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달려라 갓솁! (1)2021.05.19.
이거 또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인지. 달리긴 뭘 달려!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갑자기 나선다 싶었더니, 겨우 한다는 말이 그거냐? 고개를 내젓고 있을 때, 나레이션이 얘기했다. - 걱정 말고 달리는 거다. 그에게는 친절하고 유능한, 그야말로 비서 같으면서도 슈퍼컴퓨터 같은 존재가 곁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 존재는 이미 마음먹고 있었다. 서진영이 운전대를 잡을 각오만 되어있다면, 그를 한순간이나마 미하엘 슈마허로 만들어주겠다고. 비서? 슈퍼컴퓨터? 하아! 진짜 자기 입으로 저러고 싶을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니까 왜? 내가 전설적인 드라이버인 미하엘 슈마허가 될 이유가 뭐냐고. 나로서는 납득이 안 된다. 특히나 이제껏 나레이션이 보여 왔던 행동…… 아니 얘기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아무 이유 없이 뭔가를 얘기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얘기는 강형식으로 통했다. 그것이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해주기도 하고, 또 때론 어마어마한 능력을 선보이게도 만들어주었지만, 결국 그 모든 건 강형식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전초 작업 혹은 간접적인 도움에 불과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번 일…… 그러니까, 나더러 운전을 하라는 것도 그런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 운전을 직접 하나 대역을 쓰나 광고는 어차피 완성될 테고, 그렇다 해서 강형식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것도 아니면 강형식의 조력자로서 내 능력을 향상……. - 지금 서진영은 잊고 있었다. 강형식의 유일무이한 취미가 무엇인지. 아, 그런 거였냐? 내 형편없는 운전 실력이 문제였다는 거네. 음……. 신음이 나오려 한다. 살짝 자존심도 상하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운전에 목숨을 건 것처럼 차만 몰기 시작하면 욕을 해대고, 무슨 스타급 카레이서라도 된 듯이 단속카메라만 보이지 않으면 액셀러레이터를 무식하게 밟아대는 걸 보면서 혀를 차곤 했는데, 지금 이 순간 그 심정들이 이해되는 건 왜일까? 그렇긴 한데……. 운전 실력이 겨우 하루, 아니 몇 시간도 안 돼서 늘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굳이 지금 운전대를 잡아야 할까? 그것도 카레이서들을 상대로 경주하듯 달리게 될 저 서킷에서?
“참네, 어쩌란 건지.”
나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에 모두의 관심이 쏠린다. 권태홍 감독이 눈을 치떴고, 저만치 서 있는 김서연은 한층 더 깊어진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재빨리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혼잣말을 한다는 게 그만.”
그때였다. 나레이션이 다시금 강요해왔다. - 서진영은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그의 곁에 누가 있는지. 그러니 달리는 거다. 그러면 알아서 몸이 기억하게 될 테니까. 몸이 기억한다……라. 뭔가 설득력 있는 얘기이긴 하다만. 난 잠시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레이션이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냥 제가 운전하죠.”
내가 내린 결정에 가장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건 권태홍 감독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건……. 김서연이었다. 잠시 후, 서킷. 그곳에는 잘빠진 보디를 자랑하며 한 대의 자동차가 서 있었다. NEW SJ7. 시아 자동차에서 만든 내년도 신제품. 주력인 중형차 중에서도 가장 상위기종에 해당하는 차량이었다. *** 우웅……우우우우우웅. 배기음이 들리다 못해 차체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레이싱복을 입고 헬멧을 쓴 채로 운전석에 앉아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이라도…… 큼, 아닙니다.”
내게 다가와 내려진 창문 사이로 뭔가 말하려던 권태홍 감독은 내가 꽉 쥐고 있는 운전대를 보더니 그대로 물러났다. 어이, 아직 간 거 아니지? 내가 속으로 중얼거리자, 기다렸다는 듯 들려온다. 따라라라라라, 라라……. 나레이션은 없었지만, BGM은 내 말에 대꾸라도 하듯 머릿속을 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금세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운전하는 내내 나레이션이 뭔가를 할 거라는 걸.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모르니까, 불안한 거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하는 것도 모양 빠지고……. 젠장!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출발선에 서 있는 차들은 총 네 대. 하나같이 이름난 명차들이다. 이미 권태홍 감독에게 들었던 대로 전부 다 외제차였다. 그 한가운데 나 혼자만 국산차를 타고서 핸들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예전에 강형식이랑 함께 미친 듯이 질주하던 게 떠오른다. 물론 그때도 운전은 녀석이 했었지. 그걸 내가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뛰는 건 또 뭔지. 혀를 차고 있을 때, 눈앞의 전광판에 숫자가 떠오른다. 3……2……. 우웅! 숫자가 1이 되는 순간 깃발이 내려가고, 내 발은 어느새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러자 내가 타고 있는 차를 비롯해 네 대의 차가 일제히 튀어나갔다. *** 손승태는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속으로 웃고 있었다. 간혹 연예인 중에 취미 삼아 레이싱을 즐기다가 나중엔 아예 본격적으로 카레이서가 되는 일도 있다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서진영은 전혀 그럴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눈에 봐도 서진영은 일반인. 아니, 운전대 즉 스티어링 휠을 제대로 잡아본 적이나 있을까 싶은, 초보로밖에는 안 보였으니까. 정말이지 대놓고 코웃음을 안 친 것만 해도 기특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출발신호와 동시에 차가 튀어나갔을 때, 손승태는 마음먹었었다. 그래, 봐주자. 어차피 오늘은 촬영을 위한 레이스. 몇 번이나 하게 될는지 모르지만, 기껏해야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이다. 그러니 슬슬 봐주면서 서진영의 속도에 맞춰주면 될 일. 굳이 목숨 걸듯 미친 듯이 몰아봐야 스스로만 피곤해질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뭐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일부러 져주듯 뒤따르고 있던 서진영의 차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너링을 할 때 살짝 밀려 나가는 차. 위험하긴커녕 아슬아슬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손승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위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마 무언가 기술이라도 시도하려는 건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능숙한 경지에 이르러 있어도 위험에 처하는 경우는 없지 않다. 당연히 미숙할 땐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앞서의 두 경우보다 훨씬 위험한 경우는……. 뭔가 어설프게 알고서 서투른 실력으로 고난도의 기술을 시도하는 것. 확실한 건 아니지만, 손승태는 지울 수 없었다.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금 앞에서 달리고 있는 서진영이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어느새 레이스는 중반이었고, 서진영의 차를 비롯한 차들은 벌써 한 바퀴를 돌아 두 바퀴째 서킷을 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속도는 높이질 만큼 높아져 있었고, 이런 상태에서 서진영이 섣부른 짓이라도 하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손승태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높였다. 서진영을 따라잡아 나란히 달리면서 수신호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정도 경고면 알아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정하리라 내다본 것이다.
“응?”
한데, 그런 그의 심정을 알기라도 하는 듯 서진영의 차가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칫! 하는 잇소리가 손승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카레이서 경력 8년 차의 베테랑.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모를까, 서진영의 차를 따라잡지 못할 리가 없다. 추월도 가뿐하게 할 터인데, 목표한 차를 따라잡아 나란히 달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터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부아아아아아아앙! 어느새 세 번째, 즉 마지막 바퀴를 돈 차들은 결승점을 통과해 서서히 멈춰 서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레이스가 끝나기 전까지 서진영의 차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너무 설렁설렁했나?’
차에서 내리며 한차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던 손승태는, 이미 차에서 내리고선 숨을 헐떡이는지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서진영을 바라보았다.
‘어쩔까?’
이제라도 경고를 해줘야 할까? 아까 뭔가 시도를 하려는 듯 서진영의 차체가 흔들리던 걸 다시금 떠올렸던 손승태였지만, 이내 관두기로 마음먹었다. 서진영이 헬멧을 벗고 생수병을 통째로 들이켜고 있는데, 그 얼굴에 초보자가 지니곤 하는 긴장감이 잔뜩 어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처음 서킷을 달릴 때의 기분이란 그런 법이니까. 아직 위험수위가 임계점까지 다다른 것도 아니니, 좀 더 지켜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차피 초보자. 기껏해야 직진 코스에서 속도를 높이는 수준. 그 정도는 핸들링 미숙으로 차체가 이내 흔들리게 되어 금세 겁을 먹고 알아서 자제하겠지. 특히 아까 코너링에서 차가 살짝 밀려 나갔었으니 어쩌면 지금쯤 이미 겁을 먹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각한 손승태는 픽하고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잠시 후 준비를 마친 그들이 다시 출발선에 섰다. 우우우우우우웅! 깃발이 올라가기 무섭게 바로 옆에서 달리던 차가 튀어나가고 있었다. 서진영이 몰고 있는 NEW SJ7이었다.
“얼씨구!”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아직 첫 번째 코너도 돌지 않은 상황에서 저런 속도라고? 물론 자신을 비롯해 이곳에서 지금 차를 몰고 있는 카레이서들 중에 저 정도 속도로 코너를 돌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서진영은 아니었다. 당연히 걱정이 되었다. 저러다 진짜 사고 나는 거 아냐?
“속도 줄여! 멍청아!”
손승태는 들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젠장!”
하지만 역시나 들리진 않았고, 이미 누가 말리기엔 한참 늦었다. 서진영이 모는 차가 벌써 코너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큰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예상한 손승태가 표정을 와락 구겼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끼이이이이익. 서진영의 차가 코너를 미끄러지며 기묘한 각도로 차체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뒤따르던 손승태의 눈이 더없이 커졌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황당하다는 음성이 튀어나왔다.
“커, 컨트롤 슬라이드?”
일명 드리프트. 관성을 이용해 코너를 빠르게 돌 때 사용하는 기술. 많이 알려진 것만큼이나 자주 이용되는 기술이었고, F1의 경우 레이싱 도중 타이어를 자주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쉽게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실제로 기술을 사용하긴커녕 흉내를 내기도 어렵다. 코너를 미끄러지는 순간, 절묘한 타이밍으로 스티어링 휠과 브레이크를 정교하게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 해냈어?”
깔끔하다곤 말하기 어렵지만, 서진영은 분명 드리프트를 성공해내곤 그대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직진 코스. 아까보다 훨씬 강한 출력으로 속도를 높이는 게 보인다. 더 황당한 건…….
“미친!”
블로킹이라니! 뒤따라 붙은 차를 가로막는 서진영의 대범함에 손승태는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정말 오늘 처음 서킷을 달리는 사람의 레이싱이라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저건……?”
아슬아슬한 거리 차를 두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서진영의 차는 말 그대로 노면에 붙다시피 달리고 있었다. 언뜻 보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저렇게 달릴 수 있는 주행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립 주행. 타이어의 접지력을 최대한 살려 말 그대로 노면을 움켜쥐고 달리는 방법으로 주로 F1 레이서들이 많이 쓰는 기술이기도 했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평소에 늘 그래왔다는 듯 태연하게 쓰고 있는 서진영이 이젠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헉!”
손승태는 서진영의 차가 다음 코너에서 미끄러지다가 빙글 돌려는 찰나 신음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는데……. 당연히 사고가 날 거라고 예상하던 그 순간, 서진영의 차가 급격히 흔들리며 지그재그로 미끄러졌다. 소잉이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코너를 돌 때 차가 도는 것, 즉 스핀을 막기 위해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재빠르게 틀면서 달리는 기술. 다시 말해 민첩함과 정확함이 요구되는 순간적인 핸들링, 카운터 스티어를 빠른 시간안에 반복하는 기술이 바로 소잉이었다. 쉽지 않은 기술이었고, 당연히 일반인이 사용할 만큼 만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한데 그걸 서진영이 해내고 있었다. 이제 손승태의 눈에 비친 서진영은 그저 그런 일반인이 아니라 괴물로 비칠 따름이었다. *** 서킷을 총 스물한 바퀴 돌았다. 레이싱 경기로 불러도 무방할 주행을 각각 세 번씩. 일곱 차례 행했고, 그러는 동안 타이어가 닳아서 세 번이나 갈아야 했다. 물론 그게 내가 엄청난 실력을 뽐냈다는 증거도 아니고, 동시에 두 시간가량 진행된 레이스 겸 촬영만으로 내 실력이 일취월장한다는 게 말이 될까 싶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취월장했다. 미친! 그게 가능할 거라곤 솔직히 믿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나레이션이 뭔가 대단한 일을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니, 결과적으로 대단하긴 했지만. 아무튼, 주행 중 뭔가 그럴듯한 카레이싱 용어 따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나레이션이었다. 서킷을 달리는 동안, 나레이션이 사용한 단어라곤 딱 네 가지. 액셀! 브레이크! 왼쪽! 오른쪽! 황당하게도 그것만으로도 차량은 기가 막히게 제어가 되더라는. 액셀이라는 소리에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브레이크라는 소리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왼쪽 오른쪽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핸들을 꺾었고. 그뿐이었다. 물론 단 한 순간도 쉴 새 없이 나레이션이 들려와서 레이스를 한번 끝낼 때마다 머리가 너무 울려 어지러울 지경이었지만, 회차를 거듭할 때마다 운전 실력이 무서울 정도로 올라갔던 것이다. 보는 사람이 다 기가 질릴 정도로. 심지어는…….
“솔직히 말씀해보시죠. 레이싱 처음 아니시죠?”
권태홍 감독의 물음에 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 순간적으로 장난기가 도졌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하는 거 아닙니까?”
카레이서들은 말할 것도 없고, 스탭들까지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걸 보다가 풉하고 웃었다. 그러곤 손을 들어 올리곤 말했다.
“죄송합니다. 장난이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려, 오늘 처음입니다.”
웃으라고 한 말이지만, 아무도 웃질 않는다. 개중에는 벙찐 얼굴들도 보였지만, 대개는 허탈한 표정이거나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와, 서 셰프님. 진짜!”
권태홍 감독이 감탄사를 내뱉더니 엄지를 치켜든다. 그러곤 말했다.
“요리사 맞습니까? 그냥 이참에 전직하시죠?”
“에이, 왜 그러세요. 레이서 분들께서 많이 봐주셔서 그런 거지, 진짜로 하면 상대나 되겠어요?”
……라고 말하곤 있지만, 나조차도 황당하다. 총 일곱 번의 레이스 중 막판 세 번을 일타로 들어왔다. 만일 이게 진짜 레이싱이었으면 우승을 세 번 했다는 얘기다. 물론 단판 승부일 경우의 얘기지만. 아무튼, 대단한 건 대단한 거다. 그만큼 엄청났다. 내가? 아니, 날 그렇게까지 정교하게 컨트롤…… 조교해 낸 나레이션이.
“아무튼, 덕분에 좋은 장면이 나왔군요.”
사실이다. 마지막 레이스에선 전체적으로 속도를 줄이는 대신에 레이싱복이 아닌 양복을 입었고, 심지어 헬멧조차 쓰지 않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 모습을 찍어놓은 카메라 화면으로 확인해 보니, 주위의 차들을 제치고 시원하게 달리다가 급제동한 후 차 문을 열고 내리는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꽤 멋져 보였던 것이다.
“자자! 이동합시다! 오늘 안에 촬영 마무리할 거니까 다들 각오하시고! 아, 카레이서 여러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권태홍 감독이 외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내게로 다가왔다. 누군가 보니, 레이스를 함께 뛰었던 카레이서 중에 한 명이다.
“서진영 씨?”
“아, 예.”
“정식으로 인사하죠. 카레이싱 팀 블랙티거의 팀장을 맡고 있는 손승태라고 합니다.”
손을 내미는 그와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저만치에 서 있던 김서연이 내게로 다가오려다가 멈칫하더니 돌아서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