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칼 받으러 온 건데요? (3)2021.01.24.
좀비들이 따로 없었다. 벌써 며칠째 집에 안 들어간 사람도 있었고, 커피를 무슨 한약이라도 되듯 달고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 낯빛이 누렇게 뜨고, 피부는 푸석푸석하다. 한데도 누구 하나 불만을 터뜨리지 않는다. 이제 갓 들어온 신입이 아니고야, 이 상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조강훈!”
“아, 본부장님!”
“그거 신 피디 가져다주려고 사 온 거야?”
“네. 피디님도 있습니다.”
“뭔데? 마키아토?”
“아뇨. 에스프레소요.”
“아이구. 아주 카페인 중독이네, 중독.”
“흐흐흐. 그러게요.”
“신 피디 껀 이리 줘. 내가 갖다 줄게.”
“아, 예.”
조강훈 FD에게서 커피를 건네받은 고민준 본부장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뎌 편집실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편집실 앞까지였다. 거침없이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던 고민준 본부장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신현정을 보곤 멈칫하고 말았다. 아우라.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방도가 없다. 온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던 고민준 본부장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신현정은 그가 온 걸 알아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장비를 움직이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 고민준 본부장은 그녀의 뒤에 선 채로 화면을 보았다. 프로그램의 메인 셰프로 정해진 서진영이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두 사람, 한진석과 류승렬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꾸물거리는 장면이었다. 아니 뭐 볼 게 있다고? 자기 같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싹퉁 잘라버릴 장면이건만. 이해가 안 가지만, 신현정은 그 장면을 보고 또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만족스러운 편집을 했는지, 숨을 크게 몰아쉬며 기지개를 켜는 그녀였다. 그제야 고민준 본부장을 발견하곤 깜짝 놀란다.
“선배!”
“야, 목마르겠다. 마셔.”
헤드폰을 벗는 그녀에게 커피를 건네며 고민준 본부장은 뒤늦게 의자 하나를 끌고 와 그녀 옆에 앉았다.
“너 눈 밑이 시커멓다.”
“누구 덕분이죠.”
“야아, 누가 들으면 내가 억지로 끌고 온 줄 알겠다.”
“전 안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흐흐. 내가 널 모르냐? 원래부터 이쪽으로 오고 싶어했잖아? 어쩌다보니 시사 쪽으로 간 거지. 쯧, 덕분에 시간만 낭비했지.”
“어디서 구르던 그게 다 자양분이 될 거라고 한 게 누구더라?”
“얀마! 그땐 내가 힘이 없었으니까 그러지.”
“후! 좀 살 거 같네. 커피 땡큐∼”
“어? 아닌데?”
“뭐가?”
“내가 산 거 아니라고.”
“산 거라고 치지, 뭐.”
핼쑥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얼굴을 보곤 걱정하고 있었는데, 여유로운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된다. 그래서 고민준은 거리낌 없이 본론을 꺼냈다.
“야, 광고 다 찼다?”
“그래?”
“놀라지 않아?”
“그때 다 놀랐어.”
“뭐? C 마트?”
“거기서 더 놀라야 해?”
씨익. 웃은 고민준 본부장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빠른 손길로 뭔가 조작한다. 까똑! 신현정의 핸드폰이 울린다. 뭐야? 하는 눈빛으로 고민준 본부장을 흘겨보곤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는 그녀. 이내 눈이 휘둥그레진다.
“ZZG이랑 드림온파크는 C 마트 계열 아냐?”
“그렇지. 그리고 그 아래도 한번 봐봐.”
“음, YJ? 여기 삼한 쪽 아냐?”
“유일 제당이 계열에서 분리하면서 이름만 바꾼 거니까 그런 셈이지.”
그밖에도 이런저런 회사들의 제품 광고로 꽉 들어찼다. 아직 첫방이 나가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면 대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국장님도 난리더라. 아주 입이 찢어질 거 같더라니까.”
“다행이네.”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
“너, PPL 안 좋아하는 건 아는데, 그거 넣자.”
“…….”
“야! 솔직히 요즘 PPL 안 넣는 방송이 어딨냐? 그래그래. 네 마음 알아. 그러니까 내 말은…… 무리해서 방송에 문제가 생길 정도까진 말고, 그냥 시청자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만. 왜 있잖냐? 커피 머신 같은 거. 이왕이면 로고가 보이게 돌려놓는다든가. 아, 그래! 서 셰프가 쓰는 조리기구라든가. 알잖아? 땡길 때 확 땡겨야 한다는 거.”
한마디로 물들어올 때 노 젓자는 얘기다. 하지만, 신현정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녀는 아직 물이 들어오긴커녕 배를 띄우지조차 않았다는 생각이었으니까.
“……생각해볼게.”
“오케이!”
그녀가 저렇게 얘기한 것만 해도 여기까지 온 목적은 이뤘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고민준 본부장은 스스럼없이 물러났다. 대신 툴툴거리는 걸 잊지 않았다.
“진짜 내가 위인지, 네가 위인지 이젠 헷갈린다.”
옅게 미소짓는 신현정. 그녀를 대견하다는 듯 쳐다보며 고민준 본부장이 당부했다.
“편집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너무 무리하진 마. 그러다가 훅 가면, 프로그램도 무너지는 거야.”
“그럴게.”
“그래. 그럼, 고생하고.”
고민준 본부장이 떠나고 난 뒤, 신현정은 커피를 입가로 가져가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화면에선 말없이 앉아 가만히 류승렬을 바라보고 있는 서진영이 보였다. 그걸 보면서 신현정은 눈을 빛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방송이 나가고 나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하는 중이었다. 단순히 대박이 아닌, 역대급 방송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 난 처음 알았다. 칼 한 자루 가는데, 그렇게 많은 절차와 또 정성이 필요한 줄은. 아저씬 해가 지자, 한 시간이 넘도록 목욕을 했다. 찬물로.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하도 경건하게 목욕재계를 하니 오히려 말문이 막힌다. 그러더니 달이 떠오르길 기다리며 숫돌을 꺼내는데……. 정말 기가 막혔다. 숫돌만 13개다. 3개가 아니라 13개. 그것도 다 순서가 있단다. 어이가 없어서 물었더랬다. 칼을 가는 데만 열흘이 걸린다고 하길래.
“칼 만드는 데는 얼마나 걸렸어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한 손을 쫙 펴서 보여준다.
“닷새? 칼 가는 시간보다 만드는 시간이 더 짧네요?”
“아니, 단위가 틀렸다.”
“……?”
“다섯. 칼 한 자루 만드는 시간이다.”
헙. 다섯 달?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무슨 칼을 어떻게 만들기에 그 정도 시간이 걸리는 건지. 그래서 매달리다시피 해서 들었다. 칼을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 그리고 깨달았다. 왜 장인이 장인인지. 아저씨 말씀에 따르면, 칼을 만드는 첫 순은 쇠를 뽑아내는 것부터란다. 그냥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철괴로 만들면 되지 않냐고 했다가 면박만 실컷 받았다. 남의 손, 특히 기계의 힘을 빌린 건 나중에 보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라고. 아무튼, 철광석에서 쇠를 뽑아내는, 이른바 제련이라는 작업을 통해 철괴를 만든 후에는 정련이라는 작업을 통해 칼의 형태를 잡아가는데, 그게 또 억 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접쇠라고 해서, 철을 펴서 접고 또 때려서 편 후 다시 또 접는, 끝도 없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쇠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그 과정에서 불순물이 흘러나와 더욱 정순해진다고. 그렇게 칼의 형태를 잡고 나서야 담금질을 하는데, 이것도 칼의 부위마다 다르단다. 안 그러면 쉽게 부러지거나 아니면 날이 나간다나? 결론부터 말하면 칼 한 자루가 그냥 쇳덩이가 아니었다. 칼끝과 날 부분이 다르고, 칼등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손잡이 부분도 다르다. 그러니 다섯 달이 걸리지. 정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 만들 칼이니 날을 세우는 것도 공을 들이는 거겠지만. 감탄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아저씨에게 대한 존경심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공손해지는 순간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만드셨어요?”
“군대 갔다 와서 허송세월할 때 전국을 떠돌았지. 무엇을 해도 얼마 못 가서 시큰둥해지면서 재미가 없던 때였다. 그러다 여기 와서 집사람을 만났지.”
어? 전개가 좀 이상한데? 칼 얘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부인, 그러니까 사모님 얘기를 꺼내시는 거지?
“이상한가?”
“……쪼금요.”
“이상할 것 없네. 마누라가 나보다 연상인데, 진짜 미인이거든. 그래서 반했지.”
“좋으시겠어요. 미인을 얻으셔서.”
“마누라는 수수 팥단지를 좋아했더랬지.”
“그러셨군요.”
“산나물도 기가 막히게 했어. 난 봐도 도무지 모르겠던데, 산에서 나물들을 캐다가 무쳐주면 밥도 몇 공기씩 비우곤 했지.”
어라? 이거 분위기 왜 이래? 아저씨 눈빛도 점차 아스라해지고, 목소리도 떨리는 게……. 게다가 자꾸만 과거형으로 말하는 게 영 거식하다. 설마? 난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조심스럽게.
“보고…… 싶으시겠어요.”
아저씨가 쓸쓸한 얼굴로 얘기했다. 허공으로 던지는 눈동자가 아스라한 빛을 머금고 있다.
“그야 그렇지.”
“그래도 사모님께선 행복하실 거예요. 아저씨처럼 죽은 뒤에도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나서…….”
“응? 뭔 소리야?”
“……아, 아니에요?”
“흘, 이 사람이 왜 생사람을 잡고 그러나? 우리 마누라, 아주 건강해.”
“그, 그런가요?”
“그래. 내일 올 거야. 밥해 주러. 밀린 빨래도 가져갈 겸 해서.”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아저씨께서 픽하고 웃으셨다.
“어디까지 했지?”
“사모님 만나셨다는 부분까지요.”
“그래, 그랬지. 그리고 장인어른한테 야장술을 배웠지.”
그 후의 얘기는 어찌 보면 뻔하디뻔한 얘기다. 뭐 하나 꽂히는 게 없어서 전국 팔도를 헤맬 정도였던 사내가 좀처럼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쇠를 어떻게든 다뤄보고자 분투해온 역사였다. 그 뒤에는 혹은 앞에는 사모님이 계셨다고 했고.
“스승은 장인이셨지만, 지금의 날 만든 건 마누라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좋으신지, 천천히 눈을 감는 아저씨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더니 점점 짙어지신다. 그렇게 좋은가? 나까지 흐뭇해질 정도였다.
“아, 이제 달도 떴겠다. 슬슬 시작해볼까?”
갑자기 이렇게 얘기한 아저씨가 정한수를 한 그릇 떠오셨다. 내가 아침에 길어온 물이었다. 사정을 다 듣고 나서 보니, 아저씨의 행동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이제 와선 대단하다 싶다. 어쩌다 보네 칼을 만드는데 한 손 보탰다는 생각에 나까지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런 거라면 몇 번이고 물을 길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날, 아침. 여기 온 지 사흘 만에 목욕할 수 있었다. 부뚜막에 있는 솥단지에 물을 길어다가 불을 때는 수고까지 해야 했지만. 문제는…….
“어머, 누가 있었네?”
욕탕으로 쓰고 있는 곳의 문이 벌컥 열리고 들어온 여자,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모님이셨다.
과연 아름답긴 하셨다. 다만, 하필 이 타이밍에 여길 들어오셨느냐는 거다. 차라리 탕 안에 들어가 있었다면 다행이었을 텐데, 다 씻고 나서 막 몸을 닦으려는 찰나에 들어오셔서는…….
“안 봤어요. 안 봤어.”
그러곤 나가신다. 아, 젠장. 잠시 후에 옷을 입고 나가보니,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대부분 산나물이었지만, 한가운데는 닭백숙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반찬도 다 떨어졌던데, 뭐 먹고 있었어?”
“뭘 먹긴 뭘 먹어. 밥 먹었지.”
“간장에 비벼 먹고, 고추장에 비벼 먹었습니다. 그나마 김치라도 있어서 다행이었죠. 아, 그래도 맛있었습니다. 간장도 고추장도. 김치도요.”
“호호호. 그래요? 맛있었다니 다행이네. 얼른 먹어요. 식기 전에. 자, 이것도 좀 먹어봐요.”
백숙의 다리를 주욱 찢어 남편 밥그릇에 올려주곤, 내게는 가슴살을 떼서 준다.
“이야, 살이 부드러운 게 맛있네.”
“그지?”
나머지 한쪽 다리도 찢어 아저씨 밥그릇 위에 올리곤, 백숙 그릇을 내 쪽으로 미는 사모님.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많이 먹어요.”
“……예.”
아저씨 말씀이 맞았다. 지금의 아저씰 만든 건 사모님이셨다. ***
“이거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뭐∼어? 간장?”
“예. 향도 나고, 맛있어요.”
“호호호호. 그렇게 칭찬해도 안 가르쳐 줄 거야.”
“…….”
“하는 거 봐서.”
뭘 봐서……냐고 묻진 못했다. 왠지 무서워서. 아저씨 말씀대로 아름답긴 하신데, 눈웃음을 지으며 은근한 눈길로 날 바라보는 건 정말 두렵다. 유혹? 당연히 아니다. 저건 그러니까, 뭐랄까. 그래, 동백꽃.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딸과의 혼인을 구실로 소작인의 아들을 무슨 노예처럼 부려먹는 주인의 눈빛 같다고 하면 심한가?
“그냥 모를래요. 그냥 여기 있는 동안 맛있게 먹고 가죠, 뭐.”
“그러던가.”
싱긋 웃으시며 간장이 든 병을 들고 나가시는 사모님. 그러니까 그건 왜 가져가시는 거냐고요? 쯧, 그래도 괜찮다.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난 나니까. 여태까지 해온 대로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나레이션도 그랬잖아? 날 믿으라고. 그리고 정말 필요할 땐, 레시피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따라라라라, 라라……. 얼씨구? 필요할 땐 가만히 있다가 이럴 때만 나타나는 거 보라지. - 서진영은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을 믿으란 얘기는 가능성을 믿으란 거지, 배움을 멀리하라는 얘기가 아닌 것을. 그는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창고에 보물을 아무리 쌓아놔도 쓰면 사라져버리지만, 머릿속에 쌓아둔 지식은 누구도 훔쳐갈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최고의 보물은 지식과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아, 그러셔? 최고의 보물이라 그거지? 그걸 위해선 노예가 되더라도 괜찮다는 얘기네. 근데, 난 싫다. 그렇게 하면서까진, 더더욱 사모님의 눈빛으로 봐선 왠지 그 이상일 것만 같아서 말이지. 사모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고개를 내젓고 있을 때였다.
“계세요?”
문밖에서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그사이 나레이션은 사라져버렸고. 뭔가 싶어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을 때, 안방 문이 열리며 아저씨가 나오셨다.
“왔나?”
“아, 계셨네요?”
“가져가게. 창고에 놔뒀으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남자는 순박하게 생긴 얼굴이었지만, 체구만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손도 무슨 솥단지처럼 커다란 게 절대 책상물림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나타난 남자의 손에는 삽자루와 곡괭이가 들려 있었다.
“이게 없어서 며칠을 놀았는지 모릅니다. 다른 걸 쓰려고 해도 자꾸 삽 끝이 구부러지고, 땅을 파도 시원찮게 파지니 일할 맛이 나야죠.”
“그래도 엔간하면 철물점에서 사서 써. 나중에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아이고. 그러니까 오래 사셔야죠.”
“이 사람이! 자네 삽이나 만들어주려고 오래 살란 말인가?”
“흐흐흐. 말이 그렇게 됩니까? 모쪼록 건강히 오래 사시란 말이었습니다.”
“농은 그만하고, 그만 가보게. 나는 좀 쉬어야 해서.”
“예. 그럼. 아, 사모님께선 집에 가실 거면 제 오토바이 타고 가시죠.”
“괜찮아요.”
사모님이 눈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치자,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곤 돌아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연히 그가 들고 가는 삽과 곡괭이에 눈길이 따라간다. 삽이 얼마나 대단하면 다른 삽은 못 쓴다고 우는소리를 하는 걸까? 곡괭이는 또 어떻고? 농기구야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저씨가 들어간 안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사모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싱긋 웃고 계셨다. 무, 무섭게끔.