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 실검 1위 (2) (68/204)

#68. 실검 1위 (2)2021.03.07.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연기할 때 흘리는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헤나는 가슴을 옥죄어오는 슬픔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럴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류승렬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의 사정을 끌어내며 그걸 또 요리로 승화해 자연스럽게 풀어내고는 있는 요리사에 대한 감탄이 복합적으로 그녀의 마음을 휘젓고 있었을 뿐이다.

“와! 대박! 저 셰프 뭐예요? 장난 아니다!”

“그러게. 도시락 만들 때만 해도 뭐 저러나 싶었는데……. 흠, 처음 보는데, 이름이 뭐야?”

“아, 서진영이래요.”

“서진영?”

“이거 봐요! 실검에 류승렬이랑 나란히 1, 2위에 올랐어요.”

“헐. 듣보잡이 분명한데, 이걸로 완전 노났네, 노났어.”

“KBC 쪽 지금 완전 축제 분위기겠는데요? 쯧,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누나도 저기 출…….”

“쓰읍!”

김 실장이 인상을 쓰자, 뒤늦게 입을 닫는 로드매니저. 하지만 이미 헤나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방금까지 그녀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던 감성은 씻은 듯 사라진 후였다. 대신 TV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엔 아쉬움과 질시 그리고 후회가 뒤엉켜 있었다. *** 후회는 그녀만의 몫이 아니었다. 시청률이 20프로를 넘는 순간 환호성을 내질렀던 스텝들. 시청률은 그 후로도 쭉쭉 치고 올라가, 류승렬이 오열하며 도시락을 먹을 때엔 기어이 27프로를 찍었다. 단순비교로는 이번 회차에 이미 SBC의 ‘혼저왕 먹읍서’를 앞지른 것이다. 그것이 비록 2프로에 불과한, 근소한 차이라고는 해도 이긴 건 이긴 거였다. 조강훈 FD가 전화를 받은 것도 그때였다.

“저어, 피디님.”

“무슨 일이죠?”

“엠에스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엠에스요?”

엠에스 엔터테인먼트를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임채영이 떠올랐다. 신현정 PD는 티 내진 않았지만, 불쾌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임채영이 촬영을 앞두고 갑자기 쓰러져 입원하는 바람에 게스트를 새로 구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사람이 아픈 거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치지만, 문제는 그게 거짓이라는 거다. 소식을 듣고 알아보니 응급실에 실려 간 거까진 맞지만, 그 후 곧바로 퇴원했다는 후문이었다. 이때쯤 짐작하고 있었던 대로 크게 아픈 곳은 없었고, 그저 가벼운 감기 증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더랬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방송에 출연하기 싫어서 꼼수를 부린 셈이었다. 덕분에 신현정 PD를 위시해 스텝들은 발등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촬영 때까지 게스트 섭외를 하지 못해 끝내 촬영날짜를 미루기까지 했다. 물론 이해는 한다. 이제 갓 시작한 예능 프로. 류승렬의 출연과 함께 이슈가 되긴 했지만, 그걸로는 동 시간대에 방송하는 SBC 노경환 피디가 연출한 ‘혼저왕 먹읍서’에 비해 처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겠지. 무엇보다 메인 셰프인 서진영의 인지도가 너무 없었다는 게 결정적이었을 거다. 그렇다곤 해도 여전히 의문이었다. 비록 ‘혼저왕 먹읍서’에 비하면 시청률이나 관심도가 떨어지는 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신현정 PD의 편집, 그중에서도 본방 직후 내보낸 예고편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덕분에 신규 프로그램치곤 시작이 나쁘지 않다는 평이었다. 그런데도 응급실에 실려 가는 꼼수 아닌 꼼수를 부려가며 방송에서 하차한다? 그것도 촬영 며칠 전에? 어떻게 봐도 의도적인 방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가 외부적인 외압이든, 아니면 금전적인 요인이든 간에 엠에스로선 이쪽에 출연하는 것보다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 거다. 그것도 계약 위반을 감수할 정도의. 그로 인해 방송국 차원에서 법무팀이 소송을 걸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엠에스 쪽에선 그러든가 말든가 하는 대응이었지만. 그게 불과 어제까지의 일이었다. 한데, 웬 전화? 의아해진 신현정 PD가 어쩐지 서늘한 눈빛이 되어 바라보자, 살짝 움츠러든 조강훈 FD가 더듬더듬 말했다.

“그, 그게…… 임채영 말입니다.”

“…….”

“몸이 호전됐다고, 다시 출연할 수 없겠냐고 묻는데요?”

자신이 예상한 바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얘기에 신현정 PD는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요. 알겠어요.”

“예?”

“검토하겠다고 전해주시라고요.”

신현정 PD의 대답이 뜻밖 있던 걸까. 조강훈 FD는 눈을 껌뻑거리며 몇 번이나 묻고 있었다. ‘정말요?’하는 눈빛으로. 그 속내를 읽은 신현정 PD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출연이 예정된 게스트가 많으니 언제라곤 약속할 순 없잖아요?”

“그, 그렇긴 하죠.”

“그래도 옛정이 있지, 매몰찰 순 없고……. 일단 게스트 예정자 목록에 올려두겠다고 하세요.”

조강훈 FD는 멍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해 갑자기 쇄도하기 시작한 게스트 출연 희망자들이었다. 그러던 게 오늘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폭발하듯 밀려드니 그 수가 벌써 반백을 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자리에 육박할 거란 건 굳이 입 밖에 꺼낼 필요조차 없다. 물론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 게스트로 섭외하게 되겠지만, 그것만 해도 이미 열 명이 훌쩍 넘을 거였다. 그런데 그 뒤에 임채영이 선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년 하반기까진 출연할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다. 이건 그냥 완곡한 거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조강훈 FD가 물러날 때, 신현정 PD의 머릿속에선 이미 임채영과 엠에스 엔터테인먼트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녀의 시선은 TV 화면을 향해 있었다. 방금 끝난 류승렬 편 후에 나오는 예고편. 화면 왼쪽 하단을 채우고 있는 검은색 실루엣. 그랜드 피아노의 짙은 그림자 너머 한 여자가 화려한 손놀림으로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잔잔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잔한 선율이 점차 작아지는 가운데 뭔가를 두드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오고……. 화면 오른쪽에서 오버래핑되며 현란한 칼질로 도마를 때리는 손이 보인 것도 그때였다. 피아노 소리와 칼질 소리가 묘하게 어울리며 마치 협주를 하듯 들려온다. 그러다가 화면이 회색빛으로 물든다. 동시에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떠오른다. 누가 봐도 1990년대라고 볼 수밖에 없는 거리의 풍경이 나오고, 그 위에 천천히 글자들이 새겨졌다.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그리고 글자가 완성되기 무섭게 화면이 꺼졌다. 물론 진짜로 꺼진 건 아니고, 그렇게 느껴지게 연출했을 뿐이다.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다음 편을 촬영하지 못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만든 것 치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이번에 나간 류승렬 편이 워낙 호응이 좋았기에 가능한 연출이었달까.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어설픈 것보단 나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마치 개봉 직전의 티저 광고처럼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끌어내 주기를 신현정 PD는 바랄 뿐이었다. 그때였다. 부르르르. 핸드폰을 꺼내 이름을 확인한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아, 선배.”

- 오오, 신현정! 축하해!

“뭘. 이제 시작인데.”

- 좋아 좋아. 그런 자세.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바로 내 방으로 와.

“……?”

- 흐흐흐. 이제껏 국장님이랑 같이 방송 보고 있었거든. 하실 말씀이 있다곤 하시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너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 같아.

뒷말은 속닥이듯 얘기하고 있는 고민준 본부장이었다. 상황이 눈앞에 선하다. 신현정 PD는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리곤 대답했다.

“바로 갈게.”

전화를 끊고 고민준 본부장의 사무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 그녀의 가슴이 또다시 뛰기 시작한다. 방송을 모니터링할 때는 다시금 느껴지는 촬영 당시의 상황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서였다면, 지금은……. 설렘이었다. 이번엔 또 무얼 보여줄까? 어릴 적 한국을 떠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페이슬리 박과 함께 그녀의 머릿속에 서진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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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실은 난리도 아니다. 아까까진 눈물바다더니, 이젠 축제의 한마당이다. 계속해서 꺅꺅거리는 비명…… 아니 환호성이 들리는가 하면, 대박! 쩔어! 우와! 같은 탄성 어린 감탄사들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그러다가 들려온다.

“진영아! 애들 너 찾는다고 난리다!”

“호호호. 이러다간 금방 털리겠는데? 요즘 네티즌 수사대들 장난 아니잖아.”

“글쎄. 저 자식이 워낙 인터넷 같은 걸 안 해서 좀처럼 찾아내기 어려울걸? 학교도 다니다 말아서…….”

“어머 그래?”

“아, 누나는 모르겠구나. 아무튼, 그런 게 있어.”

“넌 알고 있었니?”

“대학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예요.”

“어머, 얘 좀 봐. 실드 치는 거니? 나도 그런 뜻으로 물은 거 아니거든? 호호호. 그래도 보기는 좋네. 네가 그러는 거 보니까. 근데, 아무리 그래도 네티즌들 무시하면 큰코다칠걸? 이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팬들이 몰려들던 걸 생각하면…… 아우, 야. 얼마나 무서웠다고. 결국 내 신상 다 까발려졌던 거 너도 기억하지?”

아, 몰랐는데, 박유나의 남편인 김주형은 요 몇 년 사이에 인기를 얻기 시작한 야구선수라고 한다. 어쩐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라더니. 주방에서 식재료를 다듬으며 거실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떠들썩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정작 본인의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김주형은 그저 조용히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딱 벌어진 어깨와 함께 어지간한 성인 남자의 허벅지만 한 팔뚝이 눈에 띈다. 그런 덩치에 걸맞다고나 할까, 과묵한 가운데 미소만은 한시도 잃고 잊지 않은 채 아내인 박유나를 가볍게 안고서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오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류승렬은…….

“아니라니까요, 형님! 저 형 얼마나 까칠한데요! 솔직히 촬영 시작 전에 날 바라보는데……. 마치 속이라도 읽는 듯한 느낌에 왠지 모르게 소름이 쫙 끼치는데…….”

“크큭. 그냥 네가 겁먹은 거 아냐?”

“저 자식이 까칠하긴 하지. 속은 삶은 무 같은 놈이 겉으론 얼마나 틱틱거리는데.”

“어머, 그래?”

“아냐, 언니. 형식이 오빠 말 믿지 마. 진영 씨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데.”

“와아, 진짜! 형수님,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가재가 게 편이라지만……. 형식이 형! 형은 친구니까 알 거 아니에요? 제 말이 틀렸어요?”

어느새 친해진 건지, 일행들과 말까지 트고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대단하단 생각과 함께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원래 저런 캐릭터가 아닌데……. 오늘 방송을 본 탓인 걸까. 어딘지 모르게 오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건 그렇고…….

“승렬아, 네가 이해해. 원래 없는 사람만 서러운 거야.”

“아, 혀엉!”

“그래도 알지? 부러우면 지는 거?”

“헐!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어요?”

“아, 아직 애인까진…….”

“어머 얘 봐? 이제 와서 오리발 내미는 거야? 두 사람이 막 응? 키……. 읍!”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즐거워 보이는 건 좋은데……. 어째 위화감이 든다. 그게 뭘까 생각하다가 흠칫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류승렬과 강형식은 동갑 아닌가? 두 사람 다 나보다 한 살이 적으니 맞을 거다. 차이라면 강형식은 그럼에도 나랑 친구 먹은 거고, 류승렬은 지가 먼저 나서서 나한테 형이라고 부른 것일 뿐. 흠, 이거 말해 줘야 하지 않을까? 난 냄비를 든 채로 거실 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중얼거렸다.

“뭐, 굳이 지금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겠지.”

나중에 분위기 봐서 얘기해주면, 알아서 정리되지 않을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금 일에 열중하려는 찰나였다.

“찬물을 왜 끼얹어요?”

아우씨, 깜짝이야! 언제 온 거야? 소리 없이 다가와 옆에 서 있는 이하연을 보곤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다가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벼, 별거 아니에요. 김치가 너무 쉬어서 찬물에 한번 헹굴까 말까 잠깐 고민…….”

“아! 오늘은 김치찌개예요?”

“급히 오느라 아무것도 사 온 게 없어서요. 보시면 알겠지만, 이놈의 집구석에서 먹을 거라곤 고기랑 김치밖에 없거든요.”

“아, 저 김치찌개 좋아해요!”

손뼉까지 치고 좋아라하는 이하연이었고, 그 소리를 들었는지 거실 쪽에서 강형식과 류승렬이 거의 동시에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오늘도 서 셰프 특제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는 거냐! 이왕이면 매콤하게. 오케이?”

“완전히 기대되는데요? 형! 고기 팍팍! 알죠?”

이것들이 진짜! 어디서 주문을 하고 지랄들이야.

“그냥 주는 대로들 먹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어느새 내 입가엔 미소 한줄기가 떠올라 있었다. 그러면서 들고 온 가방에서 간장병을 꺼내는데…….

“응? 그거 뭐예요?”

“아, 이거요?”

난 500밀리짜리 생수병에 들어있는 간장을 들어 올리며 웃어 보였다.

“마법의 간장?”

“앙! 그게 뭐야앙!”

“그런 게 있어요. 이따 먹어보면 정말 깜짝 놀랄걸요?”

“어떡해! 무슨 맛일지 상상은 안 되는데, 입에 막 침까지 고여!”

아니, 무슨 맛일지 상상도 안 된다면서 어떻게 침이 고이지? 역시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이하연의 엉뚱함 때문에 다시 한번 웃으면서 막 김치찌개의 다시물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응?”

전화가 걸려온다. 누구지? 신현정 피디인가? 아니면 외숙모? 아, 혹시 사모님? 아저씨 생각에 급해진 마음으로 앞치마 안쪽으로 손을 넣어 바지에서 핸드폰을 뽑듯이 꺼냈다. 한데, 뜻밖의 이름이 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반가운 이름은 아니었다. 그래서 받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하연이 물어온다.

“안 받아요?”

“아, 예……. 받아야죠.”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안 받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 저쪽에서 뭔 얘기를 하든 나만 흔들리지 않으면 되는 일인데. 난 마음을 다잡곤 통화버튼을 눌렀다.

“예. 서진영입니다.”

- 오랜만이에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김진숙 회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근거렸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저절로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묻어나왔고.

“그런가요? 반가워서 그런가, 엊그제 통화한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당연히 무례하게 굴 순 없다. 누가 뭐래도 김진숙 회장은 국내 굴지의 유통사 업체 회장이고, 뿐만 아니라 강형식을 생각해서라도 그래선 안 된다. 그렇다곤 해도 지난번 일 때문인지, 경계심을 지울 순 없었다. 고윤수 주방장님이 조심하란 얘기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말투가 고울 수만은 없었다. 비꼰 것까진 아니지만, 반어법으로 얘기해 보지만 역시나 이빨도 먹히지 않는다.

- 호호호. 그렇게까지 날 생각하는 줄 알았으면 더 자주 전화할걸 그랬네. 아니, 그럴 게 아니라 지금 나올래요? 내가 근사한 저녁…….

“사양하겠습니다. 지금 막 식사 준비 중이라서요.”

- 어머 그래요? 그럼 내가 그쪽으로 가면 되겠네. 메뉴는 뭐죠?

“큼. 회장님 입맛엔 안 맞으실 겁니다. 그냥 신김치로 만든 찌개거든요.”

- 아! 김치찌개 좋죠! 거기에 소주까지 한 잔 곁들이면, 캬하!

음, 어째 말리는 느낌인데…….

“저어, 회장님. 말씀드렸다시피 요리 중이라서요. 급한 일 아니시면 나중에 제가 전화…….”

- 아, 내 정신 좀 봐. 다른 것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니고요.

“…….”

- 서 셰프.

“예.”

- 광고 어때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감? 난 고개를 갸웃했다가 지난번에 신현정 PD로부터 우리 방송에 C 마트가 광고를 붙였다는 얘기를 해준 걸 기억해냈다. 실제로도 방송 앞뒤로 C 마트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계열사들 광고까지 나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고.

“광고 얘기라면 저랑 할 게 아니라 방송국 측이랑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내 물음에 김진숙 회장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것도 한참이나 웃었더랬다. 그래서 살짝 기분 나빠졌을 때였다.

- 간만에 한참 웃었네요. 역시 서 셰프는 내 스타일이라니까.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 호호호. 왜 자꾸 딱딱하게 그래요? 남도 아니고.

남 맞는데요? 난 어이가 없었지만, 중의적인 말들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김진숙 회장의 화법을 아는지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겼다. 그런 내게 김진숙 회장이 불시에 일격을 날렸다.

- 그런 광고 말고요. CF 찍을 생각 없냐고요.

잠깐 멍해졌다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C, CF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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