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 힘! 힘! 힘! (1) (54/204)

#54. 힘! 힘! 힘! (1)2021.02.03.

설마 벌써부터 칼 갈자는 얘기는 아닐 테고. 의아해져서 아저씰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르. 전화가 걸려왔다. 녀석이었다.

“자, 잠깐만요. 어, 그래.”

- 자식. 형님이 전화하는데 재깍재깍 안 받고 뭐 해?

얼씨구? 누가 누구 형님이라는 거야?

“야이씨! 내가 너보다 한 살 더 많…….”

- 그래서? 형님 대접받고 싶어?

“와! 너 진짜!”

- 크크큭. 방송 좋더라.

“……정말?”

- 그래, 인마. 내가 보기엔 제대로 뽑았어. 나 지금 실검순위랑 SNS 돌아보는데, 반응 장난 아냐. 현정이 누나가 아주 작정을 했네. 40분 넘게 본방으로 분위기만 띄우다가 다음 주 예고에서 바로 불살라 버리는구나. 나참, 무슨 영화야? 1부 2부 막 이런 거냐고. 이건 뭐 예고편도 아니고…….

현정이 누나? 아, 이하연하고도 친하니까 신현정 피디하고도 접점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게. 촬영 때는 좀 민숭민숭해서 불안했는데, 편집을 잘했네.”

- 그 누나가 한 능력하지. 그러니 다들 난리인 거고. 오죽하면 나조차도 다음주 분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겠냐. 아, 지금 가요! 미안. 나 지금 잠깐 나온 거라서……. 나중에 다시 걸게.

뚝. 끊긴 전화를 보면서 혀를 찼다. 이 녀석은 대체 뭐야? 맨날 지 말만 하고 끊어. 그런데도 밉지가 않다는 게 참 미스터리다. 아니 고맙다. 전화 한 통 하는데도 잠시 틈을 낼 정도일 텐데, 굳이 전화하는 거 봐라. 혹시라도 내가 처져 있을까 봐 그러는 거겠지. 이러니 미워할 수가 있나? 그나저나 실검이 어쨌다고? 확인해보고 싶은 유혹이 밀려든다. 난 아저씨에게 잠시 시간을 달라고 말하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벙찌고 말았다.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아저씬요?”

“갔어.”

“……어디로?”

“어디긴? 일하러 갔지.”

“아!”

후다닥 일어났다. 방송에 미쳐서 뭐 하는 거람? 내가 요리사지, 연예인도 아닌데. 응? 근데, 아저씬 대장장이잖아. 한데 내가 왜? 아, 몰라 몰라.

“아쫌, 기다리시지.”

자리를 박차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러곤 아저씨가 있을 곳으로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

“밤도 늦었는데, 이거 꼭 지금 해야 해요?”

대장간의 전등이 오래됐는지 깜빡거린다. 그러고 보니 전기는 어떻게 끌고 온 거지? 발전기라도 쓰나? 아니면 또 사모님의 그 무시무시한 추진력으로 공무원들을 닦달하기라도 한 걸까? 그럼 가스도 좀 끌고 올 것이지. 안 그래도 산중이라 추운데 매번 목욕할 때마다 물을 아궁이에서 데워 쓰는 것도 번거롭기만 하다. 쯧, 내가 여기서 계속 지낼 것도 아니니 더 이상 신경 쓰는 것도 오지랖이겠지.

“아랫마을 신 씨가 가져왔더라. 수리해달라고.”

“나 참. 여기가 무슨 철물점인가? 왜 맨날……. 응? 설마 저게 전부……? 아니죠?”

아저씬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된다. 그렇다면 대장간 한편에 쌓여있는 낫이며 삽 등이 모두 신 씨인지 뭔지 하는 분이 가져오신 거라는 얘기인데. 아 진짜 너무하네. 무려 수십 개다, 수십 개.

“온 동네 쟁기들은 다 긁어온 거래요?”

“가끔 있는 일이야.”

“어라? 정말인가 보네? 정말 저게 아랫마을에서…….”

“거 참 말 많네. 사내 녀석이 그렇게 말이 많아서야 어디다 쓰겠냐?”

“여기서 남자 여자 얘기가 왜……. 아우, 그건 그렇고. 화 안 나세요?”

“화는 무슨. 원래 쇠장이가 하는 일이 그런 건데.”

그렇게 얘기하시는 아저씨의 얼굴 어디에서도 분노는커녕 화조차 찾을 수 없다. 보통 때와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농기구들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계실 뿐이다. 그러다가 못쓰겠다 싶은 것들은 한쪽에 던져버리시고 그나마 쓸 만한 것들만 한데 추리신다. 보다 못한 난 맞은편에 쭈그리고 앉아서 돕기 시작했다.

“부러진 거, 삭은 것만 추려내면 되죠?”

그저 고개만 끄덕이시는 걸 확인하곤 농기구들을 살폈다. 그러면서 물었다.

“이러고서 설마 돈도 안 내는 건 아니겠죠?”

“돈? 무슨 돈?”

내 이럴 줄 알았다. 진짜 뭐 이런 양반이 다 있나 몰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사모님 아니었으면 딱 길바닥에 나앉을 인물이다. 한마디로 호구. 내일도 아니건만 어쩐지 화가 치밀어 막 뭐라고 하려는 찰나 아저씨가 먼저 말씀하셨다.

“산중에 돈이 왜 필요해?”

“왜긴요. 집도 사야 하고, 애들도 키워야 하고…….”

“우리, 애 없는데?”

“…….”

“그리고 집도 있고.”

한숨이 나온다. 아무리 기와집이라지만, 어떻게 봐도 구시대적인 시설. 땅값이라도 좀 나가면 모르겠는데, 산자락에 있는 땅이 값이 나갈 리 없지.

“이걸 집이라고 할 수나 있…….”

“여기 말고. 본가는 따로 있지. 마을에.”

“아……!”

“봐라. 우리 부부 건강하고 네가 말하는 집도 있어. 그런데 뭐가 더 필요하겠냐?”

참 할 말 없게 만드시네. 그렇다고 해서 아저씨를 만만하게 보고 이런 식으로 이용해 먹는 사람들의 행동이 용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죠. 뭔가를 부탁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게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아, 그러니까요. 일을 맡겼으면 돈을…….”

“네가 여태 먹은 쌀이랑 고기는 어디서 난 거 같냐?”

“에?”

“다 그 사람들이 가져온 거야. 큼, 십 년 전쯤이던가? 한 번만 더 돈 가져오면 다신 안 고쳐준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그렇게 쌀이며 감자, 고기를 가져오더라. 쩝, 안사람이 그것까지 안 받는 건 너무 야박하다고 하길래 그냥 받고는 있지.”

……오해였군.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저씰 호구로 보는 게 아니라, 그 반대였다고나 할까. 어떤 의미론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아저씬 왜 이 일 해요?”

돈 때문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뭔가 사명감이 있는 거 같지도 않아서 물은 터다. 대충 짐작 가는 바는 있었는데, 물으면서도 설마설마했다. 근데, 그 설마가 적중했다.

“왜긴. 재밌으니까 하지.”

헐. 재밌어서 이 고생을 한단다. 그것도 깊은 산중에서. 물도 안 나오고 가스도 안 들어오는 상황에서.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아저씨가 불쑥 물으셨다.

“넌 어떤데?”

“예?”

“아, 넌 어떠냐고.”

“저야 뭐…….”

성공하려고 합니다……란 말이 차마 나오질 않는다. 이상하게도 아저씨 말을 듣고 난 뒤에는 그 말을 하기가 창피했던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셨던 걸까. 아저씬 분류를 마친 농기구 중 폐품에 가까운 것들을 자루에 담으며 툭 하고 내뱉으셨다.

“뭘 꿍하고 있어? 돈 벌려고 한다고 하면 누가 뭐라 그러냐?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그, 그게 아니라…….”

“됐다, 이놈아. 맘에도 없는 소리 하려면 집어치워. 세상에 공으로 일하는 놈이 어디 있겠냐? 나처럼 정신이 반쯤 나간 놈 아니면.”

할 말이 없어서 빗자루를 가져와 농기구에서 떨어져 나온 녹이며 부스러기들을 쓸고 있을 때였다.

“방송 말이다.”

“예?”

“그래서 재미있더냐?”

빗자루를 쓸다 말고 오도카니 선체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농기구들을 챙기고 있는 아저씨를 보고 있자니 갖은 생각이 다 머리에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특히 ‘방송이 재밌었나?’ 하는 의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물었다.

“예. 재밌었어요.”

“뭐가? 방송이?”

“아뇨.”

“……?”

“요리가요.”

정확히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에 부응하는 요리를 만들 때의 기분을 떠올리니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나레이션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해도 말이다.

“웃기는. 뭘 그러고 서 있어? 얼른 움직이지 않고. 좀 있으면 달 뜨는데, 칼 안 갈 거야?”

“칼을 제가 가나요? 아저씨가 갈지.”

“이놈이 그래도!”

“아, 맨날 나한테만 그래요.”

“뭘 자꾸 꿍시렁거려! 얼른 풀무 안 잡아!”

“제가 아저씨 제자인가요? 저, 이래 봬도 TV에 나오는 요리사라고요!”

“염병! 한 시간 내내 한마디도 못 하고 있더만. TV는 무슨!”

“한 시간 아니거든요? 45분…….”

“잔말 말고 풀무나 잡아, 이놈아! 밥을 먹었으면, 밥값은 해야 할 거 아냐?”

“아 진짜! 어제도 담장 칠했거든요!”

“그건 어제치지!”

“헐! 내가 진짜 밥을 굶고 말지.”

투덜거리면서 내 손은 이미 풀무를 잡고 있었다. 화로가 화탄을 머금고 대장간 안이 후끈 달아오른 것은 그로부터 10여 분 후의 일이었다. *** 그 시각, C마트 회장실에선…….

“축하드립니다.”

홍보팀장의 얘기에 김진숙 회장은 눈을 가늘게 해 보였다.

“그게 축하받을 일인가요?”

순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거리던 홍보팀장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 김진숙 회장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나가란 얘기. 홍보팀장은 쭈뼛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곤 낭패감 가득한 표정이 되어 쫓기듯 회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김진숙 회장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찌나 큰지 문밖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던 박 실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호호호. 이게 다 우리 서 셰프 덕분이지 않겠어?”

“글쎄요. 제 눈엔 회장님의 탁월한 안목 말고는 보이는 게 없어서…….”

“어머, 지금 아부하는 거야?”

“그럴 리가요. 사실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태 몰랐네. 박 실장이 그런 캐릭터인 건. 제법이야? 사람 웃길 줄도 알고.”

반쯤은 농담이라는 걸 알기에 주고받는 대화였다. 그만큼 분위기는 좋기만 하다.

“방송 잘 뽑았네.”

“예고편을 잘 뽑은 거겠죠.”

“그게 그거지.”

“SNS랑 포털 쪽, 잠깐 둘러봤는데 벌써부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광고 효과 좀 보겠지?”

“매출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겁니다.”

“첫방에서 저 정도면, 다음은 뻔한 거지. 하긴 예고편 보고도 다음 편 안 보긴 어렵겠지. 아, 안 본 사람도 있으려나?”

“짤도 돌 겁니다.”

“하긴, 요즘은 통으로 보는 사람보다 그쪽이 더 많으니까. 아무튼, 알지? 계속해서 신경 써야 한다는 거?”

“걱정 마십시오. 이미 김동하 국장하고 자리 만들어뒀습니다.”

“그래, 그러라고 법인카드 준 거잖아. 잘하고 있어요. 우리 박 실장님.”

흐뭇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든 김진숙 회장은 브라우저를 띄워 검색을 하다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반응 참 핫하네.”

“평소 보여준 류승렬의 이미지에 비해 훨씬 극적인 반응이라 그런 거 같습니다.”

“그걸 잘 잡아낸 피디가 대단한 거지. 뭐, 그 이전에 서 셰프의 능력이 아니었으면 편집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지만. 하, 진짜 탐나는데……. 어떻게 가질 방법이 없을까?”

“말씀드린 대로 작업 들어갔으니, 조만간 반응이 있을 겁니다.”

“쯧, 글쎄. 그 정도 가지고 약발이 받을까 몰라. 아무튼, 이쪽에선 최대한 호감을 표시했으니, 서 셰프도 사람인 이상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이긴 하겠지.”

말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란 듯 들렸지만, 표정은 그와는 완전 달랐다. 기필코 가지고 말겠다는 욕망. 그 욕구로 가득한 눈동자가 핸드폰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

“아우, 삭신이야.”

다음 날 아침, 힘겹게 눈을 떴다. 다른 까닭이 아니다. 녹슬고 부러진 농기구들을 녹이기 위해 화로에 풀무질을 하는 것만 해도 중노동인데, 그걸 밤늦도록 하다가 달이 떠오를 때쯤엔 칼까지 갈았더랬다. 아, 물론 칼을 직접 간 것은 아니다. 아저씨가 옆에서 하는 걸 지켜만 본 거지. 그렇긴 해도, 아저씨가 언제나처럼 목욕재계까지 하고 칼을 가는데 싹퉁머리 없게 혼자 방에 기어들어 가 잘 수가 있어야지. 덕분에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양 이 꼴이다. 이불을 개는데 어디 한 군데 안 쑤신 데가 없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라 중얼거렸다.

“아, 인터넷.”

어제 핸드폰으로 실시간검색어랑 확인해본다고 하다가 말았더랬지. 난 개어놓은 이불 위에 풀썩 주저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거 참, 희한하기도 하지.”

통신이 터지니까 와이파이도 터지는 건 또 무슨 원리냐고. 조금 느리긴 하지만, 그게 아니었으면 데이터도 얼마 없는데 인터넷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디 보자.

“내 마음의 요리를 들…….”

검색어를 치려다 말고 눈을 치떴다. 실검에 떡하니 떠 있는 이름 석 자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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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왜 아직도 이 이름이 실검에 올라 있는 건데? 류승렬. 실검 순위 3위. 어젠 방송 직후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만 해도 희한…… 아니 신기한 일인데, 무려 3위란다. 그걸 보고 있자니, 내 이름이 뜬 것도 아닌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뭐지, 이 기대감은? 난 마른 입술에 침을 축이며 핸드폰 화면을 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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