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 인터뷰 (4) (95/204)

#95. 인터뷰 (4)2021.05.09.

의심부터 하면 안 되는데, 의심이 든다. 이거 지금 멕이는 거? 금발을 찰랑거리며 다가오더니, 초면에 반말 찍찍해대는 게 영 의심스러운데? 아아, 그건 그렇다 치고. 이사벨라……라는 이 여자는 누군데? ……라는 눈빛으로 남윤주 팀장을 보자,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팬이래요.”

아! 그래요? 그래서 여긴 어쩐 일?

“헷, 원래는 서 셰프님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엊그제 밤새워 서 셰프님 나온 방송을 정주행하더니 바로 입덕했다네요?”

흠, 밤새울 만큼 방송량이 많던가? 그리고 입덕이라니……. 내가 아이돌인가? 머리를 긁적였다.

“잘 이해는 안 갑니다만. 그렇다 치죠.”

“네. 그렇다 치면 돼요. 자, 그럼 이쪽으로. 여기, 우리 스텝들.”

“처음 뵙겠습니다. 서진영입니다.”

스텝들도 참 생기발랄하다. 패션 쪽이라 그런가, 일반인인 나로서는 좀처럼 따라잡기 어려운 감각들을 지녔다. 비단옷을 비롯한 행색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뭐랄까. 느낌이 그렇다. 살짝 오버하는 듯한 표정들과 말투 하며……. 아무튼, 여기 있으니까 나만 별종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그냥 인터뷰면 편하신 곳이나 카페에서 해도 되는데요. 특집으로 내보낼 거라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그리고 우선은 옷부터 갈아입죠.”

날 한쪽으로 이끌면서 한 사람을 쳐다본다. 스타일리스트라고 한다. 삼십 대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묘하게 여성스럽다.

“의상은 저희가 준비했어요. 분명 어울릴 테니 걱정 마시고요. 제가 또 눈이 좋거든요. 자아, 그럼! 힘이 남아돌 때 사진부터 찍죠?”

확 난감해진다. 인터뷰라고 해서 그냥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보다.

“이쪽에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달랑 커튼 하나 쳐져 있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저기서 바지도 벗고 셔츠도 벗고……. 아, 돌겠네.

“여기요.”

스타일리스트가 가져다주며 가볍게 웃고 있다.

“감사합니다.”

옷을 받아들며 인사하자, 감격했다는 표정이다. 여기 분위기……. 참,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래, 후딱 해치우고 가자.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말고. 난 결심을 굳히곤 커튼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 벽에 박혀있는 훅에 입고 온 옷들을 벗어 건 뒤, 스타일리스트가 챙겨준 옷을 하나하나 걸쳤다. 응? 치수……. 정확한데? 거참, 신기하네. 내가 알려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 진짜 눈이 좋은 건가? 희한해서 절로 웃게 된다.

“다 되셨으면 나오셔도 됩니다.”

“예.”

허리띠를 잠그고 커튼을 여는 순간이었다. 스튜디오 안이 고요해진다. 다들 말없이 나만 바라보는 이 어색하고도 기묘한 침묵에 뻘쭘해져서 툭 튀어나갔다.

“이, 이상한가요?”

검은색 슈트 차림.

16561223743308.jpg

  생전 해본 적 없는 스타일이라서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때였다.

“와우!!!”

시작은 남윤주 팀장이었다. 그다음은 이사벨라.

“원-더-풀!”

이어서 스타일리스트가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쳤다. 나머지 스탭들? 한눈에도 기분이 좋다는 표정들이 되어 웃고 떠든다. 아까 스튜디오 안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을 때도 텐션이 묘하게 높은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한 단계 더 업이 된 느낌이랄까. 아무튼, 쑥스러워서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몸을 쑤셔 넣고 싶었다.

“너무 잘 어울려요! 후후후. 역시 내 눈은……. 아, 이쪽으로 오시죠.”

남윤주 팀장이 정말이지 기쁘다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날 한쪽으로 이끌었다. 흔히들 반사판이라도 부르는 조명기구들과 함께 카메라가 세워진 곳이었다.

“안쪽에 서주세요.”

카메라맨이라고 했던 남자가 빙글빙글 웃으며 벽 쪽을 가리킨다. 멋쩍긴 하지만, 얼른 끝내고 돌아가겠다는 의지로 지시에 따랐다. 그다음부턴 카메라맨의 손짓 발짓에 따라 이리저리 포즈를 취했고.

“좋아요. 좋습니다! 예, 아주 좋아요!”

뭐가 좋다는 건지. 솔직히 몸이 나무토막이라도 된 것처럼 포즈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 나만 그런 건가? 아, 몰라 몰라.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어? 그때부터 난 그냥 내려놨다. 반쯤은 혼이 나간 느낌이랄까. 넋이라도 있고 없고, 그저 카메라맨이 시키는 대로 흐느적거리는 동안,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고 또 수십 번의 포즈를 취했다. 팡! 팡! 팡!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눈을 감은 건 아닌지 걱정하던 것도 몇 차례. 서서히 그조차도 익숙해져서 이젠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촬영에 임하고 있을 때였다. 스타일리스트가 남윤주 팀장에게 다가가 속닥거리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째서인지 슬금슬금 불안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금방 실체를 드러냈다.

“저어, 서 셰프님.”

“예?”

남윤주 팀장이 매우 조심스럽게 날 부르고 있었다. 그 옆에선 이사벨라를 비롯해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스탭들이 어디지 모르게 간절하게 느껴지는 모습들이었고. 특히 이사벨라는 기도라도 하는 듯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뭘까? 뭔데 다들 저러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남윤주 팀장이 내게 물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질문을 가장한 부탁이었다.

“괜찮으시면…… 저기…… 상체 탈의 가능할까요?”

“상체 탈의요?”

“예. 여기…… 허리 위만 좀 벗고 찍으면 어떨까 하는데…… 안 될까요?”

거울을 보면 내 눈은 아마도 게슴츠레해졌을 거란 느낌. 그럴 수밖에. 웃옷만 벗는다지만, 결국 누드란 얘기잖아. 진짜…… 이래도 되는 건가? 여기 오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더 센스’라는 잡지가 적어도 한국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더라면 둘 중의 하나였을 거다. 화를 내거나, 의심하거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남윤주 팀장이 여전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까 티셔츠 입었을 때 봤는데, 몸이 참 좋으신 거 같아서요.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되는데, 제 느낌으론 무척 아름다울 거 같거든요. 틀림없어요!”

아름…… 뭐? 살다 살다 이런 얘기는 처음 들었다. 후우, 그렇다 치고. 고민하고 있는데, 남윤주 팀장이 덧붙였다.

“트, 특집이라서요.”

나참, 특집 얘기는 오지게 우려먹네. 그래, 해주마. 그깟 상의 탈의가 뭐라고.

“여기서 벗을까요?”

일부러 그랬다. 그냥 알겠다고 하고선 탈의실로 들어가 벗으면 될 일이지만, 좀 놀리고 싶었달까? 어쩌면 사소한 복수였는지도 모르고. 봐라. 다들 당황…… 응? 좋아하는 거 같은데? 어딘가에서 꿀꺽하는 소리도 들리는 거 같고.

“편하신 대로 하세요.”

남윤주 팀장은 그저 헤실헤실 웃으며 신나서 어찌할 줄 모르는 체할 뿐이다. 두 눈에 ‘대박!’이라고 쓰인 것만 같아서 이 순간만은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순수하게 일 자체를 즐기는 타입인 거 같다. 내가 결국 웃으며 그대로 겉옷을 벗자, 스타일리스트가 쪼르르 달려와 옷을 받아든다. 그리고 셔츠의 단추를 풀어 웃통을 까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 뒤, 또다시 침묵에 휩싸인 스튜디오. 누구 한 사람 움직이지 않았고, 스튜디오 안의 모든 눈동자가 날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길 얼마간. 남윤주 팀장이 숨을 크게 들이 내쉬더니 물어왔다.

“와, 진짜! 몸이 장난 아니세요.”

“그런가요?”

“예!!! 저희가 포토 작업 많이 해봐서 아는데, 헬스로 만들어진 몸이랑 진짜 꾸준한 운동으로 관리한 몸이랑은 차이가 나거든요.”

어쩌면 그럴지도. 헬스장에 가는 사치는 못 누려봤지만, 대신 노가다와 더불어 주방일을 하면서 온갖 잡일, 특히 무거운 짐을 든다든지 하는 건 오랫동안 해왔으니까. 거기다 아저씨의 망치질에 나가떨어진 후로는 나름 시간까지 정해놓고 운동을 해오기도 했고.

“평소에 운동 좀 하시나 봐요?”

“그냥 아침마다 달리기는 좀 합니다.”

“얼마나요?”

“글쎄요. 보통은 한 시간쯤 달리는데, 거리로 따져선 정확히 모르겠네요. 러닝머신을 뛰는 건 아니라서.”

“아, 그럼 밖에서?”

“예. 아침 공기도 마실 겸. 그렇게 뛰고 나면 상쾌하거든요.”

벌써 인터뷰를 시작한 건가? 녹음기까지 켜놓고 묻고 답하고. 그러는 사이 카메라맨은 쉴 새 없이 손짓 발짓. 난 그에 맞춰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로부터 10여 분 뒤. 촬영이 끝났다. 그리고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인터뷰가 끝난 뒤, 남윤주 팀장은 말했다.

“제가 장담하는데요. 이번 특집…… 역대급일 거에요!”

“아, 그럼 다행이고요. 사실 좀 걱정했거든요. 저 같은 사람이 인터뷰 같은 거 해도 되나 싶어서.”

“무슨 말씀이세요! 서 셰프님은 그냥 몸 자체가 치명적인…… 아, 이건 아니고…… 아무튼 몸이 무기…… 아, 이것도 아니고. 하여간 무조건 이거예요, 이거!”

엄지를 치켜세우는 남윤주 팀장을 보니, 미소가 지어진다.

“진짜예요!”

“맞아요! 갓솁이시잖아요!”

누군가 뒤따라 소리쳤고, 여기저기서 호응하며 야단법석이다. 그런 가운데, 이사벨라가 다가왔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쭈뼛거리던 그녀가 역시나 어설픈 한국어로 말했다.

“나 기뻐. 그러니까, 사인 해라잉?”

일부러 저런 말투를 쓰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속으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사인.”

그렇게 말하며 종이를 찾고 있는데, 이사벨라가 갑자기 재킷을 벗었다.

“……?”

뭐지 싶어서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가 돌아섰다. 얇은 티셔츠 차림. 안쪽의 속옷이 살짝 비쳐 보여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몰라 하는데, 이사벨라가 말했다.

“히어. 부탁해욥!”

그녀가 가리키는 곳은 등. 새하얀 셔츠를 민망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이사벨라가 내밀고 있는 매직펜을 받아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난 눈 딱 감고 휘갈겼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유명인사가 되면 멋지게 써주겠다고 수없이 연습하든 사인. 아직은 세상을 잘 모르던, 그야말로 철없던 시절에 만들어둔 사인을 처음으로 하게 되는 곳이 설마하니 여자, 그것도 아름다운 백인 여성의 티셔츠일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인터뷰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I am so happy to meet you today. Perhaps it's an experience you can't believe if you tell others. miracle? right. I experienced a miracle today. We look forward to seeing good broadcasts in the future. God bless you. (오늘 당신을 만나서 정말 기뻐요.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지 못할 경험이었어요. 기적이랄까? 맞아요. 전 오늘 기적을 경험했어요. 앞으로도 좋은 방송 보기를 기대할게요. 신께서 당신과 함께하기를.)”

이사벨라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받아서 살펴보니, 온통 영어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보그. 패션에 크게 관심이 없어도 이 정도는 안다. 그녀는 세계적인 패션 잡지의 수석 디렉터였던 것이다. *** 그 시각, KBC 방송국에선 회의가 한창이었다.

“결국, 두 사람으로 좁혀지는군요.”

신현정 PD의 얘기에 방송작가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둘 다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정은 내려야 한다. 페이슬리 박 편이 3주에 걸쳐 방송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촬영을 미룰 순 없었으니까.

“요즘 한창 각광받는 웹툰 작가냐, 아니면…….”

신현정 PD가 들고 있는 두 장의 종이 중 한 장. 거기엔 어지간한 국민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명제준. 노동운동가로 시작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정치권에선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 명제준 세원시장의 인적사항이 적힌 서류를 보면서 신현정 PD가 입술을 살짝 짓씹었다. 사실 마음속에선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있었지만, 그렇다고 선뜻 결정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그녀가 망설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프로그램 자체가 상당한 압력에 시달릴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존폐의 기로에 놓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너무 큰 기회였으니까.

“결정하죠.”

고민 끝에 그녀가 두 장 중 한 장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기대감에 반짝이던 눈들이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