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차 조심해. (1)2021.02.10.
마시는 순간 그냥 해소되는 갈증. 그게 너무 신기해서 사모님을 바라보자,
“그렇게 바라봐도 안 가르쳐줄 거야.”
“사모님, 사ㄹ…….”
“미친놈! 왜 자꾸 남의 마누라한테 사랑한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아저씨가 면박을 주며 돌아서고 계셨다. 근데, 지금 웃은 거 맞지? 이맛살이 절로 구겨지며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 내게 아저씨가 버럭 소리치셨다.
“뭐해! 얼른 오지 않고! 내기 포기한 거냐?”
“가요, 가! 지금 간다고요!”
울컥해서 소리쳐보지만, 집게를 들어 올리는 게 힘이 부친지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TV까지 나오는 놈이 요령이 그렇게 없어서야 원.”
십 년은 더 되어 보이는 의자에 앉아 툭툭 내뱉고 계신 아저씨. 그 음성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아, TV 얘긴 왜 하십니까?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이라고.”
“상관없지.”
“그러니까 왜…….”
“그렇게 따지면, 네놈 팔뚝이랑 망치질 몇 번에 휘청거리는 그놈의 허리도 상관없기는 마찬가지지.”
응? 이건 또 무슨 소리……? 멍해져서 아저씰 바라보자, 피식 웃으신다.
“넌 연기는 하면 안 되겠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만 지으면 뭐하냐?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데.”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니면 아니지, 이놈아. 뭘 그렇게 발끈해? 나참. 애도 아니고……. 군대 안 다녀왔어? 모름지기 힘이란 허리에서 나오는 거고, 허릿심은 두 다리가 버텨줘야…….”
“면제인데요?”
“…….”
“…….”
“……신의 아들?”
그렇게 묻는 아저씨의 얼굴이 눈에 띄게 달라져 있다. 못마땅하단 표정이 역력하다. 그럴 줄 알았다. 꼭 군대 얘기만 나오면 이런 반응들이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아라고 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잠시 말씀이 없으시던 아저씬,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며 다시금 툭 내뱉으셨다.
“넌 인마, 너무 요령이 없어.”
“아깐 힘이 없다면서요?”
“없는 거나, 못 쓰는 거나 그게 그거지.”
이번엔 대꾸하지 않았다. 단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왜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아저씨가 여기로 날 끌고 온 상황 자체가 뭔가 의도된 느낌이라 느꼈었는데, 지금도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이거 혹시……. 이미 주방장님이랑 으쌰으쌰 해놓고 이러는 거 아냐? 한번 툭 찔러본다.
“그래서 가르쳐주시려고요?”
“뭘?”
“와씨! 봐, 봐. 이런다니까. 밑밥 다 깔아놓고 모른척하시는 거 보라니까. 아저씨, 그거 버릇이죠? 사람 속 뒤집어놓으시는 거?”
묻기는 아저씨한테 물었는데, 웃음은 다른 쪽에서 터졌다. 사모님께서 까르르 웃고 계셨다. 배까지 잡고서. 전염병인가. 아저씨까지 고개를 돌리곤 웃고 계셨다. 그러다가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망치를 번쩍 치켜드신다.
“뭐해? 쉴 만큼 쉬었으면 다시 시작해야지.”
“지금 하려고 했거든요!”
“하여간 한마디를 안 져요, 한마디를.”
참 묘한 일이다. 아저씨랑 대화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 신경질이 난다. 생각해보면 첫 대면부터 그랬었다. 그래서 그런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게 된다.
“얼른 치시기나 하세요!”
“다리 벌리고.”
응? 뭔가 아까랑 분위기가 다른…….
“그렇게 무릎을 딱 붙이고 있어서야 힘이 들어가겠냐? 응? 허리에 힘을 주려면 다리를 적당히 벌려야 할 거 아냐!”
군말 없이 다리를 벌렸다.
“아, 말 많으시네. 얼른 치시라니까요.”
“허리 세우고.”
척추가 휘어지도록 허리를 바짝 세웠다.
“치세요! 얼른!”
“손에 힘 빼고.”
“그러다 집게 날아가면요?”
“누가 계속 빼고 있으래?”
“힘 빼라면서……. 아!”
내가 탄성을 터뜨리자, 아저씨가 씨익 웃으셨다.
“이 꽉 깨물어라. 혀 깨문다.”
말씀대로 하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저씬 지금 내게…….
“손에는 힘 빼라니까.”
“아! 진짜! 밤 새실 거예요! 얼른 치시기나 하세요!”
“하, 그놈 참. 꼬박꼬박 말대꾸는. 친다, 쳐! 이놈……아!”
꽝!
“윽!”
“아주 바보는 아니군.”
더 이상은 대거리할 틈이 없었다. 후우우웅! 귓가로 빨려들 듯 들려오는 바람 소리 때문이었다. 망치가 무서운 기세로 올라갔다가 더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며 공기를 가르는 그 소리 말이다. ***
“이 정도면 선방한 거 아닌가요?”
조강훈 FD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선방? 말이 쉬워 십칠 프로지. 예능 프로가 첫방부터 그 정도 시청률을 올린 건 선방 수준이 아니다. 요즘같이 케이블이며 인터넷 방송, 하다못해 유티비까지 여기저기서 시청률을 갉아먹는 마당엔 예전처럼 지상파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건 애들도 안다. 그러니 마땅히 대박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건 분위기 때문이었다. 신현정 PD에게서 흘러나오는 아우라. 그건 아직 만족하지 못한 배고픈 사자의 그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현정 PD의 입에서 나온 말은 조강훈 FD의 예상치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섭외한 게스트는 문제없나요?”
과거는 돌아보지도 않겠다는 건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여유가 없는 건지. 조강훈 FD는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대답했다.
“예. 스케줄 확인까지 전부 마쳤습니다.”
그때였다. 스텝 한 명이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왔다. 그러곤 신현정 PD에게 달려왔다. 숨이 찬 건지, 아니면 그만큼 다급한 건지 제대로 말도 못 한다.
“피, 피디……님. 크.……큰일났습니다.”
큰일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현정 PD는 직감했다. 뭔가 터졌다는 걸.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표정 하나 구기지 않고서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이죠?”
그러자 스텝이 쏟아내듯 말했다.
“게스트로 섭외했던 임채영 말입니다. 급환으로 입원했다고…….”
“뭐? 입원?”
조강훈 FD는 눈이라도 튀어나올 듯 놀라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개똥같은 얘긴가. 어제만 해도 밝고 쾌활하다 못해 날아갈 듯한 목소리로 통화하던 여자가 갑자기 웬 입원?
“그게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합니다.”
“언제? 아니 아니, 어디가 아픈 건데? 아니다. 내가 직접 전화…….”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어 핸드폰을 꺼내 드는 조강훈 FD를 향해 신현정 PD가 손을 들어 올렸다. 고장이라도 난 로봇처럼 뚝 멈춰선 조강훈 FD를 보면서 그녀가 물었다.
“임채영이 엠에스 소속이라고 했나요?”
“네. 맞습니다.”
조강훈 FD의 대답에 신현정 PD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듯싶더니 불쑥 말했다.
“임채영한테 전화할 거 없이 엠에스에 사실 확인만 해봐요. 그리고 게스트 섭외 명단 있죠? 그거 좀 가져오고.”
“피디님!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분명 어제 제가 통화할 때만 해도…….”
“됐어요. 사정이 어찌 되었든, 임채영이 출연할 일은 없는 거 같으니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하니, 전화는 해보고요. 일단 급한 불부터 끄는 게 먼저니까 게스트부터 섭외하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떨어진 불에 발등이 구워지기 일보 직전에 된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팀은 신현정 PD의 지시하에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시작해 점심때를 넘겨 한 시가 지나도록 상황은 타개될 조짐이 보이질 않았다. 엠에스 엔터테인먼트 쪽에선 임채영의 입원 사실을 시인하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위약금을 물어주겠다고 했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나아질 리가 없었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촬영이었으니까. 촬영이 일주일은커녕 며칠도 안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게스트 출연이 취소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을까. 스텝들이 전화기에 달라붙어 게스트 명단에 적힌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하나같이 이미 스케줄이 잡혀있어서 안 되겠다는 얘기만 돌아왔을 뿐이다. 결국…….
“일단은 한진석과 서진영 셰프한테 촬영날짜가 연기되었다는 얘기부터 해야겠군요.”
회의 결과 촬영일을 연기하기로 결정했을 때쯤이었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 것은.
“예. KBC 예능국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입……. 예? 어디시라고요?”
갑자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피, 피디님!”
그 전화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출연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팩스와 이메일로도 쏟아져 들어오는 문의. 겨우 반나절 동안 일어난 해프닝에 모두가 진이 다 빠져버릴 지경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더 이상 그늘이 드리워져 있지 않았다. 다만 신현정 PD만이 손에 쥐어진, 출연을 문의해온 이들의 필모 따위가 적힌 서류를 보면서 고심하고 있을 뿐이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열 번은 채웠다. 하지만 내기에 이겼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아저씨가 봐줬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도 아저씬 옅은 미소와 함께 날 보시다가 대장간을 떠나셨더랬지. 그때까지 난 힘이 풀려버린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은 채였고. 언제 가신 건지 평상 위에 계시던 사모님도 보이질 않으셨다. 그렇게 문밖으로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진짜 창피해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겠고.”
그나마도 아저씨의 얘기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나가떨어졌을 터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의 요체를 알아들었다는 거다. 요는 타이밍. 계속해서 힘을 주고 있는 것보단 망치가 모루 위로 떨어치는 그 순간에 맞춰 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단 얘기다. 일테면 요령인데, 물론 말이 쉽지 실제로 하는 건 몹시 어려웠다. 오죽하면 첫 시도 땐 박자가 어긋나서 한 텀 늦게 힘을 주는 바람에 손바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더랬다. 집게를 안 놓친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다음부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타이밍을 맞춰나갔지만, 망치질이 딱 열 번째 되었을 땐 부들부들 떨다가 망치가 모루에서 떠나는 순간 그대로 집게를 놓아버리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느꼈다. 요령도 요령이지만, 그 근본이 되는 힘이 부족하다는 걸. 그것도 엄청. 여태까지 힘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살아왔던 나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남들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것도 거칠기 짝이 없는 밑바닥 생활을 해오며 근력만은 어느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하던 터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동안 오만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렇게 군말 없이 물을 퍼 나르는 중이고.
“아, 진짜 이놈의 산길!”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다. 가파르긴 또 어찌나 가파른지. 아주 그냥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난다. 산기슭을 오르는 다리는 부풀어 오르다 못해 터질 지경이고. 그나마 움직일 땐 좀 나은데, 숨이 가빠서 좀 쉬었다가 움직이면 마비라도 온 듯한 발짝 움직이기도 벅차다. 뿐만 아니라 쉬는 사이 식은땀은 산중에 불고 있는 찬바람에 몸의 열기를 빼앗아가 근육을 굳게 만들기 일쑤다. 끙끙거리며 다시금 몸을 움직이며 투덜거렸다.
“확 그냥 우물이라도 파버릴까 보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산중에서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는 게 바보 같단 생각이 들어 인상을 확 구겼다. 그나저나 이놈의 물통은 왜 이렇게 큰 거야? 성인 팔뚝만 한 나무막대기 양 끝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물통을 보고 있으니, 북청 물장수가 따로 없다. 후우, 투덜거리면 뭐하나? 내기에서 이겼다곤 해도 실제론 진 것을. 뭐 덕분에 칼 한 자루는 꽁으로 받게 생겼지만, 이젠 그게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란 게 그렇다. 차라리 손바닥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겠지만, 마음에 생긴 스크래치는 낫기도 힘들고 설사 낫더라도 그 흉터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어젯밤, 지쳐 나가떨어진 후 거의 실신하듯 잠이 들어버렸던 내 모습은 머릿속에 낙인처럼 깊게 찍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 탓에 어젠 아저씨가 칼 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원망 같은 건 없다. 당연한 얘기다. 아니 오히려 감사하면 모를까. 어찌 보면 며칠 묵었다가는 손님에 불과한데도 아저씬 내게 뭔가 가르쳐주려고 하신다는 느낌이었으니까. 실제로도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 게 효과적인지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되었고. 대신 짧고 굵게 배우는 바람에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리고 사모님……. 지금의 자신을 만든 건 아내라고 하신 아저씨 말씀이 마음에 와닿을 정도다. 기가 막힐 정도로 사람을 잘 다루신다고나 할까. 덕분에 일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많이 배웠다. 그만큼 몸이 고됐지만, 개의치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알 수 있었으니까. 사모님께서 날 아끼고 계시다는 걸. 그래, 그렇긴 한데……. 그래서 이게 요리랑 뭔 상관이냐고! 아직도 모르겠다. 힘세면 솥단지는 잘 들겠지. 무슨 요리를 하든 간에 지치지 않고 10인분 아니 100인분도 뚝딱 만들긴 하겠다. 하아, 나로선 이 정도밖엔 그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정말 주방장님이 뭔가 다른 뜻이 있으셔서 여기로 날 보내신 거 맞아? 미치겠네. 전화해서 확인할 수도 없고. 혹시 다른 뭔가를 가르쳐주기 전에 힘쓰는 법부터 알려주시는 건가? 아, 모르겠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프고. 아무튼, 뭐라도 얻는 게 있을 테니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겠지. 그건 그거고……. 으득! 그래도 수치스러운 건 수치스러운 것. 어제 일만 생각하면 이 수치를 언젠가 꼭 갚고 말겠다는 의지가 솟구친다. 난 한차례 이를 악물고 물통 지게를 고쳐 멨다. 그러곤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는 다리를 들기 위해 허리에 힘을 주었다. 기필코 보여준다. 남자는 힘이라고?
“끙!”
어젯밤 아저씨가 말해준 요령이란 것과 힘 조절에 대한 것을 다시금 떠올리며 힘겹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무들 사이로 듬성듬성 보이는 해는 이미 중천에 이르러 있었다. 그걸 보니 다시 한숨이 나오려 했지만, 애써 삼켰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약수터까지 오르내렸지만, 이제 겨우 다섯 번을 채웠을 뿐이다. 아, 진짜 그걸 언제 채우냐? 코딱지만 한 집에 수조는 또 왜 그렇게 큰 건지. 아니 자율주행 차가 나오네 마네 하는 21세기에 수돗물이 안 나온다는 게 말이 돼? 다시금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떼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에서도 입에서도 거친 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지만, 여기서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남자한테 필요한 게 힘인지는 모르겠다만, 자존심 때문에라도 못하겠다는 말은 못 하겠다. 아니, 보여줘야지. 아저씨도 그렇고, 사모님까지 날 허우대만 그럴듯할 뿐 대놓고 비리비리한 애송이 취급하는데……. 내가 그리 만만한 놈은 아니란 걸 보여주고 만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득바득 산길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 아우씨, 깜짝이야!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놀라서 헛발을 더 딛고 만 난, 그대로 중심을 잃어 비틀거리고 말았다. 그로 인해 짊어지고 있던 물통들이 지게째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비탈을 데굴데굴 굴렀다.
“후아, 큰일 날 뻔했네!”
막춤이라도 추듯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간신히 쓰러지는 걸 면했지만, 저 아래로 거칠게 굴러가며 나무들과 부딪치고 있는 물통들을 보고 있으니 아찔하기만 하다. 내가 그 꼴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 것이다.
“아씨, 누군데 전화야!”
하필이면 지금 전화를 해서……. 응?
“아, 피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