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셰프의 선택 (3)2021.04.14.
점심 무렵 도착한 마을은 지난번에도 느꼈던 것처럼 아담한 느낌이다. 서른 가구나 살까? 그래도 집들은 다 최신식으로 지어져 있다는 게 인상 깊었다. 어떻게 보면 궁벽한 곳인데, 마을은 전혀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도심과는 달리 골목은 깨끗했고, 담장 안에서부터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로 인해 꽤 멋스러운 풍경까지 자아내고 있었다.
“왔어?”
전화로 일러주신 집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얼마 후 문을 열고 나온 사모님이 반갑게 웃으신다.
“예. 서둘러 온다고 했는데, 이제야 도착했네요.”
“미친놈. 여기가 서울인지 아냐? 버스 한 번만 타면 다 가는 그런 동네면 누가 시골이라고 부르겠냐?”
현관 앞에 문이 열린 채 아저씨 모습이 보였다. 참네, 간만에 보는 건데 변한 게 없으……. 으음, 살이 좀 빠지신 거 같다. 얼굴도 살짝 창백한 게 혈색도 그리 좋지 않고. 그나마 다행인 건 머리카락이 빠진 것 같진 않았다. 항암치료가 그렇게 힘들다고 하던데. 약도 얼마나 독한지, 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혈액학적 간수치 유지와 함께 해독력 활성화와 함께 대사를 원활하게 해주느냐라고 하지 않던가.
“잘 지내셨죠?”
잘 지내셨으면 하는 바람에 물은 터였다. 대답은 예상에서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다.
“당연한 걸 뭐하러 물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들어와. 비싼 보일러 땠는데, 계속 문 열어 놔서 바람 들어오잖아.”
“그러네요. 사모님, 들어가시죠.”
그저 말없이 날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는 사모님과 함께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들어가 보니 거실엔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아저씨 말씀대로 바닥은 뜨근뜨근했고.
“아직 식전이지? 얼른 앉아. 금방 밥 퍼올 테니까.”
“뭘 이렇게 많이 차리셨어요. 전 그냥 나물이랑 밥 비벼 먹어도 좋은데.”
“말도 마라. 너 온다고 닭을 몇 마리나 삶은 건지. 그냥 놔뒀으면 온 동네 닭이란 닭은 다잡을 기세더라.”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앉은 자리. 상위엔 닭백숙이 뚝배기째로 놓여 있었다. 그에 비해 아저씨 앞엔 닭백숙이 보이질 않는다. 그저 뭔지 모를 맑은 국물에 밥이 말아져 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아릿하다.
“아, 저거?”
내 눈빛을 봤는지, 사람 수대로 밥을 떠 오신 사모님이 말씀하신다.
“병원에서 그러더라고. 한동안은 식단표에 따라 식사를 하라고. 그래야 약이 잘 듣는다고…….”
말투가 그랬다. 옆집 누렁이가 새끼를 여덟 마리나 낳았댄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시고 계셨다. 그걸 또 아저씬 평소답지 않게 대수롭지 않게 듣고 계셨고. 의연하신 모습이 아저씨답다면 아저씨다운데, 그래도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그때였다. 사모님께서 솥단지에서 닭다리를 주욱 찢어 내 앞에 놓인 뚝배기 위에 올려놓으신다.
“많이 먹어.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
다리가 세 개가 된 닭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을 뿐이다. ***
“뭘 이런 걸 사 왔어?”
화장품을 보며 웃고 계시는 사모님. 그리고 말씀은 없으시지만, 조용히 건강보조식품을 뒤춤으로 챙기시는 아저씨를 보면서 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잊지 않았다.
“그……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는데, 혹시 모르니 꼭 의사랑 상담하시고 드셔야 해요.”
차마 폐암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못하고 말했지만, 알아들으셨는지 사모님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아저씬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짓기도 하셨지만, 알겠다고 얘기하셨다. 선물이라 하기엔 두 분이 내게 해주신 거에 비해 약소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래도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까 좋다. 그 덕분에 자칫 무거울 뻔했던 자리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화기애애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난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치료비…… 많이 들어가죠?”
귤을 까서 접시에 놓고 계시던 사모님이 날 쳐다본다. 살짝 흔들리는 눈동자를 놓치지 않았다. 한데, 들려온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아냐. 요즘은 정부에서 보조를 많이 해주더라. 그 덕에 자기부담 비율이 낮더라고. 그러니까, 진영인 그런 걱정하지 마.”
잠시 말없이 사모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맑은 눈빛이셨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을 관조하듯 바라보며 무슨 일을 하시든 일체의 망설임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어쩐지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난 망설이다가 얘기를 꺼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꼭 돈 때문에 드리는 말씀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해놓고도 의심이 든다. 정말? 진짜 돈 때문이 아닌 거 맞나? 한 번 더 내 마음을 돌이켜보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맞아. 돈 때문만은 절대 아니다. 비록 돈이 없어서 셋방을 전전했고 가난하기 때문에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며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자고 조금 먹으며 악착같이 일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자부할 수 있다. 적어도 돈에 목매고 살진 않았다고. 내가 원하는 삶은 행복에 있는 거지, 그저 수단에 불과한 그 돈에 있진 않으니까. 이 부분에 한해서만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다. 지금도 마찬가지. 그저 바랄 뿐이다. 나도, 가족들도, 또 내 주위에 있는 이들이 행복하기만을.
“제 친구 하나가 삼한그룹에서 일하는데요. 얼마 전에 제가 해준 음식을 먹곤 놀라더라고요. 그 있잖아요, 사모님께서 주신 맛간장. 그걸로 맛을 냈더니 엄청 놀란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어지는 얘기를 두 분은 말씀 없이 계속 듣고만 계셨다. 그게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내친김에 전부 말했다. 한번 끊기면 다시 말을 잇기 어려울 것만 같아서.
“……일단 브랜드를 만든다는데, 솔직히 그 부분은 저도 잘 몰라요. 다만, 레시피에 상응하는 페이는 확실히 약속했고요. 그 외에도 몇 가지 추가적으로 혜택이 주어진다고 하는데, 정확한 건 따로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하더라고요. 아, 물론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건 그저 제안일 뿐, 결정은 사모님이랑 아저씨…… 두 분께서 하시면 됩니다.”
얘기가 다 끝났는데도, 두 분은 여전히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다가 아저씨가 날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그 눈빛이 불편해서 슬쩍 시선을 돌리려 할 때였다.
“사내자식이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그냥 간장이랑 고추장 장사하자는 거 아냐?”
“그, 그렇긴 하죠.”
“그럼 그냥 ‘나랑 손잡고 장사 한번 합시다!’ 하면 될 거를 구구절절이 늘어놓기는……. 쯧.”
저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다. 거칠게 하시는 얘기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닌지라. 그렇긴 해도 내 입장에서는 제대로 설명 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서 변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건 좀……. 이게 기업을 상대로 하는 거라, 계약문제도 있고…….”
“됐다. 그만하면 다 알아들었을 거다. 뭐,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만, 난 딱히 불만 없다는 것만 알아둬라. 큼. 좀 덜떨어진 놈이긴 하다만, 네가 하는 일이 그저 눈앞에 있는 떡 하나 더 집어 먹겠다고 설치는 게 아니란 것쯤은 아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아저씬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러곤 뒷짐을 지곤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재미도 없는 얘기를 한참이나 들어서 그런가 안 쑤시는 데가 없네.”
……라는 툴툴거림만 남겨놓으신 채로. 정말이지 변함없으신 분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스윽. 눈앞에 사모님 손이 보인다. 그 손에는 껍질을 깐 귤이 들려 있었다. 그걸 내밀며 말씀하셨다.
“목마르겠다. 먹어가면서 말하지.”
“……예.”
“얼른 먹어. 마르면 맛없어.”
“예.”
대답과 동시에 입안으로 들어오는 귤을 씹기 무섭게 달달한 과즙이 터지며 마른 입안을 적셨다. 그런 내 귓가로 사모님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사업 같은 건 잘 모르겠는데…… 뭐든 진영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돈도 그냥 진영이가 갖고.”
“……!”
“알고 있겠지만, 우린 딱히 재산을 물려줄 애도 없고.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게다가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니?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레시피도 내가 진영이가 좋아서 알려준 것뿐인데, 이제 와서 값을 치르라고 하기는 싫네? 그러니까…….”
“자, 잠깐만요.”
“응?”
“그런 거라면, 저 안 하렵니다.”
“……?”
“그럼 꼭 제가 사모님 이용하는 거 같아서 싫습니다. 그럴 마음으로 온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싫어요. ……싫다구요. 그런 거.”
난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씰룩거렸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막상 말이 되어 나오질 않고 있었다. 그때, 내 손을 부드럽게 감아쥐는 손길이 느껴졌다. 사모님이란 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널 아프게 했나 보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
“알아. 네 마음. 그러니까, 네 마음대로 하렴. 우린 네가 하자는 대로 따를 테니까. 그럼 됐지?”
천천히 쳐든 시선 너머로 사모님의 얼굴이 보인다. 웃고 계셨다.
한데, 그 눈에는 눈물이 그득했다. 그 얼굴을 보자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이라 쥐어짜듯 목소리를 내뱉었다.
“절대…… 절대 부끄럽지 않으실 거예요. 그런 상품으로 만들게요.”
더 이상 아무런 말씀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시는 사모님이셨다. ***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내 양손엔 보따리가 바리바리다. 누가 보면 피난이라도 가는 줄 알 정도. 그래도 무겁진 않다. 평소 같으면 힘들다고 끙끙거렸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번에 그렇게 많이 보내주시고서, 또 이만큼이나 싸주시는 건 그만큼 날 생각하신다는 거겠지. 그리고……. 대문을 나서기 전, 들려온 아저씨의 음성.
“그래서 또 언제 온다고?”
물으시던 아저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주는 찾아뵙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들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걸었다. 그땐 하룻밤 자고 와야지 하는 생각도.
“어, 나다.”
-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밖이야?
“아우리지 갔다가 지금 서울로 돌아가는 길.”
- 어? 그럼?
이쪽 사정도 모르면서 그저 나만 믿고서 마냥 기다려주던 강형식. 그의 음성에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그래. 허락받았어.”
잠시 수화기 너머에 침묵에 감돈다. 그러더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좋냐?”
큼, 티 나냐?
“아무튼, 그렇게 알아. 지금 가는 중이니까, 밤이나 돼야 도착할 거야. 말해줄 것도 있고, 줄 것도 있으니까 혹시라도 시간 되면 만나고.”
- 야, 그게 무슨……. 넌 날 어떻게 보는 거냐? 응? 네가 보자면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서 만나야지.
안다. 아니까, 조심스러운 거다. 우린 이미 오늘 일은 내일의 나한테 맡겨도 될 만큼 철딱서니가 없는 나이도 아니고,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온몸으로 체득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대책 없는 관계는 친구 사이도 아닌 거다. 지금의 우리 나이엔.
“기차 안이라 통화 오래 못해. 도착하면 문자 남길 테니까, 연락하든가.”
- 알겠다. 조심해서 오고.
전화를 끊은 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겨울인지라 나뭇잎 하나 달려 있지 않은 나무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 말한 대로 서울에 도착해 문자를 남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더랬다. 밤 9시. 1차로 술집으로 들어갔던 이들도 2차 혹은 3차를 달리고 있을 시간, 난 저택으로 가지 않고 역삼역 쪽으로 향했다.
“왔냐?”
뒷골목의 3층짜리 건물 지하로 내려가니, 날 맞이하는 강형식. 그의 얼굴에 반가움이 한가득이다. 그 표정 어디에서도 탐욕은 보이지 않는다. 이놈도 참 한결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좀 보면 들어줄 생각을 해라. 팔 떨어질 것 같구만.”
앓는 소리를 하자, 녀석이 크큭대며 내 손에서 보따리들을 앗듯이 가져간다. 그렇다고 전부 가져갈 것까지야.
“어우, 야. 뭔데 이렇게 무겁냐? 나였으면 진즉에 팔 떨어졌겠는데? 너, 진짜 혼자서 이거 다 들고 온 거야?”
“그럼, 누가 들어주겠냐?”
그렇게 말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늘씬한 몸매의 여자 한 명이 다가와 눈웃음을 친다. 반갑다는 말을 하는 여자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이곤 가게 안을 둘러봤다. 바인가? 룸은 없는 거로 봐선 그냥 술만 파는 곳 같다. 나쁘지 않다. 원래도 룸살롱 같은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사람 많은 곳도 지금처럼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엔 좋지 않으니 이 정도가 딱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센스가 좋은 건지, 녀석의 선택은 탁월했다.
“여기 좋지?”
“그러네.”
“단골이야. 조용히 얘기하기엔 여기만큼 좋은 곳도 드물거든.”
그래 보인다. 수긍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강형식이 끙끙거리며 보따리를 들고 한쪽 벽 쪽으로 향했다. 응? 멀리서 봤을 땐 몰랐는데, 룸이 있네?
“아, 여기 그런 곳 아니니까 괜한 기대는 말고.”
녀석의 객쩍은 농담에 눈썹이 절로 꿈틀대는 게 느껴진다.
“뭐래? 잔말 말고 들어가. 내일 출근하려면 얘기 빨리하고 집에 가야…….”
문이 열리는 순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작달막한 체구, 그럼에도 어딘지 모르게 카리스마와 함께 진중함이 묻어나오는 모습의 남자.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들어 보이고 노년이라기엔 젊게 느껴지는 남자가 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허리를 숙여 보이자, 남자가 말했다. 소파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면서.
“반가워요. 장동일이오.”
아, 그럼 이분이…… 강형식이 얘기하던 그분? 난 뜻밖의 만남에 의아해졌지만, 그것도 잠시. 맛간장을 위시한 브랜드 런칭을 떠올리며 장동일 상무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