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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인터뷰 (2) (93/204)

#93. 인터뷰 (2)2021.05.05.

강 회장이 고윤수 주방장과 서진영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을 시각, 강 회장의 작은 아들인 강구철 사장의 사무실로 한 사람이 찾아왔다. 강윤식. 강구철 사장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며 동시에 강 회장의 손자. 즉, 강형식과는 사촌 사이인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얘기에 지체없이 사장실로 달려온 터였다.

“잠시만.”

결제를 해야 할 서류가 있는지 한참이나 책상에서 떠나질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강윤식은 소파에서 찻잔만 들었다 놨다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쯤 남은 차가 식어 더 이상 입에 대기 싫어질 때쯤이었다. 아버지인 강구철 사장이 소파로 다가왔다.

“금마 그룹 쪽에선 뭐라 하더냐?”

역시 그 문제다. 예상대로의 질문에 강윤식은 긴장했던 얼굴을 풀고 대답했다.

“짐작대로입니다. 가격만 제대로 쳐준다면 매각하겠다고 합니다.”

“주당 2만?”

“그보단 조금 더 써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도 2만 5천 원은 넘지 않을 거 같구요.”

“그 정도야 예상범위 내니까 문제 될 거 없고. 예산은?”

강구철 사장의 물음에 강윤식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감이 넘쳐 오만해 보일 법도 한 표정이었지만, 강구철 사장은 뭐라 하지 않았다. 자신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인지, 행동 하나 표정 하나까지 똑같은 자식이 바로 강윤식이었으니까. 그만큼 일 처리 또한 철두철미한 아들이었다.

“이럴 때를 위해 만들어둔 비자금이지 않습니까?”

이미 외국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충분하고 남을 비자금을 쌓아놓은 터라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다만…….

“주주총회 이전에 매듭지어 놔야 한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우호지분까지 포함하면 확실합니다.”

“흠……. 그럼 금마 쪽 지분 2%까지 하면 5%까진 무난하게 확보하는 셈이군.”

“관장님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장희경이 강 회장의 부인임에도 절대 할머니로 인정하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장희경은 그저 혜암아트홀 관장에 불과했고, 금마 그룹의 방계인 제도철강의 차녀일 따름이었다. 물론 중간에 다리를 놔준 덕에 생각했던 것보다 손쉽게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건설 쪽은 됐고, 문제는 역시 전자인가?”

“그쪽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할아버지께서 눈치채실 수도 있고……. 아직 정정하시니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아들의 얘기에 강구철 사장은 눈을 가늘게 해 보였다. 스산한 눈빛을 보이자, 강윤식은 마른 침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이지만, 냉혹하기가 칼 같은 사람이 바로 강구철 사장이었다. 저런 눈빛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느낌이라 절로 눈길을 피하게 된다. 속으로 ‘젠장!’이란 말을 몇 번이고 외치고 있을 때, 강구철 사장이 서늘한 음성을 내뱉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어도 된다, 그런 말이냐?”

“그, 그런 게 아니라…….”

“쯧, 안심? 안심이란 건 모든 걸 손에 쥐고 나서야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리 말했건만. 그전엔 뭐라 했지?”

“……방심이라고.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며 잘못했다고 비는 아들을 강구철 사장은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가 불쑥 물었다.

“그놈은 요즘 어떻지?”

“혀, 형식이 말입니까?”

대답은 없었지만, 그게 곧 대답임을 모를 강윤식이 아니었다.

“새로운 브랜드를 하나 런칭한다고 들었습니다.”

“식품?”

“예.”

콧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비웃는 게 명백한 음성이 뒤를 이었다.

“늙은이의 망령이 끈질기기도 하군.”

“…….”

“왜? 네 할아버지를 그렇게 부르니까 기분 나쁘기라도 한 거냐?”

“아……닙니다.”

“아니면? 무서워?”

“아, 아뇨.”

“사내자식이 그렇게 간담이 작아서야. 쓸데없는 걱정 말고, 잘 감시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제대로 하란 말이다. 그 녀석이 어디서 누구와 무얼 어떻게 하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고 있어야 해! 특히 요즘 자주 만나는 그 새끼! 장 상무에 대한 일이라면 화장실 드나드는 것까지 전부 알아내고! 아, 그놈…… 서진영이라고 했던가? 그 새끼도 거슬려. 그러니까…….”

“서진영이요?”

“TV에 곧잘 나오는 놈 있잖아. 고윤수 그 늙은이가 주워온 놈.”

“아, 주방 보조 말씀이라면…… 알겠어요. 뒤를 파볼게요.”

강윤식의 얘기에 강구철 사장이 못마땅하단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거론 부족해. 뒤를 붙여.”

“……예.”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까지…….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강윤식이 아버지의 서늘한 눈빛에 기가 죽어 얼른 말을 바꾸고 있을 때, 강구철 사장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턱을 매만졌다.

“분명 뭔가 냄새가 나는데…….”

강형식과 장동일 상무. 거기에 서진영까지. 그 셋이서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며칠 전엔 비밀스럽게 회동을 했다는 보고까지 받았다. 문제는…….

‘대체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더불어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를 관심 있게 보던 아버지, 강 회장의 얼굴이 떠오르자 절로 인상이 써졌다. 결국 불쾌하다는 얼굴이 된 강구철 사장이 중얼거렸다.

“얼른 정리를 하든지 해야지, 원.”

혀를 차던 강구철 사장의 손짓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 강윤식이 쫓기듯 사장실을 떠난 것은 그로부터 5분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 전화가 끊는 장희경 관장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허공만 주시하던 그녀가 중얼거렸다.

“애당초 대안이 없으니……. 후우, 별수 없지. 일단은 살고 봐야지.”

대마불사라 했다. 비록 위태롭게 보여도 필경 살 길이 생겨 죽지 않는다는 바둑 격언. 제도철강의 회장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여자임에도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바둑이었다. 그 때문인지, 모든 걸 바둑에 빗대어 보는 습관이 배어 있는 그녀였다.

“대마가 두 집 내고 살면 바둑을 진다고 하지.”

딱 자기 처지라, 마음에 차지 않는다. 20년 가까이 되는 나이 차이임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강 회장에게 시집을 온 것은 당연히 사랑 때문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룹 간에 오가는 정략결혼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녀에겐 야심이 넘쳤고. 문제는…….

“아들 하나만 낳았어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러다간 늙은이 뒷바라지만 하다가 늙어 죽게 생겼다. 아니 그러면 다행이지. 이대로 강구철이 회장직을 물려받기라도 하면……. 지금도 이렇게 괄시를 받는데, 그렇게 되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게 뻔하다. 그전에 어떻게든 살길을 마련해야 하는데, 도무지 길이 보이질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어떻게든 강구철을 구워삶으려 큰집이라 할 수 있는 금마 그룹 쪽과의 거래에 다리를 놓아주곤 있었지만, 이 정도로는 두 집은커녕 한 집도 살 수 없을 터다.

“지금이라도 강형식을 밀어줘야 하나?”

입술을 잘근거리던 장희경 관장이 일순 눈을 빛냈다.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의 입가에 어딘지 모르게 교활해 보이는 미소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 요즘 들어 놀라운 일의 연속이다. 김진호 셰프와 얘기한 지 이틀 만에 연봉 재협상이 이뤄졌다. 원래 받고 있던 것보다 배는 많은 액수였고, 그 외에도 많은 혜택이 주어졌다. 연봉 8천5백. 원한다면 숙소를 벗어나 본사 근방의 오피스텔을 사용하도록 해준다고 했지만, 그건 오히려 불편할 거 같아서 일단 보류했다. 나중엔 어쩔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숙소에서 생활하는 게 편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강형식과 만나기도 그편이 쉬웠으니까. 여기까지만 해도 거의 대기업 부장급 대우인데, 한 걸음 더 나아가 법인카드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얘기에 기겁했다. 당연히 영수증 첨부해서 내역을 제출해야 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뭔가 족쇄 같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까지 대우받을 상황은 아니잖아? 쯧, 사회생활을 몇 년을 했는데 아직도 똥인지 된장인지도 파악 못 할까. 모든 호의가 전부 덫일 리야 있겠느냐마는, 이런 경우는 덫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돈과 관계된 일…….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거래는 철저하게 기브 앤 테이크. 그 논리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도 종래에는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지금 같은 경우엔. 적어도 내가 그만한 대우를 받아도 충분할 정도의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을 때까진. 아무튼, 지금은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언제 온다고요?”

내가 믿기 어렵다는 듯 묻자, 준석이 형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다음 주에 온다는 거 같던데, 확실히는 모르겠네.”

“확실하지도 않은데…… 왜 웃어요?”

“왜겠냐? 응? 이 망할 자식아!”

또다시 헤드록을 걸려는 형의 마수로부터 몸을 피하며 실실 웃었다.

“아, 나도 이제 막내에서 벗어나는 건가?”

“지랄! 네가 언제는 막내였던 적이나 있고?”

“아, 왜요? 저 아직은 여기서 제일 어리고 착한 막내라고요!”

“얼씨구? 어디서 씨도 안 먹힐 얘기를? 얀마! 내가 진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어떨 때 보면 네가 여기서 제일 고참처럼 느껴지거든? 안 그래요? 혜순 씨?”

“……그렇게까진 아닌데요.”

“거봐요. 누나도 아니라고 하잖…….”

“……그래도 막내 같진 않아요.”

끙. 눈길을 피하는 혜순이 누나를 보면서도 뭐라 대꾸할 말이 없다. 사실 그동안 주방 일에서 거의 손을 놓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보니.

“남자들이 왜 그렇게 수다가 많아? 저녁 준비 안 할 거야?”

안성댁 아주머니가 인상까지 구기며 말하고서야 준석이 형은 내 목을 조르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딱 그 타이밍에 맞춰서 김진호 셰프가 주방에 들어섰고. 그리고 십 분 정도 있다가 고윤수 주방장님까지 오셨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모두 모인 것이다. 그야말로 완전체. 간만에 주방 식구가 전부 모여서 저녁 준비를 했고, 그 덕분인지 오늘따라 회장님은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 위층으로 올라가셨다.

“수고들 했다.”

고윤수 주방장님이 말씀에도 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혹여 연봉 재협상 건에 관한 얘기를 하실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숙제. 그놈의 칼질에 대해 뭐라고 하실지 염려되어 바짝 졸아 있었던 건데, 다행히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고 웃으며 주방을 나가셨다. 그 다음으로 김진호 셰프까지 나간 뒤, 준석이 형이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너 오늘 연봉 협상했지?”

“예.”

혹시라도 기분 나쁜 걸까? 형이 얼마를 받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더 많이 받게 된 건 아닌지 몰라서 일부러 말을 안 하고 있었는데……. 눈치를 보고 있으니, 형이 권투 자세를 취하며 내 가슴을 툭툭 친다.

“짜샤! 이런 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네가 먼저 한턱내겠습니다! 해야 하는 거 아냐? 응? 내 말이 틀리냐고!”

아, 그런 거였나? 근데 어쩐다냐?

“저, 형.”

“왜?”

“죄송한데요.”

“죄송하면 말하지 마.”

“…….”

“…….”

“뭔데?”

“선약이…… 있어서요. 내일 한턱…… 아니, 두 턱이라도 쏠게요. 예?”

“흐흐흐. 약속했다?”

뭔가 내 무덤을 판 것 같은 기분이긴 한데……. 하는 수 없지. 진짜 한턱내야 할 일인 것도 맞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도 있으니까.

“형도 알잖아요. 제가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놈이지. 좋아. 내일은…… 3차까지 네가 다 쏘는 거다! 오케이?”

말만 저렇게 하지. 1차에서 만땅 취해선 2차부턴 카드 꺼내 들곤 인상을 팍팍 써대겠지. 나중에 술 깨고 나면 형수님한테 엄청 깨질 거면서. 에휴, 저 형이 그동안 나한테 사준 술값만 수백만은 될 거다. 그것도 최소로 잡았을 때 얘기다. 그러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까.

“밤새 달려도 괜찮아요. 아침에 출근만 제대로 시켜주시면요.”

“좋아, 좋아. 서진영이! 얼른 가 보도록!”

“옛썰!”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이곤 씨익 웃어 보이자, 준석이 형이 손짓한다. 빨리 가라고. 고개를 끄덕이곤 재빨리 주방을 빠져나왔다. 그러곤 숙소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때 거기로 가면 되냐?”

출발하면서 물어보니, 강형식이 대답한다.

- 내가 데리러 간다니까 그러네.

“뭐래? 바빠서 저녁 먹으러 들어오지도 못하는 놈한테 무슨……. 너 아직 식전이지?”

- 어떻게 알았냐?

“아직 못 들었나 보네? 나 갓솁이야, 갓솁!”

- 크크큭. 아, 예. 알아 모시겠습니다. 얼른 오시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피식 웃고는 지하철역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택시를 타고 갈까 하다가 퇴근 시간이라 오히려 그편이 더 느릴 것 같아서였다.

“그나저나 장동일 상무님도 오시는 건가?”

신규 브랜드 런칭과 관련한 문제니 당연한 거겠지. 강형식이 아까 전화로 상품 출시일이 정해졌다고 얘기한 걸 떠올리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따라라라라, 라라……. 언제나 그렇듯 느닷없이 들려오는 BGM. 당연한 얘기만, 나레이션이다. 근데……. 당황스럽다. 오늘은 무척이나 흥분되고 기대되는 날이다. 강형식과 장동일 상무를 만나 이번 사업과 관련해 실질적으로 최종결정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진영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밟고 있다는 것을. 헐! ……누가 뭘 밟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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