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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숨은그림찾기 (1) (102/204)

#102. 숨은그림찾기 (1)2021.05.26.

누군가에게 아들이 있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니 평범하다 못해서 식상할 지경이다. 사람은 대부분 나이가 차면 결혼이란 걸 하고, 그렇게 일가를 이루면 자신 혹은 사랑하는 배우자를 닮은 자식을 바라게 되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집에선 첫아이로 아들을 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집에선 딸을 바라기도 한다. 요즘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가정이 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의 정서상 꼭 한 명만 낳아야 한다면 아들을 원하는 경우가 더 많긴 하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납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라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 아, 모쏠이나 다름없는 주제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좀 그런가? 나는 그렇다 치고, 그녀는 어떨…… 흠, 나도 진짜 미쳤네. 생각 끝에 이하연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우곤 나레이션에 집중했다. - 대중에게 알려져 있기론 매우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명제준 세원시장은 사실 무심한 남편, 자상하지 못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벌어진 형제와의 불화도 사람들에겐 알려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작년부터 아버지와 연을 끊고 가출, 아니 잠적한 상태라는 것이다. 와, 이거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근데 이런 거 막 들어도 되는 건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거 같은 예감인데. 난 인상을 팍 찡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살다 보면 때론 듣지 않는 것만 못한 얘기들도 있는 법인데…… 지금의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또 모르는데, 유명인 그것도 정치인이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귀를 막을 수도 없고, 설사 막는다고 해도 머릿속을 울리는 나레이션의 음성을 듣지 않을 방도 따윈 없으니까. - 세원시장에 이어 서울시장, 그리고 대권을 향한 야심 찬 도전에 자신의 인생을 전부 걸고 있는 명제준 세원시장으로선 결코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치부이겠지만, 서진영은 반드시 두 사람을 화해시켜야 할 까닭이 있다. 아아,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아니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집이 싫다고 뛰쳐나가 버린 아들과 자신의 야망 때문에 집안에 무심한 아버지. 그 두 사람을 무슨 수로 화해시킨단 말인가. 더구나 평범한 사람들도 아니고, 대중의 관심 속에서 대권까지 탐내고 있는 정치인을.

“너무하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 거잖아. 하고 싶지도 않고 말이지. 근데 그런 걸 다 무시하고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그래서 그 이유가 뭔데? 속으로 묻고 있었지만, 사실 답은 뻔하다. - 앞으로 어느 정도 힘을 키운 후 최종적으로 경쟁자들과 회장 자리를 놓고 승계 싸움을 벌이게 될 강형식에게, 명제준 세원시장은 더없이 소중한 조력자가 돼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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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그거냐? 하아, 미친다 진짜. 그러니까 결국 뭐야? 강형식이 회장 자리를 계승하기 위해 정치적으로도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건데……. 나레이션이 이번 기회, 즉 명제준 세원시장이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걸 놓치지 말라고 하는 건가? 아놔, 엿 같네. 아무리 나레이션 입장에서 강형식이 주인공이고 나는 그저 조연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딱 들어보니 그냥 어려운 것도 아니고, 거의 미션임파서블 같은데, 그걸 나더러 하라고? 그러다 실패하면? 그땐 진짜 망하는 거 아냐?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런데도 무조건 해라? 인상을 구기다 못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 표정을 굳혔다. 그런 채로 중얼거렸다. 아니, 물었다.

“그걸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하지만 나레이션은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 어느새 BGM도 사라지고, 묵묵부답이다. 후우, 뭐야? 나더러 알아서 판단하란 얘기인가? 하든지 말든지. 방금까지 피곤해서 그대로 녹아버릴 것 같았는데, 지금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든다. 그때였다. 전화가 걸려왔다. 녀석이다.

“어, 그래.”

나레이션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아서인지,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투가 곱지 않다. 그걸 또 눈치챘는지, 강형식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혹시 또 윤식이 형이…….

“아냐. 그런 거.”

- 그럼 뭔데? 말해봐. 뭣 때문에 그래?

“아, 아니라고. 그냥…… 개인적인 일이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따지고 보면 녀석과 밀접하다 못해 땜질을 해놓은 것처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게 떨어진 미션이란 것도 분명하다. 물론 선택은 내가 하는 거고. 할지 말지는. 아무튼, 그러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 알겠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 말해.

나참, 이 자식은 전쟁에 내 마누라였나? 뭐 이렇게 날 챙기려 들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다.”

- 그냥 하는 말 아니니까 꼭…….

“알았다고요.”

잠시 말이 없던 강형식이 툭 하고 내뱉는다. 그것도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어조로. 아까까진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면, 지금은 뭔가 신나는…… 정확히는 그렇게 느껴지도록 애써 노력하는 목소리다.

- 출시될 상품들, 공장에서 생산 시작했다.

“벌써?”

나 역시 아까 하던 얘기는 잊었다는 듯 목소리 톤을 바꿨다.

- 장동일 상무님이 애 좀 쓰셨지. 새로 부지 마련하고 설비 확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아서, 원래 있던 생산 라인을 빌리는 쪽으로 방향 틀었거든.

“흠, 쉽지 않았을 텐데?”

말도 마라. 요 며칠 그 문제 때문에 나랑 상무님이 임원들 만나서 설득하느라 밤새워 마신 술을 생각하면……. 아휴, 속이 다 울렁거리네. 아무튼, 상품들 출하되면 곧바로 전국 각지의 물류창고로 이동시켜 적재 시작할 거고, 내년 초…… 못해도 2월이 오기 전에는 출시할 예정이다. 오, 확실히 희소식.

“빠르네.”

- 광고도 그때 맞춰서 나갈 거야. 그러기 위해선 힘들겠지만, 네가 좀 도와줘야겠지.

한마디로 광고를 찍으란 얘기다.

“그거야, 이미 약속된 거잖아.”

- 그래도 요즘 너 힘들잖냐.

“남 말 하고 있네.”

- 크크큭. 그런가? 그래도 조금만 참아라. 내년엔 너…… 어지간한 대기업 임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글쎄, 과연 그럴까? 그것도 대박이 나야 가능한 일이지. 대기업들이 골목상권까지 넘볼 정도로 요즘처럼 기업 간에 피 터지게 싸우는 무한 경쟁 시대에, 녀석의 호언장담처럼 성공할 수 있을는지……. 게다가 강윤식이 가만 지켜볼지도 의문이다. 지난번에 나한테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별 이상한 방송에 출연시키려고 하면서 함정을 팠던 걸 생각하면, 이대로 보고만 있을 거 같진 않은데. 잠깐 부정적인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성공해야지.”

- 그래, 성공해야지.

“아무튼, 얘기…… 고맙다. 많이 바쁠 텐데, 나한테까지 전화까지 해주고.”

- 어이, 브라더. 뭔 말을 그렇게 하냐? 우리가 남이냐? 응? 짜샤, 이미 너랑 나는 한배에 탄 거거든? 그러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함께 가는 거야. 알겠어?

피식. 웃고 말았다. 끝까지 함께……라.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열 내고 끊어. 힘들 텐데, 이럴 시간에 좀 쉬고. 요즘 부쩍 추워졌더라.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하고 인마.”

- 오! 서진영이 형님 걱정해주는 거냐?

“뭐래? 누가 형님이야? 내가 너보다 한 살 많…….”

- 끊는다.

어쭈? 끊기 전에 분명 큭큭 거렸던 거 같은데. 이 자식을 그냥! 인상을 구겼다가 이내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이놈은 이런 놈이었지.

“푸우!”

한숨과는 다른, 뭔가 털어내듯이 입술을 떨면서 숨을 내뱉었다. 인터넷에서 본 명제준 세원시장의 사진을 떠올렸다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동시에 이미 사라져버린 나레이션의 얘기도. 뭐,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둘째치고, 시도는 해봐야겠지. 쯧, 설마 죽기야 하겠냐고? 까짓 하다 하다 안 되면 그땐 그냥 다 때려치우고, 아저씨한테 가서 쇠나 두드리고 살지 뭐. 근데……. 어떻게 해야 하지? 나레이션을 들어보니 명제준 세원시장 부자간에 파인 골이 장난 아닌 거 같은데……. 아, 몰라. 일단 쉬자. 이러다간 미션임파서블이고 나발이고, 내가 먼저 쓰러지겠다. 어깨를 한차례 으쓱거리곤 옷을 벗어젖혔다. 씻고 잠이나 자자 싶어서. 그러다 떠올렸다. 또 한 사람의 얼굴을.

“설마 이것도 함정인 건 아니겠지?”

진짜 그러면……. 심각한데. 난 강윤식의 권위 가득한 면상을 떠올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

“식사는요?”

집 안으로 들어서는 강윤식을 그의 처가 반긴다. 재벌가에선 흔한 정략결혼이라지만, 애당초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끼리 결혼 얘기가 오갈 무렵 어른들의 묵인하에 교제를 시작했고 어느새 서로 마음을 주고받기까지 했다. 시작은 분명 정략혼이었지만, 결혼식장에 들어갈 땐 사실상 연애결혼을 한 거나 다름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아직은 신혼이라고 할 수 있는 요즘, 아내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고 그 역시도 그녀를 무척이나 아꼈다. 당연히 평상시 오가는 말투엔 애틋함과 함께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오늘만은 아니었다.

“먹었어.”

평시와 달리 단답형의 대답. 게다가 저기압이다. 그걸 눈치 못 챌 만큼 아내가 둔한 편은 아니었다.

“피곤해 보이는데, 씻을래요?”

그래도 티 내진 않는다. 그리고 그런 점이 늘 강윤식의 딱딱하게 굳은 마음과 차갑게 식은 심장을 어루만져준다.

“미안해. 오늘 좀 속상한 일이 있었거든.”

정확히 말하면 괘씸하다고 해야겠지만.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말할 마음도 없었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까지 신경 쓰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물 받아놓을게요. 당신 좋아하는 입욕제 풀어놓을 테니까, 몸 좀 녹이세요.”

어지간하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혹여 도울 게 없느냐고 묻기 마련이건만 그녀는 그러지 않는다. 외려 조용히 미소지으며 그에게서 받아든 옷을 들고서 돌아서고 있을 뿐이다. 그런 아내의 팔목을 가만히 잡았다. 그러곤 강윤식이 말했다.

“오랜만에 같이 술 한잔할까?”

“지금요?”

“당신 와인 좋아하잖아. 테라스에서 마시지 뭐. 아, 추우려나? 그럼 침실에서 마실까?”

대답은 없지만, 아내의 양 볼이 발갛게 물들어 간다. 동시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고.

“먼저 들어가 있어. 얼른 세수만 하고 내가 와인 가져올게.”

강윤식은 웃어 보이며 돌아섰다. 그러면서 눈을 빛냈다.

‘그래. 그깟 놈 신경 쓰느라 내 사람을 힘들게 할 필요는 없지.’

물론 이대로 넘길 생각은 없다. 어제 그에게 모욕감을 준 서진영도, 요새 분수도 모르고 기어오르며 그의 신경을 긁어대고 있는 강형식도. 근 시일 내에 깨닫게 해줄 요량이다. 자신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줄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 묘수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세원시장이 출연한다 이거지?’

서진영을 유혹해 새로운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거기서부터 시작해 덫을 깔아 강형식까지 엮어 몰락시키려던 계획은 비록 물거품이 됐지만, 이제 와선 차라리 잘됐다. 직접 마련한 칼보다는 남의 칼을 이용하는 게 깔끔하고, 혹여 잘못되더라도 발을 빼기 쉬우니까.

‘확실히 몰락시켜 주마.’

그 건방지기 짝이 없는 애송이부터,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사촌 동생까지.

“지금쯤 연락이 갔겠군.”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형식에 이어 서진영의 얼굴을 떠올리며 싸늘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강윤식은, 태연한 얼굴이 되어 화장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 한 여자가 실장과 함께 공항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제주에서 출발해 방금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들은 다름 아닌 헤나와 기획사 실장이었다. 어제 제주도에서 촬영한 노경환 피디의 ‘혼저왕 먹읍서’의 녹화방송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헤나. 인기 절정의 걸그룹인 스피너스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솔로로 데뷔한 그녀는 원래대로라면 KBC 방송국의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고정 패널로 활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SBC 방송국에서 노경환 피디가 ‘혼저왕 먹읍서’를 시작할 예정이라는 소식에 재빠르게 태세 전환.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말을 갈아타듯 SBC와 계약을 했다. 당시만 해도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하면…….

“아, 너무 피곤해. 진짜 안 쑤신 데가 없다니까!”

공항을 나서자 도롯가에 세워져 있는 차를 발견하곤 그쪽으로 캐리어를 끌고 가며 헤나가 투덜거렸다. 그런데도 그 뒤에서 가만히 따라가는 실장은 아무런 말도 못 한다. 그럴 수밖에. 자신이라도 저럴 테니까. 하지만, 누가 알았나?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는 불과 방송 3주 만에 시청률이 30퍼센트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 초반에 반짝하며 시청률이 20%가 넘던 ‘혼저왕 먹읍서’는 동 시간대에 방송하는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때문에 그대로 격침. 이제는 십 퍼센트가 조금 넘는 시청률만 유지할 뿐이다. 이나마도 노경환 피디의 노련하면서도 감각적인 연출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터였다. 그렇긴 해도 자신의 발로 뻥 차버리고 갈아탄 말이 이처럼 비실거릴 거라곤 상상치도 못한 일. 당연히 후회가 될 수밖에. 동시에 기획사가 원망스러울 테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실상 몸으로 때우는 거나 마찬가지인 예능 프로를 하면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시청률만 높으면야 그조차도 웃으면서 하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이를 온몸으로 표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차 문을 열자마자 쑤셔 넣듯 좌석에 몸을 던지고 그대로 늘어져 버렸다. 그런 그녀를 운전석에 있던 로드 매니저가 반갑게 맞았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는 나이 차가 거의 나지 않는 데다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좀처럼 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헤나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눈치였고. 그녀는 로드 매니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실장에게 말했다.

“저 잘래요.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깐깐하기로 소문난 노경환 피디인 만큼 이번 촬영도 엄청난 강행군. 원래부터 방송 컨셉 자체가 반쯤은 서바이벌에 가까운 탓에 촬영 내내 고생만 하다 온 그녀의 안색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차에 타자마자 눈부터 감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실장은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회사까지 가는 내내 짜증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참이니까.

“출발하지.”

실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로드 매니저에게 얘기했을 때였다. 그의 전화가 울렸다.

“예. 팀장님.”

통화를 하던 실장이 놀란 얼굴을 해 보였다.

“누, 누구요?”

그러더니 목소리가 작아졌다. 뿐만 아니라 헤나가 들을까 걱정됐는지, 한 손으로 수화기를 가리기까지 하고 물었다.

“강……형식이요?”

이름 석 자에 이어 흘러나오는 설명에 그의 얼굴이 점차 사색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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