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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인터뷰 (3) (94/204)

#94. 인터뷰 (3)2021.05.07.

미행이란 말인데……. 누가? 왜? 혹시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을 리는 없고. 나레이션이 하는 얘기니까. 결국, 떠오르는 건 강형식이다. 동시에 잊고 있었던 것도 생각난다. 파손되어 있던 오일 호스. 자칫했으면 주행 중 사고를 일으켰을지도 모를, 그것도 사람이 죽거나 중상을 입을 정도로 큰 사고를 일으키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때 일만 떠올리면 간이 다 오그라드는 느낌인데. 그때 범인이 강윤식이라고 말해준 것도 나레이션이었지. 하아, 이게 대체 뭔 일이야? 무슨 미드냐? 아님 영화? 굳이 분류해 보자면, 장르는 서스펜스겠지. 그것도 아니면 첩보물 혹은 느와르쯤 되겠네. 어느 쪽이든 피가 낭자하긴 마찬가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설마 이런 일이 막 일상이 될 정도로 내 처지가 위험해진 걸까? 에이, 그건 아닐 거다. 내둥 아무 얘기도 없다가 갑자기 나레이션이 이렇게 알려주는 걸 보면 오늘이 처음이란 얘긴데……. 쯧, 말해줄 거면 끝까지 말해주던가. 달랑 미행당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주곤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나레이……. 따라라라라, 라라……. - 청바지에 검은색 파카, 파란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저택에서부터 서진영을 쫓고 있었다. 아, 미안. 오늘은 그래도 제법 친절하구나. 뭐, 그새 음악이 멎고 더 이상 나레이션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지만. 이 정도가 어딘가. 날 뒤쫓고 있는 게 누군지만 알아도 일단은 안심. 적어도 피할 방도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안전책을 마련한 다음, 생각을 정리하든가 미행한 자가 누군지 알아보든가 해야겠지. 영화에서 보면 이럴 땐 막 골목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미행하던 사람의 팔을 꺾고……. 아서라. 그러다 훅 간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길가로 나온 나는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기 전 옷가게 유리창에 내 모습을 비춰보며 옆쪽을 힐끔거렸다. 확실히 보인다. 검은색 파카에 파란 야구모자. 핸드폰을 꺼내어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놔, 진짜 별짓을 다 하네. 아무튼, 그러면서 미행하는 사람의 얼굴을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안경을 쓰긴 했지만, 선명하게 기억했다. 거듭 보긴 했어도 그게 가능하냐고? 당연히 가능하다. 그럴 수밖에. 지난번 그놈이니까. 언젠가 저택 안에서 마주쳤던 남자. 그땐 좀 흐릿한 인상이었는데, 오늘 보니까 확실히 알겠다. 그때 그놈 맞다.

“하하하. 미치겠네. 이러다 정신병 걸리는 거 아냐?”

마치 대화하듯 중얼거리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그러곤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탁탁탁. 오늘따라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과 몸짓으로 계단을 다 내려왔을 즈음, 난 냅다 내달려 반대쪽 계단을 뛰어올랐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앞만 보고 뛰었다.

“헉헉헉헉!”

그 짧은 사이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미친 듯이 뛰었다. 계단을 세 개씩 건너뛰며 마치 날 듯이 지상으로 올라온 내 눈에 마침 택시 한 대가 서 있는 게 보인다. 덜컥! 보조석 문을 열고 몸을 구겨 넣듯 탔다. 그러곤 외쳤다.

“아저씨! 출발요!”

“예?”

“아! 일단 출발부터 해주세요! 얼른요!”

세상에서 눈치 빠른 사람들을 직업 순으로 세워놓으면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사람들이 바로 택시 운전기사들이다. 부우우우웅. 내 표정과 말투에서 다급함을 느낀 건지, 운전기사 아저씨는 군말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빠르게 멀어져가는 지하철역. 사이드미러를 통해 바라보니, 이제야 그놈이 올라오는 게 보인다. 숨이 찬지 헉헉대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당연히 날 발견할 턱이 없다. 난 이미 택시를 타고 놈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으니까.

“후우! 덕분에 살았네요.”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웃어 보이자, 아저씬 묘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계셨다. *** 미행을 따돌린 이유는 별거 없다. 당연히 기분 나빠서는 아니고, 꼬리를 붙이고 약속장소로 가면 안 될 거 같아서였다. 왠지는 몰라도 오늘 내가 강형식과 장동일 상무를 만난다는 걸 저쪽에서 알면 안 될 거 같은 느낌? 여기서 저쪽이라는 건…… 아마도 강윤식이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하철 역 앞에서부터 교차로를 네 개정도 지날 때까지 크게 막히지 않았다는 점. 그 후론 퇴근길 정체에 서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미행을 따돌린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신 약속 시각엔 조금 늦을 수밖에 없었다.

“아, 미안. 일이 좀 있어서.”

지하로 내려가 바 안으로 들어간 나는 강형식을 보자마자 말했다. 녀석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날 보며 물어왔다.

“뭔데 그래?”

“잠깐만. 저기요. 종이랑 펜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직원인지, 주인인지는 몰라도, 지난번에도 보았던 여자에게 묻자 금방 메모지랑 볼펜을 갖다 준다. 그걸 받아서 강형식과 함께 룸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몽타주다. 그림 실력은 쥐뿔도 없기 때문에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적어도 내 눈엔 비슷하게 그려진 듯하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봐도 모르겠지만,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그놈의 얼굴을 떠올리는 데 문제가 없지 않을까? 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누구야?”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아무 말 없이 지키고 서 있던 강형식이 물어오길래 솔직히 말해줬다.

“나오는데 날 뒤쫓더라고.”

녀석의 눈에 의아한 빛이 어리는 게 느껴졌다. 미행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듯했다.

“세 번.”

“……?”

“오늘까지 세 번 봤다. 차 오일 호스 망가진 날 있잖아? 그 전날 이 사람이랑 차고 근방에서 마주쳤었고, 그 후에도 한번…… 저택 안에서 봤는데, 뒤쫓아갔더니 사라졌더라고. 그리고 오늘 또 본 거지. 안경 써서 긴가민가했는데, 확실히 그자야.”

몽타주 위에 살짝 안경까지 그려 넣고는 종이를 내밀자, 강형식이 사나운 얼굴이 되어 받아든다. 그러곤 으르렁거리듯 묻는다.

“확실해?”

“뭐가? 이 사람? 아니면…….”

“방금 말한 말.”

어쩌다 보니, 이전에 있던 일들…… 그동안 의심하고 있었던 것까지 얘기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 말한 거 확 다 풀어버리지 뭐.

“형식아.”

“…….”

“내가 예전에 네 사촌 조심하라고 했었잖아.”

“기억나.”

“아까 말했지? 저택 안에서 이 남자 보고는 뒤쫓아갔는데, 놓쳤다고. 그때, 이 남자 대신 만난 게 네 사촌…… 강윤식이야.”

눈이 한껏 커졌다가 이내 점점 가늘어지는 강형식. 그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그러다가 콧잔등이 일그러지는 듯하더니, 종이에 그려진 얼굴을 쏘아보다가 조심스럽게 접어 품에 갈무리했다.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라.”

“……장동일 상무님은 조금 늦는다고 하시니까, 나랑 술이나 한잔하고 있자.”

“그러지, 뭐.”

장동일 상무가 오기 전까지, 20분 정도 흐르는 동안 우리 둘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술잔만 기울였다. 그럼에도 들리는 것 같았다. 복잡하게 쓰인 강형식의 얼굴 위, 그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져와서. *** 회의 결과는……. 결론부터 말하면,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브랜드 런칭과 동시에 신제품 출시 일정이 내년 초로 잡힌 것까진 좋았다. 어차피 그 부분은 내가 관여할 부분도 아니거니와 잘 알지도 못하니까. 어련히 알아서들 잘할까 싶어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 두 사람도 그저 형식상 내게 묻는 듯했고. 문제는 역시나 그놈의 캐리커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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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아, 우리나라 사람들 그림 참 잘 그린다니까. 회의 전, 내가 그린 몽타주하곤 질적으로 달랐다. 대충 그린 거 같은데, 그것도 만화적인 표현이 분명한데도 한눈에 나란 걸 알 수 있다. 아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 이 정도면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를 한 번이라도 시청한 사람이면 백이면 백 ‘서진영’이란 이름을 떠올리리라. 아, 어쩌면 ‘갓솁’이란 말부터 떠올리려나? 아무튼, 날 표현한 거라면 분명 성공적인데, 그 때문에 나만 민망해졌다. 이 그림이 상표 대신 떡하니 붙어서 전국 방방곡곡에 뿌려진단 말이지? 게다가 상표명도 바뀌었다. ‘서 셰프의 선택’ 브랜드 네임치고는 다소 긴 편.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누가 봐도 여기서 서 셰프란 날 가리킨다는 걸 알 수 있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장동일 상무가 ‘갓솁’이란 단어를 넣는 게 어떻겠냐는 걸 간신히 말렸다는 거다. 그건 또 어디서 봤대? 와 진짜! 상품에 갓솁이라는 문구가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맛은 최상이었다. 애당초 사모님의 레시피 자체가 훌륭해서겠지만, 그걸 이렇게까지 제대로 구현해낸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연구원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전문가라는 거겠지. 그렇게 해서 출시일과 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모두 협의를 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말했다.

“혹시라도 망하면, 원망하기 없기다.”

강형식이 웃는다.

“원망은 지금도 하고 있지.”

“뭐래?”

“일찍 좀 나타나지. 뭐 한다고 이제 나타나선…….”

“헐! 보따리까지 내놓으란 거냐?”

“크크큭.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운전이나 똑바로 하시죠. 웃다가 신호 위반이라도 해봐. 그러다 뉴스에 나면 그땐 진짜 이민 가야 할 거다.”

“푸룹!”

지가 생각해도 웃긴지, 쿡쿡거리고 난리다. 웃지 말라고 한 얘기 때문에 더 정신 차리지 못하고 웃고 있다.

“아, 그만 웃고 앞 좀 봐.”

“크큭, 오케이! 오케이!”

잠시 후, 웃음을 멈춘 강형식이 묻는다.

“괜찮겠어?”

“뭐가?”

“수익 배분 말이야.”

“그거라면 불만 1도 없다.”

있으면 그게 병신이다. 아니면 탐욕이 눈을 가린 거든가. 상표권이라고 했던가? 난 상품이 하나씩 팔릴 때마다 총매출의 4%를 가져간다. 그리고 사모님은 레시피 제공에 따른 계약에 의해 종당 1억. 즉 우선 출시되는 8가지에 대해 8억이 지급될 예정이다. 2차분까지 포함하면 거의 20억 가까이 받게 되실 테니, 나름 도움이 되지 않으실까? 거기다 계속해서 레시피를 제공하거나 개발에 도움을 줄 경우에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기로 했으니, 앞으로도 지속적인 이익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내 경우엔 5%였는데, 협의 후에 바꿨다. 광고 계약. 1% 낮추는 대신, 1차로 출시가 결정된 제품군 8종을 포함해 신규 브랜드 일체의 CF를 앞으로 5년간 내가 맡는다는 계약을 한 것이다. 다른 제품까지 나간다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결정이리라.

“불만이 있어도 이제 와선 별수 없지만.”

“불만 없다니까.”

“그래도 모르는 일이지. 나중에라도…….”

“아, 진짜. 뭐가 걱정인데? 지금만 해도 내 입장에선 충분히 대박이거든?”

“대박……났으면 좋겠다.”

“그게 그쪽으로 얘기가 가나?”

“쪽박보단 낫잖아?”

“말이라고 하냐?”

그랬다간 다른 건 둘째치고 사모님 앞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라고.

“사모님은 다음 주에 오시라고 하면 되는 거지?”

“올 때, 꼭 서류들 잘 챙겨오시라고 하고. 통장이야 그 자리에서 만들 수 있지만, 그 서류들 없으면 나중에 세금 폭탄 맞는다? 알지?”

“알긴. 내가 어떻게 아냐? 사업의 사 자도 모르는데.”

농담이 아니라 세금을 내본 적도 없다. 그만큼 벌어봤어야 뭘 내든가 말든가 하지.

“금방 알게 될 거다. 열심히 일해서 국가에 헌납할 때 밀려드는 그 기분을.”

“……좋다는 거지?”

녀석이 크큭 웃어댄다. 그걸로 대답을 대신하는 강형식을 보면서 나는 미소를 베어 물었다. *** 화요일. 신규 브랜드 런칭 때문에 정신없었던 월요일에 이어 오늘은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연봉 재협상이고 나발이고, 맨날 빠지는 것도 미안해서 오전까진 일하고 저택을 나섰다. 약속장소는 혜화동에 있는 스튜디오. 마로니에 공원 뒤쪽 길에 있는 작은 건물 2층으로 올라가니, 유리문에 떡하니 적혀 있다. KANG’S STUDIO. 단순하고 명쾌해서 좋긴 한데, 전국을 샅샅이 뒤져보면 같은 이름의 스튜디오가 한 스무 개쯤 나오지 않을까 싶다. 뭐,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실례합니…….”

문을 열고 들어가며, 제대로 온 건가 물으려는 찰나였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만치서 여자 한 명이 날아왔다. 정말이다. 말 그대로 날아왔다. 팔랑팔랑. 사람인 이상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비쳤다. 그렇게 내 앞에 선 여자가 말허리를 끊고 들어온다.

“서 셰프니이이임!”

흠칫! 금방이라도 껴안을 것 같은 태세였다. 눈은 또 왜 그렇게 빛내는지. 부담 백배의 여자는 귀여운 인상이었고, 나보다 한 뼘 정도 작은, 한국인치고는 작지 않은 키였다. 한데……. 조금 늦게, 앞서 다가온 남윤주 팀장으로 짐작되는 여자보다 느리게 걸어온, 그러면서도 꽤 우아한 자태의 백인 여자가 날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 예. 처음 뵙겠습니다. 서진영입니다.”

“후훗, 남윤주예요.”

여기까진 예상했던 바고. 그래서 이 아름답다……기보단 이국적이라서 절로 영어 울렁증이 도지게 만드는 백인 여성은 누구?

“안녕하세욥? 나…… 이사벨라. 만나서 방갑따!”

어설픈 한국어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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