. 냉동고에서 주먹만 한 소고기 한 덩이를 꺼내 들어 바구니에 담았다. 이로써 바구니 안에는 밀가루와 얼린 소고기, 그리고 오가며 담아둔 야채가 담겨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체 내가 뭘 만들려고 하는지 알 길이 없을 터다.

“오오! 대체 뭔가요? 뭘 만들려는 거죠? 서 셰프님, 궁금해 미칠 것 같습니다. 오늘의 요리가 뭔지 말씀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예. 안 됩니다.”

“아앙! 그러는 게 어딨어요!”

어디서 앙탈을. 팔뚝에 돋는 소름을 쓰다듬어 가라앉히곤 선반 쪽으로 몸을 틀었다. 뒤이어 내가 집어 든 건…….

“앗! 추, 춘장? 설마? 아니죠? 아니라고 얘기해주세요!”

아무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하자, 한진석이 거의 절규에 가깝게 외쳐댔다.

“왜 말을 못 해요! 짜장면이죠? 그쵸? 아아, 어제도 먹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기껏……. 하아!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우리가 했던 그 약속들은 뭐죠? 스테이크를 썰게 해주겠다던…….”

“그런 적 없습니다. 그냥 한진석 씨 혼자 말한 거지.”

“와아! 매정하기도 하지.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럼, 직접 요리하시든가요.”

킥킥거리며 바구니를 들고 조리대로 향했다. *** 대기실 한쪽에서 모니터를 통해 스튜디오를 바라보고 있던 명석호의 눈빛은 시종일관 흔들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표정관리까지 하느라 일찌감치 진이 빠져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너스레를 떨며 여유롭게 말하고 있는 아버지, 명제준 시장을 보고 있는 명석호의 표정엔 애잔함이 스쳐 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지금 명제준 시장이 하는 말들은 사실이었으니까. 적어도 그가 유년시절 쭉 보아온 모습인 건 분명하다. 다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바뀌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일 뿐. 권력이라는 게 대체 뭔지. 아버지는 그때부터 신념이 아닌 권력을 좇기 시작했다. 명석호가 보기엔 그랬다. 아직까지도 아버지를 따르는 이들은 그게 다 대의 때문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놈의 대의가 뭔지도 모르겠고.

“네 아버지도 사람이다.”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불고하던 그에게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납득할 수 없다. 아무리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지만, 딱히 아픈 곳 없는 자신을 병역에서 빼내고 대학을 졸업하기 무섭게 친분이 있는 회사에 낙하산으로 꽂아 넣었다. 자신에겐 한마디 상의도 없이. 뿐만 아니라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고 들어오시곤 했다. 상대는 유력 정치가나 경제인들이었고, 그때마다 옆구리가 터질 것 같은 가방을 들고 오시곤 했다. 거기에 뭐가 들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선거철이 되면 바짝 엎드리긴 했고, 적어도 세원시에선 안 그러셨지만 다른 곳에서는 흔히 말하는 갑질도 하시곤 했다.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알던 아버지는 이제 없는 건가? 가슴이 메어왔고, 분통이 터졌다. 그래서였다. 집을 박차고 나간 것은. 그리고……. 지금 그는 이 자리에 있었다. 다시 한번 아버지를 보기 위해서. 대체 왜 그러셨는지. 어째서 변하셨는지. 그 이유를 직접 듣기 위해서 말이다. 똑똑. 한참 상념에 빠져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준비하셔야겠습니다.”

조감독이라도 했던가? 조금 마른 체구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해주곤 떠나갔다. 한숨을 쉬며 명석호가 옷매무시를 바로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스튜디오를 비추고 있는 모니터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 흔히들 탕수육을 두고 찍먹파냐 부먹파냐 하면서 다투곤 한다. 보기에 따라선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의외로 이건 큰 문제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에 대한 논의는 곧 개인의 취향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삼겹살을 바짝 익혀 먹느냐, 아니면 붉은 기만 가시면 집어 먹느냐와도 흡사하달까. 이와 비슷한 경우가 또 있다. 다름 아닌 짜장면과 짬뽕. 그 둘 중 뭘 더 좋아하는가다. 개인적으론 둘 다 맛있어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대개 남자들은 짬뽕 쪽에 좀 더 점수를 주는 편인 듯하다. 이유? 뭐긴 뭐겠는가? 술 때문이지. 이해할 만하다. 술 마신 다음 날 얼큰한 국물과 함께 먹는 짬뽕은 확실히 별미이긴 하니까. 그에 비해서 짜장면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국민 음식 중 하나다. 뿐만 아니라 물가 안정을 위해 억지로 가격을 동결하는 품목 중 가장 대표적인 주자이기도 하고. 설렁탕이 1,500원 하던 시절에 짜장면이 500원 정도 했다고 하니 말 다한 거지.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1900년대 초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던 공화춘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는 짜장면은 틀림없이 한국의 대표적인 요리다. 다만 그 시작을 연 것이 화교라는 점과 베이스가 되는 소스가 춘장이란 점에서 중국요리로 분류되고 있을 뿐. 재밌는 건, 예전에는 이 춘장도 여러 곳에서 만들다 보니 짜장면 역시 지역마다 맛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땐 대부분의 짜장면이 지금과 달리 연갈색을 띠었다. 그러던 것이 대만 출신의 사업가가 세운 회사에서 춘장에 캐러멜을 섞어 만든 게 히트를 치면서, 이 제품이 사실상 대한민국의 중화 요리계를 석권해버렸다. 덕분에 지금은 흑갈색을 띠는 짜장면이 대세가 되어버렸고. 어찌 되었든 짜장면이 외식 문화의 대표 아이콘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 결국 칩니까? 서 셰프, 면을 쳐대고 있습니다!”

어감 참……. 한진석의 말투가 묘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닌지라 난 그저 옅은 미소만 베어 문 채 열심히 면을 뽑고 있었다. 그 과정은 지난번 밀면을 만들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중국의 탄탄면과도 비슷한데, 결국 밀가루를 치대서 제면한다는 것에선 같다. 한참 동안 널찍한 나무 도마 위에서 전분을 뿌려가며 수타로 면을 뽑아낸 뒤, 한쪽에 곱게 접어두었다. 반죽을 숙성한 게 아니라서 이렇게라도 해둬야 그럭저럭 탄력 있는 면발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면이 자가숙성을 하는 동안, 난 고기를 비롯해 야채들을 먹기 좋게 썰어 웍에 넣고 볶아댔다. 이내 구수한 냄새가 스튜디오를 채운다.

“괴롭네요. 갑자기 확 배가 고파져서 이젠 아무 생각이 안 납니다. 설마 이런 걸 노린 건 아니겠죠? 아, 몰라 몰라. 얼른 만들어주기나 하세요!”

한진석이 반쯤은 장난처럼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그는 입맛이 당기는지 자꾸만 침을 삼키느라 목울대가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 중이다. 명제준 시장 역시 마찬가지. 서민 출신의 사회운동가라는 배경만큼이나 소탈한 면모를 과시하려는지 내 쪽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누가 보면 진짜 며칠은 굶은 듯 보이는 두 사람. 그들을 한차례 일별하곤 본격적으로 손목을 놀리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맛있는 소리다. 그 소리만큼 연기가 피어나고, 동시에 기름이 튄다. 화르륵! 기름 때문에 붙은 불길이 위로 솟구치자, 방청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역시 시각적 효과란 무시할 수 없는 건가. 난 빙긋 웃으며 손목을 놀려 낚아채듯 여러 차례 웍을 흔들었다. 그때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식재료들이 한껏 달궈진 웍 위로 솟구쳤다가 내려앉길 반복하고 있다. 이쯤이면 되겠지. 관건은 태우지 않는 것. 노릇노릇하게 익은 정도에서 춘장을 풀어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중국집에서 일한 경력은 꽤 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정말이지 눈감고도 할 수 있다. 츄아아아아악. 웍에 춘장이 들어가자, 하얀 김이 피어오르며 난리도 아니다. 기름이 튀고 춘장이 튀고……. 앞치마가 검정색이 아니었으면 어찌할 뻔했냐고. 그래도 꽤 맛있는 냄새가 풍겨서, 조리를 하고 있는 나조차도 침이 절로 넘어갈 지경이다. 좋네. 역시 짜장면은 진리다. 흡족한 표정이 되어 이번엔 면을 삶기 시작했다. 보글거리는 물속에서 익어가는 면들을 보다가 다른 쪽 화로에 냄비를 올렸다. 그 안에서도 역시 물이 끓고 있다. 마음 같아선 멸치라도 넣어서 육수를 내고 싶지만, 그랬다간 자칫 당시의 맛을 재현하지 못할까 싶어 그냥 계란만 풀고 소금과 들기름으로 맛을 냈다. 그 후 면을 건져내고, 물기를 뺀 후 그릇에 담았다. 아주 오래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연녹색에 흰색 점이 박혀 있는 그 그릇 말이다. 거기에 면을 적당히 담은 뒤, 아까 볶아둔 춘장을 끼얹었다. 그리고 그 위에 썰어둔 오이채를 올리고, 또 그 위에다 삶은 계란 하나를 예쁘게 올려 두었다. 삭삭삭삭. 손끝에서 뿌려지는 깨. 탁하는 소리와 함께 그릇째로 짜장면을 식탁에 올리자, 김이 모락모락 나며 익숙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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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옆에 각지고 동그란 모양의 국그릇에 담은 계란국물까지 놓고 나니 제법 그럴듯하다. 진짜 꼭 옛날에 먹던 짜장면 같은데? 나도 모르게 어릴 때 생각이 나서 흐뭇하게 웃었다.

“자, 그럼…… 오셔서 좀 드셔보시죠.”

내가 말하자, 한진석이 자리에서 주춤주춤 일어나려 한다. 픽하고 웃으면 한소리 했다.

“한진석 씨는 왜 일어나는데요?”

“그야 나도…….”

“참네. 그건 경우가 아니죠. 손님 먼저 드시고 나서 먹든 말든 하시죠. 자, 오시죠. 시장님.”

“아놔. 누군 입이 없나.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다 연출일 뿐 한진석 역시도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다. 그저 웃으며 손짓으로 명제준 시장을 식탁으로 안내하는 그였다. 그렇게 그가 막 식탁 앞에 앉았을 때였다. 스튜디오 바깥쪽, 그러니까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진을 치고 있는 곳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물론 나중에 편집을 통해서 그런 잡음들은 소거될 테지만, 중요한 건 지금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명제준 시장이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의 손에는 이미 젓가락이 들린 채였고. 저벅저벅. 안 그래도 건조한 공간에 조명 때문에 바짝 말라 있던 바닥을 두 개의 발이 디디며 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인파가 갈라졌다. 마치 모세가 지팡이를 치켜들자 갈라진 홍해처럼 양편으로 나뉘며 깔끔하게 길을 내고 있는 그 한가운데, 낯익은 이가 한 명 걸어오고 있었다. 툭. 그 얼굴을 확인한 명제준 시장의 손에서 젓가락이 힘없이 떨어져 내린 것도 그때였다. 동시에 그의 입술이 살짝 떨리며 벌어졌다.

“서, 석호야.”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눈길을 고정한 채 걸어오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명석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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